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복지국가가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숙련도가 높다. 보편적 복지를 통해 선순환구조를 이루므로 저소득, 하위계층의 안전망을 확보할 뿐 아니라 시장안에서도 숙련도를 높이므로 경쟁력이 있다.
2. 선별적인 복지를 하는 입장에서는 국가가 끊임없이 대상자를 의심하고 관리하고 솎아내려는 정책을 취하므로 한편에서는 복지병, 한편에서는 이기적인 존재로 시스템이 고착화된다. 미국에서 그나마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엘리트층에게 선별적인 혜택이 돌아가도록 기능하는 것이 그나마 생산력 발전을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3. 끊임없이 연구하는 사람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즐겁다. 아직까지 실험을 하고 이과의 데이터를 모으고 하는 것이 연구라는 습관이 가시지 않은 것 같다. 인문의 연구자의 고민들을 그다지 지켜보지 않은터라 연구포인트와 근거제시를 어느 정도로 만족하는지 알기 쉽지 않았다. 교육복지란 분야에서 궁금해 하는 모습과 자료를 모으고 순환구조를 설명해내는 모습, 몇차례의 뒤풀이가 지나고 나서야 아 이렇게 연구와 결과물이 나오는 모습이 견줘진다. 지탱해주는 근거가 인문의 영역에서는 모호하기에 무의식중에 신뢰하지 않는 버릇이 있던 것일까? 책을 보더라도 그저 한 의견으로만 여겨, 늘 내것이 되지 않았다. 다시 한번 딴지를 걸어봐야겠다.
4. 1차 저자가 되거나 생각이나 고민을 섞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다. 공간을 더 열리게 만들고, 서로 자신감을 갖고 노출을 시켰으면 좋겠다. 아직은 꿈속에서 어투를 고치고 단어를 공글리고 하지만, 서로의 인문의 토양이 겹친다고 느끼면 서툴더라도 고민의 갈래가 드러났으면 좋겠다. 우석훈씨의 일차 저자들이 많았으면 하는 바램처럼, 책을 내거나 쓰는 이에 대한 선입견도 동시에 접어야 될 것 같다.
5. 인문의 유행이 지나치다 싶은데, 지난번 경제위기로 폴라니가 휩쓸리더니, 여지없이 국면은 전환은 복지로 쏠린다. 저류의 흐름이 있는 것 같지만 표면에 출몰하는 푯말이 뒤바뀜이 너무 심하다. 한번은 인문으로, 한번은 소통으로, 또 한번은, 또 한번은....그러다가 그것들이 겹혀 저류에 깊히 뿌리를 내렸으면 좋으련만 생각있는 이들의 마음도 뒤틀리는 사회의 바뀜만큼 진폭이 심하다.
6. 중간층이 쓰는 용어들, 그리고 생각할 겨를이 없는 이들, 하지만 인구밀도가 지나치게 높은 작금의 도시인들. 그래서 만들어지는 말도, 에드벌룬을 띄우는 홍보말도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 같다. 복지에 병이란 색깔을 씌우는 이들의 허구가 드러나도록 복지근력이나 복지비타민, 뭔가 바램과 시야가 함유된 단어가 스며들지 않으면 쉽지 않을 듯 싶다. 중간층이 복지로 인해 가장 많은 혜택을 받음에도 이 사회는 수십억을 가져도 수백억을 가져도 저기 삼성의 이회장도 당장 내일을 걱정하고 안심할 수 없는 사회다.
7. 정치철학의 12스펙트럼으로 정치인들을 분류해보자. 김규항은 시장주의자이자 대중의 자발적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엘리트주의자다. 그리고 천정배는 곁에 사람이 없는 자유주의자다. 유시민은 어떨까? 김기식은? 이갑용은? 지금보다 나은 合을 이야기해서는 자신의 주장이 선명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의도의 그물과 바라보는 곳을 명확히 알 수 있다. 그저 글 하나 칼럼하나에 흔들리는 우리의 시선은 문제가 있다. 훨씬 투명하게 볼 수 있고,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의도하는 것이 무엇인지까지가 논의되어야 하지 않을까? 쇠고기를 와인을 맥주를 그렇게 골라드는 습관은 정작 영향력이 있는 이들의 생각 속을 집어보는데서 좀더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른다. 진중권은? 노회찬은? 현대자유주의자, 현대보수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 맑시스트, 급진좌파, 전통보수주의자? 존재론은? 사회에 대한 시각은??
8. 아나키스트의 생각의 빌어 은근히 밀어붙이자면 여기저기 변방에 마음이 많이 걸린다. 생각이나 마음 자리를 견줘둘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까지 생각할까? 몸이 있는 자리와 머리가 있는 자리, 가슴이 가고싶어하는 자리가 다 다르겠지만, 아마 생각의 가장자리끝에 내 생각들이 머무는 듯하다.
뱀발. 강좌가 2/3정도 진행되고 가벼운 회식자리가 마련되다. 서로 역할들을 나누고 적극적으로 의견개진이 되면 좋을 듯하다. [성매매]란 주제로 스펙트럼을 논의해보자는 제안이 있었다. 서로 맘에 두고 있는 지식인들을 견줘보는 재미도 쏠쏠하지 않을까? 또 다시 정치의 계절로 접어들었고, 지난 기억을 잊은 듯 소나기에 계곡물 불어나듯 휩쓸리지 않을까? 또 다시 지역에 남거나 건지는 것 없이 .. . ... 우려도 스멀스멀 올라온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사이에 민주주의의 길이 있는가? 있을까? 다시 함께 사유해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