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름이 뭐더라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과 유사한 줄기로 흘러간다. 100세 노인이 요양원 창문으로 탈출해 트렁크를 받아 쥐고 영락없는 모험의 세계에 빠졌듯이 까막눈이 놈베코는 가난한 남아프리카공화국 흑인 빈민촌에서 분뇨통을 나르며 생계를 이어 가는 삶에서 탈출한다. 역시 놈베코도 우연찮게 얻게 된 다이아몬드가 그녀가 떠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끔 한다. 하지만, 100세 노인 알란의 트렁크 속 돈과 대비되는 것은 놈베코에겐 핵폭탄이다. 잉여의 핵폭탄이 놈베코에게 쥐어지면서 놈베코는 격렬한 모험의 길로 거침없이 빠져든다. 이 모험의 길에 알란의 과거의 역사가 펼쳐진다면 놈베코에게는 홀예르의 인생이 겹쳐 진행된다.
놈베코에겐 비상한 재주가 있다. 까막눈이지만 빠른 셈법과 대담한 기지를 가졌다. 아니, 드러낼 때가 없다 보니 묻혔지만 영락없는 천재적인 기질이 있었다. 정확이 말하자면 놈베코는 ‘까막눈이였었던 여자’다. 호색한이자 문학 애호가로부터 글을 배워 까막눈이에서 벗어난 것이다. 여러 모로 문학 애호가는 놈베코에게 ‘개안’을 해주고 떠났다. 글을 깨치게 해주고 반짝반짝 빛나는 다이아몬드까지 선사해 주었으니.
학교 문턱에도 가본 적이 없고, 소웨토 밖으로 한 걸음도 내디뎌 본 적이 없는 여자아이가 물었다. 이 질문을 받은 담당관은 지배 엘리트의 대표자요, 대학까지 나왔지만 탄자니아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날 때부터 허여멀겋던 위생국 직원의 얼굴은 소녀의 조리 있는 말 앞에서 백지장이 되었다. 열네 살 먹은 까막눈이 계집애에게 모욕당하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이 건방진 계집애는 자기가 위생 시설에 책정한 예산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었다. p34
세상은 존재를 부정하는 것을 쉽게 여긴다. 놈베코라는 이름을 가진 이 아이는 가난하고 글을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흑인이라는 이유로 이름이 까막눈이, 검둥이 등으로 불린다. 아니면 그저 “네 이름이 뭐더라”가 되거나. 조금만 이야기를 해보면 어떠한 사람인지 알 터인데도 그저 태생으로 판단하려 든다. 또한 이름을 가졌으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홀예르 역시 마찬가지다. 왕권 신봉자이지만 국왕에게 모욕을 받은 후 왕권철퇴를 외치는 쌍둥이의 아버지는 자식들의 이름을 모두 홀예르로 만든다.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홀예르가 두 명이지만 홀예르 2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된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많은 사건들은 물론 ‘우연’이 겹친다. 역시나 황당한 사건과 사고들이 속출한다. 하지만 이 우연한 일들이 남발되는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김없는 법칙들이 있다. 그것은 누군가에 의해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해야 하는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또는 생각없이, 또는 아무거나 막 생각하면서 ‘일’들을 저지른다. 이렇게 저지르는 일들을 뒷수습하는 이들은 언제나 생각하는 놈베코와 홀예르의 몫이다. 놈베코와 홀예르가 만나는 사람들은 늘 한가지 생각에 집착하거나 너무나 많은 생각에 몰두해 있어서 그들이 벌이는 일들이 어떤 파장을 불러오는지 생각하지 못한다.
그다음에는 더 이상 덧붙일 말이 없었으므로 홀예르는 허공으로 점프했고, 약 1초간 모종의 내적 평화를 느꼈다. 딱 1초 동안이었다. 그러고 나서 권총을 요원에게 사용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번쩍 깨달았다. 「에혀, 내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홀예르는 한탄했다. 늘 멍청하게 판단하고, 뒤늦게야 머리가 돌아가는 것, 이게 언제나의 자신이었다. p306
그것은 글을 읽을 수 있느냐 , 배웠느냐, 경제력이 있느냐, 권력이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세상에 대한 이해의 깊이의 차원인 듯하다. 놈베코와 홀예르는 이 복작대고 정신없는 이야기 속에서 비교적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생각을 가지고 상황을 판단하는 이들로 대변된다. 하지만 끊임없이 덜 생각하고 제 생각만을 일삼는 이들이 있는 한 삶은 언제나 예측불가한 상황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이 어처구니 없는 하루는 대체 언제야 끝나려나?
「난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겠어.」 놈베코가 대답했다. 「왜냐하면 삶이란 원래 이런 식인 것 같으니까…….」p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