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슬로우 욕구 5단계의 노인들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




   제목을 보고 창문 넘어 도망친 노인의 작가 책인 줄 알았다. 제목에서 풍기는 이 유사함. 내용 역시 조금은 비슷한 면이 있다고 해도 될 듯하다. 작가는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로 역사 소설, 어린이책, 유머, 에세이집 등의 여러 장르에서 두루 글을 써온 작가이다. 또다른 이력이라면 15년 동안 수중고고학자였다는 점이다.

   창문을 넘으신 노인에 비해선 까마득한 젊은 할머니, 79세의 메르타 안데르손과 네 명의 친구들의 이야기다. 메르타 할머니와 친구들 역시 지금, 요양원에 갇혀 있다. 이 다이아몬드 노인 요양소는 메르타 할머니가 지내기엔 너무나 버겁다. 잠은 8시에 자야 되고 간식도 없고 어쩌다 한번 산책이 허용된다. 메르타 할머니는 이에 생각한다. 차라리 감옥이 낫다고. 감옥은 하루 한번씩은 꼬박 산책을 시켜준다니까! 그래서 할머니는 결심한다. 감옥에 들어가기로. 감옥에 들어가야 할 그 좋은 이유를 합창단 친구들과 함께 공유한다. 그리하여 메르타 할머니의 뛰어난 언변과 열의에 노인들은 모두 은행강도가 되기로 결심했고 실행한다.

   쭈뼛거리지도 않고 아주 유머러스하고 시종일관 이게 뭐야, 싶은 이야기가 바로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의 감옥에 가기 위한 처절한 은행털이 계획과 실행 과정에 담겨 있다. 황당하고 무모한 계획, 그러나 끝까지 실행하는 할머니들의 치열한 의지. 그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로 인한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이 이 이야기의 장점이라고 할 것이다.

  일부러 그러기라도 한 듯, 아니면 운이 이들 노인들에게 전해 내려온 듯한 전개 속에서 황당한 범죄를 저지르는 이 노인들의 범죄 행각의 성공 여부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노인들이 ‘돈’을 노린 범죄를 꾸미지 않는다는 진심만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계속 그렇게 되겠지라고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 노인들 역시도 경찰서에 찾아갔을 것이다.

   스웨덴이라는 나라가 가지는 세계 제일의 복지국가라는 이미지는 창문을 넘어야 했던 할아버지나 감옥에 가기로 결심하는 할머니 얘기에서 거듭 놀라움을 겪는다. 시설이나 여러 가지 제도가 잘 정비되어 있을 텐데. 다이아몬드 요양소와 같은 규칙은 이 요양소만의 특성이고 원칙이겠지, 다른 곳으로 옮기면 되지 않을까. 전반적으로 잘 정비된 복지제도에서 이분들이 왜 이렇게 적응하지 못하시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메르타는 유난히 빨리 늙어 갔고 가정을 갖는 꿈은 자연히 포기해야 했다. 아이가 없다는 슬픔은 너무나 큰 것이었지만 메르타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그녀는 슬픔과 고통을 숨기고 살았던 것이다. 우리는 모두 웃는 얼굴 밑에 참으로 많은 것들을 숨기고 산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웃음에 얼마나 잘 속는가! p45


   나 역시 속았다. 어느 곳보다 잘되어 있다는 복지국가 스웨덴이라는 이미지에 가려 좀더 세밀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나라에 비해서는 너무나 월등하다보니 스웨덴이 복지제도의 완벽한 이상이라 착각한 것이다. 물론 지금으로선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낙엽 지는 황혼기를 맞아 인생을 조금 즐겨 보고 싶은 노인들이 강도가 되는 것 이외에 다른 길이 없다면 그 사회는 분명 뭔가 잘못된 사회임에 틀림없다. p208


  차이가 있다면 그것이다. 소설 속 스웨덴 요양소의 풍경을 살펴보면 어쨌든 노인들은 기본적인 생계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하지 않는다. 물론 식사 외에 간식이 없고 더 풍부한 메뉴에 대한 요구가 있지만 형편없이 열악한 시설에 대한 불만과 학대, 억압으로 인한 인권유린이나 착취에 힘들어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노인들이 강도가 되는 이유가 대한민국이 “기본적인 의식주가 열악하기 때문에” “착취와 억압으로”라는 이유가 더 많다면 스웨덴에선 “자유!”에 더 초점이 맞춰진 느낌이다.


지금 세상은 무언가 비정상적이다. 그렇지 않은가. 노인들이 나쁜 범죄를 저지르면서야 비로소 자기들 속에 숨어 있던 힘을 체험하고 존재를 과시하고 있지 않은가. p244 


  매슬로우가 인간의 욕구에 대해 말한 5단계가 떠오른다. 인간은 기본적인 의식주와 안전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이것들이 충족되어야만 자아존중과 자아실현의 욕구를 가진다는 것이다. 이런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를 대입하면 우리의 메르타 할머니는 이미 다른 것은 충족되어 있고 자아실현의 욕구를 너무나도 펼치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노인’이라는 이유로, 사회에서 경제적인 활동이 없는 존재로 이미 신체적인 활동력이 떨어지는 존재로 그들을 치부함으로써 자신들의 존재를 제대로 ‘보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엄마는 마침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한 거야! 엄마는 이전에는 늘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기가 아닌 남들의 마음에 들려고만 했지. 하나님을 믿어야 하고, 완벽한 아내와 엄마가 되기 위해 좋은 교육을 받아야 하며 그런 다음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세대에 속해 있었던 거지. 아빠는 그런 엄마가 얼마나 마음고생을 하며 지냈는지 전혀 헤아리지 못했어!”

 “맞아, 너도 알겠지만, 되돌아보면 아빠는 자기 생각만 하고 살았어. 이제 엄마는 잃어버린 자기만의 삶을 되찾으려고 하는 거야.”p276


  제도의 필요성은 인간의 필요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 제도는 인간의 필요를 뛰어넘는다. 오히려 제도가 인간의 필요를 억압한다. 제도가 순기능을 역행하여 역기능으로 고착되면 인간은 한없이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 지금 사회는 비정상적이다.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닌 기본적인 의식주는 물론이거니와 안전에도 위협받고 있는 이 사회는 분명 잘못되었다. 노인들이 나쁜 범죄를 저지르도록 내모는 이 사회는 정말이지 잘못되었다. 인간의 욕구를 한없이 1,2단계에 머물도록 만드는 이 사회에서는 산책을 하루에 한번 가기를 원하던 메르타 할머니처럼 하루에 세 끼를 먹을 수 있어서 감옥에 가기를 원하는 다른 메르타 할머니를 만들어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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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아물지 않은 이에게 전하는 메시지


프레드릭 배크만,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소설 속 아이 엘사는 낯설지 않다. 이제 동화, 소설 속 주인공으로서 엘사와 같은 아이는 독창적이지 않고 전형적으로 느껴진다. 또래의 아이들보다 더 생각 있고, 생각 많고, 감수성 있는 아이. 그래서 또래 아이들에게서 왕따를 당하는 아이. 전형적이지 않은 캐릭터는 엘사의 할머니다. 사람들은 할머니더러 미쳤다고 하지만 엘사에겐 조금 엉뚱해 보일 뿐이다. 그래서 엘사는 할머니를 천재라 말한다. 할머니의 과거를 보니 의사로 일하면서 상도 받았고 전세계 구조가 필요한 현장에서 사람들을 살리고 악의 무리와 싸웠다. 그래서 또한 엘사에게 할머니는 슈퍼 히어로다. 그리고 항상 엘사의 편이다. 또한 엘사에게 세상에서 각장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니까 엘사는 할머니를 사랑한다.


 할머니의 말에 따르면 그럴듯한 이야기들은 전부 다 미아마스에서 생겨난다. 깰락말락나라의 나머지 다섯 개 왕국은 다른 일을 하느라 바쁘다. 미레바스 왕국에서는 꿈을 지키고, 미플로리스 왕국에서는 슬픔을 저장하며, 미모바스 왕국에서는 음악을 만들고, 미아우다카스 왕국에서는 용기를 만든다. 미바탈로스 왕국에서는 ‘끝없는 전쟁’에서 무시무시한 그림자들과 맞서 싸운 용맹한 전사들을 양성했다. p29~30


  다만 지금은 문을 열고 볼 일을 보고, 말을 과격하게 하며, 전도하러 방문하는 이들에게 페인트 총을 쏘아대고, 경찰에게 똥을 던지기도 한다. 그리고 병원을 탈출하기도 한다. 기억해야 하는 일을 벽에다가 적어 놓기도 한다. 하지만 할머니는 성차별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 고장선생님을 향해 지구본을 던질 줄 아는(결국 던지지는 못했다) 성격이기도 하다.


  교장선생님은 할머니의 흥분을 가라앉히려는 의도로 엘사의 눈을 멍들게 한 남자아이에게 “겁쟁이들이나 여자를 때리는 거야”라고 얘기했지만, 그 말을 들은 할머니는 조금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않았다.

  “겁쟁이들이나 여자를 때리는 거라니 말이 됩니까!” 할머니는 교장선생님한테 고함을 질렀다. “여자를 때리면 쓰레기가 되는 게 아니라 아무나 때리면 쓰레기가 되는 거요!”p98


  이런 전형적이지 않은 엘사의 할머니는 소설 속 주인공으론 익숙하지만 또래아이들과는 다른 엘사와 만나 시너지를 낸다. 이런 할머니가 한국에 있다면? 사람들은 끊임없이 민원을 제기할 것이고 당장 정신병원이나 경찰서 행이 될 거다.

  할머니는 정신병원과 경찰서가 아니라 하늘나라로 갔다. 엘사에게는 그것이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지만 할머니가 보낸 편지를 발견하며 조금씩 마음을 치유해 간다. 할머니가 남긴 편지들은 엘사와 할머니가 살던 아파트 거주 주민들 모두에게 띄운 것이고 이 편지로 인해 할머니는 할머니와 함께 얘기하던 판타지 동화의 세계처럼 아파트 사람들의 사연들을 알게 되고 그들과 감정적으로도 더 가까워진다. 그들은 모두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고 여전히 그 아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죽음의 가장 강력한 힘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게 아니라 남겨진 사람들을 더 이상 살고 싶지 않게 만드는 거야. p329


  그런데, 할머니가 남긴 편지는 무슨 내용이었나. 그저, 할머니는 미안하다고 전해달랬다. 할머니는 도대체 뭐가 그렇게도 미안했던 것일까. 아파트에 살던 사람들 모두가 할머니와 연관되어 있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놀랍지 않다. 그래, 할머니는 엉뚱한 사람이고 슈퍼 히어로니까.


 현실 세계 속 끔찍한 일이 벌어지면 슬픔과 상실감과 심장 아리는 고통이 “시간이 지나면 차츰 가시겠지”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슬픔과 상실감은 변함이 없는데, 그걸 평생 간직하고 살아야 한다면 어느 누가 버틸 수 있을까. 슬픔으로 마비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결국 슬픔을 가방에 넣어서 두고 올 만한 장소를 찾아 나선다. p330


  마침내 할머니의 ‘미안하다’라는 말의 의미를 느끼게 된다. 그들에게도 할머니는 엘사와 마찬가지로 슈퍼 히어로니까. 할머니는 그들의 아픔과 상처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들이 상처를 겪는 현장에 있었고 그곳에서 벗어나도록 도움을 주었고 이끌어 주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여전히 할머니는 엘사와 마찬가지로 필요한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더 이상 그들을 돌보아 줄 수 없다. 그들의 아픔을 알아주는 이는 이제 없다. 어쩌면 할머니는 너무나도 그들이 자신을 의지하게 만들었던 건 아닐까. 영원히 그들의 아픔을 공유할 수 없는 할머니인데. 그러니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며 그들에게 “미안하다”고 전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그래도 여전히 할머니는 그들이 그들의 아픔을 어딘가 두고 오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니까.


인간은 관심을 쏟을 대상이 필요하거든, 엘사. 누가 뭐에든 신경 쓰기 시작하면 너희 할머니는 ‘잔소리’로 간주했지만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는 사람은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가 없어. 그냥 존재하는 거지……. p493


  또한 자신이 더 이상 도와줄 수 없는 삶에서 할머니가 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말.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 또한 그들도 이제 다시 사랑할 수 있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우리는 남들이 우리를 사랑해주길 바란다.’ 브릿마리가 읊는다. ‘그게 안 되면 존경해주길. 그게 안 되면 두려워해주길. 그게 안 되면 미워하고 경멸해주길. 우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남들에게 어떤 감정이라도 불러일으키길 원한다. 우리의 영혼은 진공상태를 혐오한다. 무엇에라도 접촉하길 갈망한다.’ p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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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가다


나탈리 골드버그, 글쓰며 사는 삶

   나탈리 골드버그는 미국에선 글쓰기 강사로 명망이 높다. 미국의 대표적인 토크쇼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도 출연하였던 만큼 사람들이 이 작가에게 열광하는 요인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은 당연하고.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가 작가의 명성을 높여준 책이다. 이 책의 성공 이후 작가는 이전보다 더욱 ‘작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으니 <글쓰며 사는 삶>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이 책 <글쓰며 사는 삶>은 글을 쓰며 사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일까, 아니면 글을 쓰며 살아가는 삶을 살자는 글쓰기에 관한 책일까. 두 가지가 다 버무려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작가의 삶을 궁금해 하며 이야기 듣기를 원한다. 그것은 타인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과 더불어 ‘작가의 인생’을 살아보고픈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작가의 삶’은 무언가 다른 것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는다. 그 삶에 대한 동경을 나탈리 골드버그는 흘리며, 그러니까 ‘써라’라는 이야기를 이 책에서 하고 있다. 나탈리 골드버그는 이렇게 말한다.

  

 작가가 된다는 건 보고 생각하고 존재하는 삶의 모든 것을 바꾸는 일이다. p5


  <글쓰며 사는 삶>도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와 마찬가지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을 충동질하며 멈추지 말고 일단 써라!라고 부추기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선과 명상을 좋아하고 즐기는 나탈리 골드버그의 글쓰기 책은 정리되고 정제된 어감, 이를테면 선과 명상이 주는 차분한 느낌이 아니라, 오히려 들뜬 느낌이 가득하다. 한편으로는 응원가에 가까운 형태라고 해야 할까.

  나탈리가 제시하는 글쓰기의 방법이나 원칙들도 살펴보면 익숙하게 들어온 글쓰기 방법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글을 잘쓰는 방법에 관한 책들은 너무 많이 있고, 글을 쓰기 위한 태도에 관한 책도 너무나, 무서울 정도로 많다. 그리고 중요한 건, 결국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같다”는 점이다. 그러면 그렇게 확실한 방법들을 알고 있으면서도 왜 글을 쓰지 못하는가. 그것 또한 같다. “안 쓰니까”

  쓰고자 하는 열망만 있고 손가락을 움직이니 않으니, 엉덩이를 붙이고 있지 않으니 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글쓰기 책이 제시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한발 떼기가 힘든 글쓰기에 대해 그게 뭐 별건 줄 알아?라고 외치는 것이 나탈리 골드버그의 글쓰기 독려법인 듯하다. 그리고 항상 조금 업된 느낌으로 그녀는 외친다.

  “길게 생각할 거 없어, 망설이지 마, 그냥 일단 생각나는 대로 써!”

  

  처음 시를 썼을 때 느낀 완전함과 생동감, 스스로 뭔가를 창조했다는 기쁨에 아무것도 필요치 않았던 때가 있다고 했다.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던. 글을 쓰면 그저 행복했다고. 그렇지만 자신도 글을 쓰고 나서 한동안 무력감이 찾아온 적도 있고 글을 써서 성공하고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도 있었노라 말한다. 하지만 무력감이라는 건 첫 해를 잘 견디면 몸에 적응 돼서 쓰러뜨릴 정도로 위력을 발휘하지는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 중독이란 사람을 작아지게 만드는 걸 말하지만, 글이 작아지게 만들지는 않는다고. 글은 열정이라고.

  그래서 그녀는 또 외친다. 이런 이미지가 자신에게 찾아올 수 있도록 외치라고.


 매일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 그리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자신에게 말하라. “나는 작가다.” 스스로 그 말을 믿든 안 믿든 상관없다. 그냥 씨앗 하나를 심어놓았다고 생각하자. 우리의 삶은 거대하고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움직이다. 무거운 펜을 들어 막막한 페이지 위에 올려놓고 실제로 쓰기 시작하면, 이 세상의 보이는 존재와 보이지 않는 존재가 당신을 도와줄 것이다. p123


  글쓰기가 가진 매력은 무엇일까. 독후감 숙제만 나와도 귀찮아하던 사람들이 자신만의 블로그를 운영하며 글을 쓰고 책을 내고 싶어하는 열망이 생겨나는 것은. 영상매체로 인해 책을 보는 이들은 급격히 감소했음에도 글을 쓰고자 하는 이 열망들은, 나탈리 골드버그와 같은 글쓰기 책을 통해 글쓰기를 부추기는 사람들 때문일까. 작가 자신은 글쓰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자유의 길로 떠나는 위대한 여정이라고. 생각해보면 삶을 옥죄는 것은 열망이기도 하다. 하지만 열망이 없는 삶 역시, 삶을 끊임없이 옥죄고 흔들어 놓을 것이다.


글쓰기는 자유의 길로 떠나는 위대한 여정이다. 남들의 눈에는 헐렁한 옷을 입고 밋밋한 표정으로 손을 움직이며 글을 쓰는 모습이 지루하게 보이겠지만, 바로 그때 비로소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 있다.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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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길들이는 법

 


도러시아 브랜디 저, 

작가 수업 - 글 잘 쓰는 독창적인 작가가 되는 법


좋은 소설은 주인공에 관한 진실을 들려주지만,

나쁜 소설은 작가에 관한 진실을 알려 준다.

         -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


 

  작가수업을 읽고 놀란 건 크게 두 가지다. 우선, 글쓰기에 관한 책 중 맘에 드는 책이라는 점. 두 번째는 작가가 1892년생이고 이미 사망했고 이 책은 1934년에 쓰여졌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오래된 책의 역사에 놀랐다. 오랜 시간 동안 이 책은 전세계에서 사랑받았고 글쓰기의 지침서이자 필독서인 책이다. 글쓰기에 관한 동일한 형태의 기법과 태도를 말하는 글쓰기 책들과 다른 이 책이 가진 무엇이 이토록 사람들을 홀리고 있을까.

 얘기를 달리하면 지금의 글쓰기 책들 역시 도러시아 브랜디의 <작가수업>을 읽고 글쓰기에 대한 노하우를 터득했다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자신만의 글쓰기 습관을 들이고 방법을 터득해 갔을 것이다. 그럼에도 왜, 이 책만큼의 흡인력과 매력을 못 느꼈을까.

   이 책은 깔끔하게 정리된 느낌을 주면서 작가의 글쓰기 방법에 대한 신뢰를 준다. 마냥 ‘쓸 수 있다! 써라!’라는 격려와 주술식 선동이 아니라 차분하게 보다 글을 잘 쓸 수 있기 위한 진솔한 조언들이 담겨 있다. 글쓰기의 어려움을 먼저 제시해서 공감과 함께 몰입이 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글쓰기 책에서 원하는 것이 실질적인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기술적인 방법에 대한 제시일 거라고 생각하게끔 된다. 그것이 글을 잘 쓰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하게 되니까. 하지만 사실 가장 큰 글쓰기의 어려움은 글을 쓰지 못하고 있는 상태, 바로 “심리적인 어려움”이다.  

 

단 하나의 문장도 떠오르지 않는 듯한 이 침묵의 기간 때문에 고통을 겪는 사람들은 일단 저주 어린 주문에서 풀려나면 거침없이 술술 써내려 갈 수 있다. 글쓰기 교사는 문제의 근원을 정확히 파악해 거기에 맞는 조언을 해주어야 한다. 이번에도 역시 영감의 번개가 내려쳐주기를 바라는 심리가 문제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 많은 경우 이러한 어려움은 완벽이라는 거의 도달 불가능한 상태를 추구하는 데서 비롯된다. 또 더러는, 과도한 허영심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 경우에 작가는 외면당할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다 결국 인정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기 전까지는 아무 것도 손 댈 수 없게 된다. p33 


   문제의 근원. 도러시아 브랜드는 문제의 근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나또한 문제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거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데 사용하는 언어가, 그 해결의 방법이 도러시아 브랜드의 것이 나에게 좀 더 와 닿았을 것이다. 또한 작가가 되기 위한 습관이나 환경,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 독서법, 예술적 시각을 훈련하는 것 등 대체로 비슷한 조언들과 설명에도 훨씬 쉽게 긍정이 되는 것도 이 책의 전반적인 서술의 매력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유명한 작가들의 사진들을 볼 수 있고 또한 그들의 명언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얼마나 좋은 작품이 탄생하느냐는 그대와 그대의 삶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해 그대의 감수성이 얼마나 예민한지, 분별력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그대의 경험이 독자의 경험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훌륭한 글쓰기의 요소를 얼마나 철저하게 익혔는지, 말의 가락을 가려짚는 귀가 얼마나 발달해 있는지에 달려 있다. 하지만 그 동안 성실히 훈련에 임했다면 일관성 있고 균형 잡힌 작품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p194~195


   다시 한번 주의를 기울여 책의 제목을 살펴본다. <작가수업> 그리고, 글 잘 쓰는 독창적인 작가가 되는 법! 도러시아 브랜드는 “글쓰기를 생업으로 삼든 삼지 않든 우리 모두 말에 너무 길들여진 나머지 말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라고 했다. 맞다. 글쓰기를 생업으로 하는 작가가 되든 그렇지 않든 우린 말에 길들여져 있으니 조금이라도 말에 대해, 글에 대해 잘 아는 방법이 이 말을 길들이는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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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반복적으로 이 얼굴을 마주쳤다. 한동안 이 작가의 사진이 인터넷에 자주 노출된 것 같다. 익숙한 얼굴인데 누굴까, 누구더라 하며 글보다 작가에 대해 더 궁금하게 한 찰스 부코스키. 역시나 작가의 인생을 엿보다 작가의 삶에 더 관심이 집중됐다.

  <고양이에 대하여>는 부코스키의 테마 에세이로 묶인 1부작이다. 아홉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는 작가의 이야기와 고양이에 관한 시가 담겨 있다. 작가는 길 잃은 고양이들을 버릴 수 없어 많은 고양이들을 키우지만, 본질적으로 애정이 없다면 고양이들은 늘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고양이들은 길잃은 고양이, 다친 고양이, 죽을 뻔한 고양이들이다. 작가는 그 고양이들에게서 자신을 본다.


 자, 여기 아름다운 고양이가 있소. 혀는 쭉 내밀고 눈은 사팔이죠. 꼬리는 바짝 잘렸고. 아름다운 녀석이지. 지능도 있고. 우리는 걔를 수의사에게 데려가서 엑스레이를 찍었소. 차에 치였거든. 의사가 이러더군. “이 고양이는 차에 두 번 치였네요. 총도 맞았고. 꼬리는 잘렸어요.” 나는 말했소. “이 고양이는 나요.” 이 녀석 거의 굶어 죽을 지경이 되어서 우리 집 대문 앞에 나타났소. 어디로 가야 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던 거지. 우리 둘 다 거리에서 온 건달들이었으니까. p75~76


   독일에서 태어나 세 살에 미국으로 이주하여 살아온 그는 대공황과 전쟁을 겪으며 하층민의 삶을 살았다 한다. 잡역부, 철도 노종자, 트럭 운전사, 주유소 직원, 경마꾼, 집배원 등등의 일들을 하며 글도 썼지만, 처음 글을 발표한 이후 10년 동안은 글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저 매일 술을 마셨고 내출혈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며 삶을 전전했다. 25세에 글을 썼고 글이 잡지에 발표되었다면 새로운 감회로 더욱 정진하여 글을 썼을 법한데 10년 동안 침묵했고 술을 마시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의사들의 경고가 있어서야 다시 글을 썼다. 그래도 성실한 부분은 있었던지 14년간 우체국을 다녔고 “우체국 의자에 앉아 죽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우체국을 나와 본격적으로 전업 작가의 길을 걸었다는 찰스 부코스키. 그 때의 나이가 쉰 살이었다.

  이런 찰스 부코스키에 대한 평가는 거칠고, 이색적이고, 반항아의 이미지인 모양이다. ‘위대한 아웃사이더‘라고 불린다는데, 글을 읽다 보면 왜 이런 이미지가 있는지 알게 된다. 전세계 독자들이 찰스 부코스키에게 열광하는 것은 생경하고 날 것의 느낌과 버무려진 섬세한 감성의 이미지가 아닌가 한다. 투박하고 툭툭이며 내뱉은 말 속에서 담긴 애정과 자조에 연민의 느낌을 받게 되면서.

   고양이와 함께 한 처음의 시작이 어떠하였는지 몰라도 분명 그에겐 고양이를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 같다. 몰염치한 인간군상의 모습을 역겨워하며 그에 반한 모습을 고양이에게 투영시키고 있다. 작가는 오래도록 인간들로 인한 상처를 받을 걸까. 알콜중독자마냥 끊임없이 술을 들이키는 것은 그의 성향인 것인지, 겪어 온 삶에서 살아가기 위해 축적된 방어의 형태였을까.

   뼈가 부러지고 총알을 몇 번이나 맞고 불구이기도 하며 사팔이인 고양이를 향해 그는 자신이라고 외친다. 거리의 삶을 알고 있고 건달처럼 떠돌았던 삶에 대해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 고양이는 살아남았고 이제 뛰어다닌다. 마치 자신이 의사에게 더 이상 술을 먹으면 죽을지 모른다는 경고 속에서 살아 남아 글을 쓰고 있는 것처럼. 그의 말대로 그 고양이나 그나 “독하게 미친 녀석”들이다.


 의사는 걔가 다시 걸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막 뛰어다녀요. 혀를 내밀고 사팔눈을 뜨고. 독하게 미친 녀석. p76


   거칠다는 느낌의 다른 말이, 치열한 생존의 느낌과 비슷하게 여겨졌다. 거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또한 거칠어 질수밖에 없는 것이지. 그가 만난 사람들의 일면들이 어떠했는지 궁금해지는 것은 고양이와의 교감 속에 언뜻 드러나는 인간에 대한 냉소의 시선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다, 작가 자신도 외골수 아니던가.


나는 차로를 올라갔다. 고양이들이 여기저기 퍼져서 똥을 싸고 있었다. 다음 생에서는 고양이가 되고 싶군. 하루에 스무 시간을 자고 가만 앉아 밥을 기다리고. 엉덩이만 핥으면서 빈둥대고. 인간은 너무 비참하고 화만 내고 외골수라서. p139


   그는 동물들이 영감을 준다고 말한다. 거짓말을 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그래서 그는 길 잃은 고양이들이 계속 기어들어 와도 그들을 버리지 않고 그들의 성향에 맞는 통조림을 사기 위해 다양한 식료품을 사러 다니고, 아름답게 근사하게 바라본다. 그에게 이 고양이들은 “좋아”의 에너지이다. “특히 모든 게 너무 과하다 싶을 때, 인간에게 일어나는 사건에 관해 이렇게 너무 많은 생각이 들 때”면 더욱 더.

  그에게 인간은 초조하고 불완전하게 살아가는 존재이지만 고양이는 그렇지 않다. 고양이는 세상에 딱히 호들갑을 떨 일이 없다는 걸 알고 그는 “세계의 힘에 찢기고 있을 때면” 고양이를 바라본다. 그저 보기만 해도 그의 긴장을 가라앉게 해주는 존재가, 고양이이다.

  <고양이에 대하여>를 읽으며 그의 글쓰기는 멋스럽게 꾸미는 글이 아니라 탁탁 박히는 글이라고 생각했다. 글에서 느껴지는 그의 진솔함이 그의 삶이겠거니 생각하게 된다. 특히나 그의 삶과 같이 느껴지는 맹크스 고양이에 관한 글은 그 자신이 왜 고양이에게 진한 애정을 가지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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