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


그만둬도 괜찮아

- 하루에도 열두 번씩 그만둘까 버텨볼까 고민하는 여자에게, 

유재경, 북포스, 2013.


  여름의 긴 휴가를 즐기고 난 다음, 아 가기 싫어!

  직장인이라면 휴가 첫날부터 시작해 마지막까지 내뱉는 말이다. 아, 회사가기 싫어!

  그럴 때 누가 “그래 가지마, 그만둬”라고 말해준다면 감사…잠깐 그렇겠지만 또 이성을 끈을 붙잡고서 왜 그만두면 안되는지를, 그만 둘 수 없는지를 주절주절 늘어놓게 된다. 직장인의 삶에서 벗어나는 것은 내 의지일 것이니까 타인의 ‘그만둬’라는 말은 결정적 한방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만둠으로 인해 단절되는 그 지폐와의 연결이 삶을 지탱하는 것이라….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라는 병이 있는데 이 병은 시베리아

   농부들이 걸리는 병이라는데 날마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곡괭이를 팽개치고 지평선을 향해

   서쪽으로 서쪽으로 걸어간다는데 걸어가다 어느 순간 걸음을

   뚝, 멈춘다는데 걸음을 멈춘 순간 밭고랑에 쓰러져 죽는다는데


   오르다 말고 걸어가다 마는 어떤 일생

     - 천양희, 어떤 인생 중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천양희 시인의 <어떤 인생> 속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병에 걸려 서쪽으로 서쪽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의 잔상이 머릿속에 남는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를 안다는 것. 그 견딜 수 없음을 알아챌 수 있다면.

  헬조선, 열정페이. 이 나라에서 직장인으로 산다는 건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병에 걸린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정해진 휴가일을 사용하는 일이 불법인양 이뤄지는 문화, 휴가보상금으로 만족하는 문화, 휴일없이 연장근무를 강조하는 문화, 휴식이 게으름인 문화… 그런 문화속에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성과를 내기 위해 쉼없이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멈춰지는 삶을 맞게 될 것이다. 특히 이 땅에서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여성들은 가사일 또한 여성에게 온전히 짐지워진 상황에서 더욱 더 자신을 옥죄며 살아가야 한다. 그러다가 저자처럼 소진되어 삶의 의욕을 상실한 채 쓰러지는 날이 있게 되리라.

  완벽한 커리어우먼이 되기 위해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일하던 저자는 그것에 만족을 느꼈고 그러한 삶이 행복인줄 안다. 하지만 정신과로 찾아가 울면서 상담을 받으러 갈 정도의 상태를 경험하고 난 후 삶에 휴식이 필요함을 느낀다. 쉰다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님을, 그 속에 활력과 전진이 있음을 만족이 있음을 행복이 있음을 알게 된다. “삶에서 무엇을 덜어내고 무엇을 더할지, 무엇을 강화하고 무엇을 변화시켜야 할지”를 저자는 깨우쳐 가며 더 행복한 삶으로의 전진을 한다.

  물론 완벽한 커리어 우먼이 되기 위해 살았던 저자의 스타일은 이 휴식이라는 것, 삶에서 멈춰 내고 덜어내는 것을 찾기 위한 방법도 일하는 느낌과도 비슷한 면이 있었다. 쉬지 못하는 이유라거나 쉬어야 할 이유, 그 당연성에 대해서 어느 순간 강박적으로 찾으며 자신이 쉬고 있은 것에 대한 타당성을 찾으려 보여서 안타까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인생의 생활방식이 줄곧 자신이 채찍질해가는 스타일이던 저자가 삶의 변화를 받아들이기 위한 자신만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저자는 자신의 스타일로 자신이 살아온 생활방식, 자신을 이끌어가던 신념을 조정해 갔다. 그 노력이 놀라웠고 응원하게 된다. 우리에게 오랜 세월 체화된 암묵의 방식들을 바꾸는 일은 얼마나 힘든가. 하지만 저자는 그렇게 했다. 그 노력으로 저자는 쓰러지기 전, 아니 쓰러져서 다시 일어났다.

  사실 세상은, 아니 직장은 내가 없으면 안될 듯이 굴어도 없어도 잘 돌아간다. 그것을 알게 될 때 은근한 씁쓸함이 든다는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그렇게 존재감을 획득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없다고 없으면 안된다고 하는 것은 결국 끊임없이 일을 ‘시키기’ 위한 방식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것에 걸려 나 없으면 일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나의 취미와 욕망을 누르며 너없음 일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거짓 회사의 소리에만 귀기울였는지 모른다. 어쩌면 더욱 열심히 일하거나 적절하게 쉬면서 일하거나, 그 모든 것에서 중요한 것은 ‘자아’를 잘 조정하는 일이 아닐런지. 그리고 언제든 “그만둬도 괜찮다”라는 생각을 마음속에 전제하고 있을 때 자유로운 생활을 더 구가하며 직장인의 삶도 잘 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쉼, 그것이 가지는 의미를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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