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 : 가을 2025 소설 보다
서장원.이유리.정기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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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오


소설 보다 : 가을 2025, 서장원, 이유리, 정기현, 문학과지성사, 2025-09-11.

 

 

  로데오. 발음의 유사성 때문인지 소설 제목이자 주인공 이름인 히데오를 보면서 로데오를 되뇌고 있었다. 로데오는 카우보이들이 가출을 몰아 모으던 것에서 생겨난 스포츠로 길들이지 않은 말이나 소를 탄 채 떨어지지 않고 오래 버티거나 길들이는 경기다. 우리나라에 로데오 거리가 제법 있는데 어릴 적부터 로데오 거리라는 이름도 그 주변도 참 이질적으로 느껴졌었다. 말을 탄 카우보이 조형물도 어색하게 느껴지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히데오를 읽으며 로데오를 떠올렸던 건 발음의 유사성 때문만은 아니었던 거다. 로데오 거리에서 느꼈던 그 이질감과 어색함이 히데오에서 로데오를 떠올린 이유 아닐까.

  로데오 거리가 미국 베버리 힐스(Beverly Hills)에 있는 패션거리인 로데오 드라이브에서 유래했다는 걸 먼저 각인했다면 달랐을까만. 어쨌든 로데오 드라이브도 스페인어 지명인 '엘 로데오 드 라 아쿠아(El Rodeo de las Aguas, 물이 모이는 장소)'에서 유래된 거니까(https://www.kado.net), 로데오는 카우보이 로데오와 무관하지는 않은 거다. 다른 나라에 제 이름을 단 지명이 있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유사성을 찾고 특이점을 찾고…….

  히데오는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에는 일본에서, 부모님의 이혼 후에는 어머니를 따라 한국에서 살았다. 히데오는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차별을 경험한다. 일본에서 살았던 좀더 어렸던 시절, 또래들은 한국인 어머니를 모욕하며 히데오를 괴롭혔고 고교시절 역사나 국어 시간에는 특히 일본에 대한 혐오의 말들을 항상 들어야 했다. 히데오는 원어민 일본어 교사에게 쪽발이라고 하는 것이나 일본인이 자신의 어머니를 모욕하는 것이 다르지 않아 보였다고 이야기한다.

  대학교 연극반에서 히데오를 알게 된 는 히데오가 이와 같이 남들에게 말하지 않는 비밀을 자신에게 얘기할 때마다 친밀함 이상의 감정을 느낀다. 누군가 나에게만 자신의 비밀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필시 에게 호감이 있음이라는 오해와 기대로 깃든 마음이다. 그러므로 나를 좋아했지만 내가 바라는 방식으로는 아니었그의 감정이 달라질 가능성도 거의 없을 것 같은 히데오와 관계는 점점 소원해질 수밖에 없다.

  ‘는 로데오 경기에 나선 승리한 카우보이가 되지 못했다. 히데오를 길들이는 법을 알지 못했다. 세상에 한번쯤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말을 털어놓고 싶은 존재가 있다. 정체성 혼란을 겪으며 수줍고 자기 확신이 부족한 히데오에게 는 제 비밀을 털어놓으며 위로받고 지지받고 싶었을지 모르나 당시의 는 히데오의 이러한 마음을 충분히 보듬어주지 못한다. 훗날에야 그때 히데오에게 다르게말해줬어야 했다고 생각하지만, 이제 히데오에게 그런 말은 필요가 없다. 히데오는 그때 그 히데오가 아니기에.

  사람은 태어나서 주위 환경에 영향받을 수밖에 없으나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삶의 여정이 아닌가 싶다. 히데오는 주류 사회의 시선에서 자신을 약한 자로 위치짓는다. 그렇기에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힘겨울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마는, 우리가 내면화하는 어떤 시선은 내가 어떤 관점을 가지기 전까지는 일방적이고 그렇기에 나를 단단히 여미기가 힘들어지는지도 모르겠다.

  오랜 시간 동안 히데오는 자신을 단단히 여미지 못한 상태였지만 가 쓴 희곡 <따귀 게임>을 통해 달라진다. 마치 로데오 경기를 치르는 카우보이처럼 자신만의 정체성을 잘 벼르고 길들일 줄 알게 된 것이다. 이 희곡이 뭐기에 히데오의 변화를, 성장을 이끌어 주었는가를 말하자니 일견 히데오에게 감춰진 폭력성을 폭발시키는 역할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따귀 게임>가 쓴 모범소년과 불량소년의 따귀를 맞는 거래에 대한 이야기다. 고통스러운 경험을 한 사람만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믿는 모범소년은 불량소년이 들려주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학대이야기에 값을 매겨 매일 따귀를 맞는 것이 주내용이다. 불량소년 역을 맡은 히데오는 폭력을 행하면서 에게 비밀로 들려주었던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배우로서 활동하는 히데오는 자신에게 약점이 되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충분히 활용할 줄 알게 되었다.

 

이제 히데오는 그를 찾는 인터뷰마다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의 레퍼토리는 늘 비슷하다. 어렸을 때 일본에서 자랐으며 그곳에서 심각한 이지메를 당했다고 고백하고, 그래서 한국으로 이주하여 보낸 학창 시절이 소중하다고 강조한다. 일본에서도 한국인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았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전한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나는 이제 더는 히데오가 아닌 히데오를 히데오라고 부르곤 한다.

 

  비밀이 드러나 더 이상 비밀이 아닐 때 드는 당혹감, 이제 누군가의 비밀을 혼자만 공유하는 대상이 아니게 되었을 때의 씁쓸함을 느껴본 이라면 히데오가 아닌 히데오가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그의 변화된 모습이 가 바라던 대로였고 그것이 어쨌든 의 영향이 있었던 것이라면 는 히데오의 변화와 성장을 도와주는 역할을 했음에 위안과 만족감을 가지면 될까. 자신의 옛 연인 영도를 기준으로 연인에 대한 기준, 바라는 방식을 가졌던 가 변화된 히데오홀로 이별한다. 새로운 비밀을 가지게 된 히데오, 이젠 비밀을 공유하는 대상조차 되지도 못한 히데오가 아닌 히데오’. 의 히데오는 더 이상 의 히데오가 아니며 앞으로도 가 바라는 의 히데오가 될 수 없다. 이제는 주눅들지 않고 매번 로데오 경기를 잘 겨뤄 낼 히데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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