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전 노트 몇 곳~

 뱀발.  

1. 사실 많이 놀라다. **여*님 리뷰를 보고 건성건성 넘기고 책만 덩그라니 모셔두었는데 읽히질 않았다. 어느날 문득 마음에 걸리었고, 그렇게 시작하다. 평전을 들여보다가  분서가 궁금하여, 책을 빌리고 약속 빈틈의 시간에 원중도의 이온릉전을 보다가 울컥하는 것이 치밀어 올라 괜히 눈가만 축축해진다. 남들이 볼세라 주섬주섬 책들을 챙기고 나와 차안에서 마저 눈물을 챙긴다. 

2. 한번 공자-석가-예수를 한자리에 모셔 가상대화를 하는 책을 본 적이 있다. 책제목도 저자가 일본인인 것만 기억하고 느낌만 간직하고 있다. 전부 어설픈 이야기지만 유불도나 그리스도에 대한 그 자체로 보지 못하는 편향에 못내 아쉬운 구석이 있던 바다. 원시불교든 제자의 시각이 아니라 그 상황으로 보는 시선들로 인해 삶의 바깥은 없다.에 동의의 생각을 한두점 더할 수밖에 없었다. 

3. 최근 루쉰을 읽다보니 고사신편에 노자와 공자, 그리고 묵자가 너무도 시원시원하게 대비된 것을 본다. 예수도 그러하고, 루쉰의 고문연구나 번역도 그러하지만 예리하고 일거에 청량감을 더하는 평은 이지선생을 많이 닮아있다. 5.4운동 연후로 연계성을 아직 확인할 수 없지만 말이다. 

4. 세상은 옷과 밥, 자연스러움은 폴라니가 언급한 아리스토텔레스를 닮아있다. 삶을 그자체로 판단하고, 인문을 그 상황으로 날카롭게 이해하는 일은 삶 바깥을 미화하거나 폄훼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을 저 삶밖으로 던져 삶도 개인도 자유도 옳아매지 않는다. 삶이 그 자체로 인문 人紋이다. 

5. 평전의 뒷부분으로 갈수록 방대함과 저작, 삶에 진폭에 흔들리지 않을 수가 없다. 무섭고, 두렵고 그저 가치를 하나 하나 찟어발라내어 사고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앎과 삶은 어쩌면 그리도 같은 것인지? 함께 품어내지 못하면 그 역시 청관의 부조리만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현실이 답답하기도 하다. 

6. 지금까지 역시 겉만핥고 뱉은 구석이다. 들어서는 길에 호흡을 가다듬는다. 많은 것이 얽혀있어 그저 한두가닥의 맥락만을 연결해 가져갈 수는 없을 것 같다. 지난주부터 어쩌면 부들부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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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鄢烈山 & 朱健国, 『이탁오 평전』(1990)
    from 노는 사람 Play In 2009-10-28 10:13 
    2007년 2월 22일 탁오(李卓)가 호고, 지(贄)가 이름이었군요; “나는 어릴 때부터 성인의 가르침이 담긴 책을 읽었지만 성인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몰랐고, 공자를 존중했지만 공자에게 무슨 존중할 만한 것이 있는지 몰랐다. 속담에 이른바 난쟁이가 키 큰 사람들 틈에 끼어 굿거리를 구경하는 것과 같아, 남들이 좋다고 소리치면 그저 따라서 좋다고 소리치는 격이었다. 나이 오십 전까지는 나는 정말 한 마리 개와 같았다.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어대자..
 
 
파란여우 2009-10-28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겨울에 다시 이탁오를 순회할 계획을 잡고 있습니다.
마당님과 함께 탁오노자에 관해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 분을 알현하는동안 외롭고 쓸쓸하고 가슴이 아퍼서
못 먹는 술을 좀 마셨었습니다.

여울 2009-10-29 00:47   좋아요 0 | URL
책속에 소개된 책들이 있다면 알려주셔야해요. 가을바람이 쓸쓸하군요. ㅎㅎ
 

0.

0.1 수난

예수가 말했다. 부자들이 천당에 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고. 하지만 부자들이 아닌 예수 자신이 당시에 수난을 당했다. 지금 서구의 부자들은 거의 다 예수를 믿는다. 하지만 수난을 당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다.

0.2 어떤 슬픔

적의 칼에 죽는 것은 슬픔이라고 할 수 없다. 어디에서 날아온 지도 모르는 무기에 죽는 것이 슬픔이다. 하지만 가장 슬픈 것은 자애로운 어머니나 애인이 모르고 넣은 독약이나 전우가 잘못 쏜 유탄에 죽거나 결코 악의가 없는 병균에 죽는 것이다.


1.

1.1 민중 속으로

서재에서 책이나 떠받들면서 종교를 논하고, 법률을 논하고, 문학과 예술을 이야기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논한다해도 민중의 습관과 풍속을 알아야 하며, 이들의 어두운 측면을 직시할 용기와 강인함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혁은 불가능하다. 그저 미래의 광명만 외치는 것은, 게으른 자신과 게으른 청중을 기만하는 일일 뿐이다.


1.2 낡은 것과 새것의 공생

낡은 것과 새것은 왕왕 서로 닮곤 한다. 개인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다 부르주아 계급에 반대하고, 보수주의자와 개혁가는 삶을 위한 예술을 주장하며 어둠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꺼린다. 주의主義를 신봉하는 자나 공산주의자가 한결같이 휴머니즘에 질색하는 경우가 그렇다.

1.3 구세력과의 투쟁

구사회, 구세력과의 투쟁은 반드시 단호해야 하고, 부단히 계속해야 하며, 실력을 키워야 한다. 구사회의 뿌리는 원래 아주 튼튼해서 새로운 운동은 그보다 훨씬 큰 힘이 없으면 아무것도 뒤흔들 수 없다. 게다가 구사회는 새로운 세력들을 타협시키는 훌륭한 방법을 지니고 있지만 자신은 결코 타협하지 않는다. 중국에서 많은 새로운 운동들이 있었지만 새로운 세력들은 매번 낡은 세력을 당해내지 못했다. 그 원인은 대개 새로운 세력들이 굳세지 않고 큰 목표가 없고, 요구가 작아서 쉽게 만족하기 때문이다.

1.4 누가 복고를 원하는가

전에 잘살았던 사람은 복고를 원하고, 지금 잘살고 있는 사람은 현상 유지를 원하고, 아직 잘살지 못하는 사람은 혁신을 원한다. 대체로 이러하다. 대체로!


2.

2.1 혁명의 최후 승리

혁명의 최후 승리는 기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진격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에 달려 있다.

2.2 영원한 혁명

혁명에 끝이란 없다. 세상에 완전한 지고지선의 경계가 정말로 있다면 그 즉시 인간 세계는 응고되어 버릴 것이다. 하지만 중국에는 수많은 전사들의 정신과 피로 키운 예전에 없던 행복의 열매가 약간이나마 열렸고, 그것이 점점 자랄 희망이 보인다. 만약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행복의 열매를 계속 키워주는 사람이 적고 꽃을 꺾는 사람, 열매를 따먹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2.3 혁명의 순환

혁명, 반혁명, 비혁명
혁명가는 반혁명가에게 죽는다. 반혁명가는 혁명가에게 죽는다. 비혁명가는 혁명가로 간주되어 반혁명가에게 죽든가, 반혁명가로 간주되어 혁명가에게 죽든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간주되어 혁명가 또는 반혁명가에게 죽는다. 혁명, 혁명의 혁명, 혁명의 혁명의 혁명,혁명의 혁명의 혁명의 혁명.....


3.

3.1 어려울수록 개혁이 필요하다

어려워도 해야 한다. 어려울수록 해야 한다. 자고로 개혁이 순풍에 돛 단 듯이 진행된 적은 한번도 없다. 개혁에 냉소적인 사람들이 찬성하는 것은 개혁이 효과를 본 뒤이다.

3.2 개혁을 막는 자들의 위선

체질과 정신이 이미 굳어버린 민중은, 지극히 사소한 것을 조금 개혁하는 데도 지천으로 걸림돌이다. 겉으로는 자신들이 불편해지는 것을 우려하는 것 같지만, 실은 자신들이 불이익을 당할까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겉으로 내건 구실들은 언제나 지극히 공정하고 당당해 보인다.

3.3 개혁의 시작

역사가 가르치는 바로는 모든 개혁이 시작은 각성한 지식인에게 맡겨진다. 다만 이들 지식인들은 반드시 잘 배우고 잘 생각하고 판단력을 갖추고 있으면서 굳세야 한다. 그들은 권력을 지니되 사람들을 속이지 말아야 하고, 이익을 따지되 그것에 영합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을 경시하여 다른 사람들의 노리개가 되지 말아야 하며, 다른 사람들을 경시하여 자기의 노리개로 여겨서도 안 된다. 지식인은 그저 대중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대중 사업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1.

-1.1 노예의 만족

우리는 아주 쉽게 노예로 되며, 노예로 된 뒤에도 아주 좋아한다.

-1.2 노예를 어떻게 볼 것인가

만일 노예가 앞에 서 있다면 안타까워하는 동시에 노려보아야 한다. 안타까워하는 것은 그들의 불행을 안타까워하기 때문이고, 노려보는 것은 그들이 투쟁하지 않는 것에 분노하기 때문이다.

-1.3 독재와 공화제
J.S 밀은 독재는 사람을 냉소자로 만든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공화제가 사람을 침묵자로 만든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J.S 밀은 독재정치는 사람을 풍자가로 만든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천하태평이어서 풍자조차도 없다. 폭군의 독재정치는 사람을 풍자가로 바꾸지만 어리석은 인간은 독재정치는 사람을 살아 있는 시체로 만든다.

-1.4 독재자와 노예

독재자의 이면은 노예다. 권력을 쥐고 있을 때는 못하는게 없지만 세력을 잃으면 노예성이 극에 달한다...주인일 때는 다른 모든 사람을 노예로 삼지만 일단 주인이 나타나면 자신을 노예로 위치 짓는다. 이는 천하의 진리이고, 요지부동이다

.

4.

4.1 문제와 해결

문제가 없고 결함이 없고 불평이 없으면, 해결이 없고 개혁이 없고 반항이 없다.


4.2 뒤집어진 뒤 다시 세워라

예수는 수레가 뒤집어지려는 것을 보면 사람들을 도와주라고 하였다. 니체는 수레가 뒤집어지려는 것을 보면 밀어버리라고 하였다. 나는 물론 예수의 말에 찬성한다. 하지만 그 사람이 도움 받기를 원하지 않으면 억지로 도울 필요는 없고, 그가 하려는 대로 내버려두면 된다. 물론 그런 뒤 뒤집어지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기어이 뒤집어진다면 그 다음에 적절하게 그들을 도와 수레를 바로 세울 일이다. 억지로 돕는 것은 세우는 것보다 더 힘이 들고 효과를 보기도 어렵다. 뒤집어진 뒤 다시 세우는 것이 뒤집어지려는 것을 돕는 것보다 그들에게 훨씬 도움이 된다.

 

뱀발.  하나.

0. 사람들은 예수도 믿지 않는다.부자를 믿는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악의없는 병균에 죽더라도 슬퍼하지 않을 면역조차 생긴 것은 아닌가 1. 진보는 복고의 원하는 세력의 힘을 너무 왜소하게 볼 뿐만아니라 작은 것에 일희일비하며 광명만 외친다. 2.3.혁명이라는 것도 개혁이라는 것도 그저 상품의 하나일뿐이다. 그래서 -1. 노예라는 주장을 아마 봉건제나 농노제나 스펙터클의 화면 속으로만 느낄 것이다. 아마. 4. 문제가 뭔지도 모르기에 해결이라는 것이 어디에 있는지도 찾아볼 여력조차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둘. 

그런데 만약 -1에서 4란 잣대를 세상에 그렇구 저렇구한 세태에 빗대지 않구. 그 화살을 무차별적으로 지금 당신이나 서재나, 모임이나 단체로 향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나의 동선에 빗대어 다시 음미한다면 아마 슬플지도 모른다. 슬픔이 이런 것이다라는 의미가 고스란히 0.2로 되돌아갈지 모른다. 그런데 또 덫과 같은 잘살고 있는 사람이라면에 걸려 나도 복고적일 수밖에 없다면 아니면 -1의 노예란 그물에 걸려 저자거리에 대곤 크게 소리치지만, 여전히 단체나 모임이나 서재나 당신과 나에게 그 잣대를 비춰본 적도 없는데 아주 조금 이 이야기가 거슬린다면, 아니면 평론의 언어로 소설 속 한귀퉁이의 언어로 장식된 것이 2.3인데 만약 당신이 손가락으로 가르킨 대상이 거울 속에 비춰 다시 너를 가르키고 있다면 만약 아차 싶은 생각이 아직 든다면... ... 

그래도 당신은 아마... ...

셋. 

이런 대위를 하는 일 자체가 욕먹을 일 것이다. 아니 지독하게 스스로 욕할 채비를 하느라 다짐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기껏 책이나 떠받드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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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에 잘살았던 사람은 복고를 원하고, 지금 잘살고 있는 사람은 현상유지를
    from 木筆 2014-04-23 13:21 
    편가르기빨갱이 종북 말많음 따짐 꼬치꼬치 새누리당 한나라당 경상도 전라도 니편 내편 너네편 우리가 남이가 우리식구 동문 우리학교 우리과 긍정 부정 사실관계 확인 좋은게 좋은거 돈이최고 손해 이익 작은 사기꾼 큰 사기꾼 돈도 명예도 권력도 다 필요해 안하무인 배려 사려 돌봄 세대별 격 차 대물림 지역 나눔의 말로 꼬리붙이기 유대인 진보 좌파 내자식 내노후 자식노후 그래도 해라 뼈빠지게 고생하지 않으려면 니만 살아라 하루하루 굶으니 서럽다 자식잃고 싫은 거
 
 
 

1. [책 파괴의 세계사],북스페인, 페르난도 바에스,조구호 역 - 알폰소 레이에스는 "우리가 플라톤의 작품 중 통속적인 것만 보존하고 있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 중에서 무엇보다도 비전적秘傳인 것들만 보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것으로 현재 보존되어 있는 것은 애서가들이나 제자들이 수집한 단순한 강의록이다. 그의 초기 대화들, 편집물들, 서간문들, 시들은 사라지고 없다. 그리이스 세계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가장 저명한 애서가, 애독자라 불리는 사람이었다. 플라톤의 조카이자 아카데미아의 원장이던 철학자 스페우시포스가 죽자 아리스토텔레스가 3달란트를 주고 플라톤의 작품들을 수중에 넣을 수 있었다. 그가 수집한 주요 장서는 결국, 기원전 335년경에 학생을 모으기 시작한 김나지움의 일종인 리케이온의 도서관에 소장되었다....아리스토텔레스는 입문자들을 위한 토론 강의들이 있었는데, 이는 산책을 하면서 심오한 관념들을 토론하는 좌담회였다. 대중적이거나 대외적인 강의도 있었는데, 이것은 견습생들을 위한 것으로 사상가들의 대중적인 작품을 학생들이 직접 읽거나 암송하곤 했다. 이런 스타일은 대중적인 저술로 분류되었고, 리케이온 내부에서 사용하던 텍스트들은 토론적 비전적 저술로 분류되었다. --이후 알렉산드로스 대왕 죽음, 에우데무스가 논문, 강의록, 대화필사본.....테오프라스토스 ---넬레우스...스트라톤이 리케이온 원장으로 임명...이로인해 넬리우스가 떠남.---아펠리콘...200...로마...실라와 루쿨루스. 안드로니쿠스 97-111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단편들(2002)],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그리스어,라틴어,까스띠야어 판본(2003)]의 그리스어 텍스트를 스페인어로 번역함. 



2. 김진석이 잘 지적했듯이 소통의 부재는 그 자체로 원인이기보다는 결과이자 증상에 가깝다. 소통의 사전적 의미는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이지만, 그 실천이념은 화이부통이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소통을 홍보로 오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우리가 진정 소통을 원한다면, 그 정치경제적 기반에 주목해야 한다. 그 인프라를 외면한 채 소통 부재의 책임을 개인과 집단에게만 물어서 답이 나오질 않는다. 그것이 문화를 생산하고, 문화는 그 정치경제적 기반을 반복하기 때문이 원인과 결과구분이 어렵다. 그래서 그 순환관계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김홍우는 소통의 부패는 두가지 양극화 현상 속에서 급속히 진행된다. 첫째는 담론의 독점과 기피라는 양극화이고, 두번째는 대항하는 담론과 위하는 담론간의 양극화이다고 했다.

소통의 귀결로 여겨지는 타협과 화합은 우선적으로 정치경제적 이해관계가 조정될 때 가능하다. 그걸 외면하고 명분만으로 일을 풀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 그런데 우리는 매사에 옳다그르다로 판단하는 기질을 갖고 있다. 오죽했으면 단재 신채호가 도덕과 주의가 이해에서 났느냐, 시비에서 났느냐고 질문을 던져놓고 우리 조선사람은 매양 이해 이외에서 진리를 찾으려 한다고 개탄했겠는가.[blog.daum.net/opendiary/6988758]

3장 개혁 진보세력의 소통장애 - 스스로 개혁 진보파라고 생각하는 마이카족들은 잠시 마이카를 놔두고 택시를 타보라. 택시 기사들의 심성과 심리를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하려 들지 말고 그들이 보는 세상의 이미지에 주목해보라. 답은 바로 거기에 있다. 4장, 5장 마지막 노무현서거이후를 보론으로 싣고 있다. 

3. 말미 분서를 집어들다. 배경과 소개글을 읽는데도 호흡이 가쁘다. 대출이 되지 않는 줄 알면서도 빌릴 수 없느냐구 괜한 소리를 한다.  

뱀발. 오랫만에 나의 공공서재에 들른다. 여전히 객들은 드문드문 수험공부에 열심이다. 가끔 논문에 경도된 사람도 보이긴 하지만 말이다. 오늘따라 서재 앞 초승달은 샛별과 궁합도 잘 맞는 듯하지만 이내 자취를 감추었다. 서재 깊숙히 박혀있는 빨간 양장본의 분서 두권을 꺼내들다. 얕은 맛의 책 두권이 같이 들려있다. 가지고 간 여분의 책들도 함께 쌓아둔다. 혹 중국의 분서에 대한 글이 있을까 했는데, 진시황의 불교서적 관련한 글만 미흡하게 있다. 그리스의 책분실경로와 소식이 새롭다. 그리고 강준만님의 가진자-못가진자-개혁진보파의 현실에 대한 순환딜레마에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왜 진보는 작아질 수밖에 없는지? 우리라는 현실에 대해 똑같은 공명을 요구하지만 역시 속도공화국인지 여전히 빨리빨리 잊혀진다.  몇몇 제안들은 눈여겨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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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재미없는 계몽과 만들지 못하는 진보
    from 木筆 2009-10-29 00:20 
       지난 토요일 얼떨결에 나온 재미와 소통에 대한 꼭지의 기억이 선명치 못하고, 기우뚱한 균형의 내력도 관점이 다른 듯하다. 그래서 다시 되짚어보는데, 끌여오는 책이 [진보를 연찬하다]와 생활상의 맥락을 한눈으로 보게해주는 양장본이다. 북하우스의 HISTORY와 조르쥬디뷰의 역사는 조금 평면적인 느낌이어서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다 싶다. 견줘서 나에겐 편하다.   1. 재미를 휴머니티와 동등한 가치를 둔다.[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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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발. 

1. 강진에서 옛길로 빠져 주작산 가는길  백련사와 다산초당 이정표가 나오면서 보이는 길. 언덕 좁은 계곡이 나오자마자 석문공원이 생겼다. 다산 외손자와 조선 선비들이 석문산을 노래한 시에서 나온 이름이라 한다. 이것저것 기념해서 만들어진 이력은 저기.(접힌사진)  길옆 10여분이면 올라갈 수 있다. 동백나무도 식수해놓았는데(아래) 꽃이 피어 벌들을 잔뜩 불러내고 있다. 지난 휴가에 스치듯 지나쳤는데 와서보니 제법 운치있다. (손전화라 화질이 엉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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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고 오는 길. 자꾸 사물과 나의 경계가 없다면, 너와 나의 경계가 없다면, 저것이 모두 나의 한조각이라면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올라온다. 올라오며 이것저것 마음에 두니 그것이 아니다. 몸으로 근질근질 기어가거나 마음으로 스멀스멀 올라오거나 한다. 쓸데없는 생각꼬투리만 한자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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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도 시작하기 전에 잠들어 이른 새벽에 일어나리라 여겼는데, 알람 소리에 깬다. 부주산 한바퀴가 맺힐 즈음해서 땀이 오른다. 그리고 틈을 두어 몸을 푼 뒤,  삼향천변을 마저 거닐다. 어제 무거운 마음도, 몸도 풀린다. 아담한 정자 옆 한켠에 운동 기구들이 있어 마무리를 한다. 

다녀오는 길. 문득..그래 밥먹듯이 땀한종지 복용하는 것도 괜찮다 싶다. 무리하지 않고 완급을 둔다면 좋은 기분이 아침나절 올라오는 것이 말이다. 일들이 관계들이 어지럽게 얽혀 몸에 틈을 둘 여유도 만만치 않지만 식사한끼 챙기듯  땀 한수저, 꿀 한스푼 드시듯 꿀꺽 삼켜보는 것도 밑지는 장사는 아닌 듯 싶다. 

실땀이 비치는 것도, 따듯한 기운이 올라오게 하는 것, 이마에 땀이 비치듯, 온몸에 땀이 흥건하듯. 사람마다 처지도 여건도 다르겠지만... ...내몸 남몸 가릴 것 없다면 챙겼으면 하는 바램이다. 물론 나에게도 하는 소리지만... ...  4k+4k 50' 

뱀발. 1. 어제 손길이 간 [이탁오평전]의 맥락을 보다나니 뜨끔해진다. 추천이나 리뷰가 이제서야 마음 속으로 들어온다. 그러고 보니 아*** 어제 기**선생님 강연을 보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함께 봐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한쪽에 있던 책들이 이제서야 마음의 경계를 뚫고 들어오다니, 정신이 없긴 없었나보다. 에휴~

2. 어젠 퇴근 무렵 서편에 초승달이 황혼을 머금은 듯하여 눈길을 한참 끈다. 오늘도 안부를 물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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