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명이란 무엇인가]는 저 유명한 칼세이건의 아내인 린 마굴리스와 도리언 세이건이 썼다. 두 과학자 모두 미생물학계의 거두라 한다. 생명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의 답은 은연중에 명사를 요구한다. 하지만 생명이 무엇이다라고 규정짓는 이상, 그 위험함은 생명을 개념짓지 못하고 빠져나갈 확율이 크다. 따라서 생명이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으로 명사보다 동사가 적절할 것이다. 지구에 어느 것 하나 연결되지 않은 것이 없다. 최근 광물도 공진화의 시각으로 연구한 논문의 기사도 본 적이 있고, 개인적인 시각도 광물도 식물도 동물도 인간도 주변의 자극에 반응하는 것이 놀랄 정도로 유사하다는데 공감한다. 미생물학의 거두답계 우리 몸에는 진화의 흔적이 온전히 배여있다. 태아의 아가미호흡이나 꼬리, 미토콘트리아, 수많은 박테리아의 흔적은 어디에나 찾아볼 수 있다. 단독자가 아니라 그물망에서 호흡하고 숨쉬는 것.
말미 다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다윈의 할아버지 에라스무스 다윈이 진화론과학자였고, 빼어놓아서 되지 않을 인물이 샤무엘 버틀러(작가이자 화자, 음악가였다.) 버틀러의 할아버지는 다윈이 다니던 학교의 교장이었다. 이런 관계에 버틀러가 문제제기한 것은 [종의 기원]의 선행연구 결과를 알리지 않고 전적으로 자신의 이론으로 가져가는 것에 분개한 것 같다. 하물며 다윈은 "생물학에서 생명을 도려냈다"라고 비판한다. 기계론이나 뉴튼론자로 환원하는 것에 분노했고, 실제 자비를 들여 많은 책들을 냈다한다. 오히려 경쟁의 단물만 빼먹은 지난 150년의 역사와 폐해는 버틀러의 시선에 더 가까이 더 현실적 이다. 안타깝게도 다윈과 버틀러가 함께 논의되는 것 같지는 않다. 우리의 척박한 인문의 한계는 아닐까? 올해가 다윈 탄생 200주년이라고 하는데 말이다.
2. [급진적 의지의 스타일], 수잔 손탁의 에세이 묶음이다. 우연히 도서관 한 귀퉁이에 있는 책을 발견하다. 일전 오마이뉴스에 사진을 본적도 옮겨 밑줄을 그은 파란여우님 글과 겹친다. 1968년 6-7월에 쓴 [하노이 여행]을 읽다. 68혁명이 5월이니, 그 5월에 하노이를 방문하고 쓴 글이다. 혁명이 어른거리던 시절에 쓴 글이다. 글을 읽다보니 쿠바를 다녀왔고 쿠바와 달리 유교적, 도덕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베트남의 분위기에 일주일 정도 적응하지 못하다가 자연스럽게 겹친 사고의 진전을 보여준다. 앤디 콥킨드, 밥 그린블랫과 동행취재하였는데 40년전 글이라곤 전혀 눈치채지 못하겠다 싶다. 더 자유스럽고 열린 친구, 개방적인 친구를 만난 듯. 끊임없이 넘나드는 사유가 부드럽고 좋다. 혁명을 생각해야 하는 시대에 되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딱딱하고 경직된 껍질의 혁명이 아니라 일상과 삶, 친밀감...등등 말랑말랑하기도 딱딱하기도 한 혁명. 부드러우나 부드럽지 않은 혁명의 물결. 그 세월의 흔적, 물결을 되짚어도 손해보는 것은 없으리라.
3. [달리기와 존재하기], 김연수 옮김. 도서관에서 김연수를 검색하니 볼만한 책들이 몇권없다. 최근 소설책을 보고 싶었는데, 이것저것 스크롤하다보니 달리기와 어색하게 붙어있는 존재하기란 제목이 옆에 붙어있다. 호기심이 바짝인다. 역자는 그 김연수였다.(역서가 많다했더니 영문학과를 나오셨고 70년산이시다) 번역한 연유를 찾다보니 문제의식은 동일하다. 달리는 사람들이 그저 달릴 뿐, 나온 책들이란 어떻게 숨차게 뛸까하는 스포츠학 내지 건강서적뿐이어서 좀더 다른 것을 찾고자 했단다. 빨려들어가 읽으면서 그나마 낫다는 생각이 든다(철학자들의 말들을 어찌 그리도 옮겨 놓으셨는지) 그리스, 미국의 팍팍한 냄새가 난다. 하지만 아무런 사유를 하지 못하는 달리기문화의 우리 현실을 보면 그래도 낫다. 20년의 시간 텀을 두고 장소만 달리 그대로 달리기 문화는 진전하는 것 같다.
이곳과 노은을 잇는 도로가 개통되었다. 그래서 그 길로 달려본다. 인도에 자전거도로가 따로 있어 좋다. 갈 때 30', 올때 25' 가다보니 반*마을이 벌써다. 되돌아오니 아파트에 걸린 달은 유난히 급하고 높이 보인다. 하루 24점 가운데 반점 한점 내 몸에 온전히 주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이겠지.
뱀발. 김용석의 생명에 대한 정의가 이어 생각난다. 생명은 폭력적이다 낯선 것에 대해. 한편 그렇지 않기도 하지만 말미 장회익 교수의 온생명-개체생명-보생명의 생명을 어떻게 볼 것인가?란 보탬글이 있다. 책을 넣다보니 김지하의 생명학도 있고, 박경리님의 생명도 걸린다. 지난번에 읽은 생물과 무생물의 사이도... ... 생각을 덧보탤까? 덧붙일까?
수잔손탁인지? 수잔손택으로 해야하는 것인지? 이지적 외모와 경계가 멈추지 않는 비평집을 앞에 두고 있다. [타인의 고통]에서 짐짓 놀라고 아둔한 인식의 한계를 스스로 절감했건만 잔여생각의 꼭지를 이어본다. 아직도 몸에 녹아있지 않으므로 이물감만 가득, 그저 타인의 고통을 시식할 뿐.
달림. 그래도 보지 않는 것보다 한번 보시면 좋을 듯. 몸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니 말이다. 바쁜 일상으로 몸 추스리거나 챙기시기도 힘들겠지만, 몸으로 생각도 사고도, 때론 가슴도 머리도 트인다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그래서 중년은 몸에 영양분을 줄 요량이나 며칠에 한점 몸을 충만하게 하면 생각보다 얻는 것이 많을 수도 있다. 오늘도 난 키보드좌파근육에 몸서리칠 뿐이고, 술독에 근육이 풀어져 유연해졌을 뿐이고... ... 살사댄스도...암튼 몸에 좋은 취향하나 가져보심도 괜찮으리라... ... 책상물림 당신에게 드리는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