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 무용한 시간


 시를 읽는 즐거움은 오로지 무용하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하루 중 얼마간을 그런 시간을 할애하면 내 인생은 약간 고귀해진다.


 김연수, 우리가 보낸 순간 :시


   안도현 시인은 시를 읽는다는 것은 시를 읽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 된다고 했다. 김연수 소설가는 시를 읽는 즐거움은 오로지 무용하다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김연수 작가가 쓴 <우리가 보낸 순간-날마다 읽고 쓴다는 것>은 각각 시와 소설로 나누어 시와 소설을 소개하고 있다. 시편은 시인이 읽은 시에 대해 소개하고 그에 대한 감상들을 적었다. 김연수 작가가 소개하는 시를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이 시에 대한 감상을 보고 있노라면 갑자기 웃음이 나온다. 얼핏 소개하고 있는 시와 그의 감상이 따로 논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꼭 소개한 시에 대한 감상이나 시인에 대해 아는 얘기들을 말하고 있지 않다. 마치  시를 읽는다는 것이 “무용하다”라고 말하지 않았냐는 듯 그 말을 다시 새기게끔 한다.

  그러니까 자유연상, 의식의 흐름이 느껴진다. 나 역시도 시를 읽거나 글을 읽다 보면 그것이 말하는 바와는 상관없이 나만의 상상이나 기억 속에 빠지게 되는 일이 있다. 거기에서 가리키는 것과는 상관없이 특정한 이미지, 특정한 단어가 불러일으키는 환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작가의 그런 모습을 자주 만나다 보니 웃음이 나오면서 좀 편안해지는 느낌이 든다고 할까. 그러니까 시를 읽는데 “쫄” 필요가 없다라고 해야 하나.

  막상 작가들의 독서법은 다를 것이라 생각하기에 그들의 글쓰기나 독서법을 궁금해하고 읽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하는 방식은 특별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읽는 것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난 후 너무 나의 방식에 소극적이었구나, 한편 타인의 방식에 너무 민감하구나 생각하게 된다.

  타인의 독서법을 배척할 필요는 없지만 “누구의 방식”에 너무 매몰되어 매달리지 않아도 좋은 것을. 그리고 편안하게 내 식대로 읽어가며 마음을 느끼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정말로 시를 읽는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무용함을 달래주는 것이기도 하다. 인생이 얼마만큼 무용해야 시를 읽을 마음이 들게 될까라는 생각도 조금 하면서 김연수 작가의 말대로 그럼에도 시를 읽고 난 날이면 소설이나 다른 글을 읽은 날들보다 오히려 더 쾌감이 느껴지는 때가 있다. 그런 것 같다. 한뼘쯤 고귀해지는 느낌. 그것은 시어를 되뇌며 조금 더 머언, 머언 시간을 돌아보기 때문인 것 같다. 그것은 급박하고 여유없는 맘을 한번씩 누그러뜨리는 그런 역할을 한다.

  시에 대한 감상평을 보다가 정말로 소리내어 웃은 부분이 있다. 바로 이 부분이다.


어느 날, 텔레비전을 보는데 경주 양동마을 소식을 전하더군요. 기자는 올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그 조용한 시골 마을로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으나, 제대로 된 부대시설과 볼거리가 없어서 대부분 마을만 둘러보고 황급히 발길을 돌린다면서 대책이 시급하다고 진단하더군요. 옛 정취가 고스란히 보존됐다는 이유로 세계문화유산이 된 마을에서 부대시설과 볼거리를 찾는 사람들이라니. 그렇게 고요하고 적적한 마을에 가서도 그리운 사람 하나 떠올리지도 못하고 황급히 발길을 돌려야 하는 사람들이라니. 경주 양동마을은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 대책을 마련하지 않아도 좋겠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대책이 시급한 것은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분들, 정말 대책이 시급합니다. 나라에서는 그리운 사람 하나씩 만들어주세요. p72


  이것은 서안나 시인의 <병산서원에서 보내는 늦은 전언>에 대한 감상이다. 시인은 이 시를 읽으며 경주 양동마을을 떠올린다. 하지만 병산서원은 경북 안동에 있는 곳이다. 이 시를 떠올리며 생각이 나아가 경북 경주의 양동마을로 이어지고 양동마을에 관한 기사를 떠올리고 “그리운 사람 하나씩 만들어 주세요”라는 마지막 글을 읽을 때까지 나는 계속 웃었다. 즐거운 웃음이었다.

  그렇다. 이 책을 다 덮고 나서야 무용하다와 고귀해진다의 말의 의미를 절로 실감하는 중이다. 그리고 김연수 소설가가 시들을 소개하며 적은 감상의 말들이 왜 그렇게 내 ‘갈 길로 가리오'의 형태를 띠는지도 알겠다. 이 책은 비평집이 아니니까. 문학이론 책이 아니니까. 그러니까 일상생활 속에서 시와 함께 하는 방식은 이렇게면 충분하다. 내가 시를 읽다 딴 생각에 빠져도, 그것도 될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운


 

 안도현, 그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애착


   <그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애착>이란 제목이 와 닿는다. 찌질함과 함께 애잔함이 섞여 있다고 느낀다. 비오는 새벽녘 창문을 열어 들어오는 빗소리와 바람 소리를 함께 맞이할 때 떠올린 말한 제목이라고 해야 하나. 제목마저 시답다.

  이 책은 시인 안도현이 시를 읽으며 노트 한쪽에 적어 두었거나 다시 읽고 싶어 시집 한 귀퉁이에 적어둔 71편의 시를 묶은 것이다. 초판이 1999년이니 여기에 실린 시는 모두 1999년 이전 출간된 것이다. “열 몇 살 무렵 문학에 눈뜨기 시작할 때 좋아하던 시”, “스물 몇 살 무렵 문학청년 시절에 좋아하던 시”, "내가 사랑하는 아름다운 시", "내가 사랑하는 감동적인 시", "내가 사랑하는 젊은 시인들의 시"로 나누어 시를 소개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들 시에는 안도현 시인이 이 시를 읽을 무렵의 감상과 이 시와 얽힌 개인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가령 청년 시절 좋아한 김경미 시인의 <비망록>에 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감정이 많다고. 신춘문예에 투고하고 나서 당선 소감도 미리 써 놓고 상금을 받으면 갚을 생각으로 외상 술을 마시며 신문사로부터 연락을 기다렸는데, 결과는 낙선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신문에는 이 시가 실렸다. 그날 시인은 괴롭고 외로웠지만 시를 다 읽고 나서는 괴로움과 외로움이 봄눈 녹듯 사라졌다고 그날의 기억을 이야기한다.

  안도현 시인은 시인이 된다는 것은 시를 읽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 된다는 뜻이라고 말하고 있다. 시인이지 않아도 시를 읽는 즐거움은 있다. 다만 시는 다른 글들과 달라서 늘, 여유라는 게 있어야 잘 느껴지는 것 같다. 시행과 시어를 읊조리며 점점이 퍼지는 여운, 어느 순간 가슴에 와 닿는 문장들. 그래서 시는 각을 잡고 읽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문득 만났을 때 심장에 전달이 되고 머릿속에 남는다. 그래서인지 만나기 어려운 시들을 다른 이의 감상과 사연과 함께 소개받는 일은, 여운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벗들에게


    슈테판 츠바이크


   츠바이크의 글을 읽고 있다 보면 깊이 빠져든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 안타까운 건 그의 평전을 읽다 보면 평전의 ‘대상’에 집중하는 것보다 그의 글에 홀린다. 그렇게 그 대상에게 츠바이크가 생각하고 느끼는 그대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철학을 공부하고 문학과 역사, 심리학 등에 두루 관심을 가지고 써내려간 그의 글은 딱딱하고 건조하지 않고 부드럽고 강단있다. 평전의 대상의 실제의 생활과 생각들, 느끼는 바를 생생하게 포착하고 있는 듯 감정과 이성이 마구 휘몰아치며 감정이입하게 된다. 문학적인 느낌도 강하다. 그래서인지 츠바이크는 전기 작가로 유명하지만 그의 소설 또한 상당히 매력적이다. 아무튼 츠바이크의 글을 읽을 때면 마냥, 마음이 아련해진다.

  <우정, 나의 종교>는 츠바이크가 쓴 글들의 묶음이다. 장례식장에서 발표한 글도 있고 발표하지 못한 글도 있다는데 핵심은 츠바이크의 글들 중에서 ‘인물’에 관한 글을 추린 것이다. 로맹 롤랑은 츠바이크에 대해 “그에게 우정은 종교와 같다”라는 말을 했다는데, 책의 제목은 이 말에서 따온 모양이다.


로맹 롤랑은 츠바이크에 대해 “우정이야말로 그의 종교”라고 말한 적이 있다. 츠바이크처럼 우정과 의리를 중시한 사람은 보기 드물다. 그는 말만 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p11~12


  수많은 평전을 쓰게 된 것은 츠바이크 자신이 거기에 재능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 자신이 많은 이들과의 교류를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츠바이크가 많은 언어를 익힌 것도, 여러 나라를 다닌 것도 그렇고. 평전을 쓸 때도 인물과 작품과 자료들을 깊이 연구하고 심리를 분석하는 만큼 사람들과의 교우에서도 섬세함과 감성으로 사람들을 대했을 것이다.


츠바이크는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사업에 성공하고 이름이 널리 알려졌으면서도 겸손했다. 스승에게는 늘 제자의 예를 갖추었고, 스승이나 벗한 선배들에게 존경, 앙모, 감격의 정을 품었다. 이는 그의 성품뿐 아니라 그가 큰 스승들에게 받은 가르침을 자양분으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이었음을 보여 준다. 그는 프로이트는 물론이고 베르하렌, 고리키, 로맹 롤랑에게도 같은 태도를 취했다. p11


  그의 인물 평전은 특정한 분야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과 나눈 우정들이 그가 삶을 살아가는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츠바이크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들을 둘도 없는 친구로 여겼고 이 책 속에서도 그의 우정에 찬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엔 프루스트, 프로이트, 베를렌, 롤랑, 톨스토이, 호프만, 슈바이처, 바이런, 말러, 발터, 토스카니니, 릴케, 열 두 명의 이야기들이 있다. 벗들에 대한 짧은 글에서도 이 인물들의 생애와 그들의 감성과 그들에게 가지는 츠바이크의 마음이 섬세한 필치 속에 생생하기에 이들에 대한 평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시대가 그러했던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츠바이크의 마지막 선택 역시도 너무나 아쉽고 안타깝다. 그래도 조금만 더 힘을 내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의 고통을 어찌 가늠하겠냐만 그 시대 수많은 이들이 그와 같은 상황에 있었던 만큼 지식인의 나약한 모습으로도 비춰진다. 츠바이크의 자살을 알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던 것이 생각난다. 이미 그가 사망한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러할진대 그와 함께 우정을 나누었던 그와 함께 했던 수많은 이들은 나보다 더했을 것이다. 더 이상 친구이자 풍부한 감성과 지식을 지닌 작가를 만날 수 없음에, 그 안타까운 선택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 이름이 뭐더라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과 유사한 줄기로 흘러간다. 100세 노인이 요양원 창문으로 탈출해 트렁크를 받아 쥐고 영락없는 모험의 세계에 빠졌듯이 까막눈이 놈베코는 가난한 남아프리카공화국 흑인 빈민촌에서 분뇨통을 나르며 생계를 이어 가는 삶에서 탈출한다. 역시 놈베코도 우연찮게 얻게 된 다이아몬드가 그녀가 떠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끔 한다. 하지만, 100세 노인 알란의 트렁크 속 돈과 대비되는 것은 놈베코에겐 핵폭탄이다. 잉여의 핵폭탄이 놈베코에게 쥐어지면서 놈베코는 격렬한 모험의 길로 거침없이 빠져든다. 이 모험의 길에 알란의 과거의 역사가 펼쳐진다면 놈베코에게는 홀예르의 인생이 겹쳐 진행된다.

  놈베코에겐 비상한 재주가 있다. 까막눈이지만 빠른 셈법과 대담한 기지를 가졌다. 아니, 드러낼 때가 없다 보니 묻혔지만 영락없는 천재적인 기질이 있었다. 정확이 말하자면 놈베코는 ‘까막눈이였었던 여자’다. 호색한이자 문학 애호가로부터 글을 배워 까막눈이에서 벗어난 것이다. 여러 모로 문학 애호가는 놈베코에게 ‘개안’을 해주고 떠났다. 글을 깨치게 해주고 반짝반짝 빛나는 다이아몬드까지 선사해 주었으니.

   

학교 문턱에도 가본 적이 없고, 소웨토 밖으로 한 걸음도 내디뎌 본 적이 없는 여자아이가 물었다. 이 질문을 받은 담당관은 지배 엘리트의 대표자요, 대학까지 나왔지만 탄자니아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날 때부터 허여멀겋던 위생국 직원의 얼굴은 소녀의 조리 있는 말 앞에서 백지장이 되었다. 열네 살 먹은 까막눈이 계집애에게 모욕당하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이 건방진 계집애는 자기가 위생 시설에 책정한 예산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었다. p34


  세상은 존재를 부정하는 것을 쉽게 여긴다. 놈베코라는 이름을 가진 이 아이는 가난하고 글을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흑인이라는 이유로 이름이 까막눈이, 검둥이 등으로 불린다. 아니면 그저 “네 이름이 뭐더라”가 되거나. 조금만 이야기를 해보면 어떠한 사람인지 알 터인데도 그저 태생으로 판단하려 든다. 또한 이름을 가졌으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홀예르 역시 마찬가지다. 왕권 신봉자이지만 국왕에게 모욕을 받은 후 왕권철퇴를 외치는 쌍둥이의 아버지는 자식들의 이름을 모두 홀예르로 만든다.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홀예르가 두 명이지만 홀예르 2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된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많은 사건들은 물론 ‘우연’이 겹친다. 역시나 황당한 사건과 사고들이 속출한다. 하지만 이 우연한 일들이 남발되는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김없는 법칙들이 있다. 그것은 누군가에 의해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해야 하는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또는 생각없이, 또는 아무거나 막 생각하면서 ‘일’들을 저지른다. 이렇게 저지르는 일들을 뒷수습하는 이들은 언제나 생각하는 놈베코와 홀예르의 몫이다. 놈베코와 홀예르가 만나는 사람들은 늘 한가지 생각에 집착하거나 너무나 많은 생각에 몰두해 있어서 그들이 벌이는 일들이 어떤 파장을 불러오는지 생각하지 못한다.


그다음에는 더 이상 덧붙일 말이 없었으므로 홀예르는 허공으로 점프했고, 약 1초간 모종의 내적 평화를 느꼈다. 딱 1초 동안이었다. 그러고 나서 권총을 요원에게 사용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번쩍 깨달았다. 「에혀, 내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홀예르는 한탄했다. 늘 멍청하게 판단하고, 뒤늦게야 머리가 돌아가는 것, 이게 언제나의 자신이었다. p306


  그것은 글을 읽을 수 있느냐 , 배웠느냐, 경제력이 있느냐, 권력이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세상에 대한 이해의 깊이의 차원인 듯하다. 놈베코와 홀예르는 이 복작대고 정신없는 이야기 속에서 비교적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생각을 가지고 상황을 판단하는 이들로 대변된다. 하지만 끊임없이 덜 생각하고 제 생각만을 일삼는 이들이 있는 한 삶은 언제나 예측불가한 상황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이 어처구니 없는 하루는 대체 언제야 끝나려나?

「난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겠어.」 놈베코가 대답했다. 「왜냐하면 삶이란 원래 이런 식인 것 같으니까…….」p2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역사는 계속된다


  모험은 그의 의지에서 시작되었다. 운이 그의 의지와 병행하며 때론 뛰어넘어 그와 함께 했다. 이제 막 백세 생일을 맞이한 알란이 살아온 100년의 역사는, 그의 역사이자 세계사였다. 그런 과거를 지닌 노인이었기에 알란은 인생을 돌아보며 회한에 젖지 않는다. 다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기로 한다. 새로운 세기의 새 인생은 한계를 뛰어넘는 것에서 시작한다. 알란은 양로원 창문을 가뿐히 뛰어넘는다. 산책이라도 가는 마냥 슬리퍼를 신고서. 그렇다. 알란은 산책을 가듯 여유롭고 즐거운 마음으로 남은 생을 보내리라 다짐한다.


알란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쓸데없는 기대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또 반대로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될 터, 쓸데없이 미리부터 골머리를 썩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p271


  하지만 지난 100년 동안 이미 겪었듯이 그의 의지대로 움직여지진 않았다. 눈깜짝할 사이에 알란은 새로운 상황에 휩쓸린다. 의도치 않은 상황에 당황할 법 한데도 알란의 행동들은 여유가 있다. 의뭉스럽기까지 하다.    


 노인은 자기가 왜 트렁크를 훔칠 생각을 했을까 자문해 보았다. 그냥 기회가 왔기 때문에? 아니면 주인이 불한당 같은 녀석이라서? 아니면 트렁크 안에 신발 한 켤레와 심지어 모자까지 하나 들어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에서? 그것도 아니면 자신은 잃을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정말이지 이 중에서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없었다. 뭐, 인생이 연장전으로 접어들었을 때는 이따금 변덕을 부릴 수도 있는 일이지……. 그가 좌석에 편안히 자리 잡으며 내린 결론이었다. p15~16 


  현재의 삶이 어떻게 전개될까를 지켜보는 맛은 버르장머리 없는 젊은 놈의 트렁크 속에 든 ‘돈’을 찾으려는 자들과의 추격전이다. 과연 이 거금을 가진 알란은 무사히, 도망칠 수 있을까. 그 무리들에게서. 하지만 이 대결은 코믹의 극대화처럼 알란에게 연승을 안긴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알란과 알란의 친구들은 이 무리들을 완벽하게 사고로 ‘처리’하니까. 하지만 이 황당한 전개보다 더 황당한 전개는 알란의 과거 행적이다. 그는 전세계의 역사적 현장에 있던 인물이다. 그리고 그가 한 행동과 말들이 오늘날의 이 현대사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알란이 1905년생이니 그가 지나온 시대에는 이데올로기와 전쟁이 있었다. 어쩌면 이 전쟁은 알란 때문이기도 하다. 알란은 폭탄 제조 기술을 터득했고 폭탄 터뜨리는 일을 잘 활용했다. 스페인 내전에서도 이 폭탄 덕분에 프랑코 장군을 살리고, 미국 과학자들에게도 핵폭탄을 만드는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다. 그는 냉전과 이데올로기 시대 각 나라의 지도자, 정치적 인물들과 엮이며 그들과의 친분 또는 미움으로 목숨을 유지하기도 하고 노역을 당하기도 한다. 끊임없이 사건과 사고 속에 휘말리는 알란의 능력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고통스러운 상황에 맞닥뜨려서도 낙천적인 알란의 성격이 그의 생을 좌지우지하는 듯하다.


자기가 세상을 돌아다니며 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해결하기 힘든 분쟁은 대개 "네가 멍청해!" "아냐, 멍청한 건 너야!" " 아냐, 멍청한 건 너라고!"라는 식으로 진행된다는 거였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결책은 둘이서 보드카 한 병을 함께 비우고 나서 앞일을 생각하는 거란다. p256


  알란은 <우생학적이며 사회학적인> 이유로 거세당했다. 우생학적인 이유라면 알란은 약간 저능아라는 것이고, 사실 무엇보다 결정적인 이유는 사회학적인 이유일 것이다. 알란의 몸에 아비의 유전자가 너무 많이 섞여 있기 때문에 칼손 집안이 번식하게 놔두면 안 된다는 국가의 진단. 알란의 아버지는 사회주의자였다. 하지만 알란 아버지의 신념은 흔들리고 있었고 조그만 땅을 소유하며 레닌에게 맞서다 사망했다. 어쩌면 알란이 옳았는지도 모르다. 정치는 복수와도 같이 좋지 않은 것이라는 걸. 그래서 결국 최악에 이르게 되는 것이라는 걸.


아이는 자라나 어른이 되었고, 부모의 의견에다 자신의 의견을 첨가했다. 그것이 공산주의자건 파시스트건 인종주의자건 자본주의자건 간에, 어떤 정치적 신념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모두가 똑같았다. 하지만 믿을 만한 사람은 과일 주스를 마시지 않는다는 아버지의 말에는 여전히 동감이었다. 또 사람이 가끔 술을 한잔할 수는 있지만 이성을 잃으면 안 된다는 어머니의 말에도 공감했다. p178


  알란은 정치적 견해도 종교도 가지지 않고 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한다. 확고한 믿음과 신념보다 알란의 견해가 목숨을 유지하는데 더욱 필요한 처방이었을지도. 아니면 그것이 알란이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인물들과 연결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한 그로 인한 사건들을 일으키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에겐 정치적 견해보다 그 당시의 상황과 인간이 더욱 중요하게 작용했으니까.

  

사물을 폭파시키는 것과 사람을 폭파시키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어요. 만일 커다란 바윗덩어리가 길을 가로막고 있다면, 다이너마이트로 그걸 반으로 쪼개 버리면 기분이 좋은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거기 서 있는 게 사람이라면, 그냥 잠시 옆으로 비켜 달라고 부탁하면 되지 않을까요? p50


  그래, 거기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때로 정치는, 어떤 정치가는 거기 있는 사람을 보지 않고 그들에게 부탁하는 일을 너무나 어려워한다. 아니 싫어한다. 그저 길을 막고 있는 바윗덩어리라고 생각한다. 알란이 지나온 그 시간들 속에, 사람을 바위로 인식하는 인지장애의 정치인들 덕분에 여전히 이 역사는 계속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