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이목구비(耳目口鼻)를 뜯어보다


   


  



  연암은 어떤 글자가 가리키는 대상의 생생한 움직임과 미묘한 내적 본질을 꿰뚫어볼 때 비로소 그 글자를 아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열하일기 속의 사물에 대한 묘사는 24시간 카메라가 돌아가듯 생생하며 그것을 묘사함에 있어 전하고자 하는 바 역시 명확하고 명쾌하다. 그의 글쓰기가 완결되는데 있어 그가 바라보는 세상, 그의 몸에 체득된 사상이 당연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즉 그에게 내재한 가치체계를 통해, 그는 사물을 보고 사물에 대해 인식하며 사물과 연관된 또 다른 관계를 이끌어 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바라보는 시각, 그의 프레임들은 어디서부터 연유한 것일까. 그의 삶 속에 스며들어 그의 사고를 정립시킨 그의 세상을 찾아본다.


1) 눈(目) - 세상을 보다


 박지원은 1737년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8세기 조선 후기, 연암은 영・정조 시대를 살아 내었다. ‘살아 내다’라고 말하는 것은, 수많은 역사서에서 기록하듯이 그 시기가 혼란과 변화의 흐름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혼란의 흐름 속에서 연암이 보던 세상은 어떤 것일까. 연암의 집안은 당대 명문 양반인 반남(潘南) 박씨 가문이었으며 청빈과 청렴결백을 생활화하였고 연암 또한 이러한 생활을 유지하였다. 그와 함께 재산 축적에 관심이 없는 할아버지와 별다른 벼슬을 하지 못한 아버지였기에 집안 형편은 좋지 못하였다. 연암은 5세부터 할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공부를 배웠고 16세에 결혼하여서는 장인으로부터 맹자를 배웠고 외삼촌 이양천에게 사마천의 글을 배웠다. 어린 시절부터 이들에게서 배운 사상과 학문은 연암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연암은 권세와 이익만을 좇는 세태를 미워하였으며, 이용후생(利用厚生)학, 경세제국(經世濟國)학, 명물도수(名物度數)학 등의 학문을 소홀히 한다는 점, 그리하여 잘못된 지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으며 그 학문이 몹시 거칠고 조잡한 점을 병통으로 여기며 자신의 사상을 수립해 나가고 있었다.


2) 귀(耳) - 세상을 듣다


 연암은 훤칠한 풍채를 가지고 있고 목소리 또한 우렁찼다고 한다. 연암의 우렁찬 목소리에 귀신붙은 여자의 병이 나았다는 일화까지 전해지고 있고 나아가 연암의 사상의학적으로 태양인의 기질이라는 분석까지 내놓고 있다. 이렇게 타고난 성품이 호방하고 고매하였던 연암은 명예와 이익이 몸을 더럽힐까봐 극도로 경계하고 삼갔으며 한양 근교의 산사를 찾아다니며 과거 공부에 전념하였고 담헌 홍대용, 석치 정철조, 강산 이서구와 교류하였다.

 언뜻 우람한 풍채와 호탕한 기개, 사람들과의 사귐을 좋아하는 연암에게 있어 세상은 무엇하나 거칠 것 없어 보인다. 열하일기 속, 무수한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유쾌한 기개와 더불어 익살과 해학의 인자를 가지고 있고 천지사방을 유람하는 이에게서는 끊임없는 에너지가 흘러 나온다. 그런 사람은 이미 오래 전 자기만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전진만을 할 듯하다.

 그런데, 연암이 보는 것에서 나아가 ‘듣는’ 삶으로서의 여정이 이미 어린 날부터 시작되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접하게 된다. 연암의 저서 《민옹전》에 “지난 계유・갑술년 사이에 내 나이는 열에 일고여덟 살이었다. 병에 오랫동안 시달리어 음악, 서화 혹은 칼, 거문고, 골동 등 모든 잡물을 제법 좋아했을 뿐더러 더욱이 지나는 손님을 모아놓고 익살스럽고 우스꽝스러운 옛이야기로써 마음을 여러 모로 위안시켰으나, 그 깊숙이 스며든 울적한 증세는 어떻게 할 수 없었다.”라고 쓰여 있는 것이다. 이 무렵의 연암은  사나흘씩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거식증으로 오랜 기간 고생하였고 스스로 기록하였듯이 밤새워 가며 머슴부터 기인까지, 여러 부류의 사람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 이처럼 연암은 울적한 병증을 이기고자 연암은 거리로 나갔고 익살과 해학을 통해 자신의 병을 치유하고자 노력했으니 그가 이처럼 거리에서 만난 이들로부터 많은 것을 들었으며 이들의 이야기는 연암의 소설의 소재가 되어 있다. 이때 쓴 글이 《마장전》《예덕선생전》《민옹전》《양반전》《김신선전》《광문자전》《우상전》《역학대도전(학문을 팔아먹은 큰 도둑놈전)》《봉산학자전》의 9가지 전이다.

 연암은 젊을 때부터 벗들과 모여 글 짓고 술 마시며 질탕하게 노는 일이 쾌 있어 사람들은 이를 두고 연암이 번화함을 좋아하며 몸 단속하기를 싫어한다고 평하였으나 연암은 타고난 성품이 물욕이 없어 한가롭게 지내며 고요히 앉아 이치를 궁구하고 관찰하기를 좋아하였다.또한, 연암은 노론으로서 소론인 이광려와의 친분을 유지하기도 하였다. 당파가 심한 그 시기, 이에 대해 사람들은 비난할지언정 무조건적인 비난이 아니라 적확한 비판과 자신과의 공감, 사람됨을 보는 것이다. 보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열린 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3) 코(鼻) - 세상을 욕망하다 

 

 연암의 아들 박종채의 자기 아버지에 대한 기록인 《과정록》에 의하면 점쟁이에게 박지원의 사주로 길흉을 물은 적이 있는데, 연암의 ‘사주는 마갈궁(磨蝎宮)으로 반고와 사마천과 같은 문장을 타고났지만 까닭없이 비방을 당한다’라고 했다 한다. 과연 그 점쟁이가 영험하였는지 연암은 그의 ‘문장’으로 세상으로부터 온갖 비난과 질시를 받게 된다.

 가장 크게 나타난 사건은 한 국가의 왕으로부터 이른바 ‘찍혔다’라고 할 수 있는 문체반정 사건이다. 정조가 이덕무가 지은 <왜적 방비에 대해 논함>이란 글을 보고 연암의 문체를 본떴다라고 할 정도로 연암의 문장은 나름의 특성과 개성을 가지고 당대의 문장가들의 시기와 질투를 불러일으킨다. 당시의 지배적인 질서를 어지럽히는데 있어 글쓰기가 하나의 역할을 한다면 그의 대표적인 선두에 연암이 있고 대표적인 글로 열하일기가 지목되었다. 이미 10년 전에 성행한 열하일기가 문제의 근원지로 최종 낙찰되면서 이에 대한 사대부들의 평가는 엇갈리게 된다. 그것은 오히려 이렇게 왕으로부터의 지목이 글에 대한 은근한 비호일지도 모른다며 당시에 그러했던 것처럼 문책에 따른 반성글을 지어 올리라는 것이다. 이에 연암은 당시의 문인들이 일신을 위해 고문주의로 회귀하여 글을 지은 것과는 달리, 반성문을 제출하지 않았다. 

 연암은 과거 시험에 일등으로 뽑히기도 하고 그의 문장에 대한 칭송으로 시험을 주관하는 자는 연암을 과거시험에 합격시키고자 하였으나, 연암은 시험 답안지를 제출하지 않거나 붓가는 대로 그림을 그리고 시험장을 나오고는 다시는 과거를 보지 않았다. 이에 사람들은 연암을 어리석다며 비웃기도 하였지만 이는 연암이 과거 보는 일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연암이 생애를 통해 전혀 관직에서의 생활을 수행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벗 유언호가 이조 판서로 있으면서 천거한 덕분으로 선공감 감역에 임명되어, 벼슬길에 나서게 되었다. 그의 쉰 살이었다. 또한 선공감 감역은 연암의 이용후생과 직접 관계되는 직책으로 연암은 이후에도 안의 현감에 임명되는 듯 몇 번의 벼슬을 맡게 된다. 연암은 엄정한 판결로 송사를 처리하여 백성들 간에 분쟁을 일삼던 풍조를 바로잡고, 아전들의 상습적인 관곡 횡령을 근절했다. 관아에까지 침범하던 도적을 퇴치하고 흉년에 굶주린 고을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해 자신의 녹봉을 털기도 하는 등 온 힘을 다했다. 특히 청나라의 수레와 벽돌 만드는 데 관심을 가졌던 연암은 안의현감 시절, 관공서 전각을 세울 때나 창고를 세울 때 중국의 벽돌 제도를 써서 벽돌을 손수 굽고 쌓고 하기도 하였다. 즉, 쉰 살의 나이에 수락한 그의 벼슬은 그가 생각하고 있는 이념을 실제로 적용하는 기회였다. 실제로 그는 욕심으로 가득하여 큰 자리에 연연한다거나 이치에 맞는 행동을 보이지 않았고 진정 백성을 위한 실사구시에 힘쓰는 벼슬아치였다.


4) 이(口) - 세상에 내뱉다


 연암의 약력을 정리하다 보니, 유독 가족이나 벗들의 사망이 많았다. 연암이 69세를 일기로 서거하는 날까지, 조부와 부모, 형님과 형수님, 아내와 자식에 이르기까지 또한 그가 사랑하는 벗들까지 연암에 앞서 세상을 떠났고 연암은 이를 지켜보며 통곡해 했다. 연암은 아버지가 병환이 위중할 때 칼로 왼손 중지를 베어 약에 자신의 피를 타서 올렸을 정도였다. 이처럼 사랑하는 가족과 벗들을 보내며 통곡할 때마다 연암은 묘비명을 짓거나 시를 지으며 마음을 달래었다.

 많은 소설들을 쓰며 기존의 부조리한 사회질서에 대해 맹렬히 비판하고 풍자하였고, 만민이 평등하여 직업에 귀천이 없음을 보여주었고, 부강한 나라가 되기 위한 상업과 공업이 활성화되어야 함을 피력하기도 하는 등, 연암은 거침없이 그의 사상과 가치를 글로써 풀어 내었다. 당시 선비인 체하면서 권세와 이익을 구하는 자를 풍자하기 위해서 지은 특히 <역학대도전>은 실제 모델인 자가 죽자 박지원은 스스로 남을 비판하여 명성을 얻은 자가 있지만 자신이 그런 명성을 얻을 필요가 없다하며 그 글을 불태워버렸다 한다.

 팔촌형인 금성도위 박명원이 중국 사행의 정사(正使)로 임명되어 연암을 개인 수행원으로 참여케 하여 연암은 대망하던 중국 여행의 기회를 얻게 된다. 6개월 여의 여정 동안 열하를 여행하면서 열하일기를 기록하였고, 돌아와서, 다시 연암 골짜기에 들어가 《열하일기》 25편을 지었다. 또한 연암은 정조의 명으로 《과농소초》의 농서를 지었으며 여기에는 청나라의 발달한 기구, 수리의 방식과 기재 등에 대해 기술하였다.

 이처럼 연암은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글쓰기를 통해 세상에 끊임없이 내어 놓으며 글쓰기를 주저하거나 마다하지 않는다. 비록 벼슬에 대한 큰 뜻은 없으나 세상의 변화에 대한 큰 뜻을 가진 이로써 변화와 개혁에 대한 끊임없는 욕망을 글로써 세상에 전하는 것이다.


5) 얼굴 - 세상과 소통하다


  ‘연암’은 스스로가 부여한 호칭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닉네임이다. 흔히, 닉네임은 자신의 의지, 자신의 목표, 자신을 대변하거나 좋아하는 것을 사용하게 된다. ‘연암’이라 자호한 것은 연암골에 정착하여 살고자 하면서이다.

 박지원은 벼슬에 큰 뜻이 없었고, 부를 위해 정진하지도 않았다. 늘, 길도 언덕도 아닌 사이의 그 경계점에 머물러 있었다. 세상의 아웃사이더인 것처럼 세상을 살던 연암에게 있어 유일한 세상과의 호흡, 소통처는 ‘연암골’이 아닌가 한다. 연암은 이 곳을 터전으로 하여 유언호, 홍대용, 정철조,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이서구 등과 교제하면서, 자신의 사상과 문학을 더욱 더 심화해 나갔다. 이들 중 몇은 서얼이었으나 이들은 당파나 신분의 차이에 개의치 않고 서로 진정한 우정을 추구했다. 문학에 대한 논의뿐만 아니라 어려움에 처한 연암의 경우 이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얻기도 했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청나라의 선진 문물을 배우고자 하는 '북학'(北學)을 지향한다는 점이었다. 특히 연암은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이라는 문하생을 두어 그의 뜻을 나누고 함께 했다. 이들이 연암과 그들 벗들의 뜻들을 계속 이어갈 터였다. 나아가 이들 또한 문장으로 칭송받고 있으니, 이는 연암의 덕이 클 터이다. 연암이 세상과의 유대를 거부한 채 살아가는 듯이 보였으나 그의 벗들과 제자들을 통해 경계 저 멀리에 머물지 않고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며 세상과 소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미숙,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그린비, 2003.

•고미숙/박지원 원저,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열하일기, 아이세움, 2007.

•김지용, 박지원의 문학과 사상, 한양대학교 출판원, 1994.

•박종채 저/고미숙 역, 나의 아버지 박지원, 돌베게, 1998.

•박지원 저/김혈조 역,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 학고재,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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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괴테와의 대화, 요한 페터 에커만, 장희창 옮김, 민음사, 2008.


  저자에 대한 기록이라면 『괴테와의 대화』의 머리말과 시작 전 자신이 기록한 이야기, 책 속에 부분 부분 들어 있는 그의 생각들이 전부다. 니체라는 대작가가 “현존하는 독일 최고의 책”이라 칭한 책의 작가임에도 에커만에 대한 기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물론 내가 독일인이 아니다 보니 그에 관한 자료를 찾는데 어려운 점이 있었으리라. 그러나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고라도 수백 년 동안, 전세계적으로 널리 읽혀지는 책의 작가에게서 느껴지는 위치가 그에게 없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그가 아니라 사회가 그에게 부여해준 위치 말이다. 그의 책은 에커만의 책이 아니라, 괴테의 책이고 괴테에 관한 책이었다. 괴테를 빼고서는 에커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기록한 그를 보면서, 연보를 보면서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단편적인 것이겠지만 나는 참으로 안쓰럽고 아련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에커만이 괴테를 만나 성장하고 변화되었다고 말하지만, 나는 에커만이 가난하기 때문에 그렇게 살았다고 느껴진다.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극복하고 그만큼의 위치를 점했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가난했기에 길을 더 나아갈 수 없었다. 그래서 그의 생애를 곱씹는 동안 신경림의 시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라는 구절이 계속 맴돌았는지 모른다. 이 시의 부제가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이다. 1800년대 가난한 독일 젊은이의 쓸쓸한 생애가 내 이웃의 이야기인 것 마냥 책을 덮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괴테와의 대화』를 출간하였음에도 부채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 혹여 사치스러운 젊은이인가 오해하였더랬다. 오랜 세월 자신의 의지와 꿈들을 조금씩 내려놓고 괴테의 전집과 자서전을 도우며 생계를 이어가던 에커만. 자신의 작품으로서 『괴테와의 대화』의 저자가 되어 이 책을 보다 일찍 출간하고자 했으나 결국 괴테의 뜻으로 인해 출간하지 못했다. 그리고 괴테의 전집을 도우며 유고작을 정리하는 편집자의 역할을 한 에커만은 그렇게 많은 보수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 어쨌거나 그가 따랐던 괴테도 죽고 그의 아내도 비슷한 시기에 사망하여 그를 떠났다. 그는 그들보다 20여년을 더 세상에 머물렀지만 『괴테와의 대화』이후 괴테와 관련된 서적 이외에 그의 이름으로 된 다른 책은 출간되지 않았다. 


1) 가난하다고 해서 꿈조차 없겠는가


 에커만은 1792년 독일 빈젠에서 태어났다. 너무나도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에게는 어린 시절 일이 곧 놀이였으며 이삭줍기, 도토리 열매 모으기 등을 통해 집안의 생계를 도우며 자란다. 그 와중에도 틈틈이 학교를 다니며 읽기와 쓰기를 익혔다. 우연한 기회에 그림을 그리게 되고 그의 그림이 지방 유지들에게 전해지면서 그들로부터 도움을 받게 된다. 그러나 가난한 이들에겐 그림이 무엇인지, 화가가 무엇인지, 그것을 직업으로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는 세계이기에 그림에 대한 그의 꿈은 사라져갔다.

  그러나 배움에 매료된 에커만은 이 때부터 열심히 공부하였다. 그러나 곧 경제적인 문제로 학업을 지속하기 어려워지자 법원의 서기로서 기록과 잡무를 맡으면서 일을 했고, 이후 감독청과 군청 등 관공서에서 일을 했다. 그렇게 일하며 공부를 하다 의용군에 입대하게 된다. 그때 네델란드 그림을 접하며 그림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 제대 후 홀로 그림을 그리다 스승에게서 배우기로 결심하며 눈쌓인 길을 40여 시간 동안 걸어 람베르크에게 배움을 청한다. 그러나 6개월도 되지 않아 전장에서 얻은 병으로 치료가 필요하고 생계가 어렵게 되자 다시 회사에 취직한다. 즉 상황에 의해 예술가로의 길을 포기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현실적인 여건에 따른 예술가의 삶에 대한 포기는 괴테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에겐 자주 나타나는 일이기도 했다. 병으로 휴식을 취하며 많은 책들을 접하다가 전장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시를 지어 자비로 시집을 내게 된다. 이 시가 잡지에 실리고 여러 지방에 출간되면서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이후 괴테의 책을 접하고는 그에 대한 존경심으로 더 많은 배움을 위해 일하는 틈틈이 라틴어, 그리스어 교습을 받았고 더욱 더 배우기 위해 스물다섯의 나이에 김나지움에 입학한다. 순수한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일을 병행하며 잠을 줄여가며 공부를 하면서 지냈다. 그렇게 생활을 하다보니 다시 병을 얻게 되고 체력의 한계를 느끼며 결국 학교를 그만둔다. 생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둘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그에겐 후원자가 있었지만 그들은 돈이 되는 학문을 하는 경우에만 협력을 약속하였다. 배우고 싶은 열정, 학교를 가고 싶은 열정으로 시집을 내고 수입을 얻게 되자 약혼녀를 두고 괴팅겐으로 떠나 공부를 시작한다. 그리고 후원자들의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법학공부를 시작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바라던 일이 아니었으므로 그는 줄곧 그가 원하는 공부를 병행하고 있었고 종국에는 법학 공부를 그만두고 원하는 공부를 하게 된다. 그 과정에 『시학논고』가 탄생되었다. 에커만에게는 이를 통해 충분한 원고를 받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그것이 그에겐 어느 정도 생계를 보장하고 공부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 책을 괴테에게로 보냈고 이후 직접 괴테를 만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가 살고 있는 골짜기를 걷고 걸어서 괴테가 있는 바이마르로 가게 된다. 극심한 더위로 힘든 고비를 수없이 넘긴 열흘 간의 기간을 지나서였다. 그 길로 괴테의 문학 조수가 되어 1823년부터 1832년까지 10여년 동안 괴테와 교류한다.

 에커만은 그 자신도 생계로 인해 꿈을 포기한 일들을 얘기하며 아무도 자신을 탓하지 못하리라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는 가난으로 꿈을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가난하여 그것을 지속적으로 하지 못했을 뿐, 늘 그는 꿈을 위해 내달리며 배우고 또 배워갔던 것이다. 그림을 배우고자 할 때도 스스로 스승을 찾았고, 문학에의 열정이 가득찼을 때에도 배우고 공부하며 시를 썼다. 그리고 또한 힘든 여정들을 거치며 괴테를 찾아 나섰다. 그가 진정 가난으로 예술가의 길을 포기한 자라면 여전히 그는 법학이나 군청에서 일을 하는 자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한 문학사에서 그의 이름은 여전히 남아 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후세에 전하고 있고 그가 남긴 『괴테와의 대화』는 니체를 통해 칭송받는 작품으로 이어지고 있다.

   

2) 가난하다고 해서 이 모든 것을 버릴 수 없음을


 문학에의 열정으로 끊임없이 배우고자 하며 스스로 스승을 찾는 여정을 떠난 청년은 시간이 지나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었을까.

 에커만은 지금으로 봐선 아직 청춘인 시절인 62세에 사망하였다. 그의 삶에 많은 시간을 괴테와 함께 했고, 괴테의 작품과 함께 했고, 괴테의 목소리와 함께 했다. 그가 괴테의 작품을 읽고 괴테를 만나 그와 함께 삶과 예술과 다양한 학문들에 관한 주제로 이야기하는 동안 에커만은 정신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성숙했으며, 이를 통해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에커만에게 있어 괴테는 지적 동반자이자 절대자였던 것이다.

 괴테 역시 그의 유고작을 에커만이 편집해 주기를 바랐고 괴테가 세상을 뜰 때까지 에커만은 괴테의 원고를 정리하며 <예술과 고대>라는 잡지의 편집을 맡았고, 괴테 사후에는 <유고 전집>을 펴냈다.

 그의 삶에서 괴테의 자리가 크기에, 그리고 떨쳐버릴 수 없는 가난으로 더디게 도달한 자리였기에 애정이 남달랐을 수 있다. 그러하기에 또 한편 외롭게 외면받았을 존재가 있다면 그의 약혼녀이다. 에커만은 괴테를 만나기 전 요한나 베르트람과 약혼하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결혼은 하지 못했고 에커만의 공부를 위해 떨어져 지내게 되었다. 괴테의 아들과 여행을 떠난 에커만은 여행 속에서 많은 생각들을 하고 인생에 대해 고뇌하던 중 약혼녀와 함께 하며 안정된 생활을 꾸리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느끼게 된다. 마침 대공의 자제를 교육하는 일을 제의받아 기쁨으로 여행에서 돌아오지만 그와 같이 여행하던 괴테의 아들이 여행에서 사망하게 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이 일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여전히 에커만은 결혼하지 못하고 괴테의 건강을 걱정하며 괴테의 일을 돕게 된다. 이후 1년이 지나 약혼 12년 만에 드디어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그녀의 아내는 하늘나라로 가 버렸다.


3) 그는 벽 속에 갇혔다


 어쩌면 에커만에게 괴테는 끊임없는 벽이었다. 오직 괴테의 작품에 대한 감탄과 괴테에 대한 존경으로 가득찬 한 사나이의 순수한 열정들을 가두는 벽 말이다. 그 자신 어려움 속에서 남의 도움을 얻기 위해 적당한 거짓을 배웠다고 얘기했지만 괴테와의 만남 속에서 그것은 발현되지 않았다.

 오히려 피터팬 증후군을 앓는 사람처럼 에커만은 괴테 앞에서 너무 작아진 듯하다. 게다가 주눅든 아이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청년 시절까지만 해도 당당했고 열의가 넘쳤던 그였는데 말이다. 괴테를 만나기 전까지 끊임없이 학구열에 불타올랐고 그 자신 또한 창작열에 불타는 문학도로서 그는 시를 짓기도 하고 『시학논고』를 펴내기도 했던 그였는데 말이다. 반면 ‘장인님, 이제 장가보내줘유‘를 외치는 ’나‘에게 자꾸 점순이의 자라지 않은 키를 얘기하며 외면해 버리는 김유정 소설 <봄봄>의 장인처럼 괴테는 심술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어쩌면 에커만의 생애마다 괴테라는 존재로 막혀 있었던 듯도 하다.

 에커만은 괴테의 작품을 정리해주는 조수이자 동료로 만년의 괴테에게는 동반자였다고 얘기된다. 물론 에커만에게도 괴테는 절대적인 존재였으며 자신의 의지로 괴테와의 관계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진정 그들이 동반자였다면 같이 성장할 수 있었어야 한다. 그러나 괴테는 성장하기에는 이미 다 자란, 그리고 원숙하게 성장해 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에커만은 스스로 성숙하였다고 말하고 있고 그러한 면이 책 속에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젊은 시절 그가 행한 만큼의 강렬함이나 열정이 덜하게 보인다.

 자신의 곁에서 오랜 시간 함께 하며 자신을 존경하고 우러러보는 한 젊은 청춘의 재능을 보았다면 그의 재능을 더욱 이끌어 주었으면 좋았으련만. 에커만이 좀더 자신의 순수한 창작물을 생산해 낼 수 있도록 해 주었으면 좋았으련만, 괴테의 그러한 점이 아쉽고 애석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재능과 소질을 발견하게 되었다면 그가 재능을 더욱 펼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참 스승의 역할이 아닐까. 그러나 괴테는 오히려 그를 가두었다. 그의 재능을 확실히 인지하고서야 그를 동료가 아니라 정말, 조수로 부린 듯한 인상이다.

 어쩌면 에커만의 재능을 알아봐주고 이끌어주었다고 말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에커만의 재능을 평가한 시점, 중요한 지점은 여기다. 그가 이러한 말을 한 시점이다. 그것은 괴테가 아픈 동안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던 기간이었다. 그때 괴테는 에커만에게 일을 맡겼고 에커만은 충실히 그 일을 해내었다. 괴테는 에커만의 재능과 소질을 발견하며 진심으로 기뻐한다. 물론 처음 에커만이 논문을 보냈을 때도 호의적이었기에 그들의 만남이 시작되었긴 하지만 말이다. 일단 그가 아픈 기간 동안 에커만이 대신한 일을 두고 괴테는 재능이 있다며 환호하며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자네에게 말해 두겠네만 만일 다른 곳에서 문학과 관련된 청탁을 받는다면 거부하게. 아니면 최소한 나에게 미리 말해 주게나. 자네는 일단 나와 연을 맺었으니 다른 사람과 관계를 가진다는 게 그리 달갑지 않아.”(괴테와의 대화 1권, p102)


  이뿐만 아니다. 오랜 시간 괴테와 함께 하고는 있지만 자신의 문학은 창작하지 못했던 에커만은 드디어, 자신에 대한 각성에 이른다. 진정 익숙한 곳과 결별하고 낯선 곳에서는 자아를 만나게 되는 것인지, 여행을 떠난 에커만은 여행길에서 어느 길을 가야 할 지 모르는 난관에 부딪치게 된다.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자신의 내면으로 파고들어 그의 욕구와 마주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지식을 늘리고, 그의 삶을 개선시키고자 하고팠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자 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생각해왔던 『괴테와의 대화』를 출간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에 대한 욕구가 강하여서인지 그는 여행에 대한 감흥은 사라지고 오직 원고를 마무리짓고자 하는 갈망으로 가득찼다. 바이마르로 되돌아가면 자질구레한 일들에 시달리며 시간만 뺏기고 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조용히 약혼녀 곁에 머무르며 원고를 마치기를 간절히 바랐다. 문학적인 영역에서 영향력을 얻고 어느 정도의 명성을 얻고자 하는 바람도 가지며 글을 쓸 때에 스스로 자유로움을 느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가 편지에서 밝혔듯이 오랫동안 자신의 삶이 정체되어 있음을 느끼면서 그는 스스로의 변화를 필요로 하였기도 했다.

 그러나 괴테에게 전한 이 강렬한 열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그가 떠나 있었기에 진실한 그의 마음을 말할 수 있었을 그 고백들은 괴테의 거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괴테는 대화록을 빠른 시일 내에 발간하려는 나의 생각을 승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순수한 문학적 이력을 성공적으로 개시하려던 나의 구상은 더 이상 생각할 수가 없게 되었다." (괴테와의 대화 1권, p623)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약혼 후 10여년을 떨어져 지낸 이유도 있지만 에커만의 책을 내고 싶은 강렬한 욕구의 좌절이 아마도 약혼녀를 만나고 싶은 갈망으로 그녀와 함께 살고 싶은 마음으로 대체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가 그러한 생각을 품고 있을 무렵 여건도 그에게 좋게 진행이 되기도 했다. 만약 그때 괴테의 아들이 사망하지 않았다면 그는 약혼녀와 함께 하며 안정된 생활을 하고 싶다는 갈망을 이루지 않았을까. 그의 생에서 조금은 괴테라는 인물이 중점이 되어 돌아가던 삶의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그렇게 갈망을 품고 되돌아 온 에커만은 아들의 사망이라는 슬픈 격랑 속의 괴테를 걱정하며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괴테의 일을 돕는다.

  너무나 높은 곳에 있는 괴테를 만나, 스스로를 너무 낮추었던 에커만의 청춘이 아스라이 느껴진다. 그토록 경외하던 괴테가 사라지고 난 후 그의 남은 생애가 어떠한 모습이었을지 괴테와의 대화를 출간하고 난 이후에도 그에 대한 그리움 속에서 음울하게 있지는 않았을지 궁금하다. 그의 생에서 괴테로부터 많은 교양을 얻고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그가 그의 생을 돌아보며 흔들릴 때, 그는 괴테에게서 독립을 꿈꾸었다. 물론 괴테의 허락을 구하고 그의 격려 없이는 무엇도 시작하기 어려움을 토로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는 좀더 괴테라는 벽 속에서 튀어 나왔어야 했다. 그 벽 속에 그가 열 수 있는 문을 만들었어야 했다. 그의 생에, 괴테라는 벽 속에서 문을 만들지 못하였다는 점, 그 자신이 문을 여는 주체가 되지 못했다는 점이 매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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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의 글을 읽고 있는 것일까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박지원 지음, 고미숙・길진숙・김풍기 엮고 옮김


  이 책의 글 하나하나를 써나간 자는 연암 박지원이다. 그러나 18세기 연암의 문체를 오늘날의 언어로 번역하고 책의 전체적인 뼈대를 정리한 것은 편역자이다. 물론 그에 앞서 연암의 글들을 모아 정리한 것은 연암의 자제들이다. 따라서 글, 문장 하나하나에 대해서는 연암에 대한 감상이겠지만 책이라는 틀에 대한 논의는 글들을 정리하고 뼈대를 세운 편역자들에 대한 당부이다. 

  열하일기는 6개월의 여행의 기록이다. 시간의 흐름과 장소의 이동에 따라 글을 적고 있다. 가는 여정에 따라 제목을 붙여 총 7편으로 분리하여 기록하고 있으며 어떤 기록에는 서장을 첨부하여 그에 대한 부언을 첨부하고 있다. 

  장소를 이동하는 여정 속에서 연암은 생활과 풍경에 대한 묘사와 감흥에서 나아가 그곳에서 만남 사람들과의 필담, 청나라 문물에 대한 묘사를 기록하고 있는데 일기에 적은 것 이외에 따로 좀 더 자세한 글들을 정리하고 있으며 일기에 소개하고 있다. 따라서 연암이 쓴 글들이 일기와 맞물려 읽고 싶은데 편역자들이 이를 적절하게 배치하여 일기 속에 언급한 이야기들을 연결되도록 구성하여 흐름이 끊이지 않도록 연결될 수 있게 하였다.  

  한편, 내가 연암이라 6개월 간의 여정을 일기로 쓴다면 어떤 방식일까를 생각해 본다. 그날 그날 겪은 일들에 대한 감상을 나열할까. 아니면 뚜렷한 목적을 가진 내용을 다룰까. 연암의 일기는 비교적 연암처럼 그 당시 생경한 경험을 여행기 속에 기록하되 보다 청의 문물에 대한 묘사와 자신의 사상을 설파하고 뒷받침하는 것이 주된 형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관점에서 목적을 가지고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사물을 바라보며 그에 대해 기록하는 것도 좋은 방식으로 보인다. 사실, 감흥이란 그 장소에서 그 때에서야 느낀 감정일 수 있으나 되돌아 보면 그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충분히 맞닥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여행기의 기록은 감상적이기보다는 조금 더 그 나라와 생활에 대한 묘사와 설명이 이뤄지는 형태가 와 닿는다.


  연암의 문체는 읽으면 읽을수록 빨려가는 듯하다. 그리하여 어느 한 구절만을 달랑 뽑아낼 수 없다. 그리하여 벽돌에 대한 묘사이든, 수레에 대한 의견이든, 그 논쟁적으로 접근하는 글귀에도 문장 전체에 집중하게 된다. 또한 여행기로서 중국 문화와 습속에 대한 묘사 이외에도 가는 여정에서 느끼는 풍경과 그 속에서 느끼는 연암 자신의 마음들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이다.

  여행기에 대해서는 한편으론 감상적이 되기도 하여 호곡장에 대한 서술, 도와 경계 사이의 대화, 아홉 번 강을 건너며 보고 느끼는 감상이 기억에 남겨진다. 어려운 내용도 아니거니와 나 또한 어느 곳 어디에선가 깊은 깨달음으로 맞닥뜨릴 수 있는 감정이라 쉬이 감정이입이 되어 편안하게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몇 구절을 뽑아서 실어본다면 막북행정록에서의 이별에 대한 묘사와 다음의 묘사가 생각난다. 아마도 이 부분은 글보다는 분위기가 자아내는 느낌 탓에 기억이 더 날 터였다. 밤에 홀로 성 밑에 앉아, 별빛 아래서 먹을 갈아 글을 쓰고 보자니, 먹을 갈 물이 없어 술통의 물을 부어 글을 쓰는 그 상황에 눈 앞에 그려지면서 웃음과 또한 애잔함이 묻어난다.


 세 겹의 관문을 나온 뒤, 말에서 내려 장성에 이름을 새기려고 패도를 뽑았다. 벽돌 위의 짙은 이끼를 긁어내고 붓과 벼루를 행탁(행장을 넣은 여행용 전대나 자루) 속에서 꺼냈다. 꺼낸 물건들을 성 밑에 주욱 벌여 놓고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물을 얻을 길이 없었다. 아까 관내에서 잠깐 술을 마실 때 몇 잔을 더 사서 안장에 매달아 두었던 것을 모두 쏟아 별빛 아래에서 먹을 갈고, 찬 이슬에 붓을 적셔 크게 여남은 글자를 썼다. 이때는 봄도 아니고 여름도 아니요 겨울도 아닐뿐더러, 아침도 아니고 한낮도 아니요 저녁도 아닌, 곧 금신(金神)이 제때를 만난 가을철인 데다 이제 막 닭이 울려는 새벽녘이니, 이 모든 것이 어찌 우연이기만 하겠는가.

 - 막북행정록 -


 또한, 연암 스스로 도를 알았다고 서술한 ‘하룻 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다(일야구도하기)’ 편은 그 상황과 맞물려 글에서 자아내는 느낌과 글이 좋게 다가온다.


    “낮에는 강물을 볼 수 있으니까 위험을 직접 보며 벌벌 떠느라 그 눈이 근심을 불러온다. 그러니 어찌 귀에 들리는 게 있겠는가. 지금 나는 한밤중에 강을 건너느라 눈으로는 위험한 것을 볼 수 없다. 그러니 위험은 오로지 듣는 것에만 쏠리고, 그 바람에 귀는 두려워 떨며 근심을 이기지 못한다.

    나는 이제야 도를 알았다. 명심(冥心, 깊고 지극한 마음) 이 있는 사람은 귀와 눈이 마음의 누가 되지 않고, 귀와 눈만을 믿는 자는 보고 듣는 것이 더욱 섬세해져서 갈수록 병이 된다. 지금 내 마부는 말에 밝혀서 뒷수레에 실려 있다. 그래서 결국 말의 재갈을 풀어 주고 강물에 떠서 안장 위에 무릎을 꼰 채 발을 옹송거리고 앉았다. 한번 떨어지면 강물이다. 그땐 물을 땅이라 생각하고, 물을 옷이라 생각하고, 물을 내 몸이라 생각하고, 물을 내 마음이라 생각하리라. 그렇게 한 번 떨어질 각오를 하자 마침내 내 귀에는 강물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무릇 아홉 번이나 강을 건넜건만 아무 근심없이 자리에서 앉았다 누웠다 그야말로 자유자재한 경지였다.“

 - 하룻 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다(일야구도하기)-


  열하일기를 읽는 순간부터 처음에 맞닥뜨린 건 이질감이었다. 현대적 언어에 익숙하다 할지라도 당연 18세기의 저서를 읽으면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18세기의 그 느낌을 얻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나는 너무도 평탄하게 글을 읽고 있었다. 순간 지금 이 글이 연암의 문체가 맞는가, 얼마만큼 현대적인 문체로 번역되었는가, 이런 것이 생각나면서 읽어보지도 못하겠지만 연암이 쓴 문장 자체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동시에 이 책의 대상이 청소년들이라는 문장을 보는 순간 성인을 대상으로 한 책이 필요해라는 어이없는 생각까지도 하게 되었다. 낯선 시간의 기록을 진입하는 과정에서 교과서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난 시대의 기록을 위한 사전 배경 설명이 있다는 것은 본문을 이해하는데 길잡이가 되어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만화 속 캐릭터 같이 사행단 멤버들의 성격과 행동을 서두에서부터 명확하게 명시해 본문 속에서 그들의 관계와 특징을 찾아가는 묘미를 상쇄시키고 있다는 점이 매우 아쉽다. 굳이 친절한 안내로서 등장인물의 특징을 정의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이 부분은 삭제되어도 무방하다고 보지만) 하권에 연암의 일기가 끝난 뒤에 배치하였으면 한다.

  본문 중에 따로 찾아보지 않아도 되게끔 삽화와 부연 설명을 통해 내용의 이해를 덧붙여 주고 있는 점은 글을 읽는 입장에서는 매우 편한 부분이다. 그러나 본문의 많은 삽화와 부연 설명이 있는 것에 비해 전체적인 부연 설명, 즉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이 부가되었더라면 더 좋았을 듯하다. 당시의 시대가 혼란과 격동의 시기였던 것만큼 당시 조선시대의 분위기와 더불어 국외, 서양의 상황은 어떠했는가라는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읽을 수 있었으면 박지원의 일기와 글들에 대한 이해도 전체적인 견지에서 어울려 생각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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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독일 최고의 책

    

저자 요한 페터 에커만 


  이 한권을 위해, 아니 엄밀히 말하면 출판사에서 2권으로 출간하였으니, 2권을 위해 전생애를 바친 요한 페터 에커만의 생애가 기억이 남는다. 그의 생애가 요즘으로 따지면 을의 인생, 열정페이를 강요받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 책의 제목이 『괴테와의 대화』임에도 저자가 괴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여전히 괴테만 기억하는 사람에게 꼭 이 책의 저자는 요한 페터 에커만이라고 외치고 싶다!


  니체가 “현존하는 독일 최고의 책”이라고 평한 『괴테와의 대화』는 민음사 판 전2권으로 되어 있다. 저자가 괴테와의 만남에서 있었던 대화를 기록한 것으로 1권에는 1부와 2부, 2권에는 3부가 연도별로 정리되어 있다. 그러나 2권에 연도가 중복되어 나타난다. 저자는 괴테 사후 약 10년 동안 천 번의 만남을 통해 괴테와 대화한 내용을 메모하여 기록한 것으로 1836년 1부와 2부를 출간하였다. 이후 인기가 좋아 1848년 괴테와의 대화를 기억하여 출간한 것이 제3부이므로 연도가 중복되어 나타나고 있다. 또한 3부는 저자 이외 오랜 동안 괴테와 교류한 제네바 출신의 자유로운 공화주의자 소레가 괴테와의 만남을 일기에 적은 내용이 첨부되어 있다. 소레가 그가 기록한 내용들을 연대순을 편입해 달라고 부탁했고 저자는 소레가 기록한 것을 보충하고 거기서 빠진 공백들을 채워 넣으며 3부를 완성하였다. 특히 소레의 내용을 상당히 활용한 부분은 구분하기 위하여 따로 표시하고 있는데 1824년에서 1829년에 이르는 부분, 1830년, 1831년, 1832년이 그러하다. 전체적인 내용이 괴테와의 대화를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다면 3부의 초기 년도에서는 사건을 나열한 듯한 인상을 받았는데 그것이 소레의 일기를 바탕으로 한 부분이었다.

  이 책은 괴테와 저자 사이의 대화 내용이 주가 된다. 그리고 괴테의 가족과 친구들, 괴테가 만난 예술가와 학자 등-나폴레옹, 헤겔, 실러, 베토벤 등-와 나눈 대화가 수록되어 있다. 이들 대화는 일상적인 대화를 넘어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것은 괴테 자신의 작품에 대한 내용, 세계 문학대가들에 대한 괴테의 생각과 해석, 정치에 대한 관점, 당대의 문학과 예술에 대한 관점, 종교에 관한 관점, 자연과학에 대한 관점, 삶의 지혜에 관한 생각 등 괴테의 삶과 철학이 담겨 있다.


  대화는 상호간에 주고받는 말이다. 대화에서는 화자와 청자의 역할이 나뉘며 담화의 내용에 따라 역할을 달리하게 된다. 『괴테와의 대화』는 괴테와 저자의 10년 동안의 만남 속에서 이루어진 대화가 주 내용을 이루고 있는데, 상호간의 대화가 무색할 만큼 괴테의 일방적인 언행들이 주를 이룬다. 괴테의 말에 대해 저자는 호응하거나 혼자 감탄하거나 하면서 괴테가 전하는 내용들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연도가 지날수록, 그러니까 세월이 지날수록 이러한 형태의 대화는 조금의 변화양상을 보인다. 괴테의 일방적인 말씀 전하기가 아니라 저자 또한 일정 부분 대화의 주도권을 가진다는 것이다. 괴테의 논리에 반박하며 자기 주장을 펼치며 의견을 피력하고 자신의 견해를 서술하기도 하는 것이다.

  같은 문학을 꿈꾸는 자로서 또한 시집을 낸 시인으로서 저자는 대문호 괴테에게 가려져 아무런 꽃을 피우지 못한 듯이 보였다. 니체가 최고의 작품이라 평했지만 저자에 대한 명성이나 문학적인 찬사가 아니라, 그저 ‘괴테’를 더욱 더 알 수 있는 연구로서 이 책이 세상에 기억되고 있다. 그렇기에 저자에 대한 안타까움과 서글픈 감정이 지속되었는데, 저자 자신이 괴테를 사랑하고 존경하고 있고 그 오랜 기간 동안 스스로도 괴테의 영향 아래서 정신적으로도 더욱 성숙하고 자신의 관점을 정립하게 된 듯하여 이것이 매우 뜻깊게 다가왔다.

  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문학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기에 괴테의 작품을 정리하는 일을 도우면서 그 자신의 관점과 문학적인 열성으로 괴테의 작품을 정리하고 새롭게 조언하는 내용을 보게 되는 것이 기쁘기 그지없었다. 그러니까, 저자 또한 시간의 흐름과 함께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에커만이 여행길에서 괴테에게 보내는 편지가 아닌가 한다. 그것은 진실로 에커만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갈망을 표출하며 자신과 마주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결과를 떠나 자신의 목소리를 괴테에게 전달했던 또 하나의 표현이었다. 그러니까 이 책 전반에 나타난 괴테의 지식과 혜안들에 놀라지만, 지극히 조심스럽고 경외감으로 표현된 에커만의 어조들을 보는 것이 은근히 기억에 머물게 된다. 이 책을 쓰게 된 내용, 그가 괴테와 만나기까지의 과정 등, 그 기록들 속에서 저자 에커만을 마주할 수 있어서 좋다.

 괴테의 말들은, 그의 수많은 작품 속에서도 우리가 알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작품을 통해서도 알지 못하는 많은 공백들을 저자가 10년 동안 대신 물어 줌으로써 괴테를 통해 그 작품들이 창작되고 그에 대한 여러 감흥들을 엿볼 수 있던 것 또한 좋은 부분이었다. 결국, 아닌 듯해도 이 작품은 괴테라는 넘을 수 없는 바위를 조금씩 조금씩 두들겨 대는 저자를 통해 사람들 가까이로 바위가 이끌려 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 책은 연도순으로 괴테와의 대화를 기록하고 있다. 처음부터 일기 형태로 기록되었기도 하였고 괴테와의 만남의 순간들에 대한 기록이기에 어찌 보면 연도순의 일기 형태가 가장 무난한 구성인 듯 보인다. 그리고 이 형태로 구성된 것은 당시의 이야기의 맥락에 따른 내용이해를 제고할 수 있다는 점이 주요하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이러한 연도별 기술에서 1부와 2부의 나뉨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서술 형태의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괴테와의 만남에서 극적인 사건 변화로 구분지은 것도 아니다. 대화의 주제에 따른 구분도 아니다. 단순히 연도상이 절반 정도를 나눈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러한 부의 나뉨은 별 의미가 없다. 물론 3부는 1, 2부 후에 또한번 출간된 것이라 전체적으로 기록하지 못했던 날들에 대한 추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예외로 한다고 해도 역시, 거기에다가 3부로 덧붙이는 것은 좀 어색하다. 차라리 3부의 내용이 다른 서술 형태이라면, 주제를 달리한 묶음이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렇기에 3부의 내용들은 1부와 2부 사이에 연도와 날짜에 맞추어 각각 삽입한다면 전체적인 전개가 매끄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3부에서 참고한 소레의 기록에 대한 표기도 하면서 말이다.

  저자는 인쇄되지 않은 괴테의 편지와 일기 등을 연도별로 검토하면서 편집과 출판에 관한 사항들을 정리하며 다양한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그는 모든 편지들을 다 실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이유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개별적인 구절들은 선행하고 있는 구절들이나 나중에 나오는 구절들에 의해서 비로소 그 진정한 가치가 드러나고 확연하게 이해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를 출판하기에 무리가 따른다면 부분 부분 베껴 해당 연도별로 묶는 방법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수신인과 연도별 정리 방법 중에서 연도별을 선호하는데 그 이유는 같은 시간대에 활동했던 이들의 관계를 드러내고, 그 편지를 쓴 이들이 처한 상황과 일을 여러 측면에서 조명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그가『괴테와의 대화』에서 사용하고 있는 연도별 기록은 이러한 자기 의견을 적용한 책인 것이다.   

  하지만, 이 책 자체가 연도별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또 다른 형태의 구성을 제안해 본다. 바로 주제별로 대화의 내용을 분류하는 방안이다. 아마도 이것은 『괴테와의 대화』라는 제목에 부제를 달아야 할 지 모르지만 그 이야기가 나온 맥락의 이해를 떠나, 주제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려될 만하다. 특히 『괴테와의 대화』가 담고 있는 괴테의 무수한 생각들을 총합적으로 정리하여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유용하리라 본다. 여기에 에커만이 생각한 바 있는 정리 방식이 유용한 지지를 해준다.


      결국 우리는 다음과 같이 견해의 일치를 보았다. 예술과 관련된 모든 경구들은 예술에 관한 글을 모은 책에다가 자연과 관련된 글들은 모두 자연과학 편에, 그리고 윤리와 문학을 다룬 글들은 마찬가지로 또 그런 것들만을 모은 책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괴테와의 대화』1권, p725)

 

   이러한 형식을 고려한다면 다방면의 주제로 이야기가 이루어진 만큼 다양한 주제로 나눠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큰 카테고리 나뉜다면 다음과 같은 형태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문학, 철학, 자연과학, 정치학, 종교학

 둘째, 괴테의 문학과 자연과학에 대한 소고

 셋째, 고전론, 희극론, 배우론, 작가론, 시론, 정치론, 괴테의 작품비평


  특정한 주제어를 발췌하여 그에 따라 서술하면 다음과 같은 내용을 선별하여 논의를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고전적인 것과 낭만적인 것

      개별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

      데몬적인 것과 오성

      작가의 생산성과 창조력

      이념과 소재

      정신과 자연과학

      인간 존재와 신


  이와 같은 내용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이를 중심으로 세부적인 내용들을 전개하면 핵심 내용들을 이해하는데 보다 유용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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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틱 아이러니에 빠질 시간

 

  타인의 독서록을 읽는다는 것은 그의 일기를 읽는 것만큼이나 짜릿하다. 어떤 문장과 단락을 좋아하는지 비교해 보기도 하고 세상에 대해 가지는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선택하는 책에서 취향을 읽어내기도 한다. 그러하기에 읽어보지 못한 책에 대해서는 “아하, 이런 책이었어?“라는 생각을 읽은 책에서는 ”음, 그렇군“ 하고 읽게 된다.

  구본형의 마지막 수업은 동서양의 문학과 철학 17개의 고전을 다루고 있다. 이를 크게 두 부분, 욕망과 도전으로 나누어 분류하고 각각에 또다른 키워드를 제시하면서 책의 내용을 풀어나간다. 제1부 ’무엇을 욕망할 것인가’에는 젊음, 배움, 도전, 고뇌, 성장, 자유, 정의, 성, 사랑이라는 9개의 키워드를 제2부 ‘모험을 선동하라’는 인생, 지혜, 사랑, 전통, 선택, 여행, 운명, 화해와 공존이라는 8개의 키워드를 핵심으로 선정하고 있다.

  고전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되새김하며 풀어나가는 책으로 고전을 소개하는 내용으로도 무방하다. 따라서 순서대로 읽어나간다거나 할 필요없이 목차를 보고 ‘필’이 오는 제목을, 책을 선택하여 각 장을 독립적으로 읽어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고전에서 발췌한 부분, 그에 따른 사유의 연결이 이어지며 특히 어느 부분만이 감동적이다라고 하기 어렵게 전반적으로 마음에 와 닿았다. 좋아하던 책은 좋아하였기에, 읽어보지 못한 책을 그렇기에 감동적이다. 그간 저자의 책에서 많이 다루어 익숙한 신화를 제외하고 동양의 고전과 접목한 화두는 또 다르게 다가왔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릴케의 편지도 좋았고, 자유를 외치는 그리스인 조르바도, 고뇌에 가득찬 베르테르와 라스콜리니코프도, 안티고네 이야기도 좋다. 그들의 이야기가 좋고 거기에 따른 생각 또한 좋다. 오디세우스와 오이디푸스는 익숙함인지 그들의 운명과 인생에 대한 애잔함 때문인지 자꾸 들여다보게 되기도 한다.

  그런데, 프롤로그에서 석가가 아난에게 최후의 순간까지 법을 설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난아, 울지 마라. 이별이란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내가 이미 말하지 않았느냐. 태어나고 생겨나고, 조건 지어진 것은 모두 그 자체 안에 사멸할 성질을 품고 있다. 그렇지 않을 수 없다.”

  태어나고 생겨나고, 조건 지어진 것은 모두 그 자체 안에 사멸할 성질을 품고 있다....이 문구로 저자가 떠올려지며 마음이 아릿해지지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제일 먼저 나온 책이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구본형의 마지막 편지>가 떠오르며 마음이 먹먹해지며 첫 장을 들어가는데 미적거리게 만들어서인지 또한 글쓰기에 대한 글들이 이어져서인지 기억에 남는 장이 되었다. 그 중 한 부분이다.

  

    자기 안으로 침잠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에게 글을 쓰게 하는 그 근거를 캐보십시오. 그 근거가 당신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살펴보시고 글쓰기가 좌절되었을 때 죽을 수밖에 없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깊고 조용한 밤에 스스로 자문해보십시오. 나는 글을 써야 하는가? 답을 찾아 내면으로 깊이 파고드십시오. 그리고 그 답이 긍정적이라면, 당신이 그 진지한 의문에 대해 강력하고 확고하게 ‘써야만 한다’고 대답할 수 있다면 당신의 생애를 그 필연성에 따라 세우십시오. 당신의 삶은 아주 하찮고 무심한 순간이라도 이 충동에 대한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자연에 다가가 보고, 체험하고, 사랑하고, 잃어버린 것들을 말로 표현해보십시오. 제가 당신에게 해줄 충고는 이것밖에 없습니다. 


 왜 하필 이 책인가?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고전의 선정 기준이었다. 왜 하필 이러한 책들일까? 책으로부터 저자가 강조하는 변화경영의 화두를 이끌어 내는 방식은 익숙하다. 그러므로 인간의 성장과정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고민과 가치들을 어떤 책에서 이끌어 내느냐는 이 책의 핵심이기도 하다. 책의 선정 기준을 보니 저자가 마지막까지 방송했던 EBS FM 라디오 「고전읽기」에서 방송한 내용을 책으로 엮으며 저자가 남긴 칼럼과 편지들에서 내용들을 취합했다.

  라디오 「고전읽기」에서 소개한 책은 거의가 책에 실려 있다. 빠진 부분은 <박문수전>, <주생전>, <박씨부인전>, <할아버지의 기도>이다. <할아버지의 기도>는 2000년대에 출간되어 고전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근간이므로 제외되었다 하더라도 우리나라 고전만 빠진 것 같아 아쉽다. 특히나 주로 신화속에서 변화경영을 이끌어 내는 저자였던 만큼 저자가 늘 이야기하던 책에서는 안정감과 익숙함으로 편안하게 내용을 이해하게 되고, 우리나라 고전이야기에서 다루는 화두는 어떨까라는 호기심과 낯섬에서 설레임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이 책들이 제외된 것이 조금 아쉽다. 그러므로 익숙하지 않은 책들에서 익숙하지 않은 화두를 읽어내는 혜안들로서 저자가 읽은 다른 책들, 그의 제자들과 함께 호흡하며 읽어 내려간 다른 더 많은 책들에서 이야기를 이끌어낼 2탄을 기대한다. 


 왜 이 키워드인가?

 

  책을 읽기 전 목차를 통해서 먼저 본 것은 어떤 책이 있는가였고 두 번째는 왜 이렇게 나누었을까, 그 다음으로는 키워드였다. 크게 욕망과 도전으로 분류하였고 내면의 가치들에 따른 키워드를 제시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분류하고 정리하였을까라는 생각을 거듭 했다. 어떻게 보면 어느 책에서든 저자가 제시한 다른 키워드, 내면적 가치들을 대입해도 별 무리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사랑’을 한번 보자. 저자는 저자는 도전에서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랑은 베르테르의 사랑에서도 데카메론, 향연에서도 와 닿는다.

 - 고뇌에 찬 사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에로틱한 사랑, <데카메론>

 - 관념론적 사랑, <향연>

 - 방법적 사랑, <사랑의 기술>

  그러므로 큰 주제를 두고서 그 주제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형태로 얘기하는 책들을 배치하여 또다시 다양한 시각으로 그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보는 방법 또한 흥미로울 듯하다. 인간의 삶에서 요구되는 가치는 다양하고 그 가치에 대한 관념과 사유는 다르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들을 어떻게 이끌어 내서 내게로 적용해야 할 지 모르는 많은 이들을 위해서 말이다.


 고전읽기 선동가의 말을 끝으로.....


  우리는 오래도록 고전읽기를 강요받고 있다. ‘고전이 그래서 고전이다’는 말을 만들어낼 정도로. 하지만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도 고전을 읽기를 바라는 수많은 마음들이 왜 그런지 생각해 볼 일이다. 내가 당한 것을 너도 당해봐, 하는 심정도 있으려나....아무튼 오래도록 사람들에게서 추천받고 있다면 그 나름의 이유를 맛보는 것이 마냥 나쁘다거나 귀찮은 일은 아니겠지. 그리고 나만의 끌림을 찾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는 거고. 매력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어쩔 수 없는 거고.

  여기, 이 책은 고전에 대한 끌림을 이렇게 말해주고 있다.  

    고전은 바로 불완전한 인간에게 작가가 진실한 언어의 창을 던지는 것이다. 깊은 상처를 입힌다. 그것은 다시 태어나게 하는 사랑의 창이다. 불완전한 인간을 찔러 그 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토마스 만은 이것을 ‘에로틱 아이러니’라고 불렀다. 고전은 나를 바꾸는 지독한 유혹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삶에 기쁨을 쏟아주는 위대한 이야기다. 내면의 가치를 잃었다고 느낀다면 바로 고전을 읽을 시간이다. 삶의 지표를 잃었다고 생각한다면 지금이 바로 고전을 읽을 시간이다. 삶의 황홀을 맛본 지 오래되었다면 내 영혼을 위해 바로 지금이 고전을 읽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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