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주르, 사랑하고픈 나의 조국
봉주르, 뚜르 제1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이 책을 읽었을 때 나의 놀람은, 호기심이 아니라 분명 놀람은, 변화였다. 아, 세상이 변하긴 했구나라는 것이었다.
문득 달력을 보다 엊그제가 6.25였음을 알았다. 보지않고 듣지 않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유월의 25일에 대해 관련 다큐나 기사, 뉴스들을 접하지 못한 것 같다. 분명 어느 때고 듣지 않고 보지 않으려 해도 들리고 보게 되던 때가 있었던 것을 보면 분명 내가 익숙해졌거나 기사들이 예년에 비해 덜했거나 한 것 같다.
내 학창시절을 돌아보면 호국 보훈의 달이면 보훈과 관련한 독후감 쓰기, 그림그리기, 글짓기 대회 등이 열렸고 방학이면 주어진 주제에 따른 스크랩하기 같은 것이 있었다. 6.25 때의 사진이 가득찬 사진집이 방학과제용으로 따로 나오기도 했다. 그때에 읽어야 했던 책들은 북한 주민들은 모두 해골과 같은 모습에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책은 어쩌다 남한의 병원에 입원하게 된 기자가 병원식을 보고 자신을 위해 일부러 고급 음식을 내오는 것이 아닌지 놀라는 대목이 나온다. 기껏해야 된장을 푼 배춧국의 최고의 식사로 살아가는 북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점점 남한에 놀라고 동화되는.
그런 식이었다. 읽었고 읽어야 했던 북한이 소재가 된 동화들은 어김없이 남한의 자유와 경제를 찬양했고 북한의 억압과 가난을 세세히 묘사했다. 개인의 성격마저도 북한 사람들은 포악한 것으로 묘사되었고 책에선 반공, 반공이 떠나지 않았다. 북한군인들에 의해 처참히 살해된 시신들이 늘어선 사진을 스크랩하며 반공과 멸공과 남한의 사상을 찬미하는 사진첩에서 사진을 오려 하얀 스케치북에 옮기며 ‘아, 잊지 말자 6.25!’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그대로 따라 써야 했던 내 어린 시절의 숙제들. 그런 책들만 읽고 그렇게 세뇌당하며 보내야 했던 나의 유년과 학창시절에 안타까움을 표한다. 지금은 아닐까. 더러 접하는 소식들에 의하면 지금도 여전한 부분은 있다.
어쨌든 ‘봉주르, 뚜르’ 같은 책이 나왔고 이 책을 볼 수 있다는 게 좋다. 한국 사람이 프랑스에 관한 어떤 이야기를 썼을까를 상상했는데 분단에 관한 이야기를 맞닥뜨릴 줄 몰랐다. 그리고 어릴 적 숙제로 만나야 했던 호국보훈용 책의 서술과 결말이 아니라서 좋았다. 소년의 호기심으로 이야기를 밀고 나가며 추리의 형식으로 풀어 나간 것, 소년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분단 현실을 잘 다룬 것 같다. 그러면서도 이 이야기의 무대가 ‘프랑스’인 것이 마구 마구 공감이 되었다. 현재의 우리나라에서라면 북한 어린이를 만난다는 것이 쉬울 리도 없고 어른들의 등쌀에 교류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상하고 안타깝게도 제3국에서 두 어린이의 교류가 있는 이야기가 더 ‘안전하다’라고 느꼈다. 무엇에 대한 안전인지는 모르겠지만.........
슬프고 먹먹함이 있었다. 인간의 감정을 제어하게 만드는 이 모든 사회구조. 그것을 뛰어넘는 봉주와 토시의 우정. 동화에 맞게 어른들이 떠드는 이념과 시선이 아니라 아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어서, 제3세계를 빌어 또 다른 눈으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프랑스 뚜르라는 공간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일어난 일이라는 생각과 그래서 더 환상같기도 한 느낌이 교차되었다.
분단과 이민의 문제를 정치적인 것을 떠나 일상에, 사람의 마음에 파고드는 문제로 환기시키는 책이었다. 희멀건 배춧국이 아닌 소고기국을 주는 병원이 있어 잘 사는, 좋은 나라 대한민국이 아니라 의미있는 풍자에 다시 한번 생각을 가다듬고 허례와 같은 의식을 강조하지 않는 ‘사랑하는 나의 조국’을 만나면 정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