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의 분열증, 우울, 막막함으로 인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닌가? F4든 신파든 지금의 우울함을 기댈 곳이 없어 이중적 해소를 하는 것. 분열증이 고착화될 우려가 있는 것은 아닌가? 좌절감-열패감의 끝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무기력함과 더불어 극단적 근육과 살의 만남. 그것에 대한 일회적 해소의 습관화는 아닐까?

2. 보수, 수구만 무능력한 것이 아니라 우리도 똑같이 무능력하다. IMF란 기회가 있었으나 우리는 그 기회를 활용하지 못했고, 앞으로 지자체와 국회의원선거로 이어지는 국면은 여전히 대동단결론의 빠질 확율이 크다.

3. 집단무의식은 부족사회에는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개인주의의 맥락과 더불어 집단의 무의식이 형성되는 것이라고 보면, 식민지 근대화 100년의 식민지성은 뿌리깊게 우리사이를 흐르고 있을지 모른다. 혼자만으로만 아득바득하거나, 남들이 어떠하든 푸고 마시고 즐기고 하는 습속이나 태반의 무관심이 일상화되는 일들이 그 증상으로 표출되는 것은 아닌 것일까?

4. 지난 20년, 50년의 열망과 절망은 누구든지 알고 있다. 집단지성의 화려함으로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성찰과 집단반성은 도대체 하려고도 하지도 못하는 우리의 불구를 보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만들었던 상황에 대해, 빠졌던 도그마를 벗어나려는 시도. 우리의 반복되는 집단무기력(혼자 세상을 거머쥐려는 것이 아니라)에 대해 동전의 양면처럼 진지해져야 한다. 불과 6개월을 주기로 반복되는 조-울에 대해 나눠야 한다.

5. 제대로 된 반성과 공감이 없다면 더 이상 준거집단으로 가능성도, 활동의 운동의 주체도 흔적없이 사라지고 말지 모른다. 더 이상 새로운 지평을 함께 고민하려고도 하지 않을지 모른다. 운동과 활동에 있어 자기고백이 따르는 반성과 공감을 하지 않으면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무엇인지조차 모를 것이다. 정치가 권력을 얻어내거나 차지해서 제도를 바꿔내는 것이라면, 운동과 활동은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지평과 새로운 사회를 추구하면서 생산해내는 것은 아닐까? 그런면에서 정치와 활동은 엄연히 구분되는 것이며 경제와 개인으로 귀결하는 종교와도 다른 것일 것이다.

6. 우리들의 삶. 혼자가 아니라 함께 사유할 수 있는 경계에 대해, 지평에 대해 나눌 시간이 많지 않다. 도덕으로 활동이나 운동을 끌어올리거나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합당한 윤리와 사유, 삶의 공간을 삶과 행위, 고민의 울타리로 만들어내는 것이 또 다른 몫은 아닐까?

7. 상황이 만들어내는 간극은 여전히 저기-여기사이를 끊임없이 요동치고 있다. 서로 딱딱하기만한 우리가 서로 기댈 수 있을까? 말랑말랑해질 수 있을까? 우리의 태도, 문화, 주체의 영역은 넓어지고 유연해질 수 있을까? 저 멀리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저 멀리서 찾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가까운 여기서, 기대고 고민의 경계를 섞는다면, 아주 작지만 서로 만들 수 있다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닐까? 막힌 것을 아주 작지만 뿌듯하게 푸는 것은 아닐까? 위기라는 말은 옘비도 쓰지만 현재의 시공간이 함축하고 있는 기회는 아닐까? 신파에 젖지 않는다면 서로에 기댈 수 있다면... 생각시공간을 머리가 아니라 가슴, 마음으로 공유할 기회에 조금 여유를 내어준다면... ...
 

뱀발.  

1. 참* 총회에 ㅅ대표님이 작은강연을 해주셨다. 그 메모를(의견이 가필된 곳이 있다.) 거칠게 남겨본다.(곡해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본인에게 있다.) 뒤풀이자리에서 전적인 공감이 아니라 시민사회단체의 현재의 역할이 너무 없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그 줄기에 대해서 논제가 되었다는 점은 확실하다. 상황과 속도가 만들어내는 공간은 위험하고 어렵다. 어쩌면 우리도 늘 그 속도에 휩쓸려가기에 늘 그 모양이거나 그 나물에 그밥은 아니었던가. 표면만 분칠한 얼굴만 살짝 반성하고 돌이켜보는 것이 아니라 더 깊숙한 치부에 대해 울림이 커지지 않으면, 또 역시 불과 일년이 지나 더 큰 소용돌이에 휘말려 할 수 있는 것이 더 없거나, 주체라고 주장하는 그룹이 사분오열되어 소멸될지도 모를 일이다. 절박함의 깊이와 넓이, 그 많지 않은 기회. 렌즈를 들이대고 느린 동작의 분석, 그토록 많은 빠름을 지나친 습속을 보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삶이 안주거리가 된다면, 고민에 삶을 가져와 섞을 수 있다면, 각개격파의 개인 이념만이 아니라 다른 우수마발을 가져와 녹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어쩌면 승산이 있을지도, 운명은 아주 작은 미소를 지을지 모르겠다. 운명은 늘 노력하고 고민한 자들에게 확율이 높다는 마키아밸리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우리는 바닥까지 열심히 함께 고민이라도 해본 적이 있던가? 나 역시... ... 하지만 언제든지 너의 고민을 받거나 빨려들어가 태도는 되어있다. 정말 필요한 것은 너-나의 고민...

2. 제목이 오해를 살 것 같다. 집단공감이 더 나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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