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에서 내리지를 못하네

 

           김영하, <보다>


  

  소설가 김영하의 산문집이다. <보다>, <말하다>, <읽다>의 삼부작 첫 번째다. 작가의 말에서 왜 ‘보다’가 제일 첫 번째에 있는지 알 수 있다. ‘보는’ 것은 깊이 생각하고, 말하고, 쓰는데 거의 전제와도 같다.


한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데에서 좀더 나아가야 한다. 보고 들은 후에 그것에 대해 쓰거나 말하고, 그 글과 말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직접 접하지 않고서는, 다시 말해, 경험을 정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타자와 대화하지 않는다면, 보고 들은 것은 곧 허공으로 흩어져버린다. 우리는 정보와 영상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많은 사람이 뭔가를 '본다'고 믿지만 우리가 봤다가 믿는 그 무언가는 홍수에 떠내려오는 장롱 문짝처럼 빠르게 흘러가버리고 우리 정신에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제대로 보기 위해서라도 책상 앞에 앉아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내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생각의 가장 훌륭한 도구는 그 생각을 적는 것이다. p208

 

  그래서, 말하고 쓰기 위해서 작가는 무엇을 보았을까. 이 책에서 작가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본다. 일상에서 맞닥뜨린 것에 섞여 사물을 사건을 바라보는 김영하식 시각을 전해준다.

  증가하는 스마트폰 사용과 중독을 작가는 어떻게 볼까. 그는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의 스마트폰 의존도가 높다며 그것은 부자나 권력자에 비해 사회적 약자가 스마트 폰을 받지 않았을 때 ‘타격’이 크기 때문이라 말한다. 그 전화가 ‘중요한 전화’일 수 있으니까. 그렇게 가진 자들이 애플과 삼성과 같은 글로벌 IT기업의 주식을 사며 가난한 이들의 시간까지도 사는 동안 가난한 사람들은 자기 시간을 헌납하며 비싼 스마트폰 값과 사용료를 지불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자본주의의 삶에서 힘의 논리로 감싼 ‘자유’를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세상의 불평등은 진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세상의 불평등 속에서 미래는 있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긍정적이진 않다. 적어도 우리들 아버지들의 미래에 대해선 말이다.

  

386세대로 불리는 이 도덕적 아버지들은 노무현 정권에서 그들 자신의 무능과 직면한 후, 급속하게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가 약속하는 물질의 세계로 전향한다. 때마침 너무나 상징적이게도 여자의 얼굴을 한 박정희가 권좌로 돌아왔다. 그런데도 부자 아빠의 꿈은 요원하기만 하다. 독재자의 딸이 무능해서일수도 있겠지만 시대가 더 이상 아버지의 자리를 용인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부자는커녕 아빠조차 되기 힘들다. 부자 아빠든 가난한 아빠든 이제 아버지의 자리 자체가 없는 것이다. p165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는 주저앉아야 하는가. 암울한 미래가, 자리 자체가 보이지 않는 삶에 대해 순응하고 말아야 하는가. 운명은 앞에서 날아오는 돌이고 숙명은 뒤에서 날아오는 돌이라지만 앞에서 날아오는 돌이라고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p148)기에 삶의 운명도 숙명도 견디어 내는 것, 견디어 가는 것은 힘이 들 수밖에 없다. 맞게 되는 돌이라면 기억해야 하는 것은 이것이다.


우리의 운명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운명예정설 따위를 믿을 게 아니라면 믿을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 우리에게 자기실현적 암시가 꼭 필요한 인생의 순간들이 있다는 것. p154


  그런데, 우리의 운명은 택시 같은 것일까. 버스와의 경쟁에서 힘에 부친 택시업계는 정치권을 압박해 대중교통인정 법안을 국회 본회의에 통과시켰다. 그러나 맞불 버스파업과 함께 대중들이 ‘택시=대중교통’이라는 공식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결정을 내린 택시의 운명은 그렇게 되어 버렸다. 완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로 어영부영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우리의 상황이 정치권에 의해 이렇게도 어영부영한 채 끌려가고 있다.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어떤 결정을 내렸지만 그 삶의 아우라를 무엇이 막고 있다면 크나큰 꿈도 세밀한 꿈도, 아무것도 꿀 수 없게 된다. 결국 삶은 유예되어야 할까.


우리는 모든 문제를 본원적으로 해결하기를 원한다. 세상 모든 문제에 단순하고 명쾌한 해결책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그런 깔끔한 해결책이 없는 영역도 있다. 택시가 그렇다. 택시는 교육이나 정치가 그렇듯이 한 사회의 문제를 그대로 반영한다. 택시는 음주 문화, 육체노동자 천시 풍조, 무질서한 교통, 높은 강력범죄율 같은 문제를 떠안고 있는 우리 사회의 거울이다. 누군가 이걸 간단하고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적어도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p177


  작가는 작은 것에서 큰 것을 두루 보며 자신의 시선을 정리한다. 가벼운 농담과 진중한 고민들 속엔 보지 못한 생각들, 함께 고민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일상의 작은 부분들에 얽힌 사회 구조와 우리의 모습들을 작가의 시선을 통해 보면서 이제 우리가 말해야 할 것들을 새롭게 얻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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