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 무용한 시간


 시를 읽는 즐거움은 오로지 무용하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하루 중 얼마간을 그런 시간을 할애하면 내 인생은 약간 고귀해진다.


 김연수, 우리가 보낸 순간 :시


   안도현 시인은 시를 읽는다는 것은 시를 읽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 된다고 했다. 김연수 소설가는 시를 읽는 즐거움은 오로지 무용하다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김연수 작가가 쓴 <우리가 보낸 순간-날마다 읽고 쓴다는 것>은 각각 시와 소설로 나누어 시와 소설을 소개하고 있다. 시편은 시인이 읽은 시에 대해 소개하고 그에 대한 감상들을 적었다. 김연수 작가가 소개하는 시를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이 시에 대한 감상을 보고 있노라면 갑자기 웃음이 나온다. 얼핏 소개하고 있는 시와 그의 감상이 따로 논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꼭 소개한 시에 대한 감상이나 시인에 대해 아는 얘기들을 말하고 있지 않다. 마치  시를 읽는다는 것이 “무용하다”라고 말하지 않았냐는 듯 그 말을 다시 새기게끔 한다.

  그러니까 자유연상, 의식의 흐름이 느껴진다. 나 역시도 시를 읽거나 글을 읽다 보면 그것이 말하는 바와는 상관없이 나만의 상상이나 기억 속에 빠지게 되는 일이 있다. 거기에서 가리키는 것과는 상관없이 특정한 이미지, 특정한 단어가 불러일으키는 환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작가의 그런 모습을 자주 만나다 보니 웃음이 나오면서 좀 편안해지는 느낌이 든다고 할까. 그러니까 시를 읽는데 “쫄” 필요가 없다라고 해야 하나.

  막상 작가들의 독서법은 다를 것이라 생각하기에 그들의 글쓰기나 독서법을 궁금해하고 읽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하는 방식은 특별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읽는 것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난 후 너무 나의 방식에 소극적이었구나, 한편 타인의 방식에 너무 민감하구나 생각하게 된다.

  타인의 독서법을 배척할 필요는 없지만 “누구의 방식”에 너무 매몰되어 매달리지 않아도 좋은 것을. 그리고 편안하게 내 식대로 읽어가며 마음을 느끼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정말로 시를 읽는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무용함을 달래주는 것이기도 하다. 인생이 얼마만큼 무용해야 시를 읽을 마음이 들게 될까라는 생각도 조금 하면서 김연수 작가의 말대로 그럼에도 시를 읽고 난 날이면 소설이나 다른 글을 읽은 날들보다 오히려 더 쾌감이 느껴지는 때가 있다. 그런 것 같다. 한뼘쯤 고귀해지는 느낌. 그것은 시어를 되뇌며 조금 더 머언, 머언 시간을 돌아보기 때문인 것 같다. 그것은 급박하고 여유없는 맘을 한번씩 누그러뜨리는 그런 역할을 한다.

  시에 대한 감상평을 보다가 정말로 소리내어 웃은 부분이 있다. 바로 이 부분이다.


어느 날, 텔레비전을 보는데 경주 양동마을 소식을 전하더군요. 기자는 올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그 조용한 시골 마을로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으나, 제대로 된 부대시설과 볼거리가 없어서 대부분 마을만 둘러보고 황급히 발길을 돌린다면서 대책이 시급하다고 진단하더군요. 옛 정취가 고스란히 보존됐다는 이유로 세계문화유산이 된 마을에서 부대시설과 볼거리를 찾는 사람들이라니. 그렇게 고요하고 적적한 마을에 가서도 그리운 사람 하나 떠올리지도 못하고 황급히 발길을 돌려야 하는 사람들이라니. 경주 양동마을은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 대책을 마련하지 않아도 좋겠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대책이 시급한 것은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분들, 정말 대책이 시급합니다. 나라에서는 그리운 사람 하나씩 만들어주세요. p72


  이것은 서안나 시인의 <병산서원에서 보내는 늦은 전언>에 대한 감상이다. 시인은 이 시를 읽으며 경주 양동마을을 떠올린다. 하지만 병산서원은 경북 안동에 있는 곳이다. 이 시를 떠올리며 생각이 나아가 경북 경주의 양동마을로 이어지고 양동마을에 관한 기사를 떠올리고 “그리운 사람 하나씩 만들어 주세요”라는 마지막 글을 읽을 때까지 나는 계속 웃었다. 즐거운 웃음이었다.

  그렇다. 이 책을 다 덮고 나서야 무용하다와 고귀해진다의 말의 의미를 절로 실감하는 중이다. 그리고 김연수 소설가가 시들을 소개하며 적은 감상의 말들이 왜 그렇게 내 ‘갈 길로 가리오'의 형태를 띠는지도 알겠다. 이 책은 비평집이 아니니까. 문학이론 책이 아니니까. 그러니까 일상생활 속에서 시와 함께 하는 방식은 이렇게면 충분하다. 내가 시를 읽다 딴 생각에 빠져도, 그것도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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