[니코마코스 윤리학], 돋을새김, 조대웅 - 요약본이라 정작 보려고 했던 5권인데 맘에 들지 않아 한편으로 밀어두다. 최근 것을 다시 찾아봐야겠다.
[시서화에 깃든 조선의 마음], 경남대박물관에 있는 일본 데라우치문고 보물로 반환된 것이라고 한다. 데라우치는 일제의 조선 초대총독이다. 그 인물이 가져간 것이라고 하는데, 고려말 조선의 주요인물들의 글씨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게 해두었다. 한번 경남대 박물관에 들르시면 보시길...학문적으로도 주요한 역할을 할 것이란 것도 곁들여있다. 논문에 이런저런 배경들이 상세히 들어있다.
[예술을 뚫고 들어간 사람들], 푸른사상 - 아마 제목탓이었겠다. 동아일보에2000년전후해서 인물탐방을 했던 기사인 모양이다. 건축관련 인물이 3-4명인데 문외한으로도 이것은 아니다 싶다. 몇몇 화가의 그림 몇쪽의 흔적을 남겨둔다. 권옥연 [고목이 있는 초가], 서세옥 [고목],[태양을 다루는 사람들]-봤던 그림흔적, 민경갑 [목련이 있는 삶] 
1. [이쾌대], 열화당 - 북으로 간 화가 가운데 한명이다. 그의 자화상을 보노라면 막 빚어놓은 도자기를 보는 듯하다. 평면의 그림이라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 아마 많이 알려진 그림은 [군상4],[군상3,2,1], 형도 화가로 유명하다. 


2. [백남준, 그 치열한 삶과 예술],열음사 - 이것도 동아일보에 연재된 것이다. 시리즈와 드러나게 부각된 글 위주로 보는데, 시간 순에 이어 별반 맥락이 끊기지 않는다. 백남준이 동경대에서 쇤베르크 연구를 했고 부자집 아들로 마르크스의 영향과 늘 사회와 예술의 역할에 고민을 끈을 놓치않았던 삶, 최근 백남준미술관?인가 관장의 인터뷰 기사, 몇권의 책의 편린도 있는지라 다른 관심을 갖게 만들어 이렇게 훑어보게 된다. 몇몇 인상적인 대목만 잊지 않을 요량으로 남겨둔다.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로 역으로 국내에 알려지게 되었다는데, 그 조지오웰의 [1984년]의 사회-정치적 의미에 대해서는 왜 들은 바가 없었던 것일까? 무지일까? 그냥 세계적인 예술가로 이용하려던 그런 것이었던가? 진보진영에서도 처음듣는 이야기일뿐... 아무튼 여러 의문이 든다.  

 


 


   
 

우리가 예술을 한답시고 사회정치적 문제들로부터 이탈한다면 우리의 행동은 모은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플럭서스는 인간의 정신을 현혹시키고 소비하는 것에 중지신호를 보내는, 이를테면 사회적인 것이다. 따라서 플럭서스는 이 사회에 기능하지 않는 상품으로서의 예술품을 명백히 반대한다.

 
   

 

이런 것으로 일종의 전위예술가, 행위예술가로 치부되었던 모양이다. 사회와 긴장성이 없으며 예술은 부르조아 문화적 가치로 전락하고 만다고 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70년대 초반까지 텔레비전 작품으로 이어져있다. 제목만으로도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흐름들을 읽을 수 있다. [TV 부처]-당신과 당신아들딸들은 여전히TV앞의 부처는 아닌가? [TV 브라], 그리고 이 TV앞에 자장이 있는 물체를 갖다대어 TV 메세지를 변용하게 하는 [TV 자석], [텔레비전 가든],[TV 물고기], 그리고 미약하나마 소통의 가능성을 타진한 [텔레비전 달]을 통해 상업적인 TV가 아니라 유기적이고 자연적인 TV를 갈구한다. [글로벌 그루브], 1973년의 [정보초고속도로]로 클린턴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훔쳤다라고 했던 그의 예술이 진폭을 일으켰던 파장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우려를 놓지 않은 것 같다. 

   
  정보하이테크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그것은 국부적 마취제에 불과하다. 따라서 예견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라고 했다. 지금 더 더 국부적인 자본의 발싸개쯤으로 쓰려는 현실을 한편으로 또 다른 한편으로 가능성을 넘나들긴 하지만 말이다.

아름다운 음만이 음악이 아니라, 소음이 역시 음의 하나이고 그 자연적인 것을 음악으로 넓히는 것.처럼 예술의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행동했던 점은 확연한 것 같다. 좀더 찾아봐야하겠지만, 말미 대담진행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중은 언제나 신화를 기다리고 있으며 감동할 만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가들의 역할은 크다. 자신의 예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대중이 우매하다고 하는 것은.....자가당착이다.  대중이 예술을 찾아오는 예는 매우 드물다...예술가나 예술의 역할이 보다 사회적이어야 한다는 나의 신념은 변함이 없다.

 
   

 이런 내용이었다.


3. [구스타프 클림트, 정적의 조화], 박홍규, 가산북스 - 이 책은 어제 빌렸다. 수중에 넣고 조금 더 강독을 한다. 1900년대 오스트리아 빈을 지금 여기 2000년의 수도 서울에 비교한다. 자본주의가 기동력을 얻고 쟁쟁한 모든 분야의 내놓으라는 인물들이 즐비하던 빈은 현실처럼, 빈부의 차이, 주거의 차이, 일의 늪, 성의 이중성으로 큰 차이가 없다한다. 아마 이주헌의 소개도 읽어봐야겠지만 사회적 정치적 입장들에 대한 충분한 조사가 없었던 듯, 내내 편협한 비평에 문제제기를 한다. 그냥 알려진 그림들은 그리이스 신화를 배경으로 한 상징화가 많은데도 신*아류의 연애편지 속화로만 읽히는 모양이다.  

그런 점에서 더욱 [철학] [의학] [법학] [신학]의 작품 속의 인물들을 분석해내는 관점이라곤 아예 다뤄지지 않는 언론이다. 전시회가 있다고 해도 이 책말고 귀동냥으로도 들은 적이 없다. 단테의 신곡을 주머니에 넣고, 매일 작업을 한 클림트는 대머리에 샌달을 신고다니고 지저분하다고 했다. 고흐보단 덜 했겠지만, 그가 나누고 싶거나 사회적맥락은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는 몽매한 현실이 어이가 없다는 저자의 말씀이다. 종교,예술,음악,건축...두루두루 종합화에 대한 관심으로 별도의 분리파 전시회도 주관한다고 한다.

4.
그런면에서 젊은 소장학자의 책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도 눈여겨볼만하다.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거슬러올라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이 그렇긴 하지만, 행복한 삶, 좋은 삶과 살림살이 경제에 대한 고민을 이렇게 깊숙이 올라가야할 정도로 인류는 정신없이 내달려왔다 한다. 그 인물들 가운데 아리스토텔레스만큼 모든 것들을 공동체, 사회에 근거를 두고 종합적으로 생각을 전제해나간 인물이 없다한다. 특히 우리가 신화로 모시고 살고 있는 경제에 대해서 말이다. 학문의 분기점만큼이다. 모든 것을 사회라는 것에서 제것만 취하는 아둔을 말하는 지금을 돌이켜보면 크게 다른 바가 없다. 

 

뱀발. 어제 잠깐 들춰본다는 것이 한국조각사연구의 조각 가운데 이곳 조각공원에 있는 가슴훵한 가슴 속 구름이 겹쳐있는 사진이 나와 뜨끔한다. 구본주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런 마음을 표현한 작가라는 사실이 그렇다. 그리고 단청무늬가 그렇게 많고, 그렇게 품이 많은 드는 작업인줄 알면서도 색감과 꿈틀거리는 문양에 정신줄을 놓다. 백년전이나 오백년전이나 사회와 삶을 빠져나간 짓들에 늘 정신못차리는 것이 우리인가보다. 만약 오백년전쯤부터 다시 살아보라고 하면 어떨까. 잘 살아낼 수 있을까? 우리는 여전히 사회적인 것도 동물이라는 것도, 사회적동물이란 의미를 잊어버리려 발버둥치고, 그런 있지도 않은 개인에 기반해 제도를 만들고 괴물을 만들고 사회를 발라낸 예술가와 음악가와 조각가와 법학자와 의사와 종교인을 만들어내고 있다 한다.       그래도 굿모닝 미스터 백, 아니 jun 해야겠지!!!  물론 뒷북이지만서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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