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인,중세인,근대인, 그리고 현대인?과 한국인의 대위(ing)
낭만적 사랑의 변천 - 사랑,결혼,섹스(성)

1. 열정. 어떻죠. 위험한가요? 개인이란 존재감이 없는 시대라면, 신에 대한 사랑만이 이해되었다면? 일방을 향한 열정은 어떻게 이해되었을까요? 그것도 주체할 수 없다면? 말입니다. 아마 이상한 취급을 받았겠죠.
2. 중세에는 어떠했을까요? 기사와 귀부인의 슬픔을 감수하는 로망(마조히즘적 사랑이라고도 하더군요.) 물론 결혼은 번외였습니다. 결혼과 사랑을 같이 생각한다는 것은 별반 오래된 일이 아니었습니다.
3. 우리들에게 각인된 로멘스의 스토리가 있죠. 뻔한 스토리인데? 그 뻔한 스토리대로 우리 행동이 프로그래밍 되었다면 어떡하죠. 비
4. 그 뻔한 스토리, 뻔한 프로포즈로 대응하지 않죠. 진실을 가장한 일방의 요구는
5. 개인, 가족, 어쩌면 전적인 것은 아니더라도 사회의 구성물이자 빚을 지고 있는 셈이죠.
[ ]의 코드 (cook!)
[열정으로서의 사랑]의 저자인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은 현대의 사랑을 비관적으로 보앗다. 원래의 낭만적 개념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고, 새롭게 등장한 일상의 유용성은 과거와 달리 명확한 규정이 없기에 사랑의 관계를 더욱 비개연적으로 만든다. 루만은 현 시대에 어울리는 사랑의 코드를 문제 지향성과 이해 지향성이라고 규정한다. 사랑에서 중요한 것은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며 실망을 극복함으로써 지속적인 소통에 이르는 것이라는 의미다.
니클라스 루만은 낭만적 사랑의 유일한 기회를 역설적 형태의 리바이벌, 즉 설득력 있는 삶의 모델을 제시하는 현실과 이상의 새로운 일치에서 찾았다. 실제로 사랑은 이런 방향으로, 즉 낭만적 이상과 전략적 잠재력을 결합시킨 실용적 변종으로서 발전해온 것처럼 보인다. 시대에 맞는 실용주의를 표방하지만 그로 인해 역설적이게도 더 많은 열정과 낭만주의를 향해 다시금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다. 86
오늘날 애정 가계를 가장 위협하는 것은 사랑이 예전보다 더 개인적인 관계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로 인해 개인의 기대는 날로 커져만 가고 관계를 시작하는 것 자체가 날로 힘들어지고 있다. 현대의 일상은 비개인적인 관계로 넘쳐난다. 그런 비개인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온전히 개인적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사회가 정해둔 지침을 따르지 않고 어떻게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단 말인가? 오늘날 땅에 손수건을 떨어뜨리는 여자는 환경 의식이라고는 없는 오염원으로 낙인찍힐 것이다. 아첨과 공손함도 이제 통하지 않으며, 심지어 운명적 우연의 기회조차 줄어들었다. 운명적 우연이란 대부분 달갑지 않은 것이 때문이다 84
소설이 아무리 연애결혼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인정하고 싶다해도, 행복한 결혼은 소설의 전체 줄거리를 지탱하기에는 너무 따분한 소재다. 때문에 연애소설들은 무엇보다 관계의 시작 단계에 집중하였다.... 여성들이 결혼을 통해 인간으로서 재발견되엇다는 사실 역시 극적이다. 여전히 아내와 엄마의 역할에는 충실해야 했지만 온전한 가치를 지닌 인간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여성은 결혼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였고, 아직 성적 만족까지는아니라고 해도 적어도 결혼에서 도덕적 완성을 찾을 수는 있었다. 여주인공의 심리를 묘사한 연애소설이 특히 여성 독자들의 인기를 끌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19세기 소설들) 77 시민계급 내에서 결혼의 이상화는 19세기에 이르러 문학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결혼을 열정의 죽음으로 보았던 과거와 달리, 이제 결혼은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동시에 한 사람의 파트너와 일체가 되는 것을 의미했다. 이는 결혼에 문학적 잠재력을 제공하였다.
18세기말에 이르면 연애결혼은 심지어 인간 본성을 완성하는 제도이자 인간성의 척도로까지 승격된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는 이런 변화가 사회의 보편적 도덕화와 발맞추어 진행되었다. 도덕화의 선두주자는 감리교의 복음주의 운동으로, 특히 소시민 계급에게 오래도록 영향을 미쳤다. 핵가족이 이상적인 가족 형태로 부상하였고 일상생활의 의무가 신성시되었다. 이와 함께 위생 및 성에 대한 엄격한 통제가 실시되었다. 자위는 중벌을 받아 마땅한 죄였고, 1861년까지만 해도 동성애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이런 엄격한 통제는 오히려 이중 도덕의 사회에서 매춘의 활성화를 불러왔다. 섹스는 결혼과 결합되는 동시에 다시 집 밖으로 나갔다. 76
파리의 백화점이 생기고 경제 분야에서는 지불만이 중요하듯, 사랑에서는 이제 사랑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결혼은 가족이나 신분의 이해관계를 만족시키는 수단이 아니었다. 과거에는 결혼과 사랑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였다. 함께하는 생활은 번식을 위한 것이었고, 남성의 성적 욕망은 정부가 채워주었으며, 사랑은 신께 바치는 것이었다. 낭만주의와 더불어 비로소 결혼과 섹스와 열정은 사랑이라는 공통분모를 얻게 되었다. 더 이상 결혼은 종교나 정치, 경제를 지원해야할 필요가 없어졌다. 각 분야가 알아서 제 앞가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가족은 권력 유지의 수단이 아니라 개인의 문제이며, 판이 바뀌면 카드를 새로 섞듯 세대가 바뀌면 가족 구성원도 바뀌어야 한다는 새로운 관념이 보급되었다. 생활의 동맹은 사랑의 동행으로 변모했다.(18세기 영국의 발명품인 이런 새로운 결혼관은 개인적 색채가 짙은 사적 세계와 가족 세계를 강조했다.) 74
사회가 기술화.산업화.비개인화될수록 개인만의 공간과 감정이 중요해졌다. 그리고 그러한 개인의 감정은 낭만적 사랑을 통해 넘쳐나는 주관성을 표현하였다. 그 결과 18세기말, 특히 독일 문학에서는 개성을 정의하는 새로운 관념이 탄생하였고, 더불어 새로운 형태의 사랑도 선을 보였다. 낭만적 사랑은 전혀 다른 세상, 사랑받는 개인들의 세상을 열어주었다. 개성과 주관성을 재료 삼아 오랜 세월 실험을 거친 후 모든 인간을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개인이자, 세상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인지하는 유일한 주체로 파악하게 된 것이다. 이런 흐름은 낭만적 사랑이 들어설 수 있는 길을 마련해주었다. 18세기말 독일철학과 문학을 중심으로 개인의 유일성을 알리고, 주체를 일종의 신과 흡사한 세계의 설계자로 추앙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사랑의 입장에서는 물리학의 양자전이에 버금가는 획기적인 변화였다. 사랑은 이제 사랑하는 대상의 유일무이한 특성뿐아니라, 그 사람의 개성과 특별한 세계와도 관련을 맺게 되었다. 주관이라는 신세계를 개척한 낭만의 잔치는 열정적 사랑의 심리학적 조율 작업을 따랐고, 낭만적 사랑은 마침내 심장의 언어가 되었다. 이제 계산이나 전술로 보이는 것은 모조리 거부되었다. 68
개별화의 진전은 새로운 감수성을 불러왔다. 17세기와 달리, 인간은 변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니라 발전할 수 있는 존재로 여겨졌다. 인간의 성품은 신이 주신 것이 아니라 원칙적으로 공개된 사안이었다. 과거에는 사랑하는 연인들 자체가 불변했기에 사랑이 수시로 변한다고 생각했다면, 이제 사랑의 주체들의 변화를 인정하자 오히려 사랑에게 특히 지속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게 되었다. 이제 사랑도 결혼의 조건으로 고려 대상에 올랐다. 사랑하는 두사람의 상호 인정, 사랑과 응답으로부터 탄생하는 새로운 사랑의 감정은 견고성을 보장하였고, 귀족에 맞서 날로 부상하던 시민계급에 힘을 실어주엇다. 날로 강성해진 부르주아지는 귀족의 형식적 호의와 차별된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하였다. 18세기의 이러한 새로운 감수성은 소설이라는 매체가 등장하면서 대중적 현상으로 발전하였다. 모든 사랑은 나름의 스토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낭만주의와 소설의 밀애는 충분히 설명이 가능했다. 63
17세기에 널리 퍼져나간 역설을 향한 열정은 보편적 전환점을 기록하였다. 물론 고대와 중세에도 사랑은 역설적 표현으로 포장되었다. 하지만 모순적인 것은 모조리 신화적 이상으로 덮어버리던 그때와 달리, 17세기는 역설 그 자체를 인정하고 허용하였다. 사랑의 자유론 선택은 역설적 조건에서만 세련되게 짜나갈 수 있기에 모순적인 것들의 가치가 상승한 것이다.
사랑에 대한 보편적 지식은 17세기에 이미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책을 읽는 자는 사랑의 규칙을 이해했고, 특히 유혹을 할 때 그러한 지식을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구애를 하는 자는 성공확율을 높이기 위해 문학의 규정에 따라 행동했고, 미사여구를 훔쳐쓰기도 했다. 날이 갈수록 구애게임을 흥미진진해졌다. 54 55
낭만적 사랑을 구성할 결혼, 사랑, 성 세 가지 요소는 17세기까지만 해도 각각이 서로를 배제한 책 나름의 임무를 다할 뿐이었다. 결혼은 사랑이 아닌 권력의 결합을 기반으로 삼았고, 이상화된 사랑은 천박함이나 관능과 거리를 두려는 목적이었고, 육체적 욕망은 사회의 음지, 즉 세련된 행동 규정이 필요하지 않은 곳에서 해소되었다. 그러나 17세기가 되면서 중요한 측면이 변화하였다. 신분의 차이때문에 숭배하는 여성에게 다가갈 수 없었던 중세가 지나고, 사회 계급의 구속이 느슨해지면서 사랑에도 결정적인 변화가 생긴 것이다. 구애를 받은 여성은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었고, 남성 역시 그런 권리를 요구할 수 있었다...중세의 기사들이 영웅적 행동이나 기사도로 남성다움을 과시했다면, 17세기 구애자들을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야 했다. 이처럼 사랑이 미모나 신분 같은 단순한 특성들에서 벗어나 점차 개인화되었다는 사실은 당시의 예술 작품에서도 확일할 수 있다. 책은 사랑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령이었다. 수백 년 동안 사랑은 연애소설을 통해 대중에게 보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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