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려있다.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 가장 멀다했을까? 남도에서 받는 편지가 내내 걸려든다. 목에 걸려있는 마음을 넘길 수 있다면 가슴보다 더 먼 손과 발에 닿을 수 있을까! 애틋한 마음에 샘물 한사발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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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읽었던 신영복 선생님 글귀가 새삼 떠오릅니다.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한 법입니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 그 사이에는 그만큼의 큰 거리가 있는가 봅니다.
참터 창립 이후 5년째 접어듭니다.
운영위와 집행부 임기로 치면 6대가 됩니다.
지나온 5년에 덧붙여
다가올 5년을 생각해야 할 시점이라 생각하니
괜히 마음만 부대껴 옵니다.
우리는 지난 5년간 우리의 150여명 회원분들과
어떤 일들을 어떻게 해 왔던가 하는 질문에 마음이 멈추어 섭니다.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되새깁니다.
마음이 머무는 곳에 몸도 다가서게 마련이지요.
우리 회원분들 어느 한 분 소중하지 않은 분 없고 역량들도 다들 출중하십니다.
참터 활동에만 집중하실 수 없는 여건 속에서
다른 현장에서 응원해 주시는 마음,
함께하지 못함에 안타까워하시는 마음들 잘 압니다.
지난 시간의 관심과 지원에 감사드리며,
참터 5돌을 기념하는 7월 즈음 어느 날에는
참터의 첫날처럼 그 마음들을 다시금 마주했으면 합니다.
2월 27일 총회에서 운영위원장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영광스러운 자리이나, 참터 집행부의 현실에서는 많은 아픔이 묻어납니다.
전위원장님의 갑작스런 타지 발령에
거의 변화없던 역대 집행부의 실질적인 막내 세대가 바톤을 이어받았습니다.
작년 수준의 활동력을 기준으로 사업계획을 준비했지만,
활동력의 보완이 안 된다면 축소가 불가피할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집행위에 몸 담아 왔던 입장에서
회원 여러분들께 부끄럽고 미안할 따름입니다.
참터 5년이 지나도록 후배 세대를 형성하지 못했고,
불가피하게 떠나보내야 할 분들이 생기던 여러 번의 상황에서도
적극적인 회원분들의 참여 기회를 제대로 마련해내지 못했습니다.
아이디어와 계획은 많았지만
몸이 무거웠나봅니다. 아니 발이 무거웠습니다.
집행위 속에서도 특히나 움직임에 둔하고 생각으로만 침잠하던 게
제 모습이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해야겠습니다.
참터의 첫 마음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일을 쪼개어 많은 수의 회원과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공간,
처음부터 호기롭게 외쳐 왔던 참터의 모습입니다.
5년의 시간 속에 참터도 나름 정교함을 만들어왔습니다.
틈새 벌어진 집행력과 활동력을 좀 더 보완할 수 있다면,
지금까지의 경험에 바탕해 지난해보다 한 발 더 나아가는 활동을
일구어 낼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회원사업의 중요성을 많은 분들이 강조해 오셨습니다.
이제 입과 머리에 머물던 앎에서 발로 드러나는 행함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집행력이 심하게 위축되는 현실이지만
회원 여러분들을 향해 한 발 더 앞으로 다가서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참터의 진짜 주인들께서 함께 나서 주세요.
우리가 부딪히는 이슈와 사안, 그리고 활동들 속에서
사소한 것이라도 좀 더 많은 것들을 회원분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거짓 경제와 거짓 정치가 잠식해 들어오는 세상 속에서
참된 앎과 참된 행함이 세상을 올바로 세울 수 있음을
우리 회원 여러분들과 함께 확인하고 싶습니다.
2009년 3월 셋째주
참터 신임 운영위원장 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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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활자를 바닥에 누워 뱉는다.민주주의를 잘게 썰어 하나씩 하늘을 향해 뿌린다. 뿌리깊은 대행민주주의의 역사는 잘게잘게 우리 머리속을 꽈악 채우고 있다. 소화되지 않는 검정색활자를 머리띠 삼아 진열된 활자민주주의를 본다. 뿌리깊은 관음의 내력은 쇼윈도우처럼 전시된 모임으로 향한다. 다음 페이지에 펼쳐질 누드를 기대하며 점점 활자속으로 기어들어갈 민주주의와 모임의 이름이 저 책 한쪽으로 소멸되길 기다리며 쓸활자를 바닥에 누워뱉는다. 기괴함만이 현실을 넘어설 수 있는 지금을 잘게잘게 썰어, 져며져며 간을 배인다.
뱀발 1. 이렇게 극단의 한결을 보인다. 마음좋은 몸좋은 사람에게 이런 쓴소리라니, 독이 될지 침이 될지, 독침이 될는지. 극단의 현실을 이렇게 넘으려는 불편함을 드러내니 마음 역시 편치 않다. 내가 있는 모임이 아니라 어디에든 살아내고 있는 모임들에 보내고 싶은 소리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런 현실에 살고 있다. 엽기와 충격으로만 현실을 견뎌내는 일상에 서 있음을 사무치게 알아야 한다. 그렇게라도 현실을 눈치채지 않으면, 여전히 유행되고 있는 [절박함]은 [소통]과 [연대]의 유행만큼 소비되다가 소멸되고 말 것이다.
[소통]과 [연대]는 모임의 적절한 상품으로 팔리다가 채 2-3년을 넘기지 못했다. 아무도 소통과 연대를 낱개로 우걱우걱 씹어서 삼키지 못했다. 그래서 소화되지 않은 [소통]과 [연대]는 부패하지도 않은 채, 거리마다 모임마다 그렇게 생생하게 살아있다. 하지만 아무도 지금 그것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왜? 유행이 끝나지 않고 종언했으므로. 어쩌면 우리는 그 홍수를 관통하고 있는지 모른다. 몸에 좋은 민주주의의 마지막 숨결을 보고 있는지 모른다. 그것을 거두어낼 수 있는 많지 않은 기회를 잃어버리고 있는지 모른다. 어쩌면 모임의 전적비 하나 세우고 말 것이다. 절박함을 가장한 목소리라구...그러면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당신을 사겠다. 당신이 지금을 구해낼 수 있으므로...
뱀발 2. [소통]과 [연대]의 장관, 파노라마, 그 절경은 속살을 보여줄 듯 말듯. 유혹과 환상의 지난날. 밑줄치고 머리 속에 넣고 외우고, 만나기만 하면 절반의 언어를 섞어쓰며 회자되던 그 말들이 정말 장터장날 끝나듯 그렇게 썰렁하게 지났는지? 왜 일상으로 한 걸음도 한 끼니도 가져오지 못하는지 되물을 수 있을까? 나를 무겁게 무너뜨리지 않으면 너를 그렇게 무너뜨리지 못한다면 세월의 겹이되어 쌓이는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므로 단어만 발설하다 지나가리라. 이것도 언젠가는 지나가리라를 되뇌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