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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 희망과 회복력을 되찾기 위한 어느 불안증 환자의 지적 여정
스콧 스토셀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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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매력적인 불안증 환자를 만나다


  이런,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저자를 만나고 싶어졌다. 한번도 보지 못한 이국 남자가, 저널리스트라는 일반적인(다분히 고정관념이기도 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유쾌하게 그려졌다. 그의 글을 읽으며 웃으며 그의 부글거리는 아랫배에 관한 이야기를 더욱 듣고 싶어졌다.

   

나는 의사도 심리학자도 사회학자도 과학사가도 아니다.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이 불안에 대해 글을 쓴다면 나보다 훨씬 학술적 권위가 있는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글은 종합이자 르포르타주다. 역사, 문학, 철학, 종교, 대중문화, 최신 학술 연구에서 불안에 대한 탐구들을 한데 모으고, 이걸 정말로 나의 전문 분야라고 할 수 있는 불안의 직접 경험과 함께 엮으려 한다. (p41)


  그는 불안한 심경을 토로하고 있는데, 고통의 강도가 점증되어 괴로워하는데도 웃픈 얘기로 듣고 있는 나는 예의가 아닌 것 같지만, 열성적인 청강생, 아니 열성적 독자가 되어 그를 응원할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다. 불안에 대한 개인의 경험이야기라고 하기에는 시사적이고 학술적이고 문학적이고 고발적이기도 한 그의 글은 부글거리는 그의 아랫배만큼이나 매력이 부글거리기 때문이다.

  일상이 불안으로 점철된 삶, 약을 먹어도 나아지지 않는 이 신경증 환자에게 내려진 처방은 계속 ‘불안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고지식한 신경증 환자에게 정신과 의사는 간단히 ‘약’을 처방하는 대신 불안에 대한 글을 쓸 것을 권유한다. 극심한 불안 공포증에 시달리는 이 순진한 환자는 그때부터 불안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불안의 경험에 대해 기억하며 불안 속으로 깊이 들어간다. 불안에 대해 사색했던 이들의 글귀들과 불안을 경험한 이들은 누구인지, 불안에 대한 유전학, 불안증에 대한 의학적 명명까지를 깊이 탐구한다. 불안이 언제부터 병이 되었는지, 불안의 역사와 함께 전개되었던 무수한 ‘약’의 행진들에 대해서도 말이다.

  우선, 한글판 제목이 상당히 끌리게 정해졌다. 원제를 변경하는 경우 생뚱맞거나 유행하는 형태의 제목을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번 책의 경우 한글판 제목이 딱 어울린다. 훨씬 친근감과 공감이 느껴지며 그의 문체와 내용과 잘 맞는 제목이다. 또한, 개인의 경험을 엮은 이 책은 상당한 분량임에도, 불안증 ‘환자’의 글임에도 가독성과 설득력이 있다.




불안을 어떻게 할까


  불안은 병인가. 불안이 단지 예민한 신경증의 발현이었던 시대에서 치료약이 발명됨으로써 ‘병’으로 간주되는 시대에 이르기까지. 그래서 불안증 환자가 더욱 증가되어 이 세상엔 불안한 환자들이 넘치는 시대가 되기까지. 여전히 논란은 지속되고 있고 사람들은 불안증을 진단받고 약을 처방받고 치료가 되거나 치료가 된다고 생각한다.

  불안증이 의학적 병명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현대는 불안증 환자들이 넘쳐난다. 약 하나로 금세 불안증상이 완화된다 하더라도 불안의 경험은 일회성으로 끝나거나 완전히 치유되지 않는다. 이름도 알기 힘든 무수한 불안증 약들을 목구멍으로 넘기며 병의 증세가 완화되는 듯한 느낌들을 가지지만, 어쩐지 불안의 경험은 반복된다. 그래서 저자는 불안은 영원한 인간의 조건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불안의 형태는 바뀌었으나 불안의 경험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기에.

  그래서 철학자들이 이야기하듯이 불안은 심리 치료나 약물 치료가 ‘필요’하다 하더라도 불안은 피하거나 약으로 없애야 할 것이 아니라 자아 발견을 위한 길, 자아실현의 길(p292)로 삼아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불안은 어떤 관점에서 보면 제거해야 할 증상이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진정한 실존으로의 부름이며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귀 기울여야 하는 메시지(퍼시, 예수회 주간지《아메리카》, 1957.)”니까 죄책감, 자의식, 슬픔, 수치, 불안 등의 세계와 우리 영혼이 보내는 중요한 신호를 신체적 병증으로 생각하고 약으로 달랜다면 더욱 심한 인간 소외가 일어난다(p295).


  사색이 되게 만드는 불안증상을 없애기 위해 사색적으로 불안에 접근한 저자는 결국 불안이라는 고통을 경험하지만, 그로부터 자기 성찰과 자기 발견의 기회를 삼고자 한다. 그리고 불안이 용기를, 보다 도덕적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물론, 그렇게 용기와 도덕적인 불안을 나타낸 이들에 대한 사례를 덧붙임으로써 단지 의견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가능할 수 있는 일임을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물론 불안증은 고달프다. 그 증상의 강도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약으로 완벽히 치료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또한 병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이것이 어느 시대에나 있어 왔던 것이라면 불안은 더 깊이 끌어안고 있어도 좋다. 적어도 저자처럼 불안을 생각할 수 있다면 말이다.


내 불안은 낫지 않는 상처처럼 가끔은 나의 삶을 막아서고 나에게 수치심을 안겨준다. 그렇지만 동시에 어떤 힘의 원천이자 은총이기도 하다. (p422)

    

  불안에 대해 이러한 글로 마침을 할 수 있다면 저자의 불안을 치유하기 위한 글쓰기는 성공한 것이 아닌가. 부분 부분 이름을 줄줄 꿰고 있는 알약을 삼키며 증상을 완화시키면서도 여전히 지속되는 불안을 안고 있지만, 처음 의사에게 달려갔던 불안증 환자의 모습에서 얼마나 달라진 채로 저자는 불안을 마주보고 있는가. 이러한 치유책을 알려주는 의사가 있다면 당장 달려가 진료를 받고 싶다. 이런 환자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의사를 하고 싶다. 이런 식으로 사색할 수 있다면 나도 당장, 불안증 환자가 되고 싶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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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기 신간평가단 발표
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표준 : 현실을 만드는 레시피 (양장)
로런스 부시 지음, 이종삼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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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vs        

 

 

표준: 현실을 만드는 레시피

 

 표준이란 알고보면 보이지 않는 권력이자 현실을 창조하는 메커니즘이라고?

 표준을 정하는 것은 결국 권력의 산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러한 논의에 분석철학과 윤리학을 접목하고 다양한 사례를 곁들여 얘기한다.

 생각하면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표준, 기본에 매인, 집착하는 삶인 것도 같다. 이러한 메커니즘으로 만든 것이 사실은 권력에 의해 길들여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떻게 권력의 메커니즘에 순응하게 되었는지를 파헤쳐 보는 책이라니, 읽어보고 싶다. 

  

일탈

 

 표준이라는 제목과 대비되는 일탈.

 이 책은 성 인류학의 선구자라 불리는 게일 루빈의 논문 선집이다. 문화인류학자로서 그녀가 선구적으로 개척한 성적 하위문화에 관한 민족지학적 연구들로 채워졌다고 하는데...

 왜 일탈이라고 제목지었을까?

 

 

 

가난은 어떻게 죄가 되는가

 

 지금, 많은 사람들이 빈곤하게 살고 있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도 많은 가난한 이들이 힘겹게 살고 있는데, 어느덧 가난한 이에 대한 멸시가 강화되고 있다. 오래전 빈곤은 개인의 책임으로 했는데, 다시 가난이 죄가 되고 가난한 이는 죄인이 되는 세상이다.

 이 책은  미국 사회가 가난을 죄악시하는 것을 넘어 실제로 처벌하는 데까지 나아갔음을 여러 사례를 통해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저자 타이비는 경제 논리에 잠식된 사법 시스템과 그 지배를 받는 디스토피아 미국 사회를 그리고 부의 양극화가 집어삼킨 미국의 사법 시스템을 해부한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도 바로 적용되는 부분일 것이다. 

 

 

소모되는 남자

 

 남녀차에 대한 새로운 사회진화적 해석을 하는 책이다. 저자 로이 바우마이스터는 남성과 여성은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고, 성공한 문화들은 다른 경쟁문화를 능가하기 위해 이런 남녀차를 더욱 부각시켜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문화는 남성의 역할을 성취하고 생산하며, 다른 이들을 부양하고, 필요하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라고 강요함으로써, 결국 남성을 착취한다. 저자는 남성들이 자신들이 만들어낸 문화로부터 상당한 이점을 얻는다는 점과 동시에, 그로 인해 그들이 얼마나 고통 받는지도 함께 보여준다.

 최근, 여성혐오에 대한 논의가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책은 또다른 시각을 보여주는 책이라 읽어볼 만하다. 영원한 전쟁, 여성과 남성이여!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저자는 불안증과 평생 싸워온 환자이자 저널리스트 스콧 스토셀이다. 에세이로서 거의 모든 분야와 시대의 불안에 관한 지식을 강박적일 만큼 완벽하게 망라하고 있다고 소개되어 있다.

 현대는 여러 형태의 불안속에 살고 있다. 저자가 보는 불안의 요인이 무엇인지에 관해 광범위한 탐구와 구체적인 사례들을 찾아, 불안의 개념과 치료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과연, 우리의 불안의 이유는 무엇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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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없게도 국수 - 인생의 중심이 흔들릴 때 나를 지켜준 이
강종희 지음 / 비아북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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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다보면 나도 모르게 서글퍼지는 날이 있다. 누군가 대놓고 내 등짝을 후려치는 것이 아닌데도  나는 늘 등짝을 후려맞고 있는 기분이다. 하루 하루가 그렇게 이어가지는, 가느다란, 삶. 어이없게도...

  이런 삶을 알아주는 것마냥, 누구나가 다 그렇게 살고 있다는 외치듯이 이런 제목이 눈에 띄었다. '어이없게도'. 그래 삶은 어이없지. 국수가닥들이 모여 삶을 위해 기도하듯 한자리에 모여 있다. 자주 먹던 구포국수같은 표지에 정말 내 삶보다 어이없구나 싶게 웃음이 나왔다. 이건, 국수를 소개하는 책인가.

  그러나 '인생의 중심이 흔들릴 때 나를 지켜준 이'라는 문구에서 이건, 국수종류를 소개한다거나 어느 맛집따위를 소개하는 책이 아니구나 싶었다. 그리고 마주한 모리국수에서 원초적인 삶의 느낌과 마주했다. 아, 점점 작가의 이야기에 빨려 들어간다.

  작가는 자신이 면식범이라 '면'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했지만, 어이없게도 이것은 삶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삶은 국수였다. 작가는 인생의 곳곳에서 무수한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과 함께 인생의 희노애락을 겪었다. 작가는 줄기차게 자기는 국수를 좋아해서 그 날의 국수들을 기억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결국 그녀는 사람을, 그 추억을 기억하고 싶었던 거다. 그녀는 짐짓 그립고 가슴 아린 어느 날을, 그리고 누군가를 떠올리며 자신의 지난 인생들을 다독이고 있지만 드러내놓고 그들이 그립다,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말하지는 못하는 거다. 국수를 빌려 그 이야기를 전한다.

  삶의 어느 고개에서 마주한 그들과 그들과 함께 나눈 국수 속에 작가의 인생이 녹여난다. 그들이 국수가 작가의 인생에서 어떠한 힘이 되었는지 위로가 되었는지 이 어이없는 국수를 통해서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돌아보면 작가가 먹는 국수 한그릇마다 나의 인생도 실려 있다는 생각을 들게끔 한다.  뜨거운 국수이든 차가운 국수이든 인생의 누군가와 만나 후루룩 면발을 삼키며 이야기 속으로 젖어들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긴긴 밤, 끝없이 면발이 생각나게 하는 책이다. 그러니까, 삶은, 국수다.  


p21. 누군가가 그랬다. 생선은 낯설고 잔인하다고. 육지의 생명인 나와 다른 세계, 비밀의 바다에서 온 생명을 먹는 행위는 나라는 존재의 생명을 직시하는 행위다. 낯설고 원초적인 바다의 존재, 생선이 그득한 국수 냄비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했던가.
`버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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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


그만둬도 괜찮아

- 하루에도 열두 번씩 그만둘까 버텨볼까 고민하는 여자에게, 

유재경, 북포스, 2013.


  여름의 긴 휴가를 즐기고 난 다음, 아 가기 싫어!

  직장인이라면 휴가 첫날부터 시작해 마지막까지 내뱉는 말이다. 아, 회사가기 싫어!

  그럴 때 누가 “그래 가지마, 그만둬”라고 말해준다면 감사…잠깐 그렇겠지만 또 이성을 끈을 붙잡고서 왜 그만두면 안되는지를, 그만 둘 수 없는지를 주절주절 늘어놓게 된다. 직장인의 삶에서 벗어나는 것은 내 의지일 것이니까 타인의 ‘그만둬’라는 말은 결정적 한방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만둠으로 인해 단절되는 그 지폐와의 연결이 삶을 지탱하는 것이라….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라는 병이 있는데 이 병은 시베리아

   농부들이 걸리는 병이라는데 날마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곡괭이를 팽개치고 지평선을 향해

   서쪽으로 서쪽으로 걸어간다는데 걸어가다 어느 순간 걸음을

   뚝, 멈춘다는데 걸음을 멈춘 순간 밭고랑에 쓰러져 죽는다는데


   오르다 말고 걸어가다 마는 어떤 일생

     - 천양희, 어떤 인생 중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천양희 시인의 <어떤 인생> 속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병에 걸려 서쪽으로 서쪽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의 잔상이 머릿속에 남는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를 안다는 것. 그 견딜 수 없음을 알아챌 수 있다면.

  헬조선, 열정페이. 이 나라에서 직장인으로 산다는 건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병에 걸린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정해진 휴가일을 사용하는 일이 불법인양 이뤄지는 문화, 휴가보상금으로 만족하는 문화, 휴일없이 연장근무를 강조하는 문화, 휴식이 게으름인 문화… 그런 문화속에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성과를 내기 위해 쉼없이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멈춰지는 삶을 맞게 될 것이다. 특히 이 땅에서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여성들은 가사일 또한 여성에게 온전히 짐지워진 상황에서 더욱 더 자신을 옥죄며 살아가야 한다. 그러다가 저자처럼 소진되어 삶의 의욕을 상실한 채 쓰러지는 날이 있게 되리라.

  완벽한 커리어우먼이 되기 위해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일하던 저자는 그것에 만족을 느꼈고 그러한 삶이 행복인줄 안다. 하지만 정신과로 찾아가 울면서 상담을 받으러 갈 정도의 상태를 경험하고 난 후 삶에 휴식이 필요함을 느낀다. 쉰다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님을, 그 속에 활력과 전진이 있음을 만족이 있음을 행복이 있음을 알게 된다. “삶에서 무엇을 덜어내고 무엇을 더할지, 무엇을 강화하고 무엇을 변화시켜야 할지”를 저자는 깨우쳐 가며 더 행복한 삶으로의 전진을 한다.

  물론 완벽한 커리어 우먼이 되기 위해 살았던 저자의 스타일은 이 휴식이라는 것, 삶에서 멈춰 내고 덜어내는 것을 찾기 위한 방법도 일하는 느낌과도 비슷한 면이 있었다. 쉬지 못하는 이유라거나 쉬어야 할 이유, 그 당연성에 대해서 어느 순간 강박적으로 찾으며 자신이 쉬고 있은 것에 대한 타당성을 찾으려 보여서 안타까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인생의 생활방식이 줄곧 자신이 채찍질해가는 스타일이던 저자가 삶의 변화를 받아들이기 위한 자신만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저자는 자신의 스타일로 자신이 살아온 생활방식, 자신을 이끌어가던 신념을 조정해 갔다. 그 노력이 놀라웠고 응원하게 된다. 우리에게 오랜 세월 체화된 암묵의 방식들을 바꾸는 일은 얼마나 힘든가. 하지만 저자는 그렇게 했다. 그 노력으로 저자는 쓰러지기 전, 아니 쓰러져서 다시 일어났다.

  사실 세상은, 아니 직장은 내가 없으면 안될 듯이 굴어도 없어도 잘 돌아간다. 그것을 알게 될 때 은근한 씁쓸함이 든다는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그렇게 존재감을 획득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없다고 없으면 안된다고 하는 것은 결국 끊임없이 일을 ‘시키기’ 위한 방식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것에 걸려 나 없으면 일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나의 취미와 욕망을 누르며 너없음 일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거짓 회사의 소리에만 귀기울였는지 모른다. 어쩌면 더욱 열심히 일하거나 적절하게 쉬면서 일하거나, 그 모든 것에서 중요한 것은 ‘자아’를 잘 조정하는 일이 아닐런지. 그리고 언제든 “그만둬도 괜찮다”라는 생각을 마음속에 전제하고 있을 때 자유로운 생활을 더 구가하며 직장인의 삶도 잘 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쉼, 그것이 가지는 의미를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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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전환’이 나를 스토커로 만들다



How to Live 갈림길에서 삶을 묻다의 저자

윌리엄 브리지스



■ ‘가장 영향력 있는’???


  세계적인 유력 일간지 중의 하나로 꼽히는 『월스트리트 저널』은 기업과 금융관계 기사 보도를 1차적 목적으로 창간한 신문이다. 미국 뉴욕시에서 발행되는 이 신문은 정확한 보도와 넓은 취재범위, 작은 것에 대해서도 세심한 취재가 신문의 호평과 성공을 이끌고 있다. 이 신문은 자주 ‘가장 영향력 있는’ 시리즈를 선정한다. ‘가장 영향력 있는’ 리더십 전문가,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사상가,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기업인, ‘가장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 철학자 등등……. 그리고, ‘가장 영향력 있는’ 컨설턴트???

  기업과 금융 쪽에 관심이 별로 없기에 이런 주제에 흥미를 갖지도 못하고 너무 자주 월스트리즈 저널발 ‘가장 영향력 있는’ ○○인 리스트를 들어왔기에 여기 10인의 컨설턴트라는 글에도 별로 놀라움을 가지지 않은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나의 관심이었다. 나의 머리가 얼마나 따로 놀았는가를 알려주는 것은, 분명 아내가 사망했다는 글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보고 순간적으로 ‘남자야?’라고 했다는 점이다.

  어느 때는 작가 소개나 책의 소개에 내용이 아닌 이러한 외형적인 수식어와 홍보가 글을 읽는데 방해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읽기도 전에 놀라야 하나? 다른 사람들은 다 놀라워하는데 내 맘에 안들면 그만큼 내가 부족한 건가? 따위의 생각도 들기도 하고 말이다. 반면, 당연 그렇게 대단한 사람의 생각을 읽게 된다는 데 대한 기대도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저러한 수식어로 홍보된 이 책은 내게 기대에 대한 충족과 만족을 줄 것인가, 과도한 홍보만도 못한 감흥을 줄 것인가!?


■ 그의 ‘전환’이 나를 스토커로 만들다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의 ‘전환’의 모든 것을 아내와의 사별로 이야기한다. 그리하여 나는 제법 일찍이도 아내와 사별했나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는 무려 37년간이나 아내와 함께 했고 황혼 무렵의 아내와의 사별은 충분히 충격적이고 쓸쓸하겠거니 했다. 그러다 어느 글에선가 ‘아내와 살고 있다’라는 글을 보고 내 머리가 멈춰버렸다. 이것이 무언가. 분명 아내의 사망으로 쓸쓸함과 인생의 전환을 주구장창 나열하던 상황에 그 무슨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다는 말인가. 그 때부터 쓸데없이 나는 이 사람의 스토커가 되어 기록을 찾게 되었다. 저놈의 ‘영향력 있는’이라는 조사 때부터 탐탁치않은 마음이 폭발한 것이다. 도대체 이 사람의 기록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 거야. 겨우 위키피디아에서 작년에 사망했다는 것만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나이 79세. 잠시 경건한 마음으로 애도하고 다시 뒤적였다. 정말, 아내가 죽고 ‘전환’을 열렬히 주창하더니, 새로운 아내로 ‘전환’한 것인가?

  아내와의 사별이 자신의 인생에서 ‘전환’에 이르게 되는 그 모든 이야기들이 그의 재혼이야기로 옮겨가면서 이 ‘변화와 전환’에 관한 개념과 이야기는 지극히 윌리엄 브리지스의 지극히 개인사적인 결혼과 재혼이야기로 옮겨가게 되었다. 그는 아내와 사별하기 전에도 충분히 ‘전환’에 대한 개념을 강조하고 이야기를 하던 컨설턴트였다. 왜 갑자기 ‘전환’에 대한 그의 논점이, 아니 그에 대한 설명이 개인사적으로 흘러가며 변하게 되었을까. 물론 나는 그의 다른 책을 읽어보지 않았다. 그러나, 대략의 책 검색을 통해 그가 이 분야로 직업전환을 하면서 가졌던 그의 기본적인 생각, 메시지는 같았다.

  나는 이 책이 왜 그가 재혼을 한 당위성(?), 필연성(?)을 지나치게 알리기 위한 글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는지 모르겠다.


■ 윌리엄 브리지스의 인생 전환


직업 전환 : 영문학 교수 → 변환관리 컨설턴트


 마흔이란 나이는 서양의 남성에게도 흔들리는 시기인 걸까. 저자는 사회에서 사회적인 지위를 충분히 얻은 영문학 교수의 직을 포기하고 새로운 삶의 전환을 이룬다. 자신이 살고 있던 거주지까지 바꿔가며 그가 하고자 한 것은 ‘전환관리’에 관한 컨설턴트였다. 그는 학생들에게 영문학을 가르치는 대신 경쟁 시장에 뛰어들어 기업인들에게, 조직에게, 개인에게 삶의 변화와 전환에 대해 조언하는 일을 진행하게 된다. 그리고, 보란 듯이 성공한다. 그가 이러한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긴 그때는 그의 나이 마흔이 넘은 때. 그의 삶의 마흔이 지나면서 그의 생에 찾아온 어떠한 흔들림을 그는 잘 이겨내었다.

  분명 영문학 박사로서, 교수로서도 그는 전문직 종사자로서 전문가였다. 그러나, 어느날 문득 ‘변화와 전환’에 관심을 가지고 새로운 일에 몰두하기까지 곧바로 성공이 보장된 길은 아니었다.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그의 저서가 베스트 셀러가 되고 이를 바탕으로 강연과 컨설팅을 더욱 확장하면서 그는 확고하게 이 ‘전환관리’ 분야에서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인생 전환 : 사별, 그리고 재혼


 이쯤되면 이 작가를 부러워할 사람이 많겠다. 아니 부러워할 남자들이 많겠다. 26세에 19세의 아내를 만나 37년간 결혼생활을 했다.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농담이 들어가 있는 진담으로 남편은 아내가 죽으면 울지만 화장실에서 웃는다고 하지 않는가!

 육십이 넘은 나이에 암으로 사망한 아내에 대한 안타까움과 상실감이 없지 않았다고 하진 않겠다만, 어쨌든 그 나이에 너무나 잘 극복하고 19세 연하에게 적극적으로 대시하여 결혼에 성공한다. 과정이야 어떠하든, 그냥 표면적인 상황을 놓고 보자면 참 성공한 인생 아닌가.

  사실,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는 일이 쉽지 않다고 하는데 오랜 세월 함께한(실질적인 갈등도 물론 있었고, 힘들었다고 토로하고 있긴 하지만) 아내가 있었고 그리고 육십이 넘은 적지 않은 나이에 새로운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 또한 약 20년 정도의 생활을 함께 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성공했다. 물론 그는 그의 아내와의 관계가 그렇게 좋지 않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뉴잉글랜드 출신인 자신과 캘리포니아 출신인 아내는 시작부터 하나가 되기 어려웠다고 한다. 미국의, 미국인의 특성을 잘 모르기에 이 차이가 우리나라의 지역적인 편견이 가득한 경상도와 전라도의 관계쯤 되는가 생각해봤다. 이런 지역적인 차이 이외에도 성격적으로도 맞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뻣뻣하고 합리주의자였고,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며 논쟁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반면에 그의 아내는 외향적이었고 에너지가 넘치고 카리스마가 있는, 그러나 왠지 모를 그늘이 있는 여자였다고 말한다. 정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다른 부류의 사람, 그것이 그가 말한 아내와의 관계였다.

  또한 그의 아내는 결혼 당시 매우 어린 나이였다. 그리고 성격적으로 맞지 않은 저자와 37년을 사는 동안 한번의 외도경험이 있었다. 저자는 아내의 이 외도를 받아들이지 못해 10년여 동안 제대로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하고 그녀가 위급한 상황에 도움을 청할 때 무시했다고 한다. 나아가, 암으로 사망하는 아내가 죽기 2년 전, 이미 아내와의 관계를 정리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는 구구절절 아내를 잃은 슬픈 남자의 심정을 토로한다.


p90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심정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경험이 매우 특별한 일이라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아내가 죽은 이후로 하루하루는 완전히 텅 빈, 그러나 완전히 꽉 차 있는 시간들이었다. 삶은 공허했지만,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많은 시간 동안 나는 처리해야 할 일들 사이에서 몽유병환자처럼 아무 생각 없이 지냈다. 생각이 너무 마비된 나머지 가끔은 주변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나는지 까맣게 잊고 지내기도 했다. 마치 피노키오가 되어 거대한 고래에게 삼켜진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 어둠 속에서 나는 ‘내 인생’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과 단절한 채 지냈다.

 

p96 사별의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이상한 행동을 한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가 이런저런 파멸의 징후들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중요한 것은 이미 깨어진 관계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 애쓰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해 보려는 나의 마음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의식의 저 깊은 곳에서 나는 온전하게 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놓아버린다는 것은 잡고 있던 것을 놓는 행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깨어진 관계를 다시 회회할 수 있느냐 없느냐와는 상관없이 길고 긴 탐험의 과정이다.


p98 그때까지 그녀의 존재가 나를 얼마나 성장시켰고 돌아보게 했으며, 좀 더 믿을 수 있게 만들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내의 죽음으로 인해 알게 된 두 번째 사실은, 아내와 처음 만났을 때는 외롭고 고립된 청년이었던 내가 결혼을 통해 성장했다는 것이다. 아내의 죽음으로 오랫동안 알고 있던 단 하나의 친밀한 관계를 맺는 방법을 잃었다. 아내는 천성적으로 세상에 ‘무심하게’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불평하기도 했다. 많은 부분을 아내와 감정적으로 공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항상 우리 주위에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p99 나에게는 그녀의 죽음이 곧 현실의 시간으로 다가온 것처럼 여겨졌다. 나 자신을 반만 믿게 된 상실감은 사랑하는 사람을 갖게 된 유일한 경험이었다. 따라서 아내의 죽음은 우리의 관계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는 능력까지도 없애는 일이었다. 아내의 사랑뿐 아니라 사랑할 수 있는 능력까지 없애는 일이었다.

      아내가 떠나면서 내가 경험한 외로움과 영원히 나를 사랑해 줄 수 있는 단 한 사람(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이 죽었다고 느꼈을 때 느낀 치명적인 외로움을 구별하는 데에도 마찬가지로 시간이 필요했다. 아내는 나와 인간을 연결하고 나와 내 자신을 연결해 주는 그 자체였기 때문에 아내를 잃은 것은 처음에는 넓고 무서운 세상에 버려진 채 홀로 모든 것을 막아내야 하는 어린 시절의 환상같이 생각되었다... ‘마치 추방당한 기분이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p100 아내가 죽자, 일상적인 현실에서 느끼고 흥분할 수 있는 연결고리와 단단한 기반을 잃은 것 같았다.


  이렇게 생활한 그이기에 그가 재혼하게 된 것은 확실한 ‘전환’ 아니겠는가. 상실감으로 세상과 단절한 이가 아내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1년 반 정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결혼하기까지 놀라운 전환이다. 특히 두 번째 재혼에서의 적극성은 놀랍다. 그가 말한 성격을 가늠하고 죽은 아내와의 관계를 생각해보면과 18살 연하의 수잔에 대한 사랑과 재혼은 그의 적극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물론 그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의식하고 나이차에 대한 고민도 하고 주저하지만 결국 그녀에게 전화를 걸고 데이트를 하며 나아가지 않았는가. 그토록 상실감이 커서인지, 그는 아내가 죽은 지 1년 반만에 수잔과 재혼한다.


p290 아내의 죽음과 나의 재혼에 연관된 전환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성공적인 전환에 대한 그 어떤 가르침도 따르지 않았다.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싶어 하지만, 정답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우리의 삶은 심각한 문제에 직면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와 같은 인간들이 필요 없는 세계가 되기 때문에, 그 책은 존재 이유를 없앤다. 유일한 존재로 사는 방법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역경의 여정을 지나고 그러면서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이다. 세계와 부딪히며 살면서 자신의 방식으로 살지 않는 것은, 자신의 삶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옷걸이에서 내려져 새로운 코트처럼 입혀지길 기대하면서 옷장에 걸려 있는 밝고 신선한 삶은 없다.

  

   그는 자신의 첫 번째 아내를 용서하는 방법을 발견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가 마지막 숨을 거두기까지 이것저것 적어 놓은 글을 그녀가 죽자 태워버렸다. 볼 수가 없었노라 이야기했지만....전환이 필요한 시점에 변화를, 전환을 거부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이 책의 주장과 작가의 개인적 경험이 어색하다고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그냥 아내와의 관계에서의 에세이는 에세이대로 그의 경력에 맞는 '전환'에 대한 주제는 분리시켰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묘하게 아내에 대한 반감이 아직 정리되지 않은 듯한 글을 보며, 요즘은 스토리텔링기법이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지만 왜인지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스토리...경험의 내용은 다르고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변화하는지는 물론 개인적인 것이긴 한데, '전환'에 있어 탁월성을 인정받은 것은 그의 경력일까, 아니면 이 책과도 연관이 있을까. 그의 전환에 대한 활동은 40세즈음에 시작되었음을 보면 아내의 사별 이후 '전환'에 대한 각성이 아니라 '전환'에 아내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한 것은 아닌지....이게 중요한가..아무튼, '전환'이 필요한 .그 시기에 전환을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이자! 이것이 그의 메시지다.


참고자료

∙위키피디아 http://en.wikipedia.org/wiki/William_Bridges_(author)

∙윌리엄브리지스 컨설팅 홈페이지 http://www.wmbridges.com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echorental&logNo=110187473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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