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밑줄을 그으면서 몇꼭지 공감하는 바에 고개를 끄덕인다. 자본주의라는 말, 신자유주의라는 말처럼 추상적인 말이 있을까? 그것을 반대한다고?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되었다는 말인가? 자세히 들여다보고 따지지 않으면서, 어느 순간 상품을 세세히 꼼꼼하게 따지는 습관은 어디갔나? 신자유주의 때문에 문제라니? 자본주의때문에 문제라니? 실체가 있나? 그렇게 뭉뚱그려 여러문제를 겹쳐 하나로 안개같은 것이 몰입하고 때려잡자고 하는 순간, 그 구름같은 것 안에 들어가면 정작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닌가?  문제를 직시하고 직면하려하지 않는 무의식의 습관이 거기에 있다고 여긴다. 패배자의 습속이 지지리 궁상을 떨며 그 속에 또아리 틀고 있다.  자본주의 뭐가 문제인데? 그래서 신자유주의가 어떻다고? 그냥 반대하면 밥먹여 준데라고 되물어야 혼줄이 날 것이다.


 

하물며 그러한데, 그렇게 가상의 적과 싸우는 순간, 반대만 하면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외치는 순간 투쟁을 하고 전부를 다한 것 같은 양심의 안위를 느끼는 순간, 현실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 말년 평생 사회주의자로 살아간 코헨의 팜플렛에 공감을 표한다.  지금여기에는 '기획'과 '고안'이 멸종되었다고, 실험할 시도할 마음조차 없다고 말이다. 진보의 외투를 걸쳐입고 저 먹구름을 해치우기위해 동키호테처럼 무찔렀다고 제발 나를 봐달라고 하는 것 밖에 하지 않는다. 선악의 문제로 가져가 이것 아니면 저것이다하는 흑백으로 세상을 살피려해서 그 중간과 주위에 걸쳐 있는 문제들을 외면할 수밖에 없다는데 더 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난 사회주의적 이상이 직면한 주된 문제는 그것을 작동시키는 장치를 어떻게 고안할지 모르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주된 문제는 인간이 이기적인 존재라는 사실이 아니라 우리에게 적절한 조직 기술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관건은 '기획'과 '고안'이다. 54

사실, 거의 모든 사람에게 이기적인 성향과 관대한 성향이 있다. 문제는 이기심을 비정상적으로 작동시켜 경제를 운영하는 법은 알지만, 관대함을 발전시키고 이용하여 운영하는 법은 모른다는 데 있다. 54-1


 

 조셉 캐런스(Joseph Carens) [평등, 도덕적 동기 부여, 그리고 시장]은 '유토피아적 정치-경제적 이론에 관한 논고'라는 부제 - 사회에 공헌하기를 원하여 수익을 추구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시장 기제가 평등과 공동체를 위해 사회적 기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용되고 있는 셈이다. 58-1


 

 평등과 호혜의 가치는 시장사회주의가 작동할 때 반드시 필요한 제약들을 정당화한다. 이런 원리는 복지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즉, 국가가 모든 시민에게 시장 상황과 관계없이 살아갈 수 있는 실질적 기본 소득을 제공해야 한다는 구상에도 부합한다. John Roemer [사회주의를 위한 미래} 61-1


시장의 본질적 특징은 (1) 저급한 동기들을 계속 유발해서 (2) 바람직한 결과를 만들어내지만 (3) 심각하게 불공정한 불평등과 같은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균형 잡힌 관점에서 보면, 이 세 가지 측면 모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66-1


나는 사회주의가 "인간의 발전 단계에서 포식의 단계를 극복하고 진보하려는 인간의 시도"라고 말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모든 시장은, 사회주의 시장조차도 포식의 체계다. 그것을 극복하려고 했던 우리의 시도는 실패했다. 그러나 나는 결국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옳은 생각을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69-1

 

시장 사회주의를 비롯해 시장에 대한 균형감각과 전망과 그림을 다시 그려보려는 시도가 현실에서 그래도 한걸음 디딜 확율은 높아지는 것이다. 포식의 단계를 지나 그 숱한 새로운 길의 조짐은 여기저기 있는 것이다. 조짐에 손과 발을 달아주는 일들, 때로는 가상의 공간에서 걸어보고 검토하고 시험해보는 일, 과거의 옳고그름을 내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과연 면역을 갖고 지금보다 낫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인지 살펴보는 것이다.

 

2. 학자들 마다 용어의 쓰임새와 개념어가 달라 안타깝다. 수고를 덜어낼 수 있는 방법도 없고, 그 개념어에서 출발한 학문의 확장은 개념어를 따라가지 않으면 빗나가기 일쑤다. 말을 만들어내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될 수 있으면 기본적이고 흔히 쓰이는 말에서 시작하면 어떨까 싶다. 해제이긴 하지만 부르조아의 평등, 자유주의자의 평등, 사회주의자의 평등으로 나눠 설명하니 오히려 그 차이가 도드라져 보인다. 캠핑으로 출발한 사유로 인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에둘러 돌아가지 않아서 좋다.

 

롤스의 사회적 정의론은 사회의 기본 구조에만 적용될 뿐, 개인의 선택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코헨은 사회정의는 강제적인 법적 구조만이 아니라 사회 윤리와 개인의 선택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개인의 선택을 판단할 때에는 그의 능력에 대한 정보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다시 말해 사회 정의는 법으로 강제하지 않아도 평등을 추구하는 사회 윤리를 요청한다는 것이다. 88

누구나 돈이 없으면 그만큼 간섭받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자유주의자들이 가난이 능력의 부족일 뿐, 자유의 부족은 아니라고 강변하면서 정부의 주된 책무는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기에 가난의 구제는 그 주된 책무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고, 코헨은 비판한다. - 가난은 분명히 자유의 부족을 수반하고 그것을 제한하는 중요한 환경이다.  91

 

일이 먼저냐, 휴식이 먼저냐는 선호의 차이는 원리상으로는 사과가 더 좋으냐, 오렌지가 더 좋으냐는 차이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각자가 자기 선호의 결과에 만족하고, 그것을 통해 남들과 대등하게 삶을 즐길 수 있다면 이런 선호의 차이를 반영하는 혜택과 부담의 차이를 나쁜 것이라고 반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99

 

효율성이란 단지 여러 가치 중 하나이다. 그는 효율성이라는 가치가 조금만 훼손돼도 그런 현상을 막기 위해 평등과 공동체의 가치를 희생시켜도 된다는 주장은 균형을 잃은 것이라고 비판한다. 원하는 재화와 용역을 효율적으로 공급받고 싶으면 삶의 질을, 그리고 동료 시민과 맺고 있는 관계의 질을 따지지 말라는 것이 효율성을 내세우는 사람들의 주장이 아닌가? 그러나 재화와 용역을 원활하게 더 많이 공급받겠다고 동료와의 관계를 희생할 수는 없지 않은가 113

 

3.

[맑스주의의 향연]을 다시 읽다보니 [공산당선언]을 음미한 저자의 시선이 내내 겹친다. 저자는 맑스가 말한 자본이 탐욕과 공포감을 동시에 조장한다는 사실, 달리 말하면 이윤을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탐하고 자신도 잡아먹어 사라지는 허무를 동시에 말한다. 어쩌면 하나라도 남겨라는 명령의 그림자에는 모든 것을 없애라라는 허무주의가 동시에 걸어간다라고 말한다. 그런 세상을 2-3백년이나 봐주면 살고 있다.

 

4. 책을 보고는 실망할 수 있겠다. 하지만 답을 원하지 않고 질문을 원한다면..네 몫이 있을 듯 싶다.


댓글(0) 먼댓글(1)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알림] 맑스재장전 상영과 저자와 대화
    from 木筆 2013-12-04 17:16 
    뱀발. 행사를 겸해서 책들을 다시 챙겨봅니다. 대담자들에게 빨간약과 파란약이란 질문을 건네지만, 어느 누구도 예,아니오를 답하지 않습니다. 질문이 현실을 제대로 담지 못하는 것이죠. 대담자의 답변이 중요한 것은 아닐겁니다. 리뷰와 다시보기로 혹 스스로 갖고 있는 교조적인 틀에 박힌 생각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러면 우리는 조금 나눌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혼자든 모임이든 갖고 있는 선입견이나 관념에 집착하지 않게된다면 조금 더 나은 관계가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