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략) 대부분의 사람들 일상에 밀접하기 때문에 6) 개인이 패스트푸드를 자제하는 것이 어렵다는 얘기도 나왔어요. 육식도 마찬가지고요. 그러고 보면 음식이 관계까지 배열하는 문화인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이어 <패스트푸드의 제국>이 햄버거로 시작해 5) 미국사회의 시스템을 훑어가는 책이기에 우리 일상에서 대입해 볼 때 맞지 않거나 부족한 면이 있다는 얘기도 나왔고요.

'패스트푸드'가 음식에 대해서도 인간을 기계화시키는 것이 아닌가란 의문에서 그렇다면 1) 직접 음식을 해서 먹어야 하는지, 그렇게 주장할 경우 발생하는 2) 사회적 불합리(여성이 희생이 된다든지,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든지)는 어떻게 할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얘기도 나왔고요. 잘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하는데 오히려 일 때문에 3) 음식에 쏟는 시간이 아깝다고 느낄 때가 있다는 얘기도 있었고요, 4) 음식이 어떻게 보면 즐길 수 있는 문화 그 자체일 수도 있고 중요하고 해야 할 일일지도 모른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생략) 
 
   

 1. 

  

동치미 모임에 남긴 흔적 가운데 하나를 긁어 옵니다. 그리고 그대로 냉동시켜 봅니다. 어느 것이 맞죠. 내가 너가 선택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우리라는 틀을 둬 봅니다. 어떻게 해야하지요? 그리고 나-너, 우리를 유럽 한가운데에 가져다보고, 기근이 한창인 아프리카에도 두고, 미국에도 옮겨봅니다. 그리고 우리의 엥겔지수도 덧붙여봅니다. 10분위에 나는 어떤 계층인가? 너는 어떤 계층인가? 우리는 어떤 계층인가? 하구 말입니다. 어떤 선택을 하여야 되는 것이죠?!!?

2. 


  

여기에 그대로 두지 않고 다가올 주변이나 상황을 고려해봅니다. 우리의 삶이 점점 불안해진다면, 공황이나 전쟁의 그림자, 파시즘의 그림자에 드리운다면 나는 너는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무엇을 고려하는 것이 합당한가요? 순간 정지한 채 생각했던 것들이나 습관들은 안전한가요? 고민은 어떠신지요? 개울 물결, 바위틈에 끊임없이 떠있는 작은 공은 아닐까요?

3. 

 

생각해보셨나요? 지금 이순간의 먹을거리, 그것과 환경과 그리고 방향이 갖는 함수에 대해서 말입니다. 생각이 나와 나의 가족, 나의 수입에만 머물러 있던 것은 아닌가요? 너와 너의 가족, 너의 수입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우리와 다른 나라의 민족의 우리와 공통분모는 없을까요? 이땅의 우리에 너무 침잠해서 생각들이 갇혀버린 것은 아닌가요? 나-너에 머물러 별반 선택할 것이 없던 것은 아닐까요? 그래요. 한번 생각의 결을 먹을 거리의 결을 그것만이 아니라 연관된 관계에서 삶에서 고민해보도록 하죠. 진지하게 말입니다. 그런 연습을 해보면 어떨까 싶어 덧보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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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o o 8 년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 (3)

1.

090214-15  

+: 삶과 지금 고민의 연결, 방향성 있는 고민의 숙성.
+: 평범한 주부를 대상으로 하며 기획의 결과가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자체 세미나로 삶의 결에 대한 고민, 방향의 결을 모을 수 있는 것일까?(초기 운영단위에서 목적의식은 공유되었는가? 강사와 대상과 이야기한 논제에 대해 공감하였는가? 대상의 의도와 추진주체의 의도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었나? 활동가 프로그램으로 접맥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다고 하면 어떤 부분이 예민해져야 하는가? 접근가능성이나 관점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을까? 신뢰도가 문제라면 타단체와 공동주체와 홍보가 가능하다면 평범한 주부들이 다가서게 만들 수 있을까? 있다면 구전까지 홍보로 이어질 수 있는가? 

*: 실무자의 처우 - 주 4일 변형근무제(무엇을 시도해볼 수 있는 일터)/경제력의 수평적 고민-캐비아의 문제와 가능성-토론의 주제와 가능성을 함축하여 내놓는 자리-행복한 일상과 현실의 관계-서로주체로 해결가능한 부분은 어디일까? 기본설계도의 단초를 마련할 수 있을까? 
*: 운영주체들이 운영에 대해 고민하고, 고민의 (안)이 번지게 할 수 있는가? 그 고민이 개인의 고민이 아니라 서로의 고민으로 한단계 진전할 수 있는가? 고민이 스며들지 않거나, 삶과 연관되지 않거나 친밀도의 연결이 약해서 그런 것일까? 고민의 농도를 어디까지 끌어갈 수 있을까?
 
-: 몇가지 생각씨

     
 

/ 나눠안은 고민들을 세밀화할 수 있을까? 재정-교육-편집-청소년에 대한 기획이나 고민, 생각을 섞는 일들이 진도를 나갈 수 있을까? 혼자에게 감당시키거나 부담이 되어 지치는 것은 아닐까? 고민의 씨앗을 만들 수 있을까? 혼자가 아니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단기적이 아니라 중기적으로 생각이나 고민에 날개를 다는 일이 생길 수는 없는 것일까?
/인입-공감-대처...의 작은 단계들에 맞춰 프로그램이 유연해질 수 있을까?
/프로그램의 씨앗, 아이디어들을 다양하게 키울 수 없는가/(문화사로 보는 자본론 공부....1,2,3 아이,어른, 주부 프로그램이 달리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일까? 그 예행연습이 가능한 프로그램놀이를 기획할 수 없는가? 프로그램 제안잇기....등등
/편집의 수준, 결실을 맺는 작업-전문성을 가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까? 프로그램의 색깔을 어떻게 , 잃지 않고 진행되는 방법은 없을까?
/활동가와 회원들의 고민의 접점을 만들어가는 기획은 할 수 없는가? 그 대행의 팽팽한 원심력을 구심력으로 이을 수 없는 것일까? 삶의 기획이 조금은 흔들리거나 함께할 수는 없는 것일까? 지금-5년-15년과 30년의 기획, 천박한 자본이 내밀고 있는 동맥경화와 골골함을 포월할 수 있는 생각길, 그리고 아주 천천히 그렇지만 우직한 삶의 작은 길을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일까?

 
     

2.

090213 금요일 저녁 참* 부위원장과 이야기를 나눈다. 나누다 명료하지만 조직의 틀이 너무 단선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한정된 집행력, 참여의 결집도가 늘 변두리에서 웅웅거리는 것이 아니였나 싶기도 하고...덧셈으로 반복되는 것은 아닐까? 곱셈이나 자승으로 가는 터닝포인트는 어디일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약한 것은 보하면 되지만 눈덩어리가 굴러가는 시점. 3.*버전은 늘 되지 않는 것일까? 2.*에서 머무는 것은 아닐까? 좀더 마음을 보태고 일에 흥미와 재미가 있으면 될텐데 하면서도, 늘 마음이 반박자씩 엇갈리는 것은 아닐까싶기도 하다. 음으로 작동하는 힘도 숙성을 위해 단계를 넘기위해 필요하겠지만 바라보는 곳의 합치, 시선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박자가 필요한 듯.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늘 있다. 셋을 넘기가 늘 힘에 벅차다. 프로메테우스도 아니고 늘 고지 3.0까지 무던히 바위를 올린다. 그 다음의 내리막..그 버팀목 3.01를 넘어야 된다. 추스려야 할 몫. 정기적인 발간-안정성이 필요한 한해일 것 같다.


3.

090214 달님을 재촉하는데, 진한 술자리도 아니었건만 몸은 쉬이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늦은 아침 천천히 생각을 음미하며 완보다. 그러다 우*훈씨 연작물이 내내 어른 거린다. 그리고 고마운 생각이 든다. 이만큼이나 생각길을 내고 그 폭을 넓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고맙다 싶다. 그 고민을 쫓다보니 한참 멀리 좀더 구체적으로 생각의 영역을 만들었다는 느낌이 든다. 그 고민과 생각에 여기저기 다니며 흘렸을 고충을 느껴보니 찌릿하게 건너온다 싶다. 그리고 흘렸을 눈물을 보니, 저 아득한 하늘이 더 아득해졌을 그 시공간을 보게된다. 아직까지 그처럼 지금의 생각시공간을 통합되게 보여준 사람이 많지 않다고 여긴다. 아니 거의 없다라고 여긴다. 그의 통찰은 쉽고 연결되지 않은 것이 없다. 그의 생각시공간의 영역에 다른 관점과 세밀함을 덧보태고 나누면 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사회주의가 혹 100년뒤, 200년뒤 다음을 잇는다고 한다면, 아마 전쟁이 없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경험하지 못하고서는 영원히 그것은 없는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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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경제학자 답게 다가올 30년과 그의 삶에서 비교문화적 장점을 십분 발휘한다.(경직성으로 똘똘 뭉치고 다른 삶에 관심도 없는 외골수의 스스로 반대꼴이다.) 그리고 공황의 그림자에 대해 우리가 가질 수있는 넓힐 수 있는 결에 대해, 시도에 대해 조리있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바탕에서 나눌 수 있는, 고민의 결에 대해 논의를 충분히 이어갈 수 있겠다 싶다. 그런면에서 정말 훌륭한 발제문이라 여긴다. [88만원 세대]만 아니라 [조직의 재발견], [촌놈들의 제국주의],[괴물의 탄생]을 잇고 나누면 좋겠다 싶다.


4. 

돌아오는 길, [쿠텐베르크의 은하계] 머리와 꼬리를 읽다. 시각 중심의 시대는 나머지 오감의 소통법을 모른다 한다. 늘 시각으로만 판단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늘 머리만 가슴만, 몸만이 문제다라 한다. 통합의 소통법. 무엇이 경도된 것일까? 우리는 말하지만 아무것도 듣거나 나눌 수 없게 된 것일까? 점 .... 점..... 점....만 찰라로 기억할 뿐, 아무도 점-점-점을 이으려고 하지 않는 것일까? 

뱀발.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한 내죄가 크다. 새벽처럼 와준 기*에게 감사. 세계테마기행 포르투칼-일본-캄보디아편을 번갈아 보다.차니에게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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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9-02-17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화읽는 어른모임 분들 대단하죠. 특히 대전에선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작은 도서관에도 부쩍 늘은 듯해요. 좋은 소식이 있었군요. 아***도 그분들의 숨결이 많이 녹아있습죠. ㅎㅎ 친구분들도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군요. ㅎㅎ
 

 



 






뱀발. 동네 얕고 아담한 산길이 있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다. 저 능선 안은 참 고요하고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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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2 1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02 17: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喜 - 뜻밖의 놀라움. 다가올 환희에 대한 기다림.  


怒 - 믿을 수 없는 사실. 믿기 어려우나 믿을 밖에 없는 진실.

哀 - 시대가 낳은 불신의 징표. 시대가 낳을 수밖에 없는 사생아.

樂 - 다른 수식어없이 모이고 모여 한가득 고봉꽃밥처럼 화사하게 피어 마음사이를 오고갈 때. 

 
     

 

뱀발. 정말이야. 진짜정말이야. 원조야. 진짜원조야 진짜진짜원조야. 정말의 인플레 시대. 정말이 순수하였으면 좋겠다 싶다. 수식어가 없는 정말을 머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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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이 꽃대를 올리고 꽃을 피운다. 하늘로 향하는 꽃대는 햇살을 공평하게 받으려 꽃잎도 꽃도 흐트러짐없이 공평하다. 꽃대가 올라오는 잎새사이 한모금씩 머금고 있는 이슬진주. 

怒   점점 야만으로 흐르고 제갈길을 찾지 못하는 현실. 이런 삶을 산다는 것은 위태로움을 감수해내야 한다는 점. 점점 바람은 드세지고 견디어낸다는 것 역시 이렇게 뿌리내려야 한다는 것. 우아까지 점령한 자본은 역시 이를 잡아먹는 괴물일 뿐. [-인 채]와 [인 것처럼]의 근친을 보고 견뎌내야하는 것도 또 다른 우울.

   알면서도 모른 체 하기. 꽉 쥐면 쥘 수록 빠져나가는 손안의 물 한모금. 보듬으면 보듬을수록 더 많이 남는 해갈의 물한모금. 그리고 버드나무 잎 하나.

   일을 하다보면 일매듭의 한켠에 생각지도 않은 일을 꽃피게 하는, 그 생각지 못한 것들을 챙긴 알파와 오메가. 그리고 다음 일의 길에 융단을 펼치는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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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9-02-13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한 글에 우아하지 못한 후렴구 하나,
愛-細발 낙지에 쐬주 한잔 ㅎㅎㅎ

여울 2009-02-16 10:00   좋아요 0 | URL
취기엔 역시 후렴구도 우아해보이는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