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슬로우 욕구 5단계의 노인들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




   제목을 보고 창문 넘어 도망친 노인의 작가 책인 줄 알았다. 제목에서 풍기는 이 유사함. 내용 역시 조금은 비슷한 면이 있다고 해도 될 듯하다. 작가는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로 역사 소설, 어린이책, 유머, 에세이집 등의 여러 장르에서 두루 글을 써온 작가이다. 또다른 이력이라면 15년 동안 수중고고학자였다는 점이다.

   창문을 넘으신 노인에 비해선 까마득한 젊은 할머니, 79세의 메르타 안데르손과 네 명의 친구들의 이야기다. 메르타 할머니와 친구들 역시 지금, 요양원에 갇혀 있다. 이 다이아몬드 노인 요양소는 메르타 할머니가 지내기엔 너무나 버겁다. 잠은 8시에 자야 되고 간식도 없고 어쩌다 한번 산책이 허용된다. 메르타 할머니는 이에 생각한다. 차라리 감옥이 낫다고. 감옥은 하루 한번씩은 꼬박 산책을 시켜준다니까! 그래서 할머니는 결심한다. 감옥에 들어가기로. 감옥에 들어가야 할 그 좋은 이유를 합창단 친구들과 함께 공유한다. 그리하여 메르타 할머니의 뛰어난 언변과 열의에 노인들은 모두 은행강도가 되기로 결심했고 실행한다.

   쭈뼛거리지도 않고 아주 유머러스하고 시종일관 이게 뭐야, 싶은 이야기가 바로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의 감옥에 가기 위한 처절한 은행털이 계획과 실행 과정에 담겨 있다. 황당하고 무모한 계획, 그러나 끝까지 실행하는 할머니들의 치열한 의지. 그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로 인한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이 이 이야기의 장점이라고 할 것이다.

  일부러 그러기라도 한 듯, 아니면 운이 이들 노인들에게 전해 내려온 듯한 전개 속에서 황당한 범죄를 저지르는 이 노인들의 범죄 행각의 성공 여부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노인들이 ‘돈’을 노린 범죄를 꾸미지 않는다는 진심만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계속 그렇게 되겠지라고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 노인들 역시도 경찰서에 찾아갔을 것이다.

   스웨덴이라는 나라가 가지는 세계 제일의 복지국가라는 이미지는 창문을 넘어야 했던 할아버지나 감옥에 가기로 결심하는 할머니 얘기에서 거듭 놀라움을 겪는다. 시설이나 여러 가지 제도가 잘 정비되어 있을 텐데. 다이아몬드 요양소와 같은 규칙은 이 요양소만의 특성이고 원칙이겠지, 다른 곳으로 옮기면 되지 않을까. 전반적으로 잘 정비된 복지제도에서 이분들이 왜 이렇게 적응하지 못하시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메르타는 유난히 빨리 늙어 갔고 가정을 갖는 꿈은 자연히 포기해야 했다. 아이가 없다는 슬픔은 너무나 큰 것이었지만 메르타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그녀는 슬픔과 고통을 숨기고 살았던 것이다. 우리는 모두 웃는 얼굴 밑에 참으로 많은 것들을 숨기고 산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웃음에 얼마나 잘 속는가! p45


   나 역시 속았다. 어느 곳보다 잘되어 있다는 복지국가 스웨덴이라는 이미지에 가려 좀더 세밀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나라에 비해서는 너무나 월등하다보니 스웨덴이 복지제도의 완벽한 이상이라 착각한 것이다. 물론 지금으로선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낙엽 지는 황혼기를 맞아 인생을 조금 즐겨 보고 싶은 노인들이 강도가 되는 것 이외에 다른 길이 없다면 그 사회는 분명 뭔가 잘못된 사회임에 틀림없다. p208


  차이가 있다면 그것이다. 소설 속 스웨덴 요양소의 풍경을 살펴보면 어쨌든 노인들은 기본적인 생계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하지 않는다. 물론 식사 외에 간식이 없고 더 풍부한 메뉴에 대한 요구가 있지만 형편없이 열악한 시설에 대한 불만과 학대, 억압으로 인한 인권유린이나 착취에 힘들어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노인들이 강도가 되는 이유가 대한민국이 “기본적인 의식주가 열악하기 때문에” “착취와 억압으로”라는 이유가 더 많다면 스웨덴에선 “자유!”에 더 초점이 맞춰진 느낌이다.


지금 세상은 무언가 비정상적이다. 그렇지 않은가. 노인들이 나쁜 범죄를 저지르면서야 비로소 자기들 속에 숨어 있던 힘을 체험하고 존재를 과시하고 있지 않은가. p244 


  매슬로우가 인간의 욕구에 대해 말한 5단계가 떠오른다. 인간은 기본적인 의식주와 안전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이것들이 충족되어야만 자아존중과 자아실현의 욕구를 가진다는 것이다. 이런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를 대입하면 우리의 메르타 할머니는 이미 다른 것은 충족되어 있고 자아실현의 욕구를 너무나도 펼치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노인’이라는 이유로, 사회에서 경제적인 활동이 없는 존재로 이미 신체적인 활동력이 떨어지는 존재로 그들을 치부함으로써 자신들의 존재를 제대로 ‘보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엄마는 마침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한 거야! 엄마는 이전에는 늘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기가 아닌 남들의 마음에 들려고만 했지. 하나님을 믿어야 하고, 완벽한 아내와 엄마가 되기 위해 좋은 교육을 받아야 하며 그런 다음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세대에 속해 있었던 거지. 아빠는 그런 엄마가 얼마나 마음고생을 하며 지냈는지 전혀 헤아리지 못했어!”

 “맞아, 너도 알겠지만, 되돌아보면 아빠는 자기 생각만 하고 살았어. 이제 엄마는 잃어버린 자기만의 삶을 되찾으려고 하는 거야.”p276


  제도의 필요성은 인간의 필요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 제도는 인간의 필요를 뛰어넘는다. 오히려 제도가 인간의 필요를 억압한다. 제도가 순기능을 역행하여 역기능으로 고착되면 인간은 한없이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 지금 사회는 비정상적이다.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닌 기본적인 의식주는 물론이거니와 안전에도 위협받고 있는 이 사회는 분명 잘못되었다. 노인들이 나쁜 범죄를 저지르도록 내모는 이 사회는 정말이지 잘못되었다. 인간의 욕구를 한없이 1,2단계에 머물도록 만드는 이 사회에서는 산책을 하루에 한번 가기를 원하던 메르타 할머니처럼 하루에 세 끼를 먹을 수 있어서 감옥에 가기를 원하는 다른 메르타 할머니를 만들어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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