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반복적으로 이 얼굴을 마주쳤다. 한동안 이 작가의 사진이 인터넷에 자주 노출된 것 같다. 익숙한 얼굴인데 누굴까, 누구더라 하며 글보다 작가에 대해 더 궁금하게 한 찰스 부코스키. 역시나 작가의 인생을 엿보다 작가의 삶에 더 관심이 집중됐다.

  <고양이에 대하여>는 부코스키의 테마 에세이로 묶인 1부작이다. 아홉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는 작가의 이야기와 고양이에 관한 시가 담겨 있다. 작가는 길 잃은 고양이들을 버릴 수 없어 많은 고양이들을 키우지만, 본질적으로 애정이 없다면 고양이들은 늘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고양이들은 길잃은 고양이, 다친 고양이, 죽을 뻔한 고양이들이다. 작가는 그 고양이들에게서 자신을 본다.


 자, 여기 아름다운 고양이가 있소. 혀는 쭉 내밀고 눈은 사팔이죠. 꼬리는 바짝 잘렸고. 아름다운 녀석이지. 지능도 있고. 우리는 걔를 수의사에게 데려가서 엑스레이를 찍었소. 차에 치였거든. 의사가 이러더군. “이 고양이는 차에 두 번 치였네요. 총도 맞았고. 꼬리는 잘렸어요.” 나는 말했소. “이 고양이는 나요.” 이 녀석 거의 굶어 죽을 지경이 되어서 우리 집 대문 앞에 나타났소. 어디로 가야 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던 거지. 우리 둘 다 거리에서 온 건달들이었으니까. p75~76


   독일에서 태어나 세 살에 미국으로 이주하여 살아온 그는 대공황과 전쟁을 겪으며 하층민의 삶을 살았다 한다. 잡역부, 철도 노종자, 트럭 운전사, 주유소 직원, 경마꾼, 집배원 등등의 일들을 하며 글도 썼지만, 처음 글을 발표한 이후 10년 동안은 글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저 매일 술을 마셨고 내출혈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며 삶을 전전했다. 25세에 글을 썼고 글이 잡지에 발표되었다면 새로운 감회로 더욱 정진하여 글을 썼을 법한데 10년 동안 침묵했고 술을 마시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의사들의 경고가 있어서야 다시 글을 썼다. 그래도 성실한 부분은 있었던지 14년간 우체국을 다녔고 “우체국 의자에 앉아 죽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우체국을 나와 본격적으로 전업 작가의 길을 걸었다는 찰스 부코스키. 그 때의 나이가 쉰 살이었다.

  이런 찰스 부코스키에 대한 평가는 거칠고, 이색적이고, 반항아의 이미지인 모양이다. ‘위대한 아웃사이더‘라고 불린다는데, 글을 읽다 보면 왜 이런 이미지가 있는지 알게 된다. 전세계 독자들이 찰스 부코스키에게 열광하는 것은 생경하고 날 것의 느낌과 버무려진 섬세한 감성의 이미지가 아닌가 한다. 투박하고 툭툭이며 내뱉은 말 속에서 담긴 애정과 자조에 연민의 느낌을 받게 되면서.

   고양이와 함께 한 처음의 시작이 어떠하였는지 몰라도 분명 그에겐 고양이를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 같다. 몰염치한 인간군상의 모습을 역겨워하며 그에 반한 모습을 고양이에게 투영시키고 있다. 작가는 오래도록 인간들로 인한 상처를 받을 걸까. 알콜중독자마냥 끊임없이 술을 들이키는 것은 그의 성향인 것인지, 겪어 온 삶에서 살아가기 위해 축적된 방어의 형태였을까.

   뼈가 부러지고 총알을 몇 번이나 맞고 불구이기도 하며 사팔이인 고양이를 향해 그는 자신이라고 외친다. 거리의 삶을 알고 있고 건달처럼 떠돌았던 삶에 대해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 고양이는 살아남았고 이제 뛰어다닌다. 마치 자신이 의사에게 더 이상 술을 먹으면 죽을지 모른다는 경고 속에서 살아 남아 글을 쓰고 있는 것처럼. 그의 말대로 그 고양이나 그나 “독하게 미친 녀석”들이다.


 의사는 걔가 다시 걸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막 뛰어다녀요. 혀를 내밀고 사팔눈을 뜨고. 독하게 미친 녀석. p76


   거칠다는 느낌의 다른 말이, 치열한 생존의 느낌과 비슷하게 여겨졌다. 거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또한 거칠어 질수밖에 없는 것이지. 그가 만난 사람들의 일면들이 어떠했는지 궁금해지는 것은 고양이와의 교감 속에 언뜻 드러나는 인간에 대한 냉소의 시선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다, 작가 자신도 외골수 아니던가.


나는 차로를 올라갔다. 고양이들이 여기저기 퍼져서 똥을 싸고 있었다. 다음 생에서는 고양이가 되고 싶군. 하루에 스무 시간을 자고 가만 앉아 밥을 기다리고. 엉덩이만 핥으면서 빈둥대고. 인간은 너무 비참하고 화만 내고 외골수라서. p139


   그는 동물들이 영감을 준다고 말한다. 거짓말을 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그래서 그는 길 잃은 고양이들이 계속 기어들어 와도 그들을 버리지 않고 그들의 성향에 맞는 통조림을 사기 위해 다양한 식료품을 사러 다니고, 아름답게 근사하게 바라본다. 그에게 이 고양이들은 “좋아”의 에너지이다. “특히 모든 게 너무 과하다 싶을 때, 인간에게 일어나는 사건에 관해 이렇게 너무 많은 생각이 들 때”면 더욱 더.

  그에게 인간은 초조하고 불완전하게 살아가는 존재이지만 고양이는 그렇지 않다. 고양이는 세상에 딱히 호들갑을 떨 일이 없다는 걸 알고 그는 “세계의 힘에 찢기고 있을 때면” 고양이를 바라본다. 그저 보기만 해도 그의 긴장을 가라앉게 해주는 존재가, 고양이이다.

  <고양이에 대하여>를 읽으며 그의 글쓰기는 멋스럽게 꾸미는 글이 아니라 탁탁 박히는 글이라고 생각했다. 글에서 느껴지는 그의 진솔함이 그의 삶이겠거니 생각하게 된다. 특히나 그의 삶과 같이 느껴지는 맹크스 고양이에 관한 글은 그 자신이 왜 고양이에게 진한 애정을 가지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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