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를 본다. 말미 피곤함이나 취기로 머리가 아프기도 하지만 "마음을 준비하세요"란 말이 마음 속을 파고 든다.
마음.마음.마음
참* 총회가 지났다. 우린 마음이란 것이 내가 소유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음이란 것이 내마음 속에 중앙집중으로 자리잡게하거나 오도가도 못하게 꽁꽁 얼려둔 것은 아닐까? 내마음은 나만 알고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므로 남들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늘 모임이란 것을 규정하고, 바라보는 시각에 익숙한 것은 아닐까? 그 3차원적 시각. 원근법적 선입견은 없는 것일까? 마음이라는 것이 나의 사유재산이므로 남들은 모르고 있다고 여기는 것은 아닐까? 혼자는 똑똑한데, 여전히 우리는 유아기를 겪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음이라는 것이 고체일까? 액체일까? 마음은 사유재산이 아니라 이미 말하기 이전 서로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유라고 집착하는 것때문에 늘 아는 것보다 조금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마음의 사유의 장벽을 걷어내면 조금은 흐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기울기를 두며 서서히 흘러가는 것은 아닐까? 모임에 대해 사람에 대해 그리고 이념도 활동도 부문에 대한 선입견과 3차원적 시각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마음한점 주거나, 모임의 온도도 조금도 올릴 수 없는 박제화된 시각은 아닐까?
모임.모임.모임
마음을 나눈다. 네 마음에도 뿌리를 두어 심는다. 모임을 관조하는 선입견을 거두고, 나의 울타리를 넘어선 마음에 신경을 쓴다. 그리고 달팽이가 이슬도 풀잎도 온몸으로 느끼듯 서서히 시선을 낮추고 기면서 바닥에 업드려 세상을 온전히 느낀다. 위에서 내려보지 않고 아래에서 쳐다보지 않고 몸으로 끈다. 나의 마음을 온전히 둔다. 이슬도 풀잎도, 꽃잎도, 수술도 암술도 향도. 그리고 그 마음을 나눈다. 이슬에 묻히고, 풀잎에 묻히고, 꽃잎에 묻힌다. 그렇게 마음의 잔뿌리를 내린다. 마음이 가고, 마음들이 섞이고, 마음들이 발효하고 마음들이 타넘고, 가슴이 가고, 몸이 모임을 끌며 간다.
마음의 분권이 존재하는가? 연애를 하면 마음이 늘 거기에 매여있다. 몸과 가슴의 시공간을 초월하여 늘 그 주위를 배회한다. 모임에 온도가 있을까? 모임의 온도를 높이기 위해 마음을 온전히 준 적이 있는가? 가슴만 뜨거워 쉬이 달아오르고 식지는 않았는가? 저멀리 바라보기만 할 뿐, 어떻게 마음나눌 길 몰라 애만 태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모임의 온도를 올리기 위해 미력을 보태고 있는가? 아주 작은 고민이라도 섞고 있는가? 마음길이 섞이지 못해, 불타는 열정만, 나의 이념을 섞을 기회만 노리고 있는가? 여전히 모임이 생물이 아니라 도구적이고 기능적, 명예의 도구로 마음 한구석에 그림자처럼 자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잠시라도 눈길주지 않으면 바람에 흔들리지나 않을까?하는 염려는 없는 것일까?
마음과 모임을 뜯어본 적이 있다. 장난삼아 나눠보았다. [ㅁ ㅏ ㅇ ㅡ ㅁ ]을 3차원 공간에 세워두면 마음과 모임이 같다. 다르지 않다. 그 사이를 뛰어다닐 수 있었다. [ㅁ]을 타넘기도 하고 [ㅏ]를 보듬기도 하고, 기분 좋은 공간이었다. 나-너가 바라보는 시선. 먹은 마음. 그것이 어떤 곳을 바라보고 향하든 상관은 없는 것은 아닐까? 그 바라보는 시선. 느낌. 하고싶은 것들을 울타리에 터두는 연습을 해보면 어떨까 싶다. 마음을 놓고 풀어버리고 내 소유, 내 감당의 몫이 아니라 서로 마음들끼리 섞이고 녹이고 , 썪히고, 고약한 냄새가 나더라도 그대로 두어 거름으로 쓰이고, 괜찮은 마음들은 충분히 삭혀 홍탁처럼 맛을 내보기도 하고..... 너의 마음의 바벨탑처럼 쌓인 그 마음 한점을 이 공간이 툭 던져놓으면 어떨까 싶다. 맑은 호수 위에 마음 볍씨 하나. 토옥~
내 마음 한점도 기댈 곳을 찾는다. 나-너의 마음 한점도 기댈 곳을 찾는다. 혼자마음들은 너무 외롭다. 혼자마음은 온전히 설 수 없다. 그래서 기댄다.
[워낭소리]가 떠나 보내고 접는 마음이라면, 이렇게 모임을 위해 마음을 시작하는 초입으로 들어섰으면 좋겠다. "마음을 준비하세요" 아프고 쓰린 마음들이 새롭게 시작하고 출발하는 마음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행동도 표현도 욕망도 속일 수 있지만 마음은 속일 수 없다. 그 애틋한 마음은 흐른다고 여긴다. 절박한 마음도 그런 장벽일랑 다 거둘 수 있다고 여긴다. 그리고 그 마음들은 모인다고 여긴다. 모임을 따듯하게 하는 그 한점의 온기.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나의 사유의 울타리를 넘었으므로 너로 향하는 그리움으로 피었으므로, 나를 너를 그토록 조종했던 이념의 강박, 당위의 집중에서 풀려났으므로, 그 마음은 스스로 꽃피울 수 있으므로...너의 마음으로 내가 행복해질 수 있으므로 나눠서 함께 기쁠 수 있으므로....
뱀발.
전주, 이번주 중량감있는 모임으로 부산하다. 뒤풀이 자리, 환송을 핑계로 나눴던 마음들이 섞인다. 기억이 아른거릴 정도이지만 , 집단지성이 아니라 집단성찰이나 집단반성...집단공감의 실타래가 풀릴 듯한 기미가 느껴지는 모임자리였다. 새벽녘 마음이 온전히 전해지고 나눌 수 있다는 사실과 그 온기에 눈물이 받쳐올라왔다. 어젠 아*** 총회준비위. 따듯한 온기. 고민의 결이 깊어져 내내 따듯하고 마음이 놓인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