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근육 트레이너의 말

  김영하 <말하다>


 <보다> <말하다> <읽다> 삼부작의 두 번째 산문집이다. <보다>에서 일상에서의 사회구조와 세밀함을 보았다면 <말하다>는 작가가 지금까지 진행한 인터뷰, 대담, 강연을 모아 엮은 것이다. 1995년에 첫 작품을 발표하며 등단했으니 20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동안 많은 작품을 썼고 많은 곳에서 강연을 했으니만큼 그 많은 말들 중에서 이 책에 담은 내용은 어떤 특별함이 있어 선택한 것일지 기대하게 된다.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작가로서 ‘글쓰기’에 대해 가지는 생각과, 글쓰기의 방법, 문학 등에 관련한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그 때의 강연을 그대로 글로 옮긴 것이 아니라 주제에 맞추어 재정리했다고 한다. 오랜 세월을 글쓰기로 살아온 작가로서 소설가로서의 정체성과 비전에 관한 강연과 질문들이 많았겠다 싶다. 다시 한번, 김영하 작가가 한국에서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많은 작품이 번역된 인기 작가라는 것을 생각한다.

  작가의 강연을 들은 적이 없어 작가의 말투나 몸짓은 모르겠다. 오래 전 TV의 여행프로그램에 나왔던 것은 기억하는데 작가의 말투는 가물가물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이 글들을 그의 말로 전환해 듣기는 실패했다. 음성지원은 멀리고 가고 글을 통해 오히려 작가의 목소리를 상상하며 글을 읽었다. 어쨌든 제목은, <말하다>니까.

  

건강한 개인주의란 타인의 삶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독립적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그 안에서 최대한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라 정의하고 싶습니다. 이때의 즐거움은 소비에 의존하지 않는 즐거움이어야 합니다. 물건을 사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니라 뭔가를 행함으로써 얻어지는 즐거움입니다. 즉, 구매가 아니라 경험에서 얻는 즐거움입니다. p28


  작가는 건강한 개인주의를 위해서는 단단한 내면이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지식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감각과 경험을 통해 완성”되는데 그렇기에 “감성근육”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작가 말하는 감성근육이란 결국 더 많이 깊이 보고, 읽고, 느끼고, 생각하고, 쓰는 일들일 것이다. 자신의 내면으로 더욱 깊이 들어가 감성근육을 키우는 방법으로 어쩌면 글쓰기만한 방법이 있을까. 아마도 작가의 감성근육은 읽고 생각하는 것과 더불어 글쓰기에서 길러지고 있을 것이다.

  작가에게 글쓰기는 자기해방이다. 글을 쓰는 동안 변화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작가는 글을 쓴다는 것이 인간에게 허용된 최후의 자유이자 권리라 외친다. 이러한 생각으로 글쓰기를 하는 작가이기에 다양한 상상력과 독특한 문체로서의 작가의 글을 만날 수 있었던 모양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한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키는 마지막 수단입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압제자들은 글을 쓰는 사람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굴복을 거부하는 자들이니까요. p57.


  그리고 작가가 되는 데는, 글쓰기를 위해서는 ‘책’이라는 것이 필요하다고 그것만이 작가를 만든다고 말한다. 모든 작가가 독자였고 주변 작가들에게도 물어봤더니 그렇다고 했단다. ㅎㅎ. 한 사람을 작가로 만드는 것은 ‘작가가 될 수 없는 백 가지 이유’가 아니라 ‘될 수밖에 없는 한 가지 이유’라고 말하는 작가의 한 가지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김영하가 작가가 될 수밖에 없는 한 가지 이유는 그것이 운명이기 때문일까? 언젠가 어느 글에서 작가가 점을 보았는데 전혀 글과 관련된 일을 하지 않은 때였는데 작가를 언급했다는 글을 본 기억이 난다. 작가는 이렇게 운명적으로 정해지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었더랬다.

  

글을 잘 쓰는 것은 어떤 기술의 문제도 아니고, 기법의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떤 순간에 인간이 고요하게 자기 서재, 아무도 침입해오지 않는 고요한 공간에서 자기 자신을 대면하고 정직하게 쓴 글에는 늘 힘이 있고 매력이 있어요. p121


  지금은 인터넷이 발달하고 개인 블로그나 컨텐츠가 많이 있으니까 재능을 펼칠 여건이 많고 자신의 흥미와 재능을 발견할 기회도 많다. 하지만 예전에는 ‘글’도 그렇고 ‘그림’도 그렇고 어떤 분야의 재능은 꼭 누군가에게 정해진 것처럼 여겼던 것 같다. 그래서 그와 관련된 것을 배워야 하고 그래야만 하는 것이기에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라며 발을 담궈볼 기회도 갖지 않으려 하거나 금세 풀이 죽어 ‘내 길이 아닌가봐요’ 하게 된다.

  하지만 작가가 말하듯 온전히 기술과 기법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전혀 아니다라고는 말 못하겠지만 분명 글쓰기는 작가가 말하듯 ‘감성근육’을 키우면 다가가기 쉬워질 것이다. 아니 감성근육을 키우다 보면 가까이에 다가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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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에서 내리지를 못하네

 

           김영하, <보다>


  

  소설가 김영하의 산문집이다. <보다>, <말하다>, <읽다>의 삼부작 첫 번째다. 작가의 말에서 왜 ‘보다’가 제일 첫 번째에 있는지 알 수 있다. ‘보는’ 것은 깊이 생각하고, 말하고, 쓰는데 거의 전제와도 같다.


한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데에서 좀더 나아가야 한다. 보고 들은 후에 그것에 대해 쓰거나 말하고, 그 글과 말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직접 접하지 않고서는, 다시 말해, 경험을 정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타자와 대화하지 않는다면, 보고 들은 것은 곧 허공으로 흩어져버린다. 우리는 정보와 영상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많은 사람이 뭔가를 '본다'고 믿지만 우리가 봤다가 믿는 그 무언가는 홍수에 떠내려오는 장롱 문짝처럼 빠르게 흘러가버리고 우리 정신에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제대로 보기 위해서라도 책상 앞에 앉아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내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생각의 가장 훌륭한 도구는 그 생각을 적는 것이다. p208

 

  그래서, 말하고 쓰기 위해서 작가는 무엇을 보았을까. 이 책에서 작가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본다. 일상에서 맞닥뜨린 것에 섞여 사물을 사건을 바라보는 김영하식 시각을 전해준다.

  증가하는 스마트폰 사용과 중독을 작가는 어떻게 볼까. 그는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의 스마트폰 의존도가 높다며 그것은 부자나 권력자에 비해 사회적 약자가 스마트 폰을 받지 않았을 때 ‘타격’이 크기 때문이라 말한다. 그 전화가 ‘중요한 전화’일 수 있으니까. 그렇게 가진 자들이 애플과 삼성과 같은 글로벌 IT기업의 주식을 사며 가난한 이들의 시간까지도 사는 동안 가난한 사람들은 자기 시간을 헌납하며 비싼 스마트폰 값과 사용료를 지불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자본주의의 삶에서 힘의 논리로 감싼 ‘자유’를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세상의 불평등은 진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세상의 불평등 속에서 미래는 있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긍정적이진 않다. 적어도 우리들 아버지들의 미래에 대해선 말이다.

  

386세대로 불리는 이 도덕적 아버지들은 노무현 정권에서 그들 자신의 무능과 직면한 후, 급속하게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가 약속하는 물질의 세계로 전향한다. 때마침 너무나 상징적이게도 여자의 얼굴을 한 박정희가 권좌로 돌아왔다. 그런데도 부자 아빠의 꿈은 요원하기만 하다. 독재자의 딸이 무능해서일수도 있겠지만 시대가 더 이상 아버지의 자리를 용인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부자는커녕 아빠조차 되기 힘들다. 부자 아빠든 가난한 아빠든 이제 아버지의 자리 자체가 없는 것이다. p165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는 주저앉아야 하는가. 암울한 미래가, 자리 자체가 보이지 않는 삶에 대해 순응하고 말아야 하는가. 운명은 앞에서 날아오는 돌이고 숙명은 뒤에서 날아오는 돌이라지만 앞에서 날아오는 돌이라고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p148)기에 삶의 운명도 숙명도 견디어 내는 것, 견디어 가는 것은 힘이 들 수밖에 없다. 맞게 되는 돌이라면 기억해야 하는 것은 이것이다.


우리의 운명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운명예정설 따위를 믿을 게 아니라면 믿을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 우리에게 자기실현적 암시가 꼭 필요한 인생의 순간들이 있다는 것. p154


  그런데, 우리의 운명은 택시 같은 것일까. 버스와의 경쟁에서 힘에 부친 택시업계는 정치권을 압박해 대중교통인정 법안을 국회 본회의에 통과시켰다. 그러나 맞불 버스파업과 함께 대중들이 ‘택시=대중교통’이라는 공식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결정을 내린 택시의 운명은 그렇게 되어 버렸다. 완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로 어영부영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우리의 상황이 정치권에 의해 이렇게도 어영부영한 채 끌려가고 있다.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어떤 결정을 내렸지만 그 삶의 아우라를 무엇이 막고 있다면 크나큰 꿈도 세밀한 꿈도, 아무것도 꿀 수 없게 된다. 결국 삶은 유예되어야 할까.


우리는 모든 문제를 본원적으로 해결하기를 원한다. 세상 모든 문제에 단순하고 명쾌한 해결책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그런 깔끔한 해결책이 없는 영역도 있다. 택시가 그렇다. 택시는 교육이나 정치가 그렇듯이 한 사회의 문제를 그대로 반영한다. 택시는 음주 문화, 육체노동자 천시 풍조, 무질서한 교통, 높은 강력범죄율 같은 문제를 떠안고 있는 우리 사회의 거울이다. 누군가 이걸 간단하고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적어도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p177


  작가는 작은 것에서 큰 것을 두루 보며 자신의 시선을 정리한다. 가벼운 농담과 진중한 고민들 속엔 보지 못한 생각들, 함께 고민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일상의 작은 부분들에 얽힌 사회 구조와 우리의 모습들을 작가의 시선을 통해 보면서 이제 우리가 말해야 할 것들을 새롭게 얻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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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을 불러본다


구본형, 김영사, 2016.



  구본형 선생님의 전작에서 좋은 구절들을 뽑아내는 작업을 할 때만 해도 이 책이 출간될지는 몰랐다. 막상 책으로 출간되어 나온 것을 보니 작업에 참여해서 조금은 뿌듯하다. ‘나에게서 구하라’는 구본형 선생님이 쓴 20여권의 책에서 평소 구본형 선생님이 남긴 메시지에 맞는 구절들을 뽑아 엮은 책이다.

  IMF의 현실에서 조직 속의 나가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의 나의 재능을 펼치고 꿈꾸는 삶을 살아가도록 마음속에 ‘변화’의 열망을 심어주고 그에 따른 노력의 방법들을 실천하며 열과 성을 다해 알린 변화사상가이자, 변화경영시인의 대표적인 글들을 만날 수 있다. 그 덕분에 ‘꿈’을 꿀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열망하고 실제로 꿈을 찾으려 한 많은 이들이 인생의 전환을 맛보았고 인생의 전환을 위해 노력했다. 본의 아니게 백수의 길로 이끄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기도 했을, 구본형의 책들을 읽어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서 또다른 책들을 찾아 읽고 싶어질 것이다.

  하지만, 여기 실린 구절들보다 더 좋은 글들이 다른 책들에 훨씬 많다. 구본형은 ‘변화’라는 주제를 화두로 삼아 글을 썼지만 그 흐름들이 점점 변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의 메시지로서가 아니라 보다 깊어지고 실천적인 방법을 알려 주는 책도 있고 영혼을 각성하게 하는 울림을 주는 글들도 있다. 

  삶과 유리되지 않은 그의 글들은 자신이 몸소 실천한 방법들이라 더욱 신뢰가 간다. 그의 책들은 대체적으로 ‘자기계발’로 분류되지만 구본형의 책은 보통의 자기계발서가 주는 느낌과는 상당히 다르다. 때론 자기계발서로 분류하는 것이 억울할 법도 하다. 그가 전하는 메시지와 그의 문체가 마음을 울리는데 상당히 맑은 느낌이다. 그러면서도 깊다.

  현실과 동떨어진, 구호만 남발하는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그냥 인생을 먼저 겪은 이가 읊조리는 산문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나’에 대해 생각하게끔 한다. 현실을 놓아버리게도 그러면서도 놓아버리지 못하게도 만드는 힘이 있다. 한마디로 현실과 이상에 대한 균형을 잘 잡을 수 있도록 이끈다. 마냥 충동적이게 하지 않으며 진중하고 깊이 인생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보게 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직접 걸었던 길이다. 그런 면에서 ‘나에게서 구하라’는 책의 제목은 참으로 어울린다.


당신의 이름을 가만히 불러보고, 그 이름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문해보라. 당신은 스스로를 좋아하는가? 아니라면 지금 당장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욕망을 찾아 떠나라. 당신의 미래가 복제된 작은 도토리를 심어라. 그리고 하루에 두 시간은 이 꿈을 키우기 위해 써라. 밥 한 그릇과 옷 몇 벌을 사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시간을 파는 것은 노예다. 결국 다른 사람이 만들어준 삶을 살며, 언제나 상황의 희생자일 뿐이다. 세상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을 때, 우리는 행복하다. 욕망에 솔직해져야 한다. 그리고 오직 하나의 욕망에 평생을 걸어야 한다. 선택은 다른 것을 버린다는 것이다. 선택된 욕망에 모든 것을 내주어라. 사랑해줘라. 그때 비로소 자신의 삶을 규정할 수 있다.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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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주르, 사랑하고픈 나의 조국


봉주르, 뚜르 제1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이 책을 읽었을 때 나의 놀람은, 호기심이 아니라 분명 놀람은, 변화였다. 아, 세상이 변하긴 했구나라는 것이었다.

  문득 달력을 보다 엊그제가 6.25였음을 알았다. 보지않고 듣지 않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유월의 25일에 대해 관련 다큐나 기사, 뉴스들을 접하지 못한 것 같다. 분명 어느 때고 듣지 않고 보지 않으려 해도 들리고 보게 되던 때가 있었던 것을 보면 분명 내가 익숙해졌거나 기사들이 예년에 비해 덜했거나 한 것 같다.

  내 학창시절을 돌아보면 호국 보훈의 달이면 보훈과 관련한 독후감 쓰기, 그림그리기, 글짓기 대회 등이 열렸고 방학이면 주어진 주제에 따른 스크랩하기 같은 것이 있었다. 6.25 때의 사진이 가득찬 사진집이 방학과제용으로 따로 나오기도 했다. 그때에 읽어야 했던 책들은 북한 주민들은 모두 해골과 같은 모습에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책은 어쩌다 남한의 병원에 입원하게 된 기자가 병원식을 보고 자신을 위해 일부러 고급 음식을 내오는 것이 아닌지 놀라는 대목이 나온다. 기껏해야 된장을 푼 배춧국의 최고의 식사로 살아가는 북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점점 남한에 놀라고 동화되는.

  그런 식이었다. 읽었고 읽어야 했던 북한이 소재가 된 동화들은 어김없이 남한의 자유와 경제를 찬양했고 북한의 억압과 가난을 세세히 묘사했다. 개인의 성격마저도 북한 사람들은 포악한 것으로 묘사되었고 책에선 반공, 반공이 떠나지 않았다. 북한군인들에 의해 처참히 살해된 시신들이 늘어선 사진을 스크랩하며 반공과 멸공과 남한의 사상을 찬미하는 사진첩에서 사진을 오려 하얀 스케치북에 옮기며 ‘아, 잊지 말자 6.25!’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그대로 따라 써야 했던 내 어린 시절의 숙제들. 그런 책들만 읽고 그렇게 세뇌당하며 보내야 했던 나의 유년과 학창시절에 안타까움을 표한다. 지금은 아닐까. 더러 접하는 소식들에 의하면 지금도 여전한 부분은 있다.

  어쨌든 ‘봉주르, 뚜르’ 같은 책이 나왔고 이 책을 볼 수 있다는 게 좋다. 한국 사람이 프랑스에 관한 어떤 이야기를 썼을까를 상상했는데 분단에 관한 이야기를 맞닥뜨릴 줄 몰랐다. 그리고 어릴 적 숙제로 만나야 했던 호국보훈용 책의 서술과 결말이 아니라서 좋았다. 소년의 호기심으로 이야기를 밀고 나가며 추리의 형식으로 풀어 나간 것, 소년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분단 현실을 잘 다룬 것 같다. 그러면서도 이 이야기의 무대가 ‘프랑스’인 것이 마구 마구 공감이 되었다. 현재의 우리나라에서라면 북한 어린이를 만난다는 것이 쉬울 리도 없고 어른들의 등쌀에 교류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상하고 안타깝게도 제3국에서 두 어린이의 교류가 있는 이야기가 더 ‘안전하다’라고 느꼈다. 무엇에 대한 안전인지는 모르겠지만.........

  슬프고 먹먹함이 있었다. 인간의 감정을 제어하게 만드는 이 모든 사회구조. 그것을 뛰어넘는 봉주와 토시의 우정. 동화에 맞게 어른들이 떠드는 이념과 시선이 아니라 아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어서, 제3세계를 빌어 또 다른 눈으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프랑스 뚜르라는 공간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일어난 일이라는 생각과 그래서 더 환상같기도 한 느낌이 교차되었다.

  분단과 이민의 문제를 정치적인 것을 떠나 일상에, 사람의 마음에 파고드는 문제로 환기시키는 책이었다. 희멀건 배춧국이 아닌 소고기국을 주는 병원이 있어 잘 사는, 좋은 나라 대한민국이 아니라 의미있는 풍자에 다시 한번 생각을 가다듬고 허례와 같은 의식을 강조하지 않는 ‘사랑하는 나의 조국’을 만나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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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라 감당해낼 수 있는 잔혹함은 없다

  

 

 국수경 엮음, 2011.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버거운, 일상에서 도피하고픈 어른을 위한 것은 무엇이기에.

  어른을 위한 잔혹동화라는 제목은 그림형제의 동화에도 자주 붙이는 수식어다. 그림형제의 동화자체가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했고 그들 또안 여러 버전을 만들어 출판했다고도 이야기한다.

  이 책은 수많은 동화들에서 뽑아내어 엮은 책이다. 그래서 저자가 아니라 엮은이가 된다. 그 동화는 익숙한 내용이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다. ‘잔혹’보다는 외설적이고 더 역겹다고 느껴진다. 이러한 형태로 이 책을 엮은 의도가 뭘까. 많은 분량을 담고 있지 않기에 이 책이 재빨리 읽히지만 읽고 나서도 재빨리 읽은 만큼의 감흥도 느끼지 못했다. 재밌다는 느낌도 놀랍다는 느낌도 정말 무시무시할 정도로 끔찍해라는 느낌도. 정확하게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 정확하다.

   먼저 그림형제의 전집을 읽은 탓도 있고 이야기의 끝에 붙여진 ‘교훈?’ 때문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여러 동화들을 뽑아내어 이야기의 서술을 달리 하면서  차별점을 이 한줄의 교훈에 둔 듯하다. 하지만 이 교훈 때문에 오히려 나는 이 책이 가진 장점이 감해지는 것으로 보인다. 굳이 장점도 없다고 느껴지지만.

  예를 들어 이런 형태다. 백설공주 이야기에서는 “백설공주는 난쟁이들의 잠자리 시중을 들면서 이 집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금새 침실 기술에 능숙해졌습니다. 이렇게 해서 난쟁이들과 백설공주는 즐거운 나날들을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핵심은 “어리석은 인간은 행복해질 수 없다”라는 것. 개구리 왕자에선 어떤 교훈을 얻을 것인가. 참사랑은 추한 것을 사랑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말하며 엄지공주로 알려진 엄지둥이의 사랑에서는 Small은 Beautiful이 아니라고 외친다. 신밧드의 모험에서 이끌어낸 한 줄은 또 어떤가. 세월이 흐르면 여자는 마귀로 변한다라는 것이다.

  엮은이의 한줄 교훈이 와 닿고 재밌기보다는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것에서 굳이 나쁜 이야기를 읽고 나서 점잖떠는 듯한 느낌도 받게 된다. 화장실에서 보는 낙서같기도 하고 도색 잡지류에서나 봄직하기도 하고 외설싸이트에나 올려져 하하, 호호, 낄낄거리기 위한 말같기도 하다. 어디에서든 인생의 깨달음을 얻을 사람은 얻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 어떤 책들을 들이밀어도 깨달음이나 가슴치는 반성을 하지 못한다. 나쁜 짓을 하다가 누군가에게 들켜 강제로 난 이렇게 반성을 합니다를 급하게 외친 듯한 이 한줄 평들.

  이러한 교훈을 얻기 위해 이 책을 읽었을까. 어른을 위한 잔혹동화라는 말도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어른이라고 ‘잔혹을 감당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해보면 안다. 위트도 아닌 설렁한 교훈 한 줄이 쓰여 있다고 해서 이 책이 인생의 교훈을 알려주는 책이 될 수 없듯이 어른들에게 쓸데없이 교훈을 들이밀지 말라. 온갖 나쁜 것들을 습득하게 하고 억지 깨달음을 주입시키지 말라. 잔혹함에 익숙해지면 어줍짢은 교훈의 말같은 것은 일찌감치 사라져 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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