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 제3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함윤이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저없이,


정전 - 3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함윤이, 문학동네, 2026-03-13.

 


  함윤이 작가의 소설은 리얼리티 속에 환상을 흩뿌린 작품이 유독 많다. 아니다, 환상이 주고 리얼리티를 첨가한 건가? 이 소설 또한 작가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어떤 부분을 환상으로 삼느냐가 중요한 포인트인 듯한데, 작가의 단편소설 강가/Ganga에서의 모호하고 환상적인 부분은 좀 버려두고 현실 사건을 갈무리하여 최대한 현실적인 틀 안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것 같다. 해결에 방점을 두자면 환상으로 회피하기보다 환상적으로 해결하고픈 노력이 보인다랄까.

  어렸을 적 내가 갖고 싶었던 것은 순간이동력이었다. 어느 곳이든 가고 싶었던 마음이 남긴 염원이다. 내가 그런 능력을 갖고 있음을 말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참 좋겠다. 아무튼 다른 사람은 가지지 않은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활용할지, 쓰임새를 만들기 위해 애쓸 듯하다. 현실적이든 아니든. 그렇다면 타인이 나의 능력의 쓰임을 찾아 요구할 때, 주저없이 응할 수 있을까.

 

임을 위한 행진곡에서 다시 만난 세계가 불려지는 순간

 정전을 이야기하자면 임을 위한 행진곡이 아니라 다시 만난 세계가 불리는 그 변화의 순간이 떠올려진다. 투쟁의 이유를 파악하고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의 유사성도 인식하지만 방법은 다른 형태. 현재 내가 가진 상황을 고려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흐름. 논의나 논쟁보다는 즉각적인 실행력이 돋보이는 방식. 그리하여 좀더 발랄함이 가미되고 다소 엉성하고 우려되는 부분이 있지만 그럼에도 울컥하게 되는 그런 투쟁 말이다. 정전속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이들이 청년이기에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닌가 싶다. 연령으로 누군가를 규정하고 싶지 않지만 MZ세대가 경험한 투쟁은 민주주의의 가치가 묵살당하던 시대의 투쟁과는 또다른 모습인 것은 분명하다. 최루탄과 쇠파이프 등을 휘두른 공권력에 맞서 돌멩이, 화염병으로 방어하던 시대에서 촛불로 LED등으로, 이제는 응원봉으로 변화한 것처럼 말이다. 투쟁가도 다시 만난 세계를 비롯하여 다양한 노래가 울려펴지는 문화 퍼포먼스의 형태로 변화했다. 일상에서는 타인에게 관심이 없어 보이는데 막상 이슈가 생기면 관심을 두고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그 기저는 각자 다르겠지만.

물류를 멈춰 세상을 멈추자_정전아 일어나라

  물류를 멈춰 세상을 멈추자는 대표적인 투쟁구호다. ‘기계를 멈춰’, ‘물류를 멈춰’,‘공장을 멈춰’, ‘세상을 멈추자라는 구호는 오래도록 이어온 노동의 가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슬로건이다. 21세기에도 여전히 노동자는 필요하지만 노동에 대한 가치는 크게 달라진 것 같진 않다. ‘자본노동의 끝없는 대립에서 오히려 자본의 가치가 더 부상하는 느낌이랄까. AI시대, 노동에 대한 인식과 그로 인한 재정의는 계속 이루어질 것이다. 물론, 아직은 전통적인 노동공장이 존재하고 있으며 노동자를 대하는 방식 또한 급격한 변화가 있다고 할 수 없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뉴스를 통해 접하게 되는 노동자의 사고와 사망 소식은 주로 20대이거나, 이주노동자인 경우가 많다. 물론 정확한 산재사고 현황은 알려주지 않고 나또한 열심히 찾아보지 않았지만. 더구나 그들은 내가 알지 못하는 이들이니까, 뉴스가 알려주는 대로 그렇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내가 아는 누군가가 취재를 통해서랍시고 보도에 나온 기사를 보면, ‘처럼 이게 다가 아닌데라고 생각할 것이다. ”기사 속 A씨의 삶은 서글픈 결말을 향해 필연적으로 달려가는 양 묘사되어 있었다. 문장들을 핥으면 비리고 쓴 맛만이 가득할 것 같았다. "얘는…… 이렇게 어두침침하고 서글프기만 한 사람이 아냐.“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야. 막은 파우더가 들어가지 않게끔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왜냐하면 네 손가락은 내 손가락보다 훨씬 짙은 색깔이잖아. 밀크 파우더 안에서라면 더더욱 눈에 띌 거야.

 

금방 찾을 수 있다던 ‘A’의 손가락을 찾을 수 없다면, 찾는 노력이 없다면 어두침침하고 서글프기만 한것이 아닌 더 넓고 많은 애를 알리기 위해 여전히 기계를 멈춰’, ‘공장이 멈춰가 유효한 세상이 된다. 정전속 화자 은 그렇다.

 

내가 원하는 건 공장 전체가 정전되는 거야. 단 하루만이라도 말이야. 하룻밤만이라도 그 안의 일이 완전히 꼬여버리면 좋겠어.”

 

어긋난 사랑의 작대기

  누군가에게 비밀을 털어놓는 건, 그 사람과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특별한 관계가 되고 싶다는 고백이다. ‘은단의 고백은 에게 불편함을 안긴다. 서로 어긋나는 마음, 교류는 그것으로 단절된다. ‘은단이 아무리 눈 한번 깜빡임으로 눈앞의 전등을 꺼버릴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대도 에게는 와 닿지 않는 능력이며, 감정이다.

  스무 살의 은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휴학하고 등록금을 벌기 위해 제약회사에 들어간다. ‘잠깐 일을 하러 나왔을 뿐인 대학생으로 일하고 있지만 공장생활을 하며 수지영준’, 외국인 노동자 라히루를 만나 친구가 된고 라히루에게는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라히루에게는 애인 서영이 있고, ‘라히루는 기사 속 A가 된다. 공장에서 버려진 라히루를 위해 노조에 가입한 은 노조활동이 어렵고 스스로 노동자의 정체성이 크지 않기에 노조 활동을 그만둔다. ‘라히루에 대한 감정이 큰 은 어떤 형태로든 을 돕기 위한 방법을 찾는다.

  여기서 기획자 이 활용하는 것이 은단의 능력이다. 고등학교 졸업식 이후로 만나지 않았던, ‘은단과 엮이고 싶지 않았던 은 주저없이 은단에게 연락하고 은단이 능력을 발휘하기를 요구한다. ‘은단을 만날 때마다 원인도 모를 신물이 치솟는다은단을 대하는 방식은, 솔직히 상당히 불쾌하고 불편하다. ‘라히루에 대해 애정으로 필요한 은단이기에 신물을 삼키며 참고 은단이 막을 부를 용기를 내기 전에 서둘러 달아나의 이기적인 행태에 혹은 제 사랑을 위해 헌신하는 놀라운 행태에 대해서. 오로지 에 대한 애정으로 오케이를 외치는 은단에게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유없이 외면당하는 인물인 것 같아서도 그렇고 공장에서 행한 일로 죄책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면서 더더욱 그러했다.

  그들의 계획이 성공하든 아니든 이 사람을 대하는 행태는 내게 영원한 물음표와 느낌표를 안길 것이다. 무턱댄 혐오와 자신을 좋아하는 이에 대한 압도적인 우위를 가진 것처럼 행하는 행태, 주저없이 막 사람을 도구로 대하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크나큰 대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한 우정과 애정에서 시작한 의 행동은 은단에게 행하는 방식 때문에 무척 아쉽게 느껴졌다. 아니, 무섭게 느껴졌다. 거듭 생각해보는데, 내가 혐오하는 이에게 내 필요에 의해 도움을 요청하는 일은 내겐 없을 것이다.

  ‘정전은 공장의 정전, 노동소설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거침없는 스무살의 이야기라라고도 볼 수 있겠다. 멈춤의 방식은 함께 구호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처럼 홀로 돌진하는 형태가 되는 걸까. 스무살이 세상에 나와 겪게 되는 일과 사람에 대한 거침없는 감정의 펼침을 마주한다. 그러니, 이건 사람과의 교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누군가와는 교류가 아니라 정전이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