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리 만개 마음산책 짧은 소설
김초엽 지음, 박지숙 그림 / 마음산책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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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이력을 명시하듯


해파리 만개

 김초엽, 박지숙 (그림), 마음산책, 2026-04-30.

 

쓸모없는 것은 정말로 쓸모없는 것일까

 

  짧은 소설집이라고 하나 그다지 짧은 소설은 아니다. 여섯 편의 소설이 실려 있는데 단편 분량이 넘는 소설도 있고 각각 제법 길이가 길다. 그런데 짧은 소설이라고 하고 있으니 짧다는 건 무언가 생각하게 된다. 읽고 나면 짧다라고 느껴지긴 한다. 스토리와 등장인물이 단순하기에 얘기의 길이가 짧다”. 그렇기에 캡쳐한 사진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순간적이고 특정한 단어가 둥둥 떠다닌다.

  김초엽 작가하면 광활한 우주를 떠올리는데 해파리 때문인지 전체적으로 바다가 연상되었고, 서두에 쓰여진 쓸모없는 것은 정말로 쓸모없는 것일까라는 문구 때문에 책을 덮는 순간까지도 쓸쓸함이 느껴졌다. 쓸모라니, 이 단어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직간접적으로 받고 있는 압력을 대표하는 말 아닐까 싶다. 끊임없이 쓸모를 묻는 인간은 모든 것을 쓸모로 판단하고’, 모든 존재를 그에 맞춰 생각하기에 무용을 업신여긴다. 그렇다고 쓸모 쓸모하면서 얼마나 쓸모 있게 생을 살아가는지는 모르겠다. 쓸모를 따져가며 외치는 성과따위가 얼마나 이루어졌는지도 생각해 볼 일이다. 뜨악한 결과물을 성과로 포장하기도 하니까.

  모든 생물들이 제 쓰임이 있을진대 그 쓰임의 기준을 인간으로, ‘로 하기에 위기멸망이니 하는 말들도 솟아나는 것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탈탈 털려 도구적 존재로 전락해버리는 수많은 존재들이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이다지도 어려울 일인가.

 

아까부터 너무 과한 해석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지만, 젤리는 무척 우울해 보인다.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하고 기피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 같다. 어떤 기분일까? 꼭 필요한 존재였다가, 자신을 필요한 존재로 만들었던 바로 그 특성 때문에 모두가 자신을 피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_젤리의 우울


  모래를 그러니까 우리가 모래하면 당연 떠올릴 그 모래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는 누가 있을까. 네가 지닌 진짜 힘은 고정하는 힘이 아니라 바라보는 힘이야. 응시하는 힘이지. 너는 세상을 바라봄으로써 이 세계가 느린 숨을 쉬게 해.”

  “서로를 낯선 순간 속에 붙들어세상을 달리는 모래의 존재 때문에 이다지도 살아가기 어려운 세상에서 숨을 쉬는 것일지 모른다. 모래를 찾아 바다로 가는 것이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도. 모래에 대한 이 정의만으로도 이 책을 계속 읽어갈 이유가 된다.

  하지만, 우주선에 불시착함으로써 끊임없이 눈물을 전파하고 있는 젤리들을 마주하게 된다면. 해파리들이 원하지 않을 만큼 계속 증식하고 있다면. 접촉하면 말과 생각과 느낌을 주입하는 끈적이를 마주하게 된다면. 이미 쓸만큼 써서 버린 것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면이 소설은 이러한 존재들을 새로이 인식하는 이야기로 읽힌다. 과하게 표현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지만, 마치 존재에 대해 더 세심히 파악하여 특징을 찾아내 재활용방안을 찾아내는 것 같달까. 전시장에 전시하기 위해 이전의 이력을 명시하고 있는 과정 같달까. 이미 그것은 그들의 존재의 의미를 보였으므로, 충분히 다시보기 또는 재정의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천장 틈새로 보이는 도시의 골목이 해파리의 보랏빛으로 물든다. 해파리들은 기능이 없고, 쓸모가 없고, 그저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존재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할 것이다._해파리 만개에 관한 기록

 

  앞으로도 세상엔 의도하든 의도치 않은 수많은 존재들이 탄생케 될 것이다. 잊히고 버려지는 그 존재가 가 아니게 되리라 장담할 수 없다. 이러한 존재들을 마냥 외면하고 살아갈 수도 없다. 누군가에겐 무섭고 두렵고 아름답지 않을 수도 있다. 힘있는 것들에 의해 쓸모없는 것으로 규정되어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이란 또한 마냥 예측가능한 것만은 아니어서 우리가 마주하게 될 무수한 존재들은 어떤 쓸모로 되돌아올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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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 - 제3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함윤이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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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저없이,


정전 - 3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함윤이, 문학동네, 2026-03-13.

 


  함윤이 작가의 소설은 리얼리티 속에 환상을 흩뿌린 작품이 유독 많다. 아니다, 환상이 주고 리얼리티를 첨가한 건가? 이 소설 또한 작가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어떤 부분을 환상으로 삼느냐가 중요한 포인트인 듯한데, 작가의 단편소설 강가/Ganga에서의 모호하고 환상적인 부분은 좀 버려두고 현실 사건을 갈무리하여 최대한 현실적인 틀 안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것 같다. 해결에 방점을 두자면 환상으로 회피하기보다 환상적으로 해결하고픈 노력이 보인다랄까.

  어렸을 적 내가 갖고 싶었던 것은 순간이동력이었다. 어느 곳이든 가고 싶었던 마음이 남긴 염원이다. 내가 그런 능력을 갖고 있음을 말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참 좋겠다. 아무튼 다른 사람은 가지지 않은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활용할지, 쓰임새를 만들기 위해 애쓸 듯하다. 현실적이든 아니든. 그렇다면 타인이 나의 능력의 쓰임을 찾아 요구할 때, 주저없이 응할 수 있을까.

 

임을 위한 행진곡에서 다시 만난 세계가 불려지는 순간

 정전을 이야기하자면 임을 위한 행진곡이 아니라 다시 만난 세계가 불리는 그 변화의 순간이 떠올려진다. 투쟁의 이유를 파악하고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의 유사성도 인식하지만 방법은 다른 형태. 현재 내가 가진 상황을 고려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흐름. 논의나 논쟁보다는 즉각적인 실행력이 돋보이는 방식. 그리하여 좀더 발랄함이 가미되고 다소 엉성하고 우려되는 부분이 있지만 그럼에도 울컥하게 되는 그런 투쟁 말이다. 정전속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이들이 청년이기에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닌가 싶다. 연령으로 누군가를 규정하고 싶지 않지만 MZ세대가 경험한 투쟁은 민주주의의 가치가 묵살당하던 시대의 투쟁과는 또다른 모습인 것은 분명하다. 최루탄과 쇠파이프 등을 휘두른 공권력에 맞서 돌멩이, 화염병으로 방어하던 시대에서 촛불로 LED등으로, 이제는 응원봉으로 변화한 것처럼 말이다. 투쟁가도 다시 만난 세계를 비롯하여 다양한 노래가 울려펴지는 문화 퍼포먼스의 형태로 변화했다. 일상에서는 타인에게 관심이 없어 보이는데 막상 이슈가 생기면 관심을 두고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그 기저는 각자 다르겠지만.

물류를 멈춰 세상을 멈추자_정전아 일어나라

  물류를 멈춰 세상을 멈추자는 대표적인 투쟁구호다. ‘기계를 멈춰’, ‘물류를 멈춰’,‘공장을 멈춰’, ‘세상을 멈추자라는 구호는 오래도록 이어온 노동의 가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슬로건이다. 21세기에도 여전히 노동자는 필요하지만 노동에 대한 가치는 크게 달라진 것 같진 않다. ‘자본노동의 끝없는 대립에서 오히려 자본의 가치가 더 부상하는 느낌이랄까. AI시대, 노동에 대한 인식과 그로 인한 재정의는 계속 이루어질 것이다. 물론, 아직은 전통적인 노동공장이 존재하고 있으며 노동자를 대하는 방식 또한 급격한 변화가 있다고 할 수 없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뉴스를 통해 접하게 되는 노동자의 사고와 사망 소식은 주로 20대이거나, 이주노동자인 경우가 많다. 물론 정확한 산재사고 현황은 알려주지 않고 나또한 열심히 찾아보지 않았지만. 더구나 그들은 내가 알지 못하는 이들이니까, 뉴스가 알려주는 대로 그렇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내가 아는 누군가가 취재를 통해서랍시고 보도에 나온 기사를 보면, ‘처럼 이게 다가 아닌데라고 생각할 것이다. ”기사 속 A씨의 삶은 서글픈 결말을 향해 필연적으로 달려가는 양 묘사되어 있었다. 문장들을 핥으면 비리고 쓴 맛만이 가득할 것 같았다. "얘는…… 이렇게 어두침침하고 서글프기만 한 사람이 아냐.“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야. 막은 파우더가 들어가지 않게끔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왜냐하면 네 손가락은 내 손가락보다 훨씬 짙은 색깔이잖아. 밀크 파우더 안에서라면 더더욱 눈에 띌 거야.

 

금방 찾을 수 있다던 ‘A’의 손가락을 찾을 수 없다면, 찾는 노력이 없다면 어두침침하고 서글프기만 한것이 아닌 더 넓고 많은 애를 알리기 위해 여전히 기계를 멈춰’, ‘공장이 멈춰가 유효한 세상이 된다. 정전속 화자 은 그렇다.

 

내가 원하는 건 공장 전체가 정전되는 거야. 단 하루만이라도 말이야. 하룻밤만이라도 그 안의 일이 완전히 꼬여버리면 좋겠어.”

 

어긋난 사랑의 작대기

  누군가에게 비밀을 털어놓는 건, 그 사람과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특별한 관계가 되고 싶다는 고백이다. ‘은단의 고백은 에게 불편함을 안긴다. 서로 어긋나는 마음, 교류는 그것으로 단절된다. ‘은단이 아무리 눈 한번 깜빡임으로 눈앞의 전등을 꺼버릴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대도 에게는 와 닿지 않는 능력이며, 감정이다.

  스무 살의 은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휴학하고 등록금을 벌기 위해 제약회사에 들어간다. ‘잠깐 일을 하러 나왔을 뿐인 대학생으로 일하고 있지만 공장생활을 하며 수지영준’, 외국인 노동자 라히루를 만나 친구가 된고 라히루에게는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라히루에게는 애인 서영이 있고, ‘라히루는 기사 속 A가 된다. 공장에서 버려진 라히루를 위해 노조에 가입한 은 노조활동이 어렵고 스스로 노동자의 정체성이 크지 않기에 노조 활동을 그만둔다. ‘라히루에 대한 감정이 큰 은 어떤 형태로든 을 돕기 위한 방법을 찾는다.

  여기서 기획자 이 활용하는 것이 은단의 능력이다. 고등학교 졸업식 이후로 만나지 않았던, ‘은단과 엮이고 싶지 않았던 은 주저없이 은단에게 연락하고 은단이 능력을 발휘하기를 요구한다. ‘은단을 만날 때마다 원인도 모를 신물이 치솟는다은단을 대하는 방식은, 솔직히 상당히 불쾌하고 불편하다. ‘라히루에 대해 애정으로 필요한 은단이기에 신물을 삼키며 참고 은단이 막을 부를 용기를 내기 전에 서둘러 달아나의 이기적인 행태에 혹은 제 사랑을 위해 헌신하는 놀라운 행태에 대해서. 오로지 에 대한 애정으로 오케이를 외치는 은단에게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유없이 외면당하는 인물인 것 같아서도 그렇고 공장에서 행한 일로 죄책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면서 더더욱 그러했다.

  그들의 계획이 성공하든 아니든 이 사람을 대하는 행태는 내게 영원한 물음표와 느낌표를 안길 것이다. 무턱댄 혐오와 자신을 좋아하는 이에 대한 압도적인 우위를 가진 것처럼 행하는 행태, 주저없이 막 사람을 도구로 대하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크나큰 대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한 우정과 애정에서 시작한 의 행동은 은단에게 행하는 방식 때문에 무척 아쉽게 느껴졌다. 아니, 무섭게 느껴졌다. 거듭 생각해보는데, 내가 혐오하는 이에게 내 필요에 의해 도움을 요청하는 일은 내겐 없을 것이다.

  ‘정전은 공장의 정전, 노동소설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거침없는 스무살의 이야기라라고도 볼 수 있겠다. 멈춤의 방식은 함께 구호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처럼 홀로 돌진하는 형태가 되는 걸까. 스무살이 세상에 나와 겪게 되는 일과 사람에 대한 거침없는 감정의 펼침을 마주한다. 그러니, 이건 사람과의 교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누군가와는 교류가 아니라 정전이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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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개장의 용도
함윤이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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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물이 되지 않으려


자개장의 용도

함윤이, 문학과지성사, 2025-11-11.

 


  자개장무늬 책표지를 덮으며 생각했다. 아이들 책처럼 표지가 팝업으로 되어 열리면 좋겠다고. 그 문을 열고 나도.

  강가/Ganga로 가볼까. Ganga가 함께 표기되어 있지 않았다면 강줄기와 육지가 맞닿는 부분으로 인식했을 것이다. 아니, 작가가 친절히 강가에 대해 알려주고 있음에도 그것은 작가가 설정한 세계일 것이라 여기며 Ganga를 사전으로 찾고, 그럼에도 강의 언저리롤 떠올렸다. “강까라는 된소리 발음으로 자꾸 강가/Ganga’를 읽어내는 탓이다.

 

G a n g a.

글자들은 잘 지은 집처럼 견고해 보인다. 입속으로 또 한 번 발음한다. 강가이 단어는 보통 강줄기와 육지가 맞닿는 부분을 의미한다. 강과 땅 모두의 가장자리지만, 어디에도 제대로 속하지 않는다. 강가이는 지체 높은 집안의 딸이 자신보다 낮은 집안에 시집가는 행위를 뜻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대개 왕족의 딸이 신하의 가문으로 시집을 가는 일을 의미한다. 새하얀 천을 얼굴 앞으로 늘어뜨린 여자들이 강둑 위를 걸어가는 모습을 상상한다. 강가한 여자들, 왜 그랬지? 사랑 탓인가? 다들 행복한 삶을 꾸렸을까?

동시에 강가는 신의 이름이다. 당연하다고 해야 할지, 강가는 강의 신이다. 악어와 닮은 마카라를 타고 다니며 속죄와 정화를 담당한다. 여신은 수 해 동안 이어진 왕의 기도탓에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갠지스강으로 변했다. 갠지스 강은 인도 북부를 흐른다. 바라나시는 이름의 도시를 품에 안은 강으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여기 하나의 의미를 더 추가한다. 강가, 그것은 의 이름이다. 낯선 곳에서 가 아니고 싶을 때, 아니 를 규정하고 싶을 때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새 이름을 부여한다. 그리하여 모호한 경게 속의 , 속죄와 정화의 여신으로서의 로 나를 정의한다. 아니, 그러한 이름을 선택한다. 그렇다면 에게 이 이름은 의미를 나열하는 이 행위는 이미 함의가 있는 것이다. 스스로를 강가로 불리고 싶은 마음. 하지만 막상 의 이름을 물어보자 강가라 말하지 못한다.

 

그는 떠나기 직전에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 이름이 뭐죠? 아는 어떤 이름도 대지 못하고 더듬거렸다. 이 도시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자 결심했는데, 막상 누군가 이름을 묻자 무엇도 답할 수가 없구나. 상대방의 이름을 묻는 일 역시 불가능했다. 질문하는 일도, 답하는 일도, 두려울 뿐이다. 나는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름 모를 남자는 상관없다는 듯 말했다. 유 쎄이브 마이 라이프. 당신이 내 목숨을 구했어요. 유 쎄이브 마이 라이프. 당신이 내 목숨을 구한 거예요. 나는 그 말을 여러 번 되풀이하고, 번역한다. 몸의 떨림이 멈추자 눈앞의 모든 색이 선명해진다. 오래 기다린 죄책감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여러 단편이 실려 있는 이 책에서 강가/Ganga’가 기억에 남았던 것은 이런 이유였을 것이다. 몽유병 환자가 겪는 일처럼 대체로 환상적이며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 낯선 여정을 하는 이들이 주로 등장하지만, 가장 멀고 긴 여정의 이야기라는 것. 그러나 파랑새의 결말처럼 행복은 나의 곁에 있었다, 그렇게 떠올려지는 마침표 같은 이야기 같아서.

  ‘강가/Ganga’ 의 행동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공장에서 이주노동자와 함께 일했던 가 산업재해를 당한 여공과의 연대를 거부하는 일은 이해된다. 함께, 연대를 주장하는 쿠쿠의 말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 것도. 하지만 너는 내몰린 게 아니야. 너는 선택한 거야. 우리 대신에, 너 홀로 여기에서 살아가는 일을 택했어. 아냐. 부정하지 마. 화내지도 마. 비난하는 게 아니야. 네 선택을 이해해.”라고 말하는 자자의 말에 이른바 긁혀서’, “남자를 가져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그래, 역시나 남자가 필요하다. 내 모든 선택을 칭찬하며, 절대로 힐난하지 않는 남자로 이어지는 생각과 실제 그 행동을 하는 것 말이다.

  ‘쿠쿠자자의 고향 바라나시에서 남자를 사러 왔다고 말하고 다닌다. ‘의 기준은 너무 높아 그런 남자는 살 수 없다는 말을 듣지만 그럼에도 는 남자를 사야 한다. ‘강가한 여자가 되는 것은, 될 수 있는 것은 을 쥐고 있음이다. ‘자본으로 계급적 우위를 누릴 수 있는 가 남자를 사려는 이 전개는 강가降嫁라는 의미가 있음에 그 내용이 필연적으로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럼, 이제 는 물에 빠지려나?

  ‘가 물에 빠져야 할 이유는 너무도 명백하다. ‘의 모든 선택을 칭찬할, 힐난하지 않을 남자를 사는 건, 결국 의 선택을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책임을 회피하고 있지만 사실 강박적으로 책임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의 표현대로 오래 기다린 죄책감이다.

  인도 여행에 대한 지인들의 반응은 극과 극이다. 그건 갠지스강에 대한 반응과도 대체로 일치한다. 갠지스강을 인도인처럼 성스럽게 여긴다거나 깨달음에 무게를 두고서 감흥을 느낀 이도 있지만 갠지스강의 악취와 오염, 무질서로 인해 신성한 느낌은커녕 최악의 장소로 기억하기도 한다. ‘쿠쿠에게는 신처럼 이쁜 강이지만 에게 갠지스강, 강가강은 더럽고 너저분한 강인 것처럼 말이다. 이런 강에, ‘가 어쩔 수 없이 뛰어들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며, ‘는 오롯이 잠긴다. 물에 빠진 이를 구하려다가 모두 죽을 상황이 된다고 쿠쿠자자를 떠올리며 생각하지만 는 내가 돈으로 구한‘ ’를 물에서 구하게되고…… 강가강에 빠진 ’, 하염없이 떠도는 부유물이 될지 속죄하고 정화되었을지, ‘강가’, 그 의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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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여름 2025 소설 보다
김지연.이서아.함윤이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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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요, 적들의 이름을 부른다


소설 보다 : 여름 2025, 김지연, 이서아, 함윤이, 문학과지성사, 2025-06-10.

 


  그래서 적들은 누구인가?

소설을 읽는 내내 궁금했던 부분이다. “난 저기서 계속 적을 기다렸어요.”라고 선화가 말할 때는 고도를 기다리며가 생각나긴 했지만, 대체로 사이비 종교집단이 먼저 연상되어읽는 내내 미간이 수평을 유지하지는 않았을 게다. 영화 <미드 소마>의 장소가 파스텔톤 속 찡한색감으로 각인되어 있다면 이 소설은 건조하며 폐허 속 섬같은 느낌이었다. 어쨌든 소설을 읽고 나서도 우리의 적들이 산을 오를 때, 우리의 적들이 산을 오를 때……가 반복되어 머릿속을 흐르고 있었다.


난 저기서 계속 적을 기다렸어요.“

선화는 말했다. 때로는 그것이 어떤 가르침보다 중요하게 느껴졌다고도 했다. 모든 책에서 구원은 적의 공습 뒤에 찾아왔다. 적들이 온다는 것은 긴긴 괴로움으로 뭉쳐진 기다림,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가 되어버린 기다림이 끝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선화는 매일 찾아오는 이들을 유심히 살폈다. 산을 타고 올라와 그들의 이 고된 기다림을 끝내줄 사람을 기다렸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만난 게 대단한 운명 같아요.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적들을 기다리는 이 무리는 도대체 뭘까. 작품의 주인공이 노아인지라 성경 속 노아의 방주를 떠올렸다. 그렇기에 노아가 이들에게 구원의 존재가 되는가 생각했는데, 노아는 이들 무리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가명을 사용한다. 어이없게도 그 가명이 무리의 리더 이름과 같다. ‘선화라는 리더 이름을 듣자 선화공주님은~’ 하며 서동요를 떠올리고 선화라는 이름이 담은 뜻은 무언가라는 생각으로 흘러 등장인물들의 이름에 꽂혀버렸다. 노아는 왜 노아이며 선화는 왜 선화인가. 왜 상사의 이름은 녹원인가. 녹원은 인도에 있는 불교 유적인데, 단순하게 생각하면 녹원이야말로 대척점에 있는 이름 아닌가. ‘이라 할 만한.

  구원을 위해 을 기다리는 것. 마치 내가 잘났음을 타인을 깎아내리며 얻으려는 누군가처럼 여기 천문대를 점령한 사람들은 그렇다. 자신들의 구원을 기다리는 것이 무엇이라고 타인에게 끼치는 민폐를 당연시하는지 의문인데, 그들은 오히려 마을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토록 철저한 현실반영이라니! 명확하지 않은, 막무가내로 을 상정해 놓고서 부르는 노래, 그래서 우리의 적들이 산을 오를 때는 참요같다. 아니, 주술이다. 명백한 세뇌 또는 가스라이팅.

  왜 종교적 믿음은 항상 기이한 형상으로 표출되는지 모르겠다. 집단의 힘이란 그런 건가. 힘이라고 해야할 지 광기라고 해야할 지 모를 그 스산함이 계속 리더 선화 주위에 맴도는 듯하다. 항상 머무르지 않고 떠날 것이라고 하는 그 무리가 드디어 떠날 때인가, 선화는 마지막으로 여는 행사에 노아를 초대한다. 즐거울 테고, 아주 아름다울 거예요라는 말과 함께. 세상만사가 귀찮아진 때라면 그냥 넘기고 말았겠지만, 좀더 생생한 때라면 그 버리지 못할 호기심 때문에 나도 노아처럼 가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천문대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하는데도 머릿속에서 봉화대쯤으로 인식하고 있던 나는 관측대의 돔이 열리고라는 글을 보자 멈칫하고 만다. 내내 상상하던 이미지와 이질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행태는 이질적이지는 않았다. 검은 털옷을 입고 불을 피우고 고기를 태우고 다함께 춤을 추는 건 미드소마 같이 사이비 종교에서 주로 보게 되는 행태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인지 이해하기 싫은 것인지 모를 그 무리의 행동은 언제나 낯설지 않다. 그래서 구원되었나. 노아는 그들이 즐겁고 아름답다고 느꼈던가,

  ‘들이 오고나서야 구원이 있었다, 그러니 구원받기 위해서는 이 있어야 한다는 믿음. 은연 중에 타인을 으로 규정하는 삶이 평안할까. 그러면 구원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은 구원과 적이 모호한 삶을 만든다는 생각이 짙어진다. 모호한 적에 대해 생각한다. 모호한 구원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누군가는 그냥 그 모호하고 막연한 두려움 자체가 이고 그렇기에 가시적인 을 만들어내어야 오히려 평안한 마음이 될 것이라 할지 모르겠다.

  참요. 어쩌면 삶에서 나를 위한 참요는 필요할지 모른다. 나를 구원하기 위한 스스로에 대한 응원. 그러나 나를 위해 타인에게 부적같은 의미를 부여하는 일, 타인을 으로 만드는 일에 대해 새삼 생각한다. 마을 사람들에게 이들 또한 또다른 형태의 이기도 하다. 함께 살아가기 힘든, 이해할 수 없는 존재. 하지만 가시적.

  선화는 독수리인가. 검은 옷을 두른 선화 무리들 위로 날아드는 독수리 떼가 그들과 겹쳐보이기도 한다. 어디로 가려는지 모를 그들은 또다시 다른 곳으로 찾아가 지금과 같은 행태를 계속할 것인지 궁금해진다. 다시금 도돌이표처럼 깃드는 물음. 무리들 위로 날아드는 독수리들은 정처없이 날개를 펼치는 것이 아니라 목적을 가진 날개짓일 텐데. 그래서, 구원이 뭔데? 구원이 왜 필요했던 건데? 반대로 을 만들기 위해 구원이 필요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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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가을 2025 소설 보다
서장원.이유리.정기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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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오


소설 보다 : 가을 2025, 서장원, 이유리, 정기현, 문학과지성사, 2025-09-11.

 

 

  로데오. 발음의 유사성 때문인지 소설 제목이자 주인공 이름인 히데오를 보면서 로데오를 되뇌고 있었다. 로데오는 카우보이들이 가출을 몰아 모으던 것에서 생겨난 스포츠로 길들이지 않은 말이나 소를 탄 채 떨어지지 않고 오래 버티거나 길들이는 경기다. 우리나라에 로데오 거리가 제법 있는데 어릴 적부터 로데오 거리라는 이름도 그 주변도 참 이질적으로 느껴졌었다. 말을 탄 카우보이 조형물도 어색하게 느껴지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히데오를 읽으며 로데오를 떠올렸던 건 발음의 유사성 때문만은 아니었던 거다. 로데오 거리에서 느꼈던 그 이질감과 어색함이 히데오에서 로데오를 떠올린 이유 아닐까.

  로데오 거리가 미국 베버리 힐스(Beverly Hills)에 있는 패션거리인 로데오 드라이브에서 유래했다는 걸 먼저 각인했다면 달랐을까만. 어쨌든 로데오 드라이브도 스페인어 지명인 '엘 로데오 드 라 아쿠아(El Rodeo de las Aguas, 물이 모이는 장소)'에서 유래된 거니까(https://www.kado.net), 로데오는 카우보이 로데오와 무관하지는 않은 거다. 다른 나라에 제 이름을 단 지명이 있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유사성을 찾고 특이점을 찾고…….

  히데오는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에는 일본에서, 부모님의 이혼 후에는 어머니를 따라 한국에서 살았다. 히데오는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차별을 경험한다. 일본에서 살았던 좀더 어렸던 시절, 또래들은 한국인 어머니를 모욕하며 히데오를 괴롭혔고 고교시절 역사나 국어 시간에는 특히 일본에 대한 혐오의 말들을 항상 들어야 했다. 히데오는 원어민 일본어 교사에게 쪽발이라고 하는 것이나 일본인이 자신의 어머니를 모욕하는 것이 다르지 않아 보였다고 이야기한다.

  대학교 연극반에서 히데오를 알게 된 는 히데오가 이와 같이 남들에게 말하지 않는 비밀을 자신에게 얘기할 때마다 친밀함 이상의 감정을 느낀다. 누군가 나에게만 자신의 비밀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필시 에게 호감이 있음이라는 오해와 기대로 깃든 마음이다. 그러므로 나를 좋아했지만 내가 바라는 방식으로는 아니었그의 감정이 달라질 가능성도 거의 없을 것 같은 히데오와 관계는 점점 소원해질 수밖에 없다.

  ‘는 로데오 경기에 나선 승리한 카우보이가 되지 못했다. 히데오를 길들이는 법을 알지 못했다. 세상에 한번쯤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말을 털어놓고 싶은 존재가 있다. 정체성 혼란을 겪으며 수줍고 자기 확신이 부족한 히데오에게 는 제 비밀을 털어놓으며 위로받고 지지받고 싶었을지 모르나 당시의 는 히데오의 이러한 마음을 충분히 보듬어주지 못한다. 훗날에야 그때 히데오에게 다르게말해줬어야 했다고 생각하지만, 이제 히데오에게 그런 말은 필요가 없다. 히데오는 그때 그 히데오가 아니기에.

  사람은 태어나서 주위 환경에 영향받을 수밖에 없으나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삶의 여정이 아닌가 싶다. 히데오는 주류 사회의 시선에서 자신을 약한 자로 위치짓는다. 그렇기에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힘겨울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마는, 우리가 내면화하는 어떤 시선은 내가 어떤 관점을 가지기 전까지는 일방적이고 그렇기에 나를 단단히 여미기가 힘들어지는지도 모르겠다.

  오랜 시간 동안 히데오는 자신을 단단히 여미지 못한 상태였지만 가 쓴 희곡 <따귀 게임>을 통해 달라진다. 마치 로데오 경기를 치르는 카우보이처럼 자신만의 정체성을 잘 벼르고 길들일 줄 알게 된 것이다. 이 희곡이 뭐기에 히데오의 변화를, 성장을 이끌어 주었는가를 말하자니 일견 히데오에게 감춰진 폭력성을 폭발시키는 역할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따귀 게임>가 쓴 모범소년과 불량소년의 따귀를 맞는 거래에 대한 이야기다. 고통스러운 경험을 한 사람만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믿는 모범소년은 불량소년이 들려주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학대이야기에 값을 매겨 매일 따귀를 맞는 것이 주내용이다. 불량소년 역을 맡은 히데오는 폭력을 행하면서 에게 비밀로 들려주었던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배우로서 활동하는 히데오는 자신에게 약점이 되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충분히 활용할 줄 알게 되었다.

 

이제 히데오는 그를 찾는 인터뷰마다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의 레퍼토리는 늘 비슷하다. 어렸을 때 일본에서 자랐으며 그곳에서 심각한 이지메를 당했다고 고백하고, 그래서 한국으로 이주하여 보낸 학창 시절이 소중하다고 강조한다. 일본에서도 한국인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았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전한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나는 이제 더는 히데오가 아닌 히데오를 히데오라고 부르곤 한다.

 

  비밀이 드러나 더 이상 비밀이 아닐 때 드는 당혹감, 이제 누군가의 비밀을 혼자만 공유하는 대상이 아니게 되었을 때의 씁쓸함을 느껴본 이라면 히데오가 아닌 히데오가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그의 변화된 모습이 가 바라던 대로였고 그것이 어쨌든 의 영향이 있었던 것이라면 는 히데오의 변화와 성장을 도와주는 역할을 했음에 위안과 만족감을 가지면 될까. 자신의 옛 연인 영도를 기준으로 연인에 대한 기준, 바라는 방식을 가졌던 가 변화된 히데오홀로 이별한다. 새로운 비밀을 가지게 된 히데오, 이젠 비밀을 공유하는 대상조차 되지도 못한 히데오가 아닌 히데오’. 의 히데오는 더 이상 의 히데오가 아니며 앞으로도 가 바라는 의 히데오가 될 수 없다. 이제는 주눅들지 않고 매번 로데오 경기를 잘 겨뤄 낼 히데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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