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가 되면.........자리는 있나?


프로페셔널의 조건 - 어떻게 자기 실현을 할 것인가

피터 드러커, 이재규 옮김, 청림출판



  이 책은 개인과 고용기관이 1)지식 노동과 지식 근로자의 본질, 2)핵심적 생산 요소로서의 지식과 지식 근로자가 제공하는 기회의 본질, 3)기본적인 생산 요소가 지식 그리고 지식 근로자로 이동함에 따라 개인과 고용 기관 모두에게 부과되는 요구 사항의 본질을 인식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쓰여졌다. 저자의 말이다.

  총 5부 1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프로페셔널의 조건이란 제목 아래 어떻게 자기실현을 할 것인가?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이를 이해 변화하는 사회에 대해 먼저 서술하고 그 상황에서의 자기 관리를 위한 방법과 지식, 미래를 위한 조언을 제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현대의 근로자들은 ‘지식’근로자임을 강조하며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있다. 저자는 자신이 말하는 ‘지식근로자’가 어떤 형태를 말하는지, 그들이 변화된 사회 속에서 어떠한 특성으로 자기실현을 이뤄가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 내용으로 자신이 직접 체득한 방법들을 경험의 이야기와 함께 실제적인 활용 방법으로 제안하기도 한다.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의 이야기들. 오페라를 관람하고 베르디의 나이를 보고 놀랐던 경험이라던가 슘페터의 일화, 신문사에서의 경험 등등. ‘이야기’가 들어간 부분은 저자에 대해 더 알 수 있는 부분이라 쉽게 와 닿을 수 있었다. 한편으로 저자는 어떤 부분에 ‘강하게 인상을 받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받은 인상이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냈으므로 대단하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어떤 일이나 이야기를 듣고 ‘놀라운 충격’을 받는 경우는 뇌가 ‘놀랍다’, ‘충격적이다’라고 느끼는 것으로도 되는 것인지, 그래서, 그것으로부터 행동의 변화가 있어야 놀라움이 완성이 되는 것인지를 생각해 본다.

 이 책이 나온 것은 2001년이다. 2012년 재출간되었고 2014년에 읽는 이 책은 시간차로 인해 미지근한 느낌이 들었다. 그가 이야기하고 있는 이야기들은 너무나 익숙하게 들어온 이야기들이라 그의 놀라운 통찰과 혜안을 볼 수 있는 이 책에, 나는 특별히 놀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때에 이 책을 읽었다면 보다 집중하며 놀람과 감탄으로 읽었을지 모르겠다만. 여기서 저자가 이 책을 저술한 당시의 상황에서 읽는 것처럼 돌아가 이 책을 바라볼 수는 없었다. 그렇게 되지도 않고 그렇게 할 필요까지야.

  ‘어떻게 자기실현을 할 것인가’라는 부제를 달고 있느니만큼 자기계발서였다. 1장을 읽어 갈 때만 해도 ‘지식’사회의 특성을 지금 상황과 대비해 읽어보는 맛이 있었는데 이후로는 전반적인 자기계발서들이 주장하는 이야기들과 다르지 않은 것을 어쩌랴. 그리고 자기계발서의 특성은 늘 ‘자신의 사례, 경험’을 부분 이야기하고 거기에서 행동적인 지침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결국, 자기계발서의 결론은 ‘행동하라’이고.

 내가 책을 읽는 관점이 이론적인 부분에 더 치중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행동을 하라’라고 주장할 수 있는 밑거름을 만들어주기에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한 점에서 저자가 1장에서 지식사회를 규정하고 이후로 제시하는 부분들은 그럭저럭 자연스러운 연결로 흘러간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후반부로 갈수록 흥미를 잃었다는 점이다. 내가.

  물론 간간히 유럽과 미국을 넘나들며 경험한 저자의 사례들은 재밌게 읽었다. 그 모든 것이 자기계발서가 부추기는 방법의 나열이라는 점에서 저자가 생각한 방법과 내가 생각한 방법이 일치하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만, 지금까지 그것을 해오고 있느냐 아니냐가 차이가 있다. 그러니 모든 자기계발서의 궁극의 목표는 저자들이 제시하는 방법들을 실행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렇다면 이런 실행이 안되는 것은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나는 모든 자기계발서에다가 묻는다. 그것은 나의 문제일뿐이지 책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하면 할 말은 없다.

  또 한가지, 저자는 개인과 조직을 두루뭉실하게 서술하고 있다. 이것을 지식노동자의 환경에서 개인이 어떻게 자기실현을 할 것인가에 관한 것으로 읽어가게 되는데 중간 중간 자꾸 ‘조직’이 끼어든다. 확실한 목소리를 가지고서가 아니라 엉성하다. 왜 자꾸 조직을 끼어 넣는지, 그 엉성하게 이야기하는 ‘조직’을 위한 방법을 분리하여 서술하는 것이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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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까지의 세계 

전통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제레드 다이아몬드 저, 강주헌 역, 김영사, 2013.


 

 

    『어제까지의 세계』는 저자가 남태평양의 뉴기니섬에서 캘리포니아의 실리콘밸리까지 전 세계 곳곳을 탐사하며 어제와 오늘의 세계, 전통과 현대 사회를 비교분석한 책이다. 저자가 이 책에 대한 주제와 이 책의 구성에 대해 소개한 부분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이 책의 주제는 지난 50년간 내 연구의 주된 목표였다. 1964년부터 나는 뉴기니 섬에서 연구를 했다. 그곳에는 중앙 정부도 없고, 법정도 없으며, 우리의 삶의 방식과는 매우 다른 전통 사회의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들은 분쟁을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며, 위험에 대해 다른 태도들을 취하며, 아이들을 다른 방식으로 키우며, 노인들을 다르게 대우하며, 건강을 대하는 태도 또한 매우 달랐다. 그 방식들 중 어떤 것들은 나를 소름끼치게 했다. 그러나 그것들 중 어떤 것들은 매우 훌륭했다. 이 책은 내가 뉴기니에서 나의 친구들에게 배운 것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오늘보다 더 나은 삶의 방식을 찾기 위한 내 연구의 해답이 그곳에 있었다.”


  이 책은 5부 11장으로 구성되고 에필로그가 더해졌다. 1부는 1장으로만 이루어지며, 전통 사회가 어떻게 공간을 분할하는지 설명함으로써 뒤에서 다루어지는 주제들의 기초적인 발판을 놓는다.

  2부는 2~4장으로 이루어지며 분쟁 해결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중앙집권화된 국가 정부와 사법제도가 없기 때문에 소규모 전통사회들은 두 방법 중 하나로 분쟁을 해결한다. 국가 형태를 띤 사회의 분쟁 해결 방법에 비하여 하나는 더 타협적이고 다른 하나는 더 폭력적이다.

  3부는 5장과 6장으로 구성되며 인간의 생명주기에서 양극단에 위치한 어린시절(5장)과 노년(6장)이 다루어진다. 전통 사회의 양육방식은 대부분의 국가 사회에서 용납되는 수준보다 억압적인 관습을 지닌 사회부터 다소 방임적인 관습을 지닌 사회까지 무척 다양하다. 하지만 전통 사회의 양육법을 조사한 자료들에서 자주 언급되는 관습들이 있다. 노인의 대우에 대해 살펴보면, 일부 전통 사회, 특히 유목 사회 혹은 가혹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회는 노인을 등한시하거나 버리고, 심지어 죽이기도 한다. 반면에 서구화된 사회보다 노인에게 더 만족스럽고 생산적 삶을 제공하는 전통 사회도 있다.

  4부는 7장과 8장으로 이루어지고, 여기에서는 위험과 그에 대한 반응이 다루어진다. 7장에서는 저자가 뉴기니에서 실제로 겪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세 가지 위험한 경험이 소개되고, 아울러 전통 사회의 구성원들에게는 일반적인 마음가짐으로부터 배운 교훈을 더붙인다.

  5부에서는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현시대에 들어 급속히 변하는 세가지 주제인 종교, 언어의 다양성, 건강이 차례로 다루어진다. 에필로그에서는 프롤로그를 시작했던 공항에서의 감정적인 회상을 기술했다.

  마지막 5부, 10장에서는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만 현시대에 들어 급속히 변하는 주제인 언어의 다양성을 다루고 있다. 세계의 언어가 왜 다양한 특징을 가지는가, 그리고 다중언어와 이중언어, 단일언어 들에 대해 살퍄보고 있다. 무엇보다 저자는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소멸해가는 소수언어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의 언어가 소멸되는 것이 당연하가를 묻고 있다. 이중언어 사용이 필요하고 그것이 인간에게, 뇌에 미치는 영향이 있다 한들 소수민족만이 사용하는 언어라는 이유로 그것의 효용성이나 필요성을 매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언어는 그들의 생활방식이고 사고방식이다. 인간의 언어는 단순한 소통을 넘어서는 부분이다. 이런 언어가 세계의 빠른 흐름을 위해 편리에 의해 사라져야 한다는 것은 누구를 위한 논리인가.

  그가 접근하는 전통사회의, 소수민족의 언어에 대한 논의는 언어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입장에서, 소수(?)언어가 되어 내 모국어가 사라질까봐 염려스러운 나의 마음을 불질러 놓는다.


  이 책의 결론은 단순하다. 미래의 삶을 지속가능한 가치를 찾아 가기 위한 방법을 전통 사회의 가치에서 찾는다. 한마디로 어제의 세계 속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이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저자는 그가 직접 체험한 원주민들의 삶의 이야기를 꺼내든다. 사례가 들어간 이야기는 조금 더 설득력을 가지게 되고 또한 호기심을 가지게 한다.

  저자는 자신이 가본 전통사회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는 듯이 보이나 그 애정을 맹목적으로 바라보지는 않는다. 그 세계에 대한 자신의 주관과 객관을 적절하게 버무리고 있다. 그리하여 맹목적인 전통 사회의 동경을 주고 있진 않다. 또한 전통 사회를 낭만으로 바라볼 것이 아님을 경고하는 것도 있지 않고 있다.

  방대한 분량에 비해 책은 속도감 있게 읽힌다. 그러면서도 뭔가 부족하고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있다. 이야기가 모지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전통 사회의 이야기들도 생각보다 작게 버무러져 있다. 보다 알지 못한 전통 사회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저자는 자시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속에 적절하게 끌어다 사례를 소개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저자가 경험한 세계에 대한 맹목적인 이야기가 되지 않고 저자가 주장하는 가치를 설명하기 위한 소재의 예로 녹여들 뿐이다. 그 지점이 감칠맛 난다.

  그런데 우리가 미래 사회 속에서 좀더 숙고하기 위한 가치를 전통 사회 속에서 찾아내는데 그가 정리하고 있는 이야기의 목차는 왜 이런가 하는 의문을 들게 했다. 물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니까 싶지만 그 구성이 용두사미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인가. 각 장이 독립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전체적인 맥락에서 이야기의 흐름이 좀 어색하다. 삶의 방식의 문제의 중요성이 자의적이긴 하지만, 저자가 바라보는 중요성과 내가 바라보는 중요성이 차이가 있다. 왜 저자는 하필 이런 것들을 뽑았을까, 의문이 든다. 그리고 필요하고 중요한 이야기가 빠진 듯한 느낌도 든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맥락을 사회적인 가치와 내면적인 가치, 가족적인 부분 등으로 정리가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저자 스스로도 이야기했듯이 얘기를 하자면 2천 페이지가 넘을 거고 그러면 아무도 안 읽을 거라서 추렸다고 했는데 그가 인류에게 필요한 핵심적인 가치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더 열거되어 제대로 정리가 되었으면 한다. 4장의 위험과 대처라는 부분 역시도 전쟁의 위험, 건강의 위험 이런 부분들과 엮일 수도 있다. 내용의 초점을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논의의 전개가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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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하고 앉아 있네


 생각한다는 것 고병권 선생님의 철학 이야기

 고병권, 너머학교, 2010.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거나 예상치 못한 난관에 허덕일 때, 그도 저도 아닌 어느 날 한없이 감상에 빠지는 때가 있다. 그때의 말들이나 생각들이 어떤 이야기를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어쩌면 옆에 소주병도 소주를 같이 마실 사람도 같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꼭 듣게 되는 말이 있다.

  “철학하고 앉아 있네!”

  철학하고 있다는 건 뭘까. 핀잔과 함께 듣는 이야기라면,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였거나 아니면 철학이란 것이 별로 좋은 것이 아니거나......술자리에 고추장이 함께 있었다면 저런 핀잔 말고 이런 얘기를 해주셨을 것이다.


철학을 공부하는 것은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는 거랍니다. 그것도 야구처럼 직접 몸과 마음을 모두 써서요.

철학을 하면 뭐가 좋을까요? 철학을 하면 잘 살 수 있답니다. 잘 살기 위한 기술, 그게 바로 철학이에요.


  끊임없이 잘 살기 위해 버둥거리고 있으니 우리는 지금, 모두 철학하고 있는 걸까? 하루하루 이렇게 또는 저렇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며 살아가는데, 그 생각에 반응하는 이의 말에 따라 나의 생각도 정의되는 것일까.


  고추장은 생각한다는 것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 쉽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의심해 보는 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혼자의 힘으로 ‘다른 생각’, ‘다른 삶’을 만들어 내기가 어렵다고 그러니 철학이라는 공부가 필요하다고. 그것이 우리를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어 준다고. 편견이나 습관, 통념에서 벗어나는 순간에 우리는 자유를 느낀다고.

  이제 나도 술을 먹다가 내리는 비를 보다가 길을 걷다가 어느 때라도 생각에 잠기어 갈 때 “철학하고 앉아 있네”라는 소리를 들어도 기죽지 않고, 멋쩍어 지지 않고, 내 생각의 속도를 만들어 갈 수 있는 방안을 찾게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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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분 동안 간직한 내 재능은 뭘까


 열정과 기질 

지성인들의 삶에서 밝혀낸 창조성의 조건 Creating Minds


하워드 가드너 지음, 문용린 감역, 임재서 옮김, 북스넛, 2004.


  열정과 기질은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창조성’에 관한 이야기를 7명의 인물을 다루며 풀어 가고 있다. 저자는 일단 우리시대 강력한 영향을 미친 역사적 인물 7명을 찾아낸다. 저자는 이들 7명에게서 창조 행위에 담긴 여러 특성을 이해하며 그들의 창조적 업적을 뒷받침하는 토대를 이해함으로써 창조성의 유형을 찾는 형식으로 글을 구성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세가지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첫째, 7명이 살았던 세계를 들여다보며 그들의 지적능력과 성품과 더불어 그들이 처한 사회적 환경에서의 그들이 성취한 업적을 살펴보고자 한다는 것이다. 둘째, 창조적 행위의 본질에 관해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이를 통해 특정한 성품과 조건이 20세기 창조적 인물들의 일반적 특징이며 어느 정도 공통점이 존재한다는 근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셋째, 현대 시대에 대한 저자 나름의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 아래 저자는 제1부에서 창조성이 어떻게 길러지는가라는 제목 하에 책의 목표와 구성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주요 내용이 되는 제2부에서는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프로이트, 아인슈타인, 피카소, 스트라빈스키, 엘리엇, 그레이엄, 간디 7명의 어린 시절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의 사건과 사람들 속에서 그들이 이루어낸 작업을 살펴본다. 특히 프로이트에서는 그가 고독한 탐구자로 출발하여 절친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고 나아가 새로 탄생한 분야에 소속된 구성원들과 상호작용을 하게 된 변화의 궤적을 풀어내는 것이 중점이다. 아인슈타인에 관해서는 그가 유년기의 개념 세계로의 회귀에서 그의 이론을 도출하였다는 관점을 견지하며 그에 관해 중점으로 다루고 있다. 피카소에 대해선 유년기의 비상한 재능에 중점을 두어 살펴보고 있다. 스트라빈스키에 관해서는 그의 음악적인 창조활동과 관련하여 그가 예술 공연을 기획하고 무대에 올리고 그 성과를 비평가들이 검토하는 과정에 스며 있는 정치적 요소를 중점을 두고 살펴보고 있다. 엘리엇은 현대의 창조적 인물이 지니는 경계성을 고려하며 살펴보고 있다. 그레이엄은 남성 위주의 창조 세계에서 활약한 여성이라는 점과 그녀 자신이 철저히 미국인으로서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에게서 영감을 얻은 점을 중점으로 살펴보고 있다. 간디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 인물로 그의 인간관계적 측면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제3부는 창저성의 조건으로 연구자들의 사례를 통해 도출한 창조적 도약의 특징을 설명하고 특정한 개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뛰어넘어 한 시대에도 유용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가에 대한 쟁점에 관해 다루고 있다.


 에드가 바레즈가 했다는 말.

“모든 사람이 재능을 타고 나지만, 대부분은 겨우 몇 분 동안만 그 재능을 간직한다.”

 마사 그레이엄의 이야기 중에 나오는 부분이다. 깊이 와 꽂히는 말이다.


 전체적으로 인물평이나 인물의 생애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정리를 하고 있어 감동적이었다는 느낌보다는 이 사람이 이랬어?라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런 일도 있었군 하면서 각 인물들의 생애를 곱씹는 맛이 좋았다. 내용의 전개가 전반적으로 비슷했기에 어떤 특정한 부분을 고른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것은 아마도 특정 인물의 생애에 대한 연민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할 뿐이다.

 저자가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이들 창조적인 인물들의 파우스트적 거래 이야기는 흥미롭게 다가왔다. 물론 그뿐만 아니라 이들의 생애와 업적을 통해 저자가 결론내리는 창조성의 조건들은 재미있는 견해라고 생각들었다. 물론 공감되는 부분도 적잖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통상 알고 있는 이야기와 다른 것이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것을 논리적으로 이끌어냈다는 것이 아마도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긴 할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은 왜 열정과 기질일까. 창조성은 열정과 기질에 의해 좌우된다는 생각 때문일까. 처음 시작할 때 무심히 넘어갔던 제목을 다시 되짚어 보면서 제목이 본문의 내용과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열정과 기질이란 단어에서 느껴지는 의미를 무의식적으로 찾고 있었다는 얘기다. 굳이 끌어다 붙이면 되겠다 싶었지만 원저가 CREATIVE MIND (창조적 마인드)임을 확인하고 나의 공허한 노력에 헛웃음이 났다.

  열정과 기질이 번역과정에서 출판사의 입장에서 바뀐 제목으로 보인다. 그러나 열정과 기질이란 제목이 더욱 책이 판매에는 도움이 되었을지언정, 저자가 원래 지은 제목과의 매치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나의 생각은 그렇다. 아예 처음부터 Creative Mind(알았어야 했다. 이것을 놓친 것은 나의 책임이다. 사실 읽으면서 무심히 넘겼다는 것이 맞다.)라는 제목이었다면 나의 생각은 보다 그에 맞는 입장으로 책을 읽어나갔을 것으로 본다. 각 인물들의 창조성의 조건과 특질들을 찾아내는 것 말이다. 물론 그것이 바로 각 인물들의 열정과 기질에서 기인한다라고 말한다면~할말은 없다. 그러나 열정과 기질이란 좀더 다른 관점의 이야기를 요구한다. 이를테면 기질이 무엇인가라는 개념정의부터 말이다. 기질의 종류는 무엇이며 기질이란 것이 인간에게 함의하는 것은 무언가라든가.

  어쩌면 이러한 제목에 대한 트집은 글에 대한 보완점을 찾을 길 없는 나의 하릴없는 목소리일지도 모른다. 창조성에 대하여 글을 쓰겠다 하고 7명을 통해 그것을 추론해 내는 저자의 논리나 전반적인 부분에 딱히 반박할 수 없다. 인물들에 대해 내가 정통한 것도 아니고 그들에 대핸 피상적 이해로 인해 저자가 주장하는 사례를 통해 아, 그런가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창조적인 인물이 왜 이들 7명을 다루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려고 해도 서문에서 저자는 이에 대한 설명을 해 놓음으로써 나의 질문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가 창조적 마인드를 쓰기 위해 기본적 개념을 생각하고 이 7명을 선택한 것인지, 정말로 7명을 선택하고 난 이후에야 창조적인 특질들을 찾아낸 것인지가 계속 의문으로 남는다. 그렇다면 다른 인물들을 찾아내어 이와 같은 방식으로 논의를 전개해나간다면 창조성의 특질은 달라질 것인가? 나는 그 의문만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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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혐오가 지향하는 것은 그것이었네


여성 혐오가 어쨌다구?- 벌거벗은 말들의 세계


윤보라·임옥희·희진·시우·루인·나라, 현실문화, 2015.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확산되고 있는 대표적인 감정이 여성혐오다. 그럴 만하기 때문에 여성을 혐오한다는 생각은 일견 타당해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럴 만하다는 내용은 무엇인가. 한국의 여성들-혐오 언어의 대표적인 김치녀-이 이기적이고 남성을 이용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이에 대해 윤보라는 그것은 비난과 혐오의 이유가 아니라 비난받아 마땅한 여성의 유형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남성도 이기적이고 여성을 이용하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것은 성별 구분없이 비난받을 충분한 이유가 되는 유형들인 것이다. 그런데도 왜 특정한 유형의 여성이 아니라 여성 전체에 대한 혐오의 언어를 자랑스러이 떠벌이는 것일까?


1960~1970년대 유명 잡지들은 미혼 여성의 직장 생활을 두고 ’결혼 전 즐겁게 놀기 위한 자금과 친구를 얻기 위한 것‘, ’사치와 낭비, 퇴폐로 빠지는 지름길‘이라고 비난했다. 언뜻 보기에 사치와 낭비는 미혼 여성의 직장 생활을 비난하는 이유로 비춰지지만, 진짜 이유는 “사회가 여성들의 경제사회적 활동을 통제할 능력을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그 두려움이 ’사치하고 낭비하기 위해 일터에 놀러 나온 미혼 직장 여성‘이라는 유형을 만들어낸다.


  이 예를 보면 언뜻 생각나는 것이 있다. 남성의 군가산점제도 폐지 이후로 여성의 혐오가 확산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여성가족부 폐지 주장과 함께. 그렇다면 이 역시도 경쟁사회에서 기득권처럼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 남성들의 두려움의 표현인 걸까. 이에 대해 윤보라는 “최근의 ‘여성 혐오’ 현상이 높은 청년 실업률이나 신자유주의의 확산에 의한 남성의 좌절에 의한 것이라는 결론은 섣부른 단정이다.라고 함으로써 최근의 여성혐오에 또다른 특성이 있음을 말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왜 혐오를 만들어내는가?


 '나쁜 여자와' '착한 여자'라는 판본을 만들어내고 각 사회 주체들을 배치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첨예한 젠더 정치가 된다. 여성에 대한 혐오와 비난은 나쁜 여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여성을 참조해 사회적 필요에 따라 재구성되는 것이다. p16


 일단, 여성혐오는 이처럼 사회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다. 지금, 도대체 어떤 필요가 그들로 하여금 여성을 혐오하는 것을 당연하게 만들었는가. 안타깝게도 여성혐오는 유머와 드립으로 그것을 포장하며 방패막이로 삼고 있기에 문제제기가 쉽지 않다. 그런 이유로 ‘미러링’이라는 형태의 여성혐오에 대한 반대 담론의 장으로서의 남성 혐오가 등장했을 것이다. 미러링은 새로운 담론이라 하겠지만 도저히 답이 없는 것에 대한 지침의 한 형태로 느껴지기도 한다. 더 이상 그 어떤 도덕과 올바른 개념으로서의 논의가 이뤄지지 않는 벽에 대한 답답함. 그래서 결과적으로 계속 혐오의 언어만을 양산하고 있는 상황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윤보라는 아직 그 답을 모른다고 했다. 왜 웃음으로 포장한 채로 혐오할 여성을 강박적으로 만들어내는지, 그래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어떻게 하려는지. 그래서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혐오의 언어를 계속하고자 하는 것은 임옥희의 말처럼 그들이 연대가 필요해서일까. 아니면 마사 너스바움의 표현처럼 그들 자신의 취약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일까.


 '우리‘는 미담에도 설득되지만, ’그 인간 왜 그래‘로 시작하는 험담과 뒷담화로 연대한다. p54


혐오 발언 안에는 주목을 통해 자신이 행위 주체임을 인정받으려는 '주체화의 열정'이 들어 있다. 무기력하고 무의미한 삶에서 주목받을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혐오는 격렬한 열정 중 하나다. p56


  임옥희는 이러한 혐오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결국은 사회적 ‘평등’과 분배적 ‘정의’라고 주장하며 폭력과 혐오를 줄여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여성은 육체로, 남성은 정신으로 구별 짓고 자기 안의 타자를 억압한 흔적을 젠더 무의식이라고 하는데 젠더 무의식을 활용하는 가부장적 정치체를 함께 변혁시키지 않는 한 혐오 주체들은 끊임없이 생산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여성은 남성뿐만 아니라 국가에 의해서도 수시로 ‘혐오’의 대상이 되어 버릴 것이라고. 그렇다고 여성 혐오에 기죽지 말자고 말한다. 왜냐, 혐오는 깊은 공포와 매혹의 또 다른 표현일 수 있으니까.

  정희진은 한국사회는 여성 혐오, 약자 혐오, 피해자 혐오에 대해 유독 관대하다고 말한다. 여성 문제, 성별 제도에 대한 지식은 정치의 영역으로 간주되지 않는 사소한 문제로 치부하며 장애, 성별, 이성애 제도에 대한 지식도 없다.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무지’가 문제다. 인식의 변화는 설득과 대화로 되는 것이 아니므로 사회적 권력관계가 변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그들이 알아서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거나 혐오 발화를 중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시우는 남성피해자론과 역차별 주장을 분석하며 “남성 동성사회성 논의”로 설명한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자면 남성 간 성적 긴장을 제거하고 여성을 매개로 남성 사이의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위해 동성애 혐오와 여성혐오가 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즉 특권적 지위를 재생산하는 남성의 동성사회성이 동성애 혐오와 여성 혐오를 기초로 구성되는 것이다.

  루인은 트랜스젠더퀴어에 대한 시스플레인의 문제점을 말한다. 맨스플레인이 상대방을 여성으로 만드는 행위며 성역할의 반복이자 재확인이라면 시스플레인은 젠더 규범을 강화하고 단속하고 자연화할 뿐 아니라 성역할 반복을 요구하고 재확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이들로 인해 트랜스젠더퀴어는 끊임없는 자기혐오 속에 살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훈계할 수 있다는 권력감, 그리고 이를 통해 트랜스젠더퀴어 정체성의 진위를 가릴 수 있고 진위를 가려줘야 한다는 믿음을 실천할 수 있다는 권력 행위가 문제의 핵심이다. 계속해서 타자를 생산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정당화하고 권력을 확인하는 태도, 그리고 이 태도로 구축되고 이 태도를 재생산하는 사회구조가 논의의 핵심이다. p214


나라는 혐오가 특정 집단을 배척하기 위한 사회적 ‘무기’로서, 정치적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성소수자 혐오가 이에 해당한다. 성소수자 혐오는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이들과 밀접히 연결되어 사회적 약자 일반을 향한 혐오를 용인하고 조장하는 정치를 펼치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의 성소수자 반대 운동도 사회적 위기가 심화되고 복지와 노동조건,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상황에서 성장했다.


오늘날 성소수자 혐오는 사회적 위기의 책임을 소수자에게 전가함으로써 우리가 서로를 미워하면서 각개 생존의 미로에 갇히길 바라는 자들을 위해 복무하고 있다. 성소수자 운동과 시민사회, 진보 진영은 성소수자 혐오의 정치적 구실과 효과를 이해하고 사회 변화의 전망을 함께 만들어나가야 한다. 혐오라는 괴물이 노리는 것은 단지 성소수자, 이주민, 여성, 또 다른 소수 집단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서로 미워하길 바라는 자들은 누구인가. 혐오가 파괴하는 누군가의 존엄은 나의 존엄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이런 질문에 함께 답해야 할 때다. p255


  이 책은 여섯 명의 저자가 여성혐오에 대한 각자의 논의를 전개하고 있는데 논의의 내용은 다양한 형태이더라도 결국 집중적으로 귀결되는 것은 이것이다. 혐오가 어떤 이유로 형태로 야기되었든 그것이 이용되고 있는 방식은 정치적이라는 것이다. 권력구조가 함께 하고 있다. 우리가 이 혐오의 언어를, 정말로 혐오해야 할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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