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흔적과 평전, 그리고 논문,소설,학문적 성과를 함께 읽기.
인물들은 자칫하면 학문적의 성과에 가려, 그 그늘이나 일상을 함께 읽기를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 특정저작만 앞에 나와 그 삶의 고통이나, 고민, 그 막막함을 벗겨내는 과정들이 소멸되기 쉽상이다. 그래서 겨우 건지는 것이 그 저작의 두드러진 성과물로 희화시키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온전히 평전하나로 그려내기는 어렵겠지만, 다른 시선이 섞이면 그래도 단순화시킨 시선의 결을 넓혀 다른 이해를 들여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 노신의 또 다른 평전들을 읽고 있는데, 생활의 세세한 면과 개인적인 고뇌, 그 일상을 작품과 연관시켜 논증하는 것이 인상깊다. 물론 인생을 일관성이나 논리성으로 지나치게 연결시키는 것 역시, 삶의 단편이 그렇지 않기에 이 역시 다른 면을 놓치게 만드는 요소가 아닌가 싶다. 삶의 맥락과 작품을 열결시켜 흡인력 높은 평전이나 논문을 만나면 마음은 그 삶과 작품을 대조시켜 다시 읽고 싶은 충동이 이는 것도 사실이다.
요즘 폴라니와 노신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역사도 어쩌면 표피만 건들여서 깊은 맛은 언급하지도 않은 채 일방적인 주입으로 점철된 것은 아닐까? 열심히 학문적 연결과 깊이를 더해가는 학자들의 노력에 심심한 감사를 보내게 되는 연유가 있다. 존경심까지 뭉글뭉글해진다.
[거대한전환] 홍기빈역자 폴라니소개글. [분서 1]....
-지식인과 문학가-
[지식계급에 관하여][문학과 혁명의 문제에 관하여][문학과 사회][문예와 정치의 기로]
1. 지식인과 문학인의 특징은 민감하다는 것이다.
- 확실히 평민을 대신하여 불평을 품을 수도, 평민의 고초를 대중에게 얘기할 수도 있다.
- 문학인의 발언은 사실 사회의 발언이기도 한데, 예민하기 때문에 남보다 빨리 느끼고 빨리 얘기하는 것뿐이다.
- (하지만 그들에게서 이런 특징을 제외한 힘은 없었으니) 사상이 있으면 용기가 없을 수 있다.
2. 지식인과 문학가는 통치자나 정치가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 지식과 강권은 충돌하게 마련이며 병립할 수 없다.
- 문학과 정치는 자주 충돌한다.
-정치가는 문학가와 사회혼란의 선동자라고 확신하며, 그자를 죽이면 사회가 평안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3. 어떤 사회에서건 지식인과 문학가는 언제나 고통을 당하고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 그들은 영원히 사회에 만족하지 못한다. 느끼는 바는 영원토록 고통이요. 보는 바는 영원토록 결점이다.
- 문학가의 운명은 직접 혁명에 참가한 적이 있다 해서 똑같이 바뀌지 않으며, 곳곳에서 문제에 부딪힌다.
4. 지식인과 문학가의 존재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 그들은 미래의 희생을 준비하고, 사회도 그들이 있기에 떠들썩하며...
- 사회분위기가 너무 조용하니 이런 사람이 있어야만 좀 재미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인간은 구경거리를 좋아하고, 문학가는 스스로 구경거리가 되어 남에게 보여 준다. 줄에 묶인 채 끌려 나가 머리를 잘리거나, 가까운 담장 아래서 총살을 당하거나 모두 세상을 한동안 떠들썩하게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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