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o  o   8

지금 [입속의 검은 잎]과 [지금 이대로 괜찮아]를 보고 있다. 어찌하다보니 벌써 짧은 시간을 잘라 들여다 봐야할 것 같은 세밑. 굳이 되돌아봐야하는 숙제같은 것은 아니지만 이런 저런 생각이 겹쳐들어 흔적을 남긴다.

1. [소리의 뼈]를 보다가 마음의 뼈 생각이 든다. 그렇게 치환해서 읽고 있다. 마침표가 끝난 뒤에도... ...

김교수님이 새로운 학설을 발표했다/소리에도 뼈가 있다는 것이다/모두 그 말을 웃어넘겼다, 몇몇 학자들은/잠시 즐거운 시간을 제공한 김교수의 유머에 감사했다/학장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교수님은 일학기 강의를 개설했다/호기심 많은 학생들이 장난삼아 신청했다/한 학기 내내 그는/모든 수업 시간마다 침묵하는/무서운 고집을 보여주었다/참지 못한 학생들이, 소리의 뼈란 무엇일까/각자 일가견을 피력했다/이군은 그것이 침묵일 거라고 말했다./박군은 그것을 숨은 의미라 보았다/또 누군가는 그것의 개념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모든 고정관념에 대한 비판에 접근하기 위하여 채택된/방법론적 비유라는 것이었다/그의 견해는 너무 난해하여 곧 묵살되었다/그러나 어쨌든/그 다음 학기부터 우리들의 귀는/모든 소리들을 훨씬 더 잘 듣게 되었다./(1984. 7 기형도 [입속의 검은 잎]에서 )

2. 이제는 다가올 일을 예상하고 점을 치는 일이 쉬워졌다. 조만간 식품위생 관련하여 문제가 생길 것이다라구. 기상이변이 아니라 외려 그것이 정상적인 것이 되었기때문에 폭설이 오구 가뭄이 올 것이다라구. 정부는 철학도 없고 정책도 없고 행동력만 있으므로 사고를 치기만 할 것이라구. 사람들은 거시와 비평의 전망탑에서 살고 있으므로 자신의 발과 손이 없어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할 것이라구. 키보드좌파라구 가두고, [우리가 하면 로맨스가 남이하면 불륜이기에]가 [우리-----불륜]까지를 낳고 낳고, 무한 수렴을 하다보면 우리는 없고, 불륜만 자가증식하게 되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론상 없는 것으로 귀결되기때문에. 잘한 것은 내가 잘해서 그런 것이고 못한 것은 그놈때문이기에 어김없이 [때문에]의 거미줄에 걸려들게 되어있고. 히틀러가 그렇게 [유대인이기때문에]란 사고의 함정에 걸려든 것처럼 내사랑좌판 그렇게 로망의 마법에 빠졌을 뿐이고, 거기에 헤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불륜과 [때문에]를 증식할 뿐이고. 그렇게 좌파는 좌판대에 오르고 있을 뿐이고. 여전히 거시와 비평의 전망탑 속으로 향한 길만 내고 있을 뿐이고...  
           
                         이것이 2oo8년의 진보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이자 자신에 대한 소회이다.

3. 책으로 만난 사람 가운데 손을 꼽으면 니클라스루만이 인상적인데 초입만 들어서다만 느낌이구, 기세춘선생님의 동양고전입문은 아직 심호흡을 하며 발을 들이지 않고 있지만 관점이 워낙 파격적이라 주춤거리고 있다. 스피박할머니는 여전히 마음만 가득하지만 마음을 자라게 하지 못한 한해가 된 것 같다. 지젝-고진은 얼핏얼핏 읽지만 윤수종교수님이 소개하는 라이히, 가타리의 시선에 자꾸 걸린다. 들뢰즈의 열풍처럼 지식계의 한때의 유행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오히려 올해 독서 가운데 좋았던 것은 풍경-그림으로 도움을 많이 받은 것 같다. 그러고보니 말미에 본 김상봉교수의 관점도 인상이 깊다.

4. 관점을 품지 못하는 시대 - 아니 관점을 다르게 품을 여유가 없는 시대라고 해야하나 싶다. 아마 조바심을 내거나 어설픈 앎으로 재단하려는 사적욕망인지도 확인을 해보아야 하나라는 반대질문을 놓아두고 이야기를 이어 가본다. 삶이 정치로 녹아든 상황. 그것이 녹을지 겹칠지 겹치는 와중인지는 모르겠지만, 삶과 운동, 활동을 중첩시키지 않고서는 논의를 전개시키기가 힘든 사회가 되었다. 각개약진의 탁월한 실력들을 존중해야하지만, 고민을 좌판에 깔아놓거나 전시하지 않는다.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듯 사적공간에서 밖으로 향하지 않는다. 물론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부터 확인을 해봄직한 것일까? 무엇을 고민해야하는지부터 질문을 늘어놓는 것이 순서이겠다 싶다. 어떻게 하고싶은데, 어떻게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하는데가 시식코너에 있다고 하자. 기역이란 사람이 니은이라고 품평을 하고 디귿이란 사람이 리을이라고 품평을 하고 ....미음이 비읍을 품평한다고 하자. 왜 품평을 하냐구, 오히려 절대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품평을 하지라고 되묻는다면 언제까지 품평을 의탁할지 되물어보자. 맛의 품평이 다르면 다를수록(물론 품평하기까지 공부도 준비도 감도 익혀야하겠지만) 다가올 현실은 양쪽 극단사이에 있을 확율이 높다.

어쩌면 우리가 자꾸 마음들의 렌즈를 모아야할 지점을 모으지 않으려고 하거나, 자꾸 대행시키는 습속이 걸림돌이지 않나 싶다. 다르게 새롭게 할 수 있는 일에 시선이 멈추도록, 서서히 좁아져서 빨리 지나가는 관이 아니라 확 넓어져서 서서히 갈 수밖에 없는 시공간을 만들지 않고서는 그 다음은 없다라고 해야하는 것일까? 일리와 오감의 체험을 나눌 수 있도록, 그것이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올 시간과공간을 만드는 일이라고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것인지?란 생각도 겹쳐든다.

사회가 자꾸 삶과 정치-경제의 공간을 서로짓누르면서도 간간이 답을 보여주기도 하는 것은 아닐까? 그 공간사이로 짓눌려있지만 한데 엮여 숨쉬는 진보의생공간이 들여다보이는 것은 아닐까?
살갗애이는 삶과 연결시키는, 마음들을 렌즈에 쏘이게 해서, 햇침이 모여 검은종이를 태우듯 태울 수는 없는 것일까? 가장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을 애타게 할 수는 없는 것일까? 그렇게 하기엔 자칭진보라 칭하는 사람들은 정말 많은 것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눠줄 것이 정말 많은 것은 아닐까? 처리하지 말고 느리게 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정말 빨리갈 수 있는 지름길은 아닐까? 우리는 꼭지점을 너무 빠르게 통과시켜왔고 바뀌어 왔다. 너무도 빨리빨리 회계년도의 고점을 통과시키는 버릇이 있어 늘 늦었던 것은 아닌가? 꼭지점을 돋보기로, 현미경으로 셈으로 템으로 들여다보고 걱정하거나 될수록 천천히 아픔을 공감하면서 지나갈 수는 없는 것일까?

5. 루만은 소통을 이야기하면서 소통을 세가지요소로 나눈다. 정보-통지-이해로 말이다. 통지한다고 해서, 정보를 준다고 해서 소통되는 것이 아니란다. 이해되지 않으면 결코 소통할수도 되지도 않는다고 한다. 패션으로 소통, 유행으로서 소통을 색바랜 깃발처럼 끝이 났다. 이해하는 척이 아니라 정녕 이해되지 않으면 이해하지 않으면 다음을 접어들 수 없다. 그래서 십년이 지나도 소통하지 않았으므로 늘 부단히 이해하려고 할 뿐이다. 그러니 결국 하거나 해 놓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6. 올 한해 많은 사람을 알게 되었고 만나게 되었다. 마음도 확인할 수 있게 되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늘 감사하고 고맙다. 하지만 마음이나 생각, 고민을 품고 나누고 자랄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아 아쉬움이 크다. 서로 키울 수 있는 느낌-아픔-즐거움들부터 생각해보아야겠다. 마음 가득한 인사와 만남들이 기대된다. 그래서 2OO9년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올해 감사하는 소회 가운데 하나이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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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과 일상으로 녹여내는 일,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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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시대의 선비들이 책을 읽고 화선지에글과 그림을 그리면서 기운 생동의 자연 철학을 공부했다면 그들은 책과 글씨 대신에 직접 천문을 헤아리고 풍수를 재며 사람의 병을 진단하는 자연철할을 몸으로 직접 행함으로써 기운 생동을 배운 것이다. 선비들의 방법이 간접적인 진리 탐구라면 벽화 시대의 서생이나 화가들은 직접적으로 진리를 체현하는 방법이다.

선비들은 이런 방법을 야만이라고 했으나 그 방법이 훨씬 더 진리에 가깝게 있었다는 것은 공자의 동이찬양이나 석가의 불립문자 교외별전의 내력에서도 암시되고 있다. 문인화에 의해 발전된 산수화에 신선에 관한 이야기가 도입되었던 것도 선비들의 신선(동이)에 대한 숭모의 정신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설명적인 그림들은 뒤에 혜원이나 단원의 풍속화로 재생되지 만 결국 혈통적으로 볼 때, 이것들은 모두 벽화 정신의 연장인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32. 장이 그림과 채색화 정신)

고분 건축과 같이 습도가 문제되거나 십우도와 같이 벽에 그려지는 벽화는 수분 증발에 유의해야 하는데 이를 감내하며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선비의 몫이 아니며 물리학적 지식을 갖춘 전문적인 장이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여기에서 채색의 정신을 새삼 깨닫게 된다. 수묵이 정신을 점령하기 위한 그림이라면 채색은 공간을 점령하기 위한 그림의 방법이다. 공간을 점령한다는 뜻은 서구의 르네상스와 같이 현세(속세)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서구의 르네상스가 중세의 스토이즘에 대한 반동이라면 우리의 채색화도 수묵 정신의 반동일 수가 있다. 그러나 이 양자 사이에 엄연한 차이가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중세와 르네상스가 수직적으로 대립되어 있었다면 수묵과 채색의 변증법적 전개는 내연과 외연의 수평적인 대립이라고 말할 수 있다. 수묵이 내연의 긴장이라면 채색은 외연으로 확산하려는 긴장의 미학일 수 있다. 이 두 개의 변증법적 운동 법칙의 골격은 사실상 기운 생동으로 표현되는 것이면서도 오늘의 우리 화단에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36

 

 

 

 

목차: 한국화란 무엇인가/한국화의 역사적 전개/문인화와 수묵 정신/장이 그림과 채색화 정신/문인화가 한국화로 거듭나자면/현대 한국화, 수묵작업/현대 한국화, 채묵 작업/진지한 채색적 사고/현대 한국화, 인문화 작업/현대 한국화, 추상작업

뱀발. 

1. 일터 일로 목포를 다녀오다보니 세미나에 늦게 도착한다. 나들목을 빠져나와도 시내가 한참 막힌다. 말미 서재필, 단발령, 을미사변, 근대라는 잣대의 모호성으로 인한 개혁에 대한 시각에 물음표를 던지는 꼭지들이 되짚어진다. 행간 [근대]라고 이름붙이는 것이 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철학의 눈으로 물음표를 던지면 또 달라진다 싶다. 정치적 사건으로 구획하고 서술하고 있는 부분, 경제적 외형적 성장만을 근대로 부르고 외치는 주창하는 구락부의 사고, 여전히 사회문화적인 전근대?적 습속의 잔존으로 근대적 성과물에 대한 의문도 들고...이런 관점을 흔들며 되돌이켜봐야 하는 [근대]의 다른 보기도 마음에 걸린다.

2. 책방에서 2권 책거리가 끝나고 비교적 일찍 돌아와 이 책을 마저읽다보니 관점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수묵과 채색의 관점을 하나로 이어주고 설명해주는 것이 기존의 구분되는 하나만으로 강조되는 강박을 풀어준다 싶다. 채색의 부분은 그림설명이 현실을 보려는 눈이 단일하여, 분석작업이 시야가 획일화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들지만, 통일적 관점이 끌린다. [그림은 따로 이어 달아야 겠다.]

3. 유홍준 교수의 책과도 겹치는데, 유교수가 사람의 이력과 그림을 동시에 보고 있다면, 현대화 작품을 이런 틀에 의도적으로 맞추려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이유로 오히려 더 풍부하게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애초 현실이란 부분이 설화나 신화로 희석해서 현실의 생생한 모습을 제대로 담거나 그런 작품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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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028 시민독서프로젝트(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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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엄마와 나]의 세미나에 앞서 '혹시' 하는 느낌이 든다. 나눌 이야기나 까칠함을 나누는 독서 모임상 전제를 건드린 전력이 있어 왔다는 점. [엄마와 나]에 빠져들고나서는 다른 관계나 관점으로 사라져버린다. 개인적 경험이 온전히 그 안을 휘젓고 다니게 마련이다. 혼자 읽기를 떠나 함께 읽게 되면서 느끼는 점의 요지는 접힌 글처럼 홀로관점의 흔들림이다.

2. 아빠와 나도 아니고, 아버지와 나도 아니고, 왜 엄마와 나여야할까?라는 물음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함께 읽는 초입,부터 제기되는 문제는 오로지 책속의 [엄마와 나]의 바깥을 볼 것을 요구한다. 가정에 가족에, 혈연의 끈에 함몰되지 않는 딱딱한 무엇도 놓치지 말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닐까 싶다.

3. 함께 읽는 독서 기획의 생각씨는 지역 사회단체에서 먼저 제기되었다. 그 노력들이 모여 그나마 제도권?의 공간으로 스며들고 공명하게 된 것. 기획의 마음줄기가 지금까지 온전히 이어지는 선상에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일전 시민지식네트워크라는 연결망으로 서울 수유너머를 중심으로 [부서진 미래] [KTX..], 비정규직의 문제를 가지고 사회적 독서를 시작한 바 있다.(먼댓글 참조) 개인적인 참여경험도 있구. 하지만 생각이나 마음들이 그곳으로부터 자라지 않음. 문제제기의 심오함의 연유에 대해 아쉬움이 많았다. 일회의 파고가 아니라 잔잔하지만 여파가 있지 못하는 안타까움들 말이다.  흔들리거나 자란 마음들이 뭉쳐지지 못하는 싸락눈같은 상황들. 뭉글뭉글해지거나 아직 그렇게 마음들이 따듯해지지는 않은 상태란 잠정적인 결론을 내리기도 하였지만 말이다.

4. 책선정 과정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들었다. 있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도 은연중에 저어했던 것, 하는 것은 아닐까? 위축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대로 드러내고 나누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어쩌면 읽는 대상들을 지나치게 염두에 두는 것이 우리는 아니였을까? 이런 속내를 들었다. 동화읽는 어른모임, 도서관운동하시는 분들의 내공도 섞여있다고 한다.

5.  (2)의 이런 선밖의 전제, 서로 다른 가족사를 염두에 두고, 가족으로 품을 수 없는 다른 제도와 문제를 안고 저자의 시선으로 녹아들어가는 것이 더욱 좋을 것 같다. 이것이 일차 함께 읽고 나눈 소회이다. 이차 모임이 있다면 또 다른 관점이 녹아날 것이다. 한편 다른 생각을 해본다.  이 사회는 어쩌면 [때문에]를 달고 사는 것은 아닐까? 엄마때문에, 아빠때문에, 잘되지 않은 것에 누구탓을 많이 한다. 부모를 잘못만나서 이거나, 시류에 회자되는 조부모의 재력까지 아이키우기에 동원령을 내리는 세상을 보면, 그 탓에 너무도 익숙하게 만든다.  그것이 불화로 커지고 트라우마로 자라고 그 경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서로 짓누르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엄마가 아니라 우리의 아빠가 아니라 늘 내아빠 내엄마만 되는 것은 아닐까? 그 손짓을 홀로서거나 함께서는 나와 너가 아니라 늘 너때문이라고 손가락질 해왔던 것은 아닐까 싶다.

6. 책을 읽다보면 따듯한 가정, 따듯한 엄마,아빠를 압박하며 살아지게 만드는 사회 속에,  엄마, 아빠를 가슴에 따듯하게 품어보자는 것이 저자의 평화의 마음은 아닐까 싶다.  왜 나를 낳으셨나요가 아니라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동료로서 그 숱한 덫과 트라우마을 따듯하게 품어 넘을 수는 없는 것일까? 책 속에 행간을 보며 아픔과 슬픔을 가져온다. 아파하고 슬퍼하고, 그 상처를 서로 보듬고 어루만지지 못할 때, 또 다른 시선을 길러내지 못하면 그 역시 함께하는 독서의 의미는 퇴화하는 것은 아닐까? 하나의 책, 하나의 달을 보며 비추는 만개의 생각과 느낌을 나눌 수 있다면 그래도 이 한밭은 그래도 따듯하지 않을까 싶다.  081211 아*** 책방 아홉분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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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8-12-17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 않아도 [한국화 감상법-대원출판사] 한 권을 첨가했습니다. 책값이 저렴하던(3천5백원)시절의 책이지요. 오늘까지 책 정리를 대충했는데 미처 상자속에 보내지 못한 책들이 또 눈에 띄더이다. 대개 누렇게 된 이십대 때의 책들이라 걍 처분하기로 했슴다.

그림속의 자작나무 숲을 보며 파란달빛에 마음을 적시는 밤입니다. 괜시리 와인 한 잔 생각이 굴뚝 같아지는군요. 언젠가 개인전 여시면 꼭 불러주셔야 합니다. 한 잔 해야죠^^

여울 2008-12-17 23:45   좋아요 0 | URL
지금 일터 송년회를 마치고 와, 책들을 부여잡고 있습니다. 뭉클거리는 마음뿐만이 아니라 행간을 가로지르는 흔적들이 포근하고 마음을 담뿍 끌어당깁니다. 더구나 기형도의 시작메모는 마음을 뒤집어 놓는군요. - 나는 한동안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에 있음을 지금을 나도 믿는다. 그러한 믿음이 언젠가 나를 부를 것이다. 나는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다. 눈이 쏟아질 듯하다. (1988. 11) - 많은 느낌이 교차합니다. 분에 넘치는 책선물에 마음이 아련합니다. 이 고마움을 어떻게 품어야할지, 이 마음들을 어찌 나눠야할지 나서는 생각들이 많습니다. 먼저 고맙다는 말씀부터 드립니다. 눈이라도 펑펑 내리면 하고 말입니다. 다음일은 다음이구......

2008-12-20 1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