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속사회 - 쉴 새 없이 접속하고 끊임없이 차단한다


엄기호, 창비, 2014.

  

  한국 사회의 관계 단절, 소통의 불가능이 어떤 양상으로 흐르는지를 파악했다. 우리가 언제 누구와 접속하며 또 언제 누구와는 단절하는지를 파악하면서 소통을 하되 소통을 하고 있지 않은 현 세태에 대해 분석하였다. 저자는 자신의 주변에서나 현장연구를 통해 만나온 사람들이 좀처럼 자신의 속내를 내보이지 않는 모습에 보면서 이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고 사례들을 수집하여 자신의 학위 논문의 주제를 ‘단속’으로 정하고 10여년간의 현장연구를 정리하여 2013년 「‘단절-단속’ 개념을 통해 본 ‘교육적’ 관계의 (불)가능성에 대한 연구」로 문화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의 핵심 키워드를 토대로 한국사회 전반의 사례들을 새롭게 엮어낸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아파트 등 중산층 밀집지역, 노동조합 등 시민사회 등의 현장 연구가 생생한 이 책의 느낌을 살린다.

  먼저 ‘단속’이란 단어를 통해 사람들의 관계맺음의 양상을 설명한다. 단속은 자신과 다른 의견이나 타인의 고통같이 이질적인 것의 침입을 철저히 차단하면서, 동질적인 것이나 취미공동체에는 과도하게 접속하고 의존하는 사회현상을 개념화한 말이다. 즉, 차단하고[斷] 접속한다[續]는 의미의 결합이다. 아울러 타인과의 진실한 만남이나 부딪침을 피하기 위해 거리를 두고 자기를 단속(團束)한다는 의미도 지닌다.


 같고 비슷한 것에는 끊임없이 접속해 있다. 하지만 타인의 고통같이 조금이라도 나와 다른 것은 철저히 차단하고 외면하며 이에 개입하지 않으려 한다. 또한 자기를 ‘단속(團束)’하며 타자와의 관계는 차단하며 동일성에만 머무르며 자기 삶의 연속성조자 끊어져버린 상태, 이것을 나는 ‘단속’이라고 이름붙이고자 한다. p10


  한국사회는 시민 대다수가 자기가 속한 가족, 직장 내에서 소통이 매끄럽지 않음을 호소하는 한편 정작 그 불통의 당사자와는 일대일로 직접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불통 그 자체의 공간이다. 그러면서 그 스트레스를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 또다른 힐링의 공간에서 해소하려 한다. 그러다 보니 현실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누적되며, 현실로 돌아온 사람들은 다시 피로와 무력감에 휩싸이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이처럼 자신과 다른 남의 생각을 도무지 인정하지 못하고 소통에 무력하며 자신과 친밀한 ‘취향의 공동체’에만 기대는 것이 단속사회의 대표적 현상이라고 말한다.


 초조함이 지배적인 감정상태가 된 사회에서 개인들은 자신을 멈추게 하는 다름/차이와 철저히 차단하려 한다. 이런 사회의 특징은 한마디로 ‘이질공포증’이다. 이질공포증 사회에서는 외부의 낯설고 모르는 것의 침입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공동체에 활기를 불러 넣을 수 있는 문제제기도 귀찮아한다. 이런 문제제기는 생동적이고 활기는 있지만 동요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질공포증은 이런 “귀찮은 상호작요에서도 물러나 틀어박히겠다”라는 것이다. 그 결과 (앞서 언급한 것처럼) “다르고 낯선 외래의 ‘타자’를 멀찍이 거리 두려는 노력, 소통하고 조정하고 상호간 충실할 필요를 사전에 없애는 결정”이 사회를 지배한다.

   이질공포증의 사회에서는 나와 같지 않은 것에 대해 불온하다고 생각하며 그것이 자신들이 기껏 구축한 질서를 무너뜨리지 않을까 경계하고 그 차이를 추방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p239


   사회학적인 주제를 인문학적인 특성이 돋보이는 글쓰기와 어우러졌다. 저자의 혜안과 유려한 글쓰기에 감탄하며 읽게 된다. 물론 오랜 시간의 연구와 관찰이 이 글의 맛을 더하였을 것이다. 익숙한 우리 사회의 모습을 글로 표현된 것을 보니 마음을 콕 집어낸 것 같다. sns에 집착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표면적으로가 아니라 통찰한 이 글은 날카로운데 부드러운 느낌이다. 생생한 현장의 사례들을 통해 저자가 분석하고 지적하는 문제들에 공감하며 또한 그가 제시하는 대안에 수긍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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