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짝않구. 종일 집콕. 아 잠깐 음식물쓰레기통을 내다놓았구나. 쓸고 닦고 간단하게 요리해서 공복을 채우며 보내본다. 


1.  - 80년대 이후 저작들은 학교, 병원, 노동 등 제가 낳은 문제점들의 비판이라기 보다는 좀더 근원을 파고든다고 한다. 그 가운데 <<H2O와 망각의 강>>은 물이 영혼을 정화하고 죽은 이를 불러내는 다양한 이력은 사라지고, 상수도와 하수도, 욕실 속의 H2O로 은닉되었는지 살핀다.  냄새와 공간마저도 그렇게 안과 밖 장소성을 갖던 것들과, 아우라를 말해주던 것들이 그 모습들을 잃으면서 평면화되고, 획일화되는지  역사 속에서 짚어낸다.


2. - 책이라기보다는 텍스트. 인쇄혁명은 정작 15-6세기가 아니라 12세기 필사본의 텍스트 탄생과 라틴어의 문자강박에서 벗어나는데서 시작한다고 한다. 그 이전 두루마리 양피지로 갇힌 책은 권력이자 아무나 봐서는 안될 것이다. 책들이 난무하는 시대. 정작 텍스트는 없다. 읽은 나 안에는 우리가 없다. 읽기의 역사가 음독에서 묵독으로 바뀌면서 잃은 것이 많듯이, 말이자, 육화인 성경같은 텍스트의 의미도 변질되고 말아버렸다고 한다. 지혜는 서두른다고 빨리 얻어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두 책. 물과 텍스트에서 그는 칼 폴라니가 얘기하듯 발라내어져 무화되고, 그 과정을 보지 못하는 우리들을 안타까워 하는 듯싶다.  



3. 출산 - 하이데거의 오류는 출산을 하는 부모의 입장이나 늘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우리사이가 먼저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혼자 살아가게 내버려두는 철학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사회화되지 못하는 유아의 사상일 수밖에 없고 약하거나 약하게 될 자는 안중에도 없고 늘 강한 자가 되려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내던져진 것이 아니다. 즉자도 아니고 대자도 아니다. 그 이전에  우리는 세계에 이끌어진 것이다. 삶의 선물로 말이다. 다양다기한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존재자인 것이다.


손에 이끌린 책들은 뭔가 다른 곳을 보여줄 듯하다. 지난 과거의 편린들이, 그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느낌들이 이렇게 같이 어울린다 싶다. 사랑도 삶도 책들도 그러하지 않을까. 늘 달라지는 달라질 수밖에 없는 풍요로움 같은 것 말이다. 이반 일리치가 물과 책으로 이렇게 손을 잡아 끌고가는 것도 그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꼼짝없이 몸의 무게가 는다. 공기만 마신 줄 알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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