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은 이성과 충동으로 구분한다. 이성은 충동보다 행동을 하게 하는데 약하다고 한다. 충동은 목적을 채우고자 하는 욕구와 맹목적 충동으로 나눈다. 충동 가운데 행동을 유도하는 것은 욕구보다 맹목적 충동이라고 한다. 행위를 이끄는 충동은 파괴적인 충동과 생명력을 갖게 하는 것으로 나뉠 수 있다. 파괴적인 충동이 전쟁과 같은 행위로 이어진다면 생명력을 갖게하는 충동은 과학,예술,문학으로 낳는 본능이라고 한다.

일상의 수많은 행동을 낳는 것은 이성의 힘보다 오히려 충동의 힘이 대부분이며 중요한 것은 그 충동을 긍정적인 합으로 이끌어내는 것이 관건이다. 제도도 그러하다. 인류는 아직까지 충동의 힘을 이끌어내는데 미숙하다. 경제조직의 본질이 이윤을 추구하는 의도를 갖기에 성원의 창조적 충동을 본질적으로 살릴 수 없는 공동체이다. 

 

뱀발. 1916년 전쟁의 와중에 강연한 내용들을 모은 글이다. 행복사회 재건의 원칙이 원제라고 한다. 첫장이 이 강연과 글을 쓰게 한 동기인데, 어쩌면 행동경제학의 원류인 듯도 싶지만, 이성과 의도보다 충동이 본능적이고 행위나 행동을 따르게 한다는 점에서 놀랍기도 하다. 그의 논리가 쉽고도 명쾌한 듯 싶은데, 모임이나 공동체가 합이 되기위한 방편도 사람에 대한 인식론과 존재론이 바뀐다면 이 이후의 서술도 바뀌어야 될 듯싶다. 충동적인 존재다. 바뀌고 변화한다라고 하면 의도나 조직의 목적과는 달리 운영이 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민주주의가 주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이렇게 관점을 달리하면 또 다른 틈이 보이기 시작할 것 같다. 

이렇게 틈들을 좀더 가슴으로 가져가 숙성을 시켜보면 어떨까? 모임이나 조직의 성과, 공동체는 어떤 방향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 

빌린 그림도서 몇권을 들척이다 꼭 봐야지 하며 든 것이 한시가 넘었다. 덕분에 지각인데 아무래도 책때문이 아니라 달님으로 인한 듯 싶다. 

충동이 해소가 되지 않을 경우, 더 파괴적인 결과로 이어지며, 몸의 격한 자극으로 해소될 수밖에 없다. 긍정적 충동이 해소되지 못한 그늘은 또 다른 모습을 갖게 된다. 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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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달이 구름에 가려있고, 주말이라 거리에 가로등도 숨죽여 있다. 연구단지 RRR코스를 한바퀴 순회하려했지만, 불빛이 없어 공원 우레탄로를 천천히 음미하며 걷다 달리다를 되풀이 한다. 땀이 살며시 스며들 무렵 연단 주로의 나뭇잎들이 궁금해져 마저 다녀오다.  그리고 벌써 붉은 장미가 담장 어깨쯤에서 갸우뚱하고 있다. 빗줄기가 그친 다음날 산산한 바람결이 좋다. 6.5k 60' 

2. 클래식강좌를 참관한다. 강좌도 막바지 몇강의 건너뛴지라 생소하기도 하다. 샘이 밀린 강의를 다시 상기시켜줘서 흐름을 잡을 수 있어 다행이다 싶다. 이곡 저곡 감상하는 것이 더 좋다. 연주자나 지휘자의 모습은 늘 느낌이 응축되어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같은 표정도 옆모습도, 뒷모습도 닮아있다. 가슴으로 배우고 가슴으로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느낌으로 소통할 수 있다면 말이다. 기차 차창가로 이어지는 풍경의 변주, 기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하이든의 현악4중주를 들으며 제1바이올린, 제2바이올린, 첼로, 비올라의 듣는 법도 함께 했다. 모임의 지난 기억들, 분명 제 각기 화자는 다른 연주를 했고, 느낌의 공유일지, 머리의 공유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마음을 열어둔다면 지난 모임이나 삶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하고픈 신호를 보낸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다. 그것을 그저 통과하는 소음이라 여기는 것이 안타깝다. 연주하고 싶은 선율의 하나로 듣는 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훨씬 나은 모임을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 하고싶은 것만 보려하는 의도를 조금이라도 내려놓는다면 말이다. 

3. 일터일 한꼭지를 마치고 돌아온다. 잘못 끼워진 첫단추를 다시 끼울 수 있겠지.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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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복지국가가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숙련도가 높다. 보편적 복지를 통해 선순환구조를 이루므로 저소득, 하위계층의 안전망을 확보할 뿐 아니라 시장안에서도 숙련도를 높이므로 경쟁력이 있다.

2. 선별적인 복지를 하는 입장에서는 국가가 끊임없이 대상자를 의심하고 관리하고 솎아내려는 정책을 취하므로 한편에서는 복지병, 한편에서는 이기적인 존재로 시스템이 고착화된다. 미국에서 그나마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엘리트층에게 선별적인 혜택이 돌아가도록 기능하는 것이 그나마 생산력 발전을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3. 끊임없이 연구하는 사람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즐겁다. 아직까지 실험을 하고 이과의 데이터를 모으고 하는 것이 연구라는 습관이 가시지 않은 것 같다. 인문의 연구자의 고민들을 그다지 지켜보지 않은터라 연구포인트와 근거제시를 어느 정도로 만족하는지 알기 쉽지 않았다. 교육복지란 분야에서 궁금해 하는 모습과 자료를 모으고 순환구조를 설명해내는 모습, 몇차례의 뒤풀이가 지나고 나서야 아 이렇게 연구와 결과물이 나오는 모습이 견줘진다. 지탱해주는 근거가 인문의 영역에서는 모호하기에 무의식중에 신뢰하지 않는 버릇이 있던 것일까? 책을 보더라도 그저 한 의견으로만 여겨, 늘 내것이 되지 않았다. 다시 한번 딴지를 걸어봐야겠다.

4. 1차 저자가 되거나 생각이나 고민을 섞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다. 공간을 더 열리게 만들고, 서로 자신감을 갖고 노출을 시켰으면 좋겠다. 아직은 꿈속에서 어투를 고치고 단어를 공글리고 하지만, 서로의 인문의 토양이 겹친다고 느끼면 서툴더라도 고민의 갈래가 드러났으면 좋겠다. 우석훈씨의 일차 저자들이 많았으면 하는 바램처럼, 책을 내거나 쓰는 이에 대한 선입견도 동시에 접어야 될 것 같다.

5. 인문의 유행이 지나치다 싶은데, 지난번 경제위기로 폴라니가 휩쓸리더니, 여지없이 국면은 전환은 복지로 쏠린다. 저류의 흐름이 있는 것 같지만 표면에 출몰하는 푯말이 뒤바뀜이 너무 심하다. 한번은 인문으로, 한번은 소통으로, 또 한번은, 또 한번은....그러다가 그것들이 겹혀 저류에 깊히 뿌리를 내렸으면 좋으련만 생각있는 이들의 마음도 뒤틀리는 사회의 바뀜만큼 진폭이 심하다.

6. 중간층이 쓰는 용어들, 그리고 생각할 겨를이 없는 이들, 하지만 인구밀도가 지나치게 높은 작금의 도시인들. 그래서 만들어지는 말도, 에드벌룬을 띄우는 홍보말도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 같다. 복지에 병이란 색깔을 씌우는 이들의 허구가 드러나도록 복지근력이나 복지비타민,  뭔가 바램과 시야가 함유된 단어가 스며들지 않으면 쉽지 않을 듯 싶다. 중간층이 복지로 인해 가장 많은 혜택을 받음에도 이 사회는 수십억을 가져도 수백억을 가져도 저기 삼성의 이회장도 당장 내일을 걱정하고 안심할 수 없는 사회다.

7. 정치철학의 12스펙트럼으로 정치인들을 분류해보자. 김규항은 시장주의자이자 대중의 자발적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엘리트주의자다. 그리고 천정배는 곁에 사람이 없는 자유주의자다. 유시민은 어떨까? 김기식은? 이갑용은? 지금보다 나은 合을 이야기해서는 자신의 주장이 선명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의도의 그물과 바라보는 곳을 명확히 알 수 있다. 그저 글 하나 칼럼하나에 흔들리는 우리의 시선은 문제가 있다. 훨씬 투명하게 볼 수 있고,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의도하는 것이 무엇인지까지가 논의되어야 하지 않을까? 쇠고기를 와인을 맥주를 그렇게 골라드는 습관은 정작 영향력이 있는 이들의 생각 속을 집어보는데서 좀더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른다. 진중권은? 노회찬은? 현대자유주의자, 현대보수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 맑시스트, 급진좌파, 전통보수주의자? 존재론은? 사회에 대한 시각은??

8. 아나키스트의 생각의 빌어 은근히 밀어붙이자면 여기저기 변방에 마음이 많이 걸린다. 생각이나 마음 자리를 견줘둘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까지 생각할까? 몸이 있는 자리와 머리가 있는 자리, 가슴이 가고싶어하는 자리가 다 다르겠지만, 아마 생각의 가장자리끝에 내 생각들이 머무는 듯하다.

뱀발. 강좌가 2/3정도 진행되고 가벼운 회식자리가 마련되다. 서로 역할들을 나누고 적극적으로 의견개진이 되면 좋을 듯하다. [성매매]란 주제로 스펙트럼을 논의해보자는 제안이 있었다. 서로 맘에 두고 있는 지식인들을 견줘보는 재미도 쏠쏠하지 않을까? 또 다시 정치의 계절로 접어들었고, 지난 기억을 잊은 듯  소나기에 계곡물 불어나듯 휩쓸리지 않을까? 또 다시 지역에 남거나 건지는 것 없이 .. . ... 우려도 스멀스멀 올라온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사이에 민주주의의 길이 있는가? 있을까? 다시 함께 사유해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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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나무와 달 



단풍나무와 달 



은행나무와 달
 

일터 일이 불쑥 시간 속에 접힌다. 마치고 돌아온 길 마실을 멈출 수 없다. 오가는 길 달님에게 이 마음 저 마음 포스트 잇 해본다. 아카시아 꽃을 몇잎 따먹다가 나니 달도 별도 모두 아카시아 향이 난다.  4k 60' 


아카시아와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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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1-05-19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는 하염없이 보름달을 보고 서 있었는데, 이리 다시 보니 반갑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여울 2011-05-19 17:42   좋아요 0 | URL
구름이 꿈벅꿈벅 하더군요. 며칠 내내 은은한 달님과 함께 할 수 있으니 반갑기도 하고....슬프기도 하더군요.

좋은 나날 되시구요.

2011-05-20 1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발췌독 또는 재독

[철학자의 서재]를 읽다. [사랑과 노동]/[사랑의 철학]/부정의 공동체-연인의 공동체에 대한 줄거리를 읽다.

[사랑의 철학]에서는 관계의 재발견을 이야기한다. 소외되는 것은 굳이 마르크스의 책을 빌리지 않더라도 느끼고 있다. 자본주의, 상품의 물신성이 일거수일투족까지 침범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다들 아닐세! 한다. 하지만 사랑이란 것이 제3의 지점을 함께 보거나 서로를 빌어쓸 수 있는 관계라는 점은 소비와 다르다. 지속성이 자라는 것이다. 자라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고 묻혀진 관계이다. 

[밝힐 수 없는 공동체]는 지난 강독이 있었는데 정작 얘기하고자 하는 부분의 기억이 중동나있다. 연인은 공동체의 목적이나 의도를 생각지 않는다. 의도나 목적을 염두에 두는 순간 공동체는 일그러진다. 부정의 공동체, 연인의 공동체다.
 

뱀발. 사랑과 노동, 사랑, 공동체란 한 단어만이 갖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실뿌리처럼 붙어있거나 자라는, 보지못하는 개념들이나 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발라낸 그 개념들이 생명력을 조금씩 갖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념처럼 그것을 섬기는 순간 생명력은 짧아지기 마련이다. 현실을 구원해내는 손길은 그렇게 생각이 다른 줄기로 뻗어가길 바라는 것은 아닐까?
 


2. 완독

[행복한 사회 재건의 원칙], 충동과 욕구, 그리고 이성과 의지에 대해 이야기하다. 충동을 과학과 예술 등 창조적 충동과  국가, 경제 등 사적소유에 기반한 충동으로 나눈다. - 합合에 대한 이야기와 모임에 있어 고려할 점만 두가지를 이야기한다. 의지를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 충동을 보증하는 것이다. 개인을 살리며 모임을 살리는 가장 기본적인 방편이다. 그 두가지 원칙만 지킨다면... ... 두가지는 무엇일까? 1917년에 강연한 내용이다. 복지를 생각해본다면 기본적으로 이 논리의 우리의 사고가 맴도는 원인에 대해 꼼꼼히 돌아볼 수 있게 한다. 쉽고도 깊게... ...


 베블런, 케인즈 편을 읽다. 인물에 대한 평과 사건-책들을 연결시키고 있는데 방법에 대해 의구심이 들지만 주제에 대해서 개인적인 인간성과 연관되어 제시한 바가 곁들여져 인상깊다. 개인에 대한 편견은 다른 책들로 되짚어보면 될 것 같고, 경제학의 줄기에 대해 비교적 일목요연해서 가슴에 농축되는 것 같다. 슘페터 외 몇꼭지 남지 않아 아쉽기도 하다.

 


3. 속독

 

 

 

 

 마인드 바이러스는 이기적 유전자의 밈을 이야기하는데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팔기위한 도구가 된 듯하고 읽기에 그다지 호감이 가지 않는다. [떳다 지식탐험대 지구가 요동친다]는 과학 선행학습을 전제로 탐정대의 인물로 만들었지만 전과인지 책인지 잘 모르겠다. [왈칵왈칵]은 생각보다 읽기에도 깊이도 순탄성도 이어져 괜찮다.

 

4. 모임독

사람을 대면하는 일, 원근법과 관조하는 습관은 버리거나 무뎌져야 한다. 지난 금요일 유*구*장과 저녁을 하고 **참* 친구들과 맥주와 이야기를 깊이 들이키다 기억이 중동나버렸다. 묵직하게 남아 있는 것은 사람들이 사람을 볼 줄 모른다이다. 3차원의 한점으로 생각하고 평가하고, 이리저리 팽개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다. 사람과 대면한다는 일은 조심스럽다. 2차원의 대면관계만 생각해도 이것저것 드는 느낌이 많은텐데, 뒷면까지, 그것도 저 위에서 올려다보는 습관은 정말 뭥미?? 며칠뒤 전자우편으로 날라온 글에는 *이 잘몰라서 그러는 것 같은데이다. 마음같아서는 정말 정신차리라고 어떻게든 하고 싶지만, 정말 하고픈 나의 반복된 이야기도 삼키지 못하고 소화시키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후회가 가득하다.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야되고 챙겨야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뱀발 2. 인문의 사유의 장점은 충분히 미래를 빨리 가볼 수 있다는 점이다. 정확할지는 모르겠지만 과학보다는 충분히 빠르다. 의도와 이념 아니라 충동과 욕구가 더 많은 것은 말해주며 현실을 지탱해준다. 똑똑한 이들은 의도와 이념만 믿고 합合이 무엇인지? 시간의 길이에 당당함이 무엇인지 판단할 줄을 모른다. 지금에만 사로잡혀 모든 이들이 떠나고 나서도 모른다. 안타까움만 되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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