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들은 세계를 해석해왔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마르크스는 말했다. 20세기에 우리는 이 말에 따라 너무 많이 세계를 변화시켰다.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채 열심히 변화를 추구한 것이다. 그래서 다시 변화보다도 해석이 필요한 시대가 왔다. - 지젝 83


예술은 무엇이라도 그 영역에 들어갈 수 있는 이상 특수한 경험의 영역으로 실존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정치와 감성론(미학)의 관계를 정의한다. 이 관계는 분리된 두 세계 사이의 외적 관계가 더 이상 아니다. 오히려 이는 정치로서의 행위와 감성론으로서의 감정, 예술적인 것으로서의 대상 또는 수행을 동일시할 수 있게 하는 감각적인 것의 분배 형식 속에서의 전환이다. - 랑시에르 111

 

[프롤레타리아의 밤] Gauny - 그가 그와 그의 동료들을 위해 행하는 것은 글쓰기를 통한 자기의 재전유 작용이다. 이런 작용은 감각적인 것의 분배/나눔에 이른다. 그것은 노동자의 몸이 시간과 공간의 분배/나눔 속에 기입된 것으로 간주되는 방식을 수정한다. 그는 노동자의 능력을 손의 힘에서 시선의 힘으로 옮겨놓는다. 그는 노동자가 말하는 방식, 언어를 활용하는 방식, 노동자가 낮과 밤에 할 일을 분배하는 방식, 그의 생산과 소비를 관계 짓는 방식을 바꾼다. 해방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고니는 그것을 개인적인 경험의 틀 안에서 표현한다. 그러나 이 개인적 경험은 노동자들이 서로 말하고 그들의 고용주에게 말하기 위해 모이는 방식, 그들이 그들의 말의 지위를 바꾸는 방식, 그들이 동시에 새로운 삶의 수단과 투쟁의 능력을 창안하는 방식 속에서 즉시 연장된다. 랑시에르 125


 

[프롤레타리아의 밤]은 이론에서 실천으로의 이동을 표시하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그것은 이론과 실천을 그 관계와 더불어 다시 사유하는 방식이었다...반란은 또한 모든 사람이 생각한다는 단언, 사유가 구상되는 세계와 그것이 적용되는 세계가 따로 있지 않다는 단언이기도 하다...노동 해방이 생산의 과학에 기초한 운동이 아니라 무엇보다 노동자들에 의한 그들의 사유능력, 의식/지각 능력, 그때까지 특권계급에게 제한되어 있었던 것을 실천하는 능력의 단언임을 보여주었다...랑시에르 127


소비주의와 분수에 넘친 삶이 캄캄한 복도로 우리 자신을 밀어넣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한마디로 미래 세대를 대가로 지불하고 나눠 가져야 할 미래를 저당 잡힌 상태다. 그러나 당신이 제대로 지적했듯이 증가하고 있는 청년 실업은 특별한 무게감을 갖는다. 이 문제는 '능력주의 사회'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다- 바우만 139

 

치열하게 블로그에 글을 남기고 열심히 트윗을 보냄으로써 많은 이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의무를 다하고 훌륭하게 정치적인 삶에 참여한다고 생각한다. 소셜네트워크는 정치제도를 대체하고 있다. 그러나 도대체 무엇으로 대체하고 있는가?정치에 대한 환상?오프라인의 현실성으로 전이될 수 없는 온라인의 인공성? - 바우만 142

 

우리는 취득한 소비의 대상에 충성을 맹세하지 않는다. 쾌락-용량이 모두 소진되거나 시장에 나타난 다른 대상보다 쾌락의 가능성이 떨어지는 순간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그 소비의 대상을 폐기해버린다. '소비주의'라는 개념은 협소한 전통적인 개념에 갇힌 소비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소비시장과 쇼핑객들에게 제공되기 위해서 발전한 태도와 전략에 물들고 침윤되어 있는 우리 삶의 양식을 형성하는 총체성을 의미한다. - 바디우 148

 

대안적 주체성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훨씬 덜 편안하고 훨씬 더 위험하고 지루하기 십상일 것이다. 이런 생각들은 오랫동안 무가치한 것으로 방치되고 관심도 받지 못하고 망각되었다. 대안적 주체성을 추구하기 위해 능력과 천재성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우리는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압도적으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거나, 또는 '오프라인'의 즐거움을 지키는  것은 이제 낡아빠진 것으로 간주되거나 방기되고 있다. 인간의 연대가 제공하는 경이와 도전, 그리고 상호협력과 우애로 가득한 그 세계는 이제 사라졌다. 물론 그렇다고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없고, 삶의 양식에 대한 우리의 선택이 완전히 종결된 것은 아니다. 다른 여러 가능성이 있겠지만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 바우만 150

 

교육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순진하다. 욕망을 재배치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다. 모든 교육은 억압을 없애는 문제다. 욕망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교육이다. 이런 교육의 목적과 실제로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 사이에 괴리가 있다. 이런 까닭에 교육은 강제적이지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교육은 세상을 바꾸는 계획과 다른 것이다. - 스피박  160


영국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사회주의적 전통은 마르크스에게 고유한 것이 아니다.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에게서도 비타협적인 사회주의를 발견할 수 있다. 기독교적인 전통에서도 사회주의를 말한다. 감리교 교회의 활동이 노동자당에 비견할 만했다. 종교의 경우 충분히 교회가 좌파적 경향을 띨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이런 것을 단순하게 상부구조의 문제로 볼 뿐이다. 부차적인 문제로 보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 크리츨리  192

 

아나키즘이 상호주의를 체현하고 있다. 아나키즘은 어떤 대안을 찾기 위해 독립적인 개인들이 자유롭게 연대하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나 홉스 같은 정치철학자에게 인간은 나약하고 사악한 존재다. 이런 까닭에 절대 권력을 가진 국가를 통해 개인은 통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전쟁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아나키즘은 전혀 반대의 입장이다. 정부가 본질적으로 악이고, 개인은 독립적인 상호주의를 체현하고 있다. 이처럼 아나키즘으 문제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내포한다. 인간-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해명하려는 것이 아나키즘이다.  크리츨리 193

 

대안이라는 개념은 자본주의 '옆'에 다른 사회 체계가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생각은 '다른 세계'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이 안에서 내재적인 것을 바꾸는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추상적부정이 아니라 결정적인 부정이다. 문제는 대안에 관한 것이라기 보다 이행의 개념이다.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사회적인 매개를 만들어내는 양식에 대한 도전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맥락은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하지만 우리는 계획, 시장, 화폐에 대한 고전적인 논쟁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토스카노 216

 

바커 - 인터뷰를 중심으로 책을 내는 것은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읽고 그림을 그려보라는 것이다. 그림은 지적 성장에 아주 좋은 훈련이다. 덧붙여 유머를 잃지 말라.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유머다.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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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림] 맑스재장전 상영과 저자와 대화
    from 木筆 2013-12-04 17:16 
    뱀발. 행사를 겸해서 책들을 다시 챙겨봅니다. 대담자들에게 빨간약과 파란약이란 질문을 건네지만, 어느 누구도 예,아니오를 답하지 않습니다. 질문이 현실을 제대로 담지 못하는 것이죠. 대담자의 답변이 중요한 것은 아닐겁니다. 리뷰와 다시보기로 혹 스스로 갖고 있는 교조적인 틀에 박힌 생각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러면 우리는 조금 나눌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혼자든 모임이든 갖고 있는 선입견이나 관념에 집착하지 않게된다면 조금 더 나은 관계가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