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대통령들은 거짓말을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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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 권력을 위한 불온한 정치사史



하워드 진,  김민웅 옮김, 일상이상,  2012.

 

 

 

   33가지.

  하워드 진은 왜 대통령들은 거짓말을 하는가라는 이 책에서 미국 역대 대통령들이 내놓은 잘못된 정책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일들, 또 공산주의라는 이름 속에 갇힌 사고로 인해 벌어지는 일,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장에서 미군들이 보여준 비극적이고 천박한 행동들, 부자들과 권력자들의 이익을 위해 희생당하는 노동자의 역경, 이라크 전쟁을 정당화하려는 부시 대통령, 르윈스키와의 섹스 스캔들로 곤경에 처하자 국민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전쟁을 선택한 클린턴, 2000년 미국 대선 당시에 표심을 잡기 위해 지키지도 못한 약속을 내걸은 대선 후보들의 실체를 파헤친다.

   1980년부터 2010년까지 그가 잡지 ‘The Progressive’에 올렸던 글들을 모은 것으로 이 기간 동안 나타나는 역대 미국 대통령과 수구언론 등 권력층이 벌이는 꼼수들은 하워드 진의 눈을 통해 드러난다. “우리의 정치 지도자들은 왜 거짓말을 하는가?”, “우리는 어떤 나라에서 살기를 원하는가?”, “국가안보란 무엇인가?” 등 국가, 국민 그리고 정치, 정책에 관해 우리가 답답하게 느끼는 부분을 질문하여 그에 대한 그의 생각들을 제시하고 있다. 하워드 진은 결국 자유와 평화와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는 ‘시민’의 힘이 필요함을 이야기한다. 항상 깨어있는 시각으로 기득권, 정치권에 대한 견제가 필요하다고 말이다. 잘못된 정치와 정책을 바꾸어나가기 위한 대안은 보다 시민의 힘이 모아져야 하는 것, 조직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민주주의의 진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워드 진은 촘스키와 더불어 세계적인 실천 지성으로 통한다. 촘스키를 좋아하는 나에게 촘스키와 같이 거론되는 무엇이든 다 관심이 간다. 하워드 진은 뉴욕 시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유대계 이민자로 아버지인 에디 진(Eddie Zinn)은 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 태어나 1차 세계대전 직전에, 어머니인 제니 진(Zenny Zinn)은 동 시베리아의 이르쿠츠크에서 미국으로 이주했다. 이러한 이주민 가정, 하워드 진은 빈민가에서 성장하였다. 그의 부모는 미국에서 만나서 결혼했을 때 제한된 교육만을 받은 상태였고 집에는 책이나 잡지가 하나도 없었다 한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뉴욕 포스트에서 각 권마다 10센트와 쿠폰을 보내 20권의 찰스 디킨스 전집을 마련해줌으로써 아들에게 문학에 대한 시야를 틔워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하워드 진은 토머스 제퍼슨 고등학교에서 시인인 엘리아스 리버만이 세운 창의적인 글쓰기 과정을 통해 작문을 배웠다고 한다.

   하워드 진은 세계적 진보 지식인으로서 알려져 있다. 그것은 그의 생애의 경험에서 발현된 것으로 보인다. 청년 시절에는 해군기지 조선소에서 육체노동을 했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폭격수로 참전하였다가 전쟁에 환멸을 느끼고 반전주의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미국 육군 항공대의 490폭격비행단에서 폭격수로 복무하면서 베를린,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등을 폭격했다고 하며 1945년 4월, 서부 프랑스의 로얀에서 있었던 초기의 네이팜 탄을 사용한 폭격에 참여하였다고 한다.

   이 뿐만 아니라 하워드 진은 미국의 흑인 민권 운동, 베트남 전쟁 반대 등의 평등, 평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이러한 활동은 대학에 몸을 담으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되었다. 자신이 일하고 있던 보수적인 색채의 흑인 대학교인 스펠만 대학교 학생들의 학습권을 위해서도 싸웠다. 흑인들의 투표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앞장섰으며, 백인과의 평등권을 주장하는 흑인 활동가들에 대한 폭력에 항의하기도 하였다. 스펠만 대학교의 학교당국은 이러한 진의 활동을 못마땅하게 여겨 1963년에 종신교수임에도 하워드 진을 해고한다.

   그의 저서에는 그의 이러한 활동과 생각이 정리되어 있다. 그는 생각하고 생각한대로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2010년 1월 27일,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하워드 진의 책을 읽었던가. 뚜렷이 생각나는 책이 없다. 그런데도 그의 이름을 알고 있어 그의 책을 읽은 듯한 착각을 했다. 생각해보니 여러 다른 책들에서 그의 인용문을 많이 봐온 때문이었다. 이것이 한 권을 제대로 읽은 그의 첫 번째 책이다. 잡지에 기고한 글을 묶은 것이라 하는데, 옛날 대통령의 이야기가 많은 이유가 그 때문인 듯하다. 글이 재밌고 편하게 읽힌다. 무엇보다 음모론으로 치부되며 궁금해 할 일들, 역시 대통령이라는, 권력을 가진 이들의 생각은 그렇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생각들을 명확하게 꼽아 내니 읽는 이로 하여금 즐겁게 한다. 풍부한 사료와 자료들과 더불어 날리는 풍자와 해학이 시원하다. 그것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거짓말만 일삼는 자기 이익만 관철하려 애쓰는 기득권에 정치권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제시한다.

   한편으로 이러한 글들은 어디나 똑같은 것 같다. 정치권, 기득권의 행태가 동일한 양상이고 그렇기에 그에 대한 질책 역시 같다. 이 오랜 기간 동안 같은 패턴의 문제에 대해 지적하고 행동을 얘기했는데 여전히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우리는 정녕 책을 읽지 않아서일까. 그래서 이런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일까. 재밌게 책을 읽고서 늘 이렇듯 같은 이야기를 말하는 책들은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데 여전한 ‘시민’과 여전한 ‘사회’는 무엇 때문인가 생각하게끔 된다. 눈에 보이지 않게 조금씩 달라져 왔다라고 말하기엔 빨리 변화는 사회로 인해 그 느림이 미학이 되지 않게 여겨진다. 우리는 알고서 속고 있는 것인가, 속아주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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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

: 청년 김원영의 과감한 사랑과 합당한 분노에 관하여

 

 

    김원영 저, 푸른숲, 2010.

 

    

   장애인인 저자의 삶의 이야기다. 저자는 이 책을 사회과학서로 쓰고 싶었으나 사회과학 에세이로 되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저자가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떻게 ‘장애’를 인식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사회가 ‘장애’와 ‘장애인’에 대해 어떠한 인식을 가져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인 ‘청년’ 김원영은 강원도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1980년대생인 그의 시대에도 장애는 사회적인 편견을 받기에 충분한 ‘재앙’인 이유와 신체적인 이유로 그는 열다섯 살까지 방 안에서만 지냈다. 그의 병명은 수시로 뼈가 부러지는 골형성부전증이다. 그런 그는, 재활원에서 지내다가 많은 노력과 투쟁 끝에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다시 또 그만큼의 노력과 투쟁으로 대학교에 진학한다. 대학에서 그는 인권 운동에 참여하고 인생의 진로를 고민하며 다시 로스쿨에 진학한다.

   수식어를 붙이기 좋아하는 우리네 언론은, 우리 사회는 그에게 ‘장애를 극복한 장애인’이라 칭하며 비장애인도 이루기 힘들다는 서울대학교 진학이나 로스쿨이란 타이틀에 집중한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수식어에 대해 반박하며 ‘장애를 극복했는데 어떻게 장애인일 수 있는가’를 되묻는다. “쿨한 게 아니라 ‘핫한’ 장애인, ‘야한’ 장애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말하는 그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무기력한 세대라 비판받는 세대에게 필요한 것이 분노라고 말하며 함께 하는 삶을 말한다.

   저자의 경험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는 이 책은 단지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추어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일류대에 진학한 외형적인 삶의 성공기가 아니다. 장애인들에게는 나는 이렇게 장애를 극복했다고 말하는, 비장애인에게는 나는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성공했다를 알리는 이야기가 아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그가 깨닫고 느끼고 인식한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이며 ‘사회’가 가져야 할 인식에 대한 물음과 촉구이다.

   분명 그는 개인의 이야기를 말했지만 그것은 저자의 ‘개인적’인 차원의 이야기를 넘어서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보다 자세히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며 장애인이 이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견디어야 하는 그 모든 사회적인 편견과 모욕감의 인식적 측면과 사회 구조적인 차원의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모욕을 ‘쿨하게’ 견디는 힘 이외에 슈퍼 장애인의 또 다른 조건은

과감한 도전과 주눅들지 않는 용기이다.

 

   장애인으로 살아보지 않았다. 그러나 ‘정상’으로 간주되는 ‘이긴 자’ ‘가진 자’의 세상에서 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소외되기는 피차일반. 단지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타인에게 온갖 모욕이 일상화되는 사회에서 특히, 그 일상적 모욕을 받는데 선두주자 격으로 장애인은 치부된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시되고 일상화되기에 그 모욕을 견디기 위해서는 ‘쿨’함을 넘어서는 다른 것들이 필요하다. 저자는 주눅들지 않는 용기라고 말했는데, 저러한 용기를 가지기 위해서는 또 얼마만큼의 노력이 필요할 것인가.

   그렇기에 그가 견딘 모든 모욕을 보여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펼쳐낸 이야기들은 그의 말대로 도전과 주눅들지 않기 위한 활동의 모습이었다. 모든 장애인들이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모든 비장애인 역시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삶이 아니니까. 또한 자본주의 사회, 언제 어떤 사고로 인해 장애를 겪을 지 모를 위험한 사회에서, 우리가 장애인, 비장애인의 구분이 필요치 않은 환경을 만드는 것은 쿨함도 주눅들지 않은 용기를 가져야 되는 인식과 생각의 문제가 아니라 당연한 권리일 것이다.

   저자의 경험이 속속들이 있는 관계로 저자가 주장하는 것에 좀더 설득력이 실린다. 그가 겪은 사회적 모순, 인식, 인간관계들이 잘 버무러져 있다. 문제는 그러다 보니, 저자의 개인사에 더 치중된다는 우려가 있다. 그가 전하는 메시지나, 그가 굳이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며 하는 이야기들이 ‘개인 자신’에게로만 머무를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저 이런 힘들고 어려운 조건을 이겨낸 ‘한 개인’에 대한 동정과 연민, 그리고 칭송으로 마무리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저자의 역할이 있음이니 저자 자신도 이야기한 것처럼, 뭔가 의도와는 다르게 ‘개인의 이야기’로 좀더 치중한 부분이 있는 듯하다. 그 균형을 어떻게 잡았는지는 모르겠으나 갈수록 저자의 개인 스토리가 많이 드러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마무리도 좀 급하게 서두른 느낌도, 감상적인 느낌도 들었다. 그럼에도, 그렇기에 그가 전하는 메시지가 크기도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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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지 마라 - 분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스테판 에설 저, 조민현 옮김, 문학세계사, 2013.



  <분노하라>고 외친 스테판 에셀은 2013년 2월 27일 95세로 타계했다. 이 책은 그가 전하는 유언이다. 저자는 줄곧 분노하라를 통해서 이 시대의 진보를 위해 싸울 것을 권유했다. 그리고 이제 그의 마지막 유언은 그것을 위해 포기하지 마라는 것이다. 물론 변화를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그 노력은 단순히 봉기의 형태가 아니라 ”국가의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경제와 정치에 대한 의욕적인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단지 항의에서만 머물르는 것이 아니라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치에 대한 욕구를 회복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정치없이는 진보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토론을 유발하고 의견을 개진하는 등 정치에 참여하는 다양한 방식들이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구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의 대통령직을 수행했고, 소련의 지배에 대항한 역사적인 반체제 인사이자 인권운동가였던 작가 바츨라프 하벨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 각자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당신이 아무런 힘도 갖지 못할지라도, 당신이 아무런 중요성을 갖고 있지 않을지라도, 우리들 각자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p38


나는 정당에 들어가는 데 지나치게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기존의 정치 세력을 이용할 것을 확신을 가지고 지지한다. 밖에 있는 것보다는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다. 나는 항상 동료들에게 똑같은 말을 한다. 당신들ㄹ이 문제와 싸우기를 원한다면, 세상을 바꾸길 원한다면, 우리들이 속해 있는 민주주의 제도 안에서, 그 일은 정당들의 도움으로 행해져야만 한다고. 비록 그들이 결점을 갖고 있고, 불완전하고, 부족한 점이 많더라도 말이다. p39


  책을 펴면 이러한 문구가 시작을 알린다.


“행복하여라, 율리시즈처럼 멋진 항해를 한 사람은.”

 - 조아생 뒤 벨레


  스테판 에셀은 행복하였을까. 책에서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는 그의 마지막을 알고 있기나 한 것처럼 평온했다고 말한다. 세상을 떠나는 스테판 에셀을 추모하기 위해 수백만의 인파가 자리에 모였고 유엔인권이사회에서도 개인을 위해 공식적으로 묵념행사를 했다.

  끊임없이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고 행동을 촉구하던 스테판 에셀의 마지막 말은, 포기하지 마라였다. 답답하고 지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주저주저하는 때에 그의 마지막 말은, 새로운 출발선에 서는 것처럼 힘을 내게 한다.


 세상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은 죽음의 위험에 놓여 있다. 사회적・경제적 부정으로 또는 환경 파괴로, 또는 이 모든 것을 통해서 소멸될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허락할 수 없다. 우리는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미래를 세우기 위해 건설적인 비전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야망이 필요하다.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와 용기에서 태어나는 야망. 세상 일이 저절로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낙관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 또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의 염세주의에 빠져서도 안 된다. 우리는 야망을 가져야만 한다. 포기하지 마라! p66~67


  경험과 지식의 폭으로 사회참여를 촉구하는 저자의 메시지는 확연히 다르다. 하고픈 말이 정확하고 요구하는 것이 정확하다. 어쩌면 경험과 지식이 뒷받침되지 않은 메시지는, 힘이 없고 중언부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은 명확한 사실에 대한 인지와 그를 바라보는 정확한 판단, 그리고 구현하고픈 의지에 있을 것이다. 겪음을 토대로 하게 되는 이야기와 겪을 지도 모르기에 하는 이야기의 차이를 생각해 보게 한다. 이러한 부분에서는 결국, 한계가 될 수밖에 없다. 같은 메시지를 가지고 있음에도 전달력에도 차이가 나타난다. 구현하는 방법에도 신경을 써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삶의 모든 것에 참고할 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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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 진보를 위하여

- 달라이 라마와 스테판 에셀이 나눈 세기의 대화


달라이 라마・스테판 에셀 저, 임희근 옮김, 돌베개, 2012.


  신자유주의적인 세계 경제 속에서 경제와 정치민주화를 위한 요구가 높은 현실에서 21세기의 진보를 이루기 위한 인간의 정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각자 동서양이라는 지역과 나이, 종교 등 많은 것이 다른 두 사람이 오로지 현시대에서 ‘정신의 진보’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자신의 사상을 토대로, 현실을 토대로 이야기한다.

  이들은 무엇보다 정신의 진보를 이루기 위해서는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을 존중하는 것이 핵심이라 말하고 있다. 과연 인권에 대한 새로운 보편적 가치들이 도출되었는지, 현대 교육의 문제, 민주주의의 문제, 유엔의 개혁문제, 과학과 민주주의 등을 중심 주제로 하여 정신적 진보를 갖추어가기 위한 논의들을 하고 있다.


아는 것이 행동이 되려면 이보다 조금 더 앞서가는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그 ‘무언가’는 성하께서 ‘연민’이라고 적절하게 말씀하신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머리로 생각만 해서는 안 되고, 동시에 연민심으로 행동을 해야 합니다. 어떤 일을 할 때 그것이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혼자서만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남들과 함께, 남들을 위해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부디 남이 잘됐으면 하는 배려로 우리 모두가 연결된다면 그때 우리는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 -스테판 에셀, p26


  달라이 라마가 종교인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자칫 이 이야기는 ‘종교’적인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 아닌가 염려한 것과는 달리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의 삶의 경험을 토대로 높다고 말하면 어색하지만 오래도록 생각해온 정신적인 성숙을 위한 방안을 이야기하기에 숭고함이 더해진다. 어찌 보면 짧은 대화임에도 그들의 생각은 잘 정제되어 있다. 모순되지 않는다. 이러한 생각의 얼개들을 만들어 내고 실행하려 노력하고, 실행해 가고 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다.


 저는 경제발전의 필요성과 인권 존중의 필요성 사이에 어떤 모순도 없다고 봅니다. 문화와 종교의 풍부한 다양성은 어느 공동체에서나 인간의 기본권 강화에 도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다양성의 토대를 이루는 것은 인간 가족의 구성원으로 우리를 이어주는 가치와 열망들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적・문화적 차이는 어떤 경우에도 인권 침해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될 수 없습니다. 다른 인종, 여성, 사회적으로 취약한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을 차별 대우하는 일은 어떤 차이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만약 정당화하는 일이 있다면, 그런 행동은 바뀌어야만 합니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보편적 원칙이 우선되어야만 합니다. 인권의 보편성에 반대하는 것은 주로 권위주의, 전체주의 정권들입니다. 이런 생각에 굴복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일입니다. 오히려 반대로 그런 정권들에게는, 그 나라 사람들에게 장기적으로 또한 좀더 광범하게 보아 이득이 되게끔, 보편적으로 인정받은 원칙들을 준수하고 그 원칙에 따르도록 압력을 가해야 합니다. -달라이 라마, p76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에 점점 더 벌어져만 가는 격차, 이것이 자아내는 고통은 모든 이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단지 고통받는 사람들과 공감하자는 부탁만이 아니라 사회 정의가 바로 설 수 있도록 좀더 많이 참여하자는 부탁도 함께 드립니다.  -달라이 라마, p46


  스테판 에셀의 저작은 메시지의 명료함이 특징이다.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지 않아도 명확한 메시지를 표출한다는 것인데 대담 형태의 책은 일방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것에 비해 타인과의 의견나눔이기에 스테판의 생각의 흐름과 확고한 신념의 세계를 파악할 수 있다.

  동양의 사상가인 달라이 라마와 사회의 진보를 위한 ‘정신’의 진보를 이루기 위한 대담은 오랜 활동을 해온 대가의 논의들이라서인지 관념적으로 흐르지 않고, 실제적인 현실과의 문제를 끄집어내며 전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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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사회 - 쉴 새 없이 접속하고 끊임없이 차단한다


엄기호, 창비, 2014.

  

  한국 사회의 관계 단절, 소통의 불가능이 어떤 양상으로 흐르는지를 파악했다. 우리가 언제 누구와 접속하며 또 언제 누구와는 단절하는지를 파악하면서 소통을 하되 소통을 하고 있지 않은 현 세태에 대해 분석하였다. 저자는 자신의 주변에서나 현장연구를 통해 만나온 사람들이 좀처럼 자신의 속내를 내보이지 않는 모습에 보면서 이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고 사례들을 수집하여 자신의 학위 논문의 주제를 ‘단속’으로 정하고 10여년간의 현장연구를 정리하여 2013년 「‘단절-단속’ 개념을 통해 본 ‘교육적’ 관계의 (불)가능성에 대한 연구」로 문화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의 핵심 키워드를 토대로 한국사회 전반의 사례들을 새롭게 엮어낸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아파트 등 중산층 밀집지역, 노동조합 등 시민사회 등의 현장 연구가 생생한 이 책의 느낌을 살린다.

  먼저 ‘단속’이란 단어를 통해 사람들의 관계맺음의 양상을 설명한다. 단속은 자신과 다른 의견이나 타인의 고통같이 이질적인 것의 침입을 철저히 차단하면서, 동질적인 것이나 취미공동체에는 과도하게 접속하고 의존하는 사회현상을 개념화한 말이다. 즉, 차단하고[斷] 접속한다[續]는 의미의 결합이다. 아울러 타인과의 진실한 만남이나 부딪침을 피하기 위해 거리를 두고 자기를 단속(團束)한다는 의미도 지닌다.


 같고 비슷한 것에는 끊임없이 접속해 있다. 하지만 타인의 고통같이 조금이라도 나와 다른 것은 철저히 차단하고 외면하며 이에 개입하지 않으려 한다. 또한 자기를 ‘단속(團束)’하며 타자와의 관계는 차단하며 동일성에만 머무르며 자기 삶의 연속성조자 끊어져버린 상태, 이것을 나는 ‘단속’이라고 이름붙이고자 한다. p10


  한국사회는 시민 대다수가 자기가 속한 가족, 직장 내에서 소통이 매끄럽지 않음을 호소하는 한편 정작 그 불통의 당사자와는 일대일로 직접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불통 그 자체의 공간이다. 그러면서 그 스트레스를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 또다른 힐링의 공간에서 해소하려 한다. 그러다 보니 현실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누적되며, 현실로 돌아온 사람들은 다시 피로와 무력감에 휩싸이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이처럼 자신과 다른 남의 생각을 도무지 인정하지 못하고 소통에 무력하며 자신과 친밀한 ‘취향의 공동체’에만 기대는 것이 단속사회의 대표적 현상이라고 말한다.


 초조함이 지배적인 감정상태가 된 사회에서 개인들은 자신을 멈추게 하는 다름/차이와 철저히 차단하려 한다. 이런 사회의 특징은 한마디로 ‘이질공포증’이다. 이질공포증 사회에서는 외부의 낯설고 모르는 것의 침입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공동체에 활기를 불러 넣을 수 있는 문제제기도 귀찮아한다. 이런 문제제기는 생동적이고 활기는 있지만 동요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질공포증은 이런 “귀찮은 상호작요에서도 물러나 틀어박히겠다”라는 것이다. 그 결과 (앞서 언급한 것처럼) “다르고 낯선 외래의 ‘타자’를 멀찍이 거리 두려는 노력, 소통하고 조정하고 상호간 충실할 필요를 사전에 없애는 결정”이 사회를 지배한다.

   이질공포증의 사회에서는 나와 같지 않은 것에 대해 불온하다고 생각하며 그것이 자신들이 기껏 구축한 질서를 무너뜨리지 않을까 경계하고 그 차이를 추방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p239


   사회학적인 주제를 인문학적인 특성이 돋보이는 글쓰기와 어우러졌다. 저자의 혜안과 유려한 글쓰기에 감탄하며 읽게 된다. 물론 오랜 시간의 연구와 관찰이 이 글의 맛을 더하였을 것이다. 익숙한 우리 사회의 모습을 글로 표현된 것을 보니 마음을 콕 집어낸 것 같다. sns에 집착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표면적으로가 아니라 통찰한 이 글은 날카로운데 부드러운 느낌이다. 생생한 현장의 사례들을 통해 저자가 분석하고 지적하는 문제들에 공감하며 또한 그가 제시하는 대안에 수긍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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