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건강증진연구소가 2014년 1월부터 회원들과 고전 50권 읽기 모임을 진행합니다.

눈앞에 직면한 연구 문제나 정책적 과제를 해결하는데 급급하다 보면 그러한 문제들의 근본을 다루고 있는 ‘고전’에 대한 갈망이 커지기 마련입니다. 부분 발췌와 재인용 단락을 읽는 것만으로는 아쉬움을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학생이든 연구자든 활동가든, 당면한 문제들을 뒤로 한 채 홀로 차분하게 앉아 고전을 읽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혼자 하기 어렵다면 여럿이 함께 하는 것이 방법입니다.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고전 50권 읽기 모임’을 꾸리고 좋은 책 읽기의 경험을 회원들과 함께 하고자 합니다.

지난 두 달 동안 여러 분들이 추천해주신 책들을 검토하여 우선 다음과 같은 10권의 1차 목록을 만들었습니다 (가나다 순).

- 병원이 병을 만든다 (이반 일리히)
- 보건과 문명 (조지 로젠)
- 복지국가의 세 가지 세계 (에스핑 앤더슨)
- 불평등의 재검토 (아마티야 센)


- 사회학적 상상력 (라이트 밀즈)
- 예방의학의 전략 (제프리 로즈)
- 인권의 대전환 (샌드라 프레드먼)
- 자살론 (에밀 뒤르켐)
- 자유로서의 발전 (아마티야 센)
- 정의론 (존 롤즈)
- 직업으로서의 학문 (막스 베버)

이 중 가장 최근에 새로운 번역본이 출간된 아마티야 센의  <자유로서의 발전> (2013년 10월 새 번역본, 갈라파고스)으로 책읽기 모임을 시작해보려 합니다. 모임이 비교적 적은 월요일 저녁에 2주 간격으로 두 시간 씩 함께 강독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미리 읽어오실 필요도 없습니다. 성실한 참여만 서로에게 약속해주시면 됩니다.  

첫 모임: 2014년 1월 6일 (월) 저녁 7시-9시 (2주 간격)

참여를 원하시는 분은 12월 30일 (월) 까지 phikorea@gmail.com 으로 메일을 보내주세요.

연구소 회원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뱀발. 아마티아 센, 정체성과 폭력으로 접하고 나서 꼼꼼이 읽지 못했던 듯 싶다. 지난 기억을 들춰봐도 많지 않다. 도서관에 다시 대출을 하고 잠시 훑어보다. 하루 늦게 반납했더라면 이 책이 이렇게 다가서지 못했으리라. 아마 가벼운 책을 원하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뉴스레터를 열어보니 고전 읽기 모임 소식...그리고 선택된 책 10권을 보다 나니  또 걸린다. 멀다. 가까이 있는 분들 접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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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의 문제는 그들에게 어떤 허구도 없다는 데 있다
대안이라는 개념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다른 사회 체계가 가능하다.
필요한 것은 공동 체가 아니라 공동 면역 체이다
이 세상이 백 명이 놀러 온 캠핑장이라면... ...

 

 

 

 

 

 

 

 

 

 

 

 

 

 

 

 

 

뱀발. 행사를 겸해서 책들을 다시 챙겨봅니다. 대담자들에게 빨간약과 파란약이란 질문을 건네지만, 어느 누구도 예,아니오를 답하지 않습니다. 질문이 현실을 제대로 담지 못하는 것이죠. 대담자의 답변이 중요한 것은 아닐겁니다. 리뷰와 다시보기로 혹 스스로 갖고 있는 교조적인 틀에 박힌 생각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러면 우리는 조금 나눌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혼자든 모임이든 갖고 있는 선입견이나 관념에 집착하지 않게된다면 조금 더 나은 관계가 되지 않을까요. 세상과 사회란 거창한 말보다도 당신과 내가 좀더 다른 계기와 시작, 한 알의 생각이라도 섞을 수 있다면... ... 내일입니다. 대전 반석에서 있답니다. (먼댓글로 파편같은 밑줄들을 그어보았습니다. 혹 도움이 된다면....팽하셔도 좋습니다. 난체하는 놈들의 잔치라고... ...바라는 마음과 보는 마음이 같을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행여 가던 길 멈추고 들르셔도 좋겠습니다. 이건 욕심이지요. 욕심!! 저도 멀리서 응원하는 처지입니다만... ... 아쉬움 가득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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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밑줄을 그으면서 몇꼭지 공감하는 바에 고개를 끄덕인다. 자본주의라는 말, 신자유주의라는 말처럼 추상적인 말이 있을까? 그것을 반대한다고?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되었다는 말인가? 자세히 들여다보고 따지지 않으면서, 어느 순간 상품을 세세히 꼼꼼하게 따지는 습관은 어디갔나? 신자유주의 때문에 문제라니? 자본주의때문에 문제라니? 실체가 있나? 그렇게 뭉뚱그려 여러문제를 겹쳐 하나로 안개같은 것이 몰입하고 때려잡자고 하는 순간, 그 구름같은 것 안에 들어가면 정작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닌가?  문제를 직시하고 직면하려하지 않는 무의식의 습관이 거기에 있다고 여긴다. 패배자의 습속이 지지리 궁상을 떨며 그 속에 또아리 틀고 있다.  자본주의 뭐가 문제인데? 그래서 신자유주의가 어떻다고? 그냥 반대하면 밥먹여 준데라고 되물어야 혼줄이 날 것이다.


 

하물며 그러한데, 그렇게 가상의 적과 싸우는 순간, 반대만 하면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외치는 순간 투쟁을 하고 전부를 다한 것 같은 양심의 안위를 느끼는 순간, 현실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 말년 평생 사회주의자로 살아간 코헨의 팜플렛에 공감을 표한다.  지금여기에는 '기획'과 '고안'이 멸종되었다고, 실험할 시도할 마음조차 없다고 말이다. 진보의 외투를 걸쳐입고 저 먹구름을 해치우기위해 동키호테처럼 무찔렀다고 제발 나를 봐달라고 하는 것 밖에 하지 않는다. 선악의 문제로 가져가 이것 아니면 저것이다하는 흑백으로 세상을 살피려해서 그 중간과 주위에 걸쳐 있는 문제들을 외면할 수밖에 없다는데 더 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난 사회주의적 이상이 직면한 주된 문제는 그것을 작동시키는 장치를 어떻게 고안할지 모르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주된 문제는 인간이 이기적인 존재라는 사실이 아니라 우리에게 적절한 조직 기술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관건은 '기획'과 '고안'이다. 54

사실, 거의 모든 사람에게 이기적인 성향과 관대한 성향이 있다. 문제는 이기심을 비정상적으로 작동시켜 경제를 운영하는 법은 알지만, 관대함을 발전시키고 이용하여 운영하는 법은 모른다는 데 있다. 54-1


 

 조셉 캐런스(Joseph Carens) [평등, 도덕적 동기 부여, 그리고 시장]은 '유토피아적 정치-경제적 이론에 관한 논고'라는 부제 - 사회에 공헌하기를 원하여 수익을 추구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시장 기제가 평등과 공동체를 위해 사회적 기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용되고 있는 셈이다. 58-1


 

 평등과 호혜의 가치는 시장사회주의가 작동할 때 반드시 필요한 제약들을 정당화한다. 이런 원리는 복지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즉, 국가가 모든 시민에게 시장 상황과 관계없이 살아갈 수 있는 실질적 기본 소득을 제공해야 한다는 구상에도 부합한다. John Roemer [사회주의를 위한 미래} 61-1


시장의 본질적 특징은 (1) 저급한 동기들을 계속 유발해서 (2) 바람직한 결과를 만들어내지만 (3) 심각하게 불공정한 불평등과 같은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균형 잡힌 관점에서 보면, 이 세 가지 측면 모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66-1


나는 사회주의가 "인간의 발전 단계에서 포식의 단계를 극복하고 진보하려는 인간의 시도"라고 말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모든 시장은, 사회주의 시장조차도 포식의 체계다. 그것을 극복하려고 했던 우리의 시도는 실패했다. 그러나 나는 결국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옳은 생각을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69-1

 

시장 사회주의를 비롯해 시장에 대한 균형감각과 전망과 그림을 다시 그려보려는 시도가 현실에서 그래도 한걸음 디딜 확율은 높아지는 것이다. 포식의 단계를 지나 그 숱한 새로운 길의 조짐은 여기저기 있는 것이다. 조짐에 손과 발을 달아주는 일들, 때로는 가상의 공간에서 걸어보고 검토하고 시험해보는 일, 과거의 옳고그름을 내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과연 면역을 갖고 지금보다 낫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인지 살펴보는 것이다.

 

2. 학자들 마다 용어의 쓰임새와 개념어가 달라 안타깝다. 수고를 덜어낼 수 있는 방법도 없고, 그 개념어에서 출발한 학문의 확장은 개념어를 따라가지 않으면 빗나가기 일쑤다. 말을 만들어내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될 수 있으면 기본적이고 흔히 쓰이는 말에서 시작하면 어떨까 싶다. 해제이긴 하지만 부르조아의 평등, 자유주의자의 평등, 사회주의자의 평등으로 나눠 설명하니 오히려 그 차이가 도드라져 보인다. 캠핑으로 출발한 사유로 인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에둘러 돌아가지 않아서 좋다.

 

롤스의 사회적 정의론은 사회의 기본 구조에만 적용될 뿐, 개인의 선택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코헨은 사회정의는 강제적인 법적 구조만이 아니라 사회 윤리와 개인의 선택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개인의 선택을 판단할 때에는 그의 능력에 대한 정보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다시 말해 사회 정의는 법으로 강제하지 않아도 평등을 추구하는 사회 윤리를 요청한다는 것이다. 88

누구나 돈이 없으면 그만큼 간섭받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자유주의자들이 가난이 능력의 부족일 뿐, 자유의 부족은 아니라고 강변하면서 정부의 주된 책무는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기에 가난의 구제는 그 주된 책무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고, 코헨은 비판한다. - 가난은 분명히 자유의 부족을 수반하고 그것을 제한하는 중요한 환경이다.  91

 

일이 먼저냐, 휴식이 먼저냐는 선호의 차이는 원리상으로는 사과가 더 좋으냐, 오렌지가 더 좋으냐는 차이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각자가 자기 선호의 결과에 만족하고, 그것을 통해 남들과 대등하게 삶을 즐길 수 있다면 이런 선호의 차이를 반영하는 혜택과 부담의 차이를 나쁜 것이라고 반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99

 

효율성이란 단지 여러 가치 중 하나이다. 그는 효율성이라는 가치가 조금만 훼손돼도 그런 현상을 막기 위해 평등과 공동체의 가치를 희생시켜도 된다는 주장은 균형을 잃은 것이라고 비판한다. 원하는 재화와 용역을 효율적으로 공급받고 싶으면 삶의 질을, 그리고 동료 시민과 맺고 있는 관계의 질을 따지지 말라는 것이 효율성을 내세우는 사람들의 주장이 아닌가? 그러나 재화와 용역을 원활하게 더 많이 공급받겠다고 동료와의 관계를 희생할 수는 없지 않은가 113

 

3.

[맑스주의의 향연]을 다시 읽다보니 [공산당선언]을 음미한 저자의 시선이 내내 겹친다. 저자는 맑스가 말한 자본이 탐욕과 공포감을 동시에 조장한다는 사실, 달리 말하면 이윤을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탐하고 자신도 잡아먹어 사라지는 허무를 동시에 말한다. 어쩌면 하나라도 남겨라는 명령의 그림자에는 모든 것을 없애라라는 허무주의가 동시에 걸어간다라고 말한다. 그런 세상을 2-3백년이나 봐주면 살고 있다.

 

4. 책을 보고는 실망할 수 있겠다. 하지만 답을 원하지 않고 질문을 원한다면..네 몫이 있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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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림] 맑스재장전 상영과 저자와 대화
    from 木筆 2013-12-04 17:16 
    뱀발. 행사를 겸해서 책들을 다시 챙겨봅니다. 대담자들에게 빨간약과 파란약이란 질문을 건네지만, 어느 누구도 예,아니오를 답하지 않습니다. 질문이 현실을 제대로 담지 못하는 것이죠. 대담자의 답변이 중요한 것은 아닐겁니다. 리뷰와 다시보기로 혹 스스로 갖고 있는 교조적인 틀에 박힌 생각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러면 우리는 조금 나눌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혼자든 모임이든 갖고 있는 선입견이나 관념에 집착하지 않게된다면 조금 더 나은 관계가 되지
 
 
 

 
시민교육은 책 속의 앎이나 지식의 전달과 수수가 아니다. 결과만 쏙 빼먹는 비타민도 영양제 같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근력을 키우려고 몸에 땀이 배여나오게 하는 과정이다. 홀로 생각해 쌓아두는 사상누각은 더더구나 아니다.  수십번 자신과 다른 생각의 벽에 부딪혀야 하는 과정이다. 이로 말미암아, 색깔의 차이, 느낌의 온도차가 서로스며들고 나왔다를 반복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질감이 몸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다른 처지, 다른 입장, 다른 삶, 다른 정보원들을 꼼꼼이 비교-선별해보기도 하고 너의 입장에 서서 그 생각뿌리를 헤아려보기도 하는 것이다.


 

옳은 것을 주입시키고 교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 이런 입장을 가져야 한다가 아니다. 정치 교육에 있어서는 다양한 사례, 논점으로 그대로 받아 안아들이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 상황들을 대면해서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시간의 틈, 몸이 그 상황에 자리잡을 수 있는 간극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나만의 관점이 아니라 나-너란 생각의 저수조가 생기게 된다. 그 가운데서 겨우  처지와 관점을 달리하며 서로 섞이는 과정이 자라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최고, 나의 입장이 우선이란 사실들이 무뎌지면서 자기의 관점과 시선, 자신이 몰랐던 자신의 입장에 대면하게 된다. 남의 시선, 빌린 시선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시민으로 정치상황과 세상을 좀더 종합화하는 능력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흔히 정치적인 입장은 자신이 자라온 곳과 가족의 분위기에서 대물림된다. 지금 여기는 정치관이라는 것도 기껏 수업시간에 지식의 전달만 있을 뿐이다. 처지와 입장이 다를 수 있고, 노동자로서 근로자로서 존재조건을 깨우치는 과정, 보호받아야할 최소한의 권리도 알려주지 않는 셈이다. 학교는 자신의 처지를 이해조차 하지 못하며 되고싶어하는 자들을 대변하기 일쑤이다. 되고싶어하는 자의 입장으로 세상을 보게 만든다.  피해자의 입장, 다른 계급, 계층의 눈높이에서 되살펴보는 일은 거의 없다. 그 입장의 차이를 소비의 다양함 만큼 서로 나누고, 다를 수밖에 없는 의견들을 비교하지도 않는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사회에 받은 냉대와 사회가 욕망하는 시선만으로 자신을 한탄할 뿐, 자신이 놓여진 자리를 다시 돌이켜보지 않는다. 세상과 사회의 불합리를 왜 자기 혼자 독박을 쓰고 살아야 하는지? 왜 내탓만 해야되는지? 세상에 버려지거나 던져진 자신의 조건과 처지를 냉정히 돌아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것을 허심탄회하게 나눌 기회조차 없다. 언제나 되돌아오는 목소리는 한결같다. "낙타바늘로 들어가라. 돈벌자. 내자식에게 그럴 수없잖아. 내탓이잖아."


 

나도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며, 장애인으로 내가 낼 수 있는 정치적 입장과 목소리를 찾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젊은이와 노인의 차이에서 다른 발언을 해야되고, 그 입장이 섞여야 되는 것이다.  아이에게 재갈을 물려 어른의 목소리를 주입한다. 입장차이는 정치적 차이이기도 해야 한다. "제발 잠 좀 자게 냅둬라, 당신은 질풍노도 안거쳤냐?"


 

힐링과 치료, 치유가 아니다. 자신의 처지와 그 입장에서 정치의 다양성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만을 문제로 삼고 거기에 빠져나가지 못하는 나만의 치료방법에 집중하는 것이다. 거꾸로 힐링이 유행하는 만큼 이 사회가 나만 생각하고, 나에게 빠지게 만들고 "나" 곁에 "나-너"가 없는 것처럼 구는 것이다.  나만이 아니라 나-너를 생각하기 시작해야 한다. 부자와 돈의 도그마에 벗어나 자신의 입장과 처지에서 생각한다면, 너의 문제라는 사회의 문제가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정치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다른 입장, 다른 방법, 다른 주장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과 함께 세상과 사회가 자신의 몸과 입장을 말해줄 때, 공감하게 되며 삶 속에서 활력의 근거를 찾게 되는 것이다.

 


자살과 우울병, 약물로 갇힌 나를 살아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좀더 세상의 다른 목소리에 귀기울이게 되고, 자신에 공명하는 다른 색깔의 정치적 목소리를 찾게 된다. 나에게 사회는 이런 식으로 바뀌어야 최소한 숨은 쉴 수 있다라고 외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정치적 소견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를 수 있다는 데서 시작하며, 골고루 맛볼 수 있는 느낌의 정치교육과정이 스며들어야 한다. 사생활, 정의, 인권, 노동권....모두 알면되는 것이 아니라 느끼고 깨우쳐야 되는 질적으로 다른 기술이다. 자전거와 수영을 배우는 것처럼 말이다. 다른 삶을 살아가기 위한 또 다른 통과의례인지도 모른다. 돈과 내자식 내가족에게만 빠진 내맛대로 삶이 치뤄야하는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한 아이를 마을이 키워낸다는데, 이 사회가 키워내는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걸 보면 거꾸로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놔야 하는지가 각성의 잣대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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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투트랙ㅡ과거를 겨워내는 일도 중요하지만 연금이나 복지를 수면위로 올려놓는 일이 오히려 두마리 토끼를 잡아내는 건 아닌지. 주말 귀향의 뒤풀이 흔적들이 남는다. 51.6에 말거는 일. 복지가 마마가 되기 위한 치장이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 외려 양수겹장은 아닐까. 정치지분을 유지하기 위한 정략에 놀아나고 있는 건 아닌지. 문득 돌아가는 팽이 가장자리가 위태롭다. 팽이위에 서있는 사람들이 더 기우뚱 넘어질 듯하다. 벌써 년말이다. 먹고 사는 일보다 중요한 것이 있나 ㅡ 금을 넘는다. 정치엔 포트폴리오는 없나? 민생이 아니라 연금?! 잘못생각하고 있는건가? 배고프다. 저녁때가 되니 막걸리 한잔도 고프다.

 

 

 

2. 삶은 계란! ㅡ 계란 속 노른자와 흰자! 그냥두면 섞이지도 않지만 품고 늘 기대기도하면 노른자는 흰자에게 흰자는 노른자에게 톡톡! 병아리처럼 총총! 삐약거리기도 하는데. 문득 세상이 나이 서른에 멈춘다면 ᆞ음 삶은 반짝!?

 

 

 

 

 

3. 제수씨 가라사대 대통령을 꿈속에서 넘 리얼버전으로 알현하사 이건 왕건이다 얘기도 숨기고 로또를 샀다는데, 조마조마를 부여잡고 일주일이나 기다려 쪼여보니 이런 세상에! 아무것도 당첨된 것이 전무하여 물어보니 ᆞᆞᆞ사람들은 가로사되 ᆞᆞᆞ

 

 

음 그건 아무래도 ᆞᆞᆞ합법이 아니라 비합법이라 소근소근 ᆞᆞᆞ

 

 


 

 

 뱀발.

 

반차를 낸 지난 금요일 아카데미안들, 토요일은 연극공연벙개, 일요일은 마을기업발표회까지 이어지는 일정이 며칠간 여행을 다녀온 듯하다. 밀린 이야기들, 생각들을 다른 시선으로 보고 들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반가웠다. 모임 역시 생동감없는 일들의 집합이라면 얼마나 부질없는가? 좀더 남기기 위해 아둥바둥하는 분위기와 좀더 달리 온기와 비판들로 긴장감도 생기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대면한다. 그러고 보니 떨어져 있다는 푸념도 섞여버렸다.  활동한다는 사람의 반경이 얼마나 과거에 묶여있고 제한되어 있는지 다시 한번 돌아본다. 그리고 국면을 뚫고 나가는 힘들조차 모아지지 않는 현실이 더 안타깝다. 하루 이틀 하는 일은 아니지만, 밥한끼 할 수 있는 사이들. 좀더 많은 시선과 이야기, 논쟁이 오갈 수 있는 사이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싶은 주말이었다. 여독이 많이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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