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영혼은 자신이 행하는 바를 행한다


완독. 제목은 저자가 1987년 1월 18일에 쓴 서문의 마지막 대목이다. 


1. 책친구들 - 어제 친구들을 집에 모셨다. 과메기와 육전, 치맥까지 퇴직을 기념해서 모였다. 40대초반과 30대후반인 분들. 모짜르트 연주에 푹빠져있는 모습이 최근 근황이었다. 근황을 물어보기에 막 서예와 연애에 빠졌다고 했다. 그리고 이 책에서도 언급하는 중립자의 철학를 폐기하는 놀라운 레비나스 다시보기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연주에 빠져있는 책친구는 소개해준 도나 해러웨이 저작을 깊게 훑고 있었다. 포스트-휴먼이론의 선두주자인 이 양반은 브루노라투르와 더불어 다원론, 다양성의 존재론적 전회를 맛보게 하는 일대 사건의 배후자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휴먼을 너머가기가 아직 아닌 것 같아, 이 분 저작에 매진하고 있다고 했다.


2.페르난도 페소아 - 조용미시인의 시집. 나의 다른 이름들 마지막 시의 제목이었던 것 같다. 실제 다른 이름으로 살아간 페소아. 그의 저작들에 푹 빠졌던 기억들. 그런 면에서 더 파격이었던 테스트씨란 폴 발레리의 작품을 한 번 보시라. 그 매혹.에 빠져나오기 힘들 것이다. 레비나스가 이 책에서 폴 발레리의 테스티씨를 다시 불러내었다. 이렇게 나란히 두게된다. 과거는 이렇게 미래에 온다 싶다.


3. 몇 구절을 소개할까 싶었는데, 훌륭하게도 이 책의 서문은 제일 뒤에 있다. 도덕이나 윤리가 제일 철학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가 영향받은 저자. 하고픈 요약을 정말 아름답고 숭고하게 적은 듯 싶다. 며칠 뒤면 서문을 쓴 지 34년이 된다. 


어찌 그를 사숙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2021년의 가장 추운 날은 이렇게 기억에 남는 날이 되고 만다. 레비나스!! 사랑에 대한 사랑의 철학자. 마음을 두드려 줘서 감사.


탈은폐된 것의 즉자와 대자 너머에 인간의 벌거벗음이 있다. 세계의-풍경들의, 사물들의, 제도들의-외부보다 더 외재적인 벌거벗음, 세계에 대한 자신의 낯설음을 외치는 벌거벗음. 그 벌거벗음은 스스로를 드러내면서, 감춰진 자신의 비참이 지닌 부끄러움을 절규한다. 그것은 영혼에서의 죽음을 절규한다. 이 인간의 벌거벗음은 나를 호명한다. 그것은 나인 그대로의 나를 부른다...얼굴은 낱말들에 앞서 이미 언어다.....인간에게 주어진 명령 가운데 자리 잡은 인간적 명령의 이념. 들을 수 없는 언어, 전대미문의 언어, 말해지지-않은 언어. 성서! - P467

베르그송은 무엇보다 현상학의 대가들이 중요한 입장들을 내세울 수 있게 해준 철학자다. 그는 지속의 개념을 통해 시간을 천문학에 대한 복종에서 해방시켰으며, 사유를 공간적인 것과 고정된 것의 집착으로부터, 기술적 확장과 이론적 배타주의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해방시켰다. - P464

데카르트가 [제1철학에 관한 성찰]의 <제3성찰>에서 자신의 노에마에 상응하지 않는 하나의 노에시스와, 자신의 사유대상에 상응하지 않는 하나의 사유와 마주쳤다는 유념해야 할 사실이 이 책의 저술에 관통한다.직관의 명증에 머무는 대신 철학자에게 눈부심을 주는 한 관념. 진리에 의해 사유하는 것보다 더 많이 사유하는 사유. 자신이 사유한 무한에 대해 응답하며 또한 경배하는 사유. - P469

후설은 스스로 물었다. ‘지혜-의-사랑‘에서의 사랑, 그리스에서 비롯한 철학인 사랑에 정말 소중한 것이 대상을 에워싸는 지식의 확실성인지, 아니면 이 지식에 대한 반성에서 오는 한층 더 큰 확실성인지를. 또 철학자가 사랑하고 기다리는 이 지혜가 인식의 지혜를 넘어서는 사랑의 지혜인지 아니면 사랑을 대신하는 지혜인지를. 사랑에 대한 사랑으로서의 철학. 다른 인간의 얼굴이 가르치는 지혜! - P470

타자의 벌거벗음과 비참함 속에서의 명령. 이것은 타자에 대한 책임으로의 명령이다.존재자. 존재-론의 너머. 신의 말. 배후-세계들의 피안에 대한 어떤 사변으로부터도 나오지 않는, 지식을 초월하는 어떤 지식으로부터도 나오지 않는 신학. 얼굴의 현상학. 필연적으로 신에게로 거슬러 올라감. - P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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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봐야 너만 더 힘들어져/ 백날 해봐라,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아/ 복지 얘기하는 사람은 다 빨갱이야


TV 시청 하지 않은 지가 오래된다.  손석희 복귀 소문이 들려 일부 시청했다. 첫회에 수사-기소권을 분리해야 한다는 데 대해 이견을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아 아 이런 합의가 가능한가 의아하기도 했다. 어제도 두 번째 좌담을 이어갔나보다. 혹시나 했는데 토론을 진행중이었다. 부동산에 대한 이재명-원희룡 토론 말미 부분을 보았다. 합의한 원칙을 지키는 것도 못하는 현실에 대한 강변이 있었다. 그것이 그렇게 어렵다.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 가능한가 싶지만, 어쩌면 십여년, 오년전을 돌이켜봐도 많은 진전이 있다 싶다. 보수는 위의 전략으로 지배하고 있다. 그 기본적인 전략자체가 민주주의도, 자유도 부정하는 아이러니를 함유하고 있다. 그 절망의 바닥이 의심스럽기도 하지만 늘 유효했다. 지금도 그러하다. 


그렇지만 저자가 진보를 두둔하는 것이 아니다. 진보 역시 한쌍의 또 다른 극으로서 똑 같은 기능을 해왔다는 것이다. 진보-보수의 구도 자체를 문제삼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좌-우가 아니라 상하-하상에 모든 논의의 출발점이 되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정보를 통해 수정할 용의가 없는 집단들이 늘 힘을 더 많이 갖고 행사하고 있다. 


결국 어느 집단도 완전한 패권을 쥘 수 없다. 다원주의의 가능성이 그 부분한 부분들을 채워나갈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걸 뚫고가는 정치인들이 없고, 뚫고 나가는 사회단체나 정당세력이 없다는 것이 비극인 듯 싶다. 헤쳐나갈 일들뿐만 아니라 논쟁해나갈 꺼리들이 그토록 많은 것 같은데 합의에 바탕을 둔 덧셈의 정치를 제도권 내에서 보기 어렵다. 구태 역시 쥔 것을 놓치 않으려는 아둔한 유아의 땡깡같아 보이는 것은 혼자만의 생각일까. 유난히 정치의 이분법 구도는 강하고 한 걸음 더 나갈 수 없게 만든다 싶다. 깨시민들도 흡인하고 만들어갈 수 없는 덫을 놓은 듯 말이다.


 볕뉘. 저자의 책 가운데 사둔 것이 있었고, 중고 매장에서 산,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라는 것도 다른 조직과도 연관된 것이다. 질문의 수준이 질문자의 시야를 그대로 말해주는 것일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그 너머에 가 있지 않는 이상, 정치는 늘 옛날 질문만 가지고 살 것이다. 그러지 못하게 다른 질문들을 갖고 사는 이가 점점 늘어야 조금은 나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을 것 같다는 아쉬움. 다른 저작들도 챙겨봐야지 싶다. 조효제 교수는 이 와중에 기후위기와 인권에 관한 글들을 쓰셨다. 


반동: 계획된 행동은 비참한 결과를 초래한다
진보: 계획된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반동: 새로운 개혁은 옛 개혁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다.
진보: 신-구의 개혁은 서로가 서로를 강화시켜 줄 것이다.

반동: 계획된 행동은 사회 질서의 항구적이고 구조적인 성격을 바꾸려 한다. 따라서 그것은 전혀 효과가 없고 무용하다.
진보: 계획된 행동은 이미 ‘굴러가고 있는‘ 강력한 역사의 힘에 의해 뒷받침된다. 거기에 맞서는 것은 아주 쓸데없는 짓이다. - P226

플로베르는 한때, 만물이 순수 물질 아니면 순수 정신이라고 주장하는 대립적인 두 철학 사조를 공격하기 위해 훌륭한 구절을 만들어 냈다. 그러한 단언들은 ‘두 개의 똑같은 불합리‘라는 게 그의 말이었다. - P227

진보주의자들은 여전히 진지성이라는 수렁에 빠져 있다. 그들 대부분은 오랫동안 의분에는 강하지만 풍자에는 약했다.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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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워지기 전에 산책이기도 하다. 상가 임대매물은 늘어나고, 인테리어 하는 가게도 간간이 보인 지가 오래다. 장갑이 얇기도 하고, 산 지가 오래되어 비닐이 벗겨진다. 햇살에 무척이나 약한데 이는 옷이나 가방도 그런 부위는 표시가 나서 오래가지 못한다. 한참지나서야 크기가 맞는 장갑을 골라 산책을 이을 수 있었다. 폰터치 기능도 있는 것을 골라서 샀는데 나쁘지는 않다 싶다.

 

1. 렙틴 - 식욕을 억제하는 호르몬은 그리스어 렙토스, 날씬함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1994년에 쥐에게 비만 실험을 하는 도중 발견되었다고 한다. 반면 공복감을 나타내는 호르몬은 그렐린으로 2년 뒤에 발견된다. 호르몬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잠자기 전 스마트폰의 과다 사용은 세로토린 호르몬에 영향을 미쳐 수면질에 관여한다.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면 인슐린 분비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어 배고픔을 덜 느끼게 만든다고 한다. 물론 숙면은 체중감량에도 관여한다. 잘자야 많이 빠진다.

 

2. 마음 -  첫 장에 마음을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가라는 논문이 나온다. 뇌와 신체. 양쪽을 편갈라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느쪽에 더 가중치를 두는 것도 아니다. 그래 편하게 마음은 뇌와 신체로 느껴지는 그 사이에 있는 것이라고 한다.

 

 

 

3. 감정 - 감성, 아니 감정이나 느낌, 기분들. 우리는 감정에 이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의미의 구성자이자 설계자라고 한다. 뇌 역시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냄새, 맛, 감촉, 소리 등을 예측하려 한다. 신체의 건강 역시 다기한 느낌의 생성 장소이기도 하다.



레비나스는 '지향성'이라는 개념으로 사람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특성을 표현한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감각을 이용해 주변 변화를 민감하게 느낀다. 그리고 그 경험들은 변화에 새롭게 적응하도록 한다.  감정이나 감성에 대한 다방면의 접근은 미세한 틈의 논쟁의 더 격화시켜야 할 것 같다. 서둘러 맺는 결론이나 주장 역시 많은 것을 볼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몸과 마음, 뫔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나, 감정, 감성의 결을 만들어가는 일, 몸을 소진의 개념이 아니라 활력의 개념으로 챙기는 일 역시 여러 갈래로 자신의 확장시키고 남을 배려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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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짝않구. 종일 집콕. 아 잠깐 음식물쓰레기통을 내다놓았구나. 쓸고 닦고 간단하게 요리해서 공복을 채우며 보내본다. 


1.  - 80년대 이후 저작들은 학교, 병원, 노동 등 제가 낳은 문제점들의 비판이라기 보다는 좀더 근원을 파고든다고 한다. 그 가운데 <<H2O와 망각의 강>>은 물이 영혼을 정화하고 죽은 이를 불러내는 다양한 이력은 사라지고, 상수도와 하수도, 욕실 속의 H2O로 은닉되었는지 살핀다.  냄새와 공간마저도 그렇게 안과 밖 장소성을 갖던 것들과, 아우라를 말해주던 것들이 그 모습들을 잃으면서 평면화되고, 획일화되는지  역사 속에서 짚어낸다.


2. - 책이라기보다는 텍스트. 인쇄혁명은 정작 15-6세기가 아니라 12세기 필사본의 텍스트 탄생과 라틴어의 문자강박에서 벗어나는데서 시작한다고 한다. 그 이전 두루마리 양피지로 갇힌 책은 권력이자 아무나 봐서는 안될 것이다. 책들이 난무하는 시대. 정작 텍스트는 없다. 읽은 나 안에는 우리가 없다. 읽기의 역사가 음독에서 묵독으로 바뀌면서 잃은 것이 많듯이, 말이자, 육화인 성경같은 텍스트의 의미도 변질되고 말아버렸다고 한다. 지혜는 서두른다고 빨리 얻어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두 책. 물과 텍스트에서 그는 칼 폴라니가 얘기하듯 발라내어져 무화되고, 그 과정을 보지 못하는 우리들을 안타까워 하는 듯싶다.  



3. 출산 - 하이데거의 오류는 출산을 하는 부모의 입장이나 늘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우리사이가 먼저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혼자 살아가게 내버려두는 철학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사회화되지 못하는 유아의 사상일 수밖에 없고 약하거나 약하게 될 자는 안중에도 없고 늘 강한 자가 되려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내던져진 것이 아니다. 즉자도 아니고 대자도 아니다. 그 이전에  우리는 세계에 이끌어진 것이다. 삶의 선물로 말이다. 다양다기한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존재자인 것이다.


손에 이끌린 책들은 뭔가 다른 곳을 보여줄 듯하다. 지난 과거의 편린들이, 그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느낌들이 이렇게 같이 어울린다 싶다. 사랑도 삶도 책들도 그러하지 않을까. 늘 달라지는 달라질 수밖에 없는 풍요로움 같은 것 말이다. 이반 일리치가 물과 책으로 이렇게 손을 잡아 끌고가는 것도 그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꼼짝없이 몸의 무게가 는다. 공기만 마신 줄 알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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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가 되자 자란 함박눈의 궤적이 좀 느려져. 곱게 쌓인 눈들을 바짝 달려들어 찍을까 하다가 멈춰. 햇살은 곱고 따듯하고 폭 쌓인 눈들이 포근해지자 눈물이 나. 한해가 이렇게 시작되기도 간만인 듯 싶어. 아직 바닷가는 설기척도 없겠지만 이렇게 맛보는 풍경은 더욱 조심스러워져.  마음에만 갖고 있기로 해. 셔터를 아무 곳에서도 누르지 않았어. 


1. 가족 - 황정은의 디디의 우산에서 우리의 관계는 무엇일까. 법으로도 규정짓지 못하고, 혈연으로도 포획되지 않는 관계. 그러면서 책친척이란 말들이 나왔다. 히로키의 2부는 가족으로 출발한다. 아 그러고보니 재-관-언-법조계의 혼맥도가 겹치는 것은 왠일일까? 그의 사유의 출발은 현실과 그 개선의 주체로서 더 이상, 개인도, 공동체도, 계급도 아닌 현실에 대한 무력감에서 이어진 것일 수도 있다. 그 낯선 것을 잡아내어 눈을 꽁꽁 뭉칠 수 있는 어떤 개념으로 사유하고 싶은 것이다. 유사가족일 수도 있고, 그와 유사한 또 다른 어떤 것으로 말이다. 고진과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에 대한 스케치도 역설적이지만 다른 틀을 제시해주기도 한다. 


2. 섬세 - 무형문화재 상설전시관이 대전역 인근에 있다. 기차 시간에 앞서 짬이 되어 둘러본다. 앉은 굿의 한지 작업, 단청장,초고장(짚고예)목기장, 악기장, 각색편, 단청장, 국화주 장인. 그리고 소제동 마지막 기억을 담은 <<소제, 도시를 기억하다>>가 전시중이다. 그 손길에서 드러나는 것은 늘 섬세함이라고 할까 아니면 야무짐이라고 할까. 허투루 보이지 않은 깐깐함이 물씬 풍겨온다 싶다. 빠져들기 보다는 튕겨져 나올 듯 싶다. 


3. 노선 - 택시를 탈까하다 버스노선을 검색해본다. 어 왠일일까. 채 오십분이 걸리지 않다니, 정말일까 싶어 버스를 타기로 한다. 그래. 중간 도심환승센터에서 갈아 타면 되는구나 싶다. 중간 기다리는 시간에 노선도를 본다. 송도환승센터, 오천환승센터, 간선과 지선으로 분류되어 한 눈에 알아보기 쉽다. 크게 곤란하지 않을 듯 싶기도 한데, 배차간격이 약간 걸린다싶다. 그래도 큰 버스를 혼자 대절하니 미안스럽기도 하다. 내리는 전 기사님께 감사합니다라고 큰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구룡포, 감포까지 버스여행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물론 날이 따뜻해져서 이겠지만, 나쁘진 않다.


명문옥편이 와서 중국어간체자를 살펴본다. 500여자가 더 되었는데, 보는 재미가 있다. 몇 번 더 보면 눈에 익을 듯싶다. 탐색하기 전에 도움이 될 듯도 싶다. 딸이 불쑥 죽음이 뭐냐고 물어본다. 음. 그리 대단한 건 아냐. 잘 모르기도 하고, 살아있다는 것부터 시작해보면 그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기도 하지. 저자가 왜 제목을 저렇게 지었는지 공감이 가기도 한다. 우리는 생각보다 긴 시간을 함께 살아있다. 이삼백년을 품으면서 살고 있고, 그것을 여실이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빙하의 흔적이 고스란히 물과 그 아래 사는 사람들의 살림살이와 직결되는 것임을 말이다. 새롭게 사유하고 대화해서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긴 시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물꼬를 터 보는 일들을 주저하지 말고 말이다. 코로나가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건네주고 있다. 안목들을 겹치면서 살펴보자구 이야기하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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