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개장의 용도
함윤이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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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물이 되지 않으려


자개장의 용도

함윤이, 문학과지성사, 2025-11-11.

 


  자개장무늬 책표지를 덮으며 생각했다. 아이들 책처럼 표지가 팝업으로 되어 열리면 좋겠다고. 그 문을 열고 나도.

  강가/Ganga로 가볼까. Ganga가 함께 표기되어 있지 않았다면 강줄기와 육지가 맞닿는 부분으로 인식했을 것이다. 아니, 작가가 친절히 강가에 대해 알려주고 있음에도 그것은 작가가 설정한 세계일 것이라 여기며 Ganga를 사전으로 찾고, 그럼에도 강의 언저리롤 떠올렸다. “강까라는 된소리 발음으로 자꾸 강가/Ganga’를 읽어내는 탓이다.

 

G a n g a.

글자들은 잘 지은 집처럼 견고해 보인다. 입속으로 또 한 번 발음한다. 강가이 단어는 보통 강줄기와 육지가 맞닿는 부분을 의미한다. 강과 땅 모두의 가장자리지만, 어디에도 제대로 속하지 않는다. 강가이는 지체 높은 집안의 딸이 자신보다 낮은 집안에 시집가는 행위를 뜻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대개 왕족의 딸이 신하의 가문으로 시집을 가는 일을 의미한다. 새하얀 천을 얼굴 앞으로 늘어뜨린 여자들이 강둑 위를 걸어가는 모습을 상상한다. 강가한 여자들, 왜 그랬지? 사랑 탓인가? 다들 행복한 삶을 꾸렸을까?

동시에 강가는 신의 이름이다. 당연하다고 해야 할지, 강가는 강의 신이다. 악어와 닮은 마카라를 타고 다니며 속죄와 정화를 담당한다. 여신은 수 해 동안 이어진 왕의 기도탓에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갠지스강으로 변했다. 갠지스 강은 인도 북부를 흐른다. 바라나시는 이름의 도시를 품에 안은 강으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여기 하나의 의미를 더 추가한다. 강가, 그것은 의 이름이다. 낯선 곳에서 가 아니고 싶을 때, 아니 를 규정하고 싶을 때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새 이름을 부여한다. 그리하여 모호한 경게 속의 , 속죄와 정화의 여신으로서의 로 나를 정의한다. 아니, 그러한 이름을 선택한다. 그렇다면 에게 이 이름은 의미를 나열하는 이 행위는 이미 함의가 있는 것이다. 스스로를 강가로 불리고 싶은 마음. 하지만 막상 의 이름을 물어보자 강가라 말하지 못한다.

 

그는 떠나기 직전에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 이름이 뭐죠? 아는 어떤 이름도 대지 못하고 더듬거렸다. 이 도시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자 결심했는데, 막상 누군가 이름을 묻자 무엇도 답할 수가 없구나. 상대방의 이름을 묻는 일 역시 불가능했다. 질문하는 일도, 답하는 일도, 두려울 뿐이다. 나는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름 모를 남자는 상관없다는 듯 말했다. 유 쎄이브 마이 라이프. 당신이 내 목숨을 구했어요. 유 쎄이브 마이 라이프. 당신이 내 목숨을 구한 거예요. 나는 그 말을 여러 번 되풀이하고, 번역한다. 몸의 떨림이 멈추자 눈앞의 모든 색이 선명해진다. 오래 기다린 죄책감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여러 단편이 실려 있는 이 책에서 강가/Ganga’가 기억에 남았던 것은 이런 이유였을 것이다. 몽유병 환자가 겪는 일처럼 대체로 환상적이며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 낯선 여정을 하는 이들이 주로 등장하지만, 가장 멀고 긴 여정의 이야기라는 것. 그러나 파랑새의 결말처럼 행복은 나의 곁에 있었다, 그렇게 떠올려지는 마침표 같은 이야기 같아서.

  ‘강가/Ganga’ 의 행동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공장에서 이주노동자와 함께 일했던 가 산업재해를 당한 여공과의 연대를 거부하는 일은 이해된다. 함께, 연대를 주장하는 쿠쿠의 말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 것도. 하지만 너는 내몰린 게 아니야. 너는 선택한 거야. 우리 대신에, 너 홀로 여기에서 살아가는 일을 택했어. 아냐. 부정하지 마. 화내지도 마. 비난하는 게 아니야. 네 선택을 이해해.”라고 말하는 자자의 말에 이른바 긁혀서’, “남자를 가져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그래, 역시나 남자가 필요하다. 내 모든 선택을 칭찬하며, 절대로 힐난하지 않는 남자로 이어지는 생각과 실제 그 행동을 하는 것 말이다.

  ‘쿠쿠자자의 고향 바라나시에서 남자를 사러 왔다고 말하고 다닌다. ‘의 기준은 너무 높아 그런 남자는 살 수 없다는 말을 듣지만 그럼에도 는 남자를 사야 한다. ‘강가한 여자가 되는 것은, 될 수 있는 것은 을 쥐고 있음이다. ‘자본으로 계급적 우위를 누릴 수 있는 가 남자를 사려는 이 전개는 강가降嫁라는 의미가 있음에 그 내용이 필연적으로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럼, 이제 는 물에 빠지려나?

  ‘가 물에 빠져야 할 이유는 너무도 명백하다. ‘의 모든 선택을 칭찬할, 힐난하지 않을 남자를 사는 건, 결국 의 선택을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책임을 회피하고 있지만 사실 강박적으로 책임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의 표현대로 오래 기다린 죄책감이다.

  인도 여행에 대한 지인들의 반응은 극과 극이다. 그건 갠지스강에 대한 반응과도 대체로 일치한다. 갠지스강을 인도인처럼 성스럽게 여긴다거나 깨달음에 무게를 두고서 감흥을 느낀 이도 있지만 갠지스강의 악취와 오염, 무질서로 인해 신성한 느낌은커녕 최악의 장소로 기억하기도 한다. ‘쿠쿠에게는 신처럼 이쁜 강이지만 에게 갠지스강, 강가강은 더럽고 너저분한 강인 것처럼 말이다. 이런 강에, ‘가 어쩔 수 없이 뛰어들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며, ‘는 오롯이 잠긴다. 물에 빠진 이를 구하려다가 모두 죽을 상황이 된다고 쿠쿠자자를 떠올리며 생각하지만 는 내가 돈으로 구한‘ ’를 물에서 구하게되고…… 강가강에 빠진 ’, 하염없이 떠도는 부유물이 될지 속죄하고 정화되었을지, ‘강가’, 그 의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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