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틱 아이러니에 빠질 시간
타인의 독서록을 읽는다는 것은 그의 일기를 읽는 것만큼이나 짜릿하다. 어떤 문장과 단락을 좋아하는지 비교해 보기도 하고 세상에 대해 가지는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선택하는 책에서 취향을 읽어내기도 한다. 그러하기에 읽어보지 못한 책에 대해서는 “아하, 이런 책이었어?“라는 생각을 읽은 책에서는 ”음, 그렇군“ 하고 읽게 된다.
구본형의 마지막 수업은 동서양의 문학과 철학 17개의 고전을 다루고 있다. 이를 크게 두 부분, 욕망과 도전으로 나누어 분류하고 각각에 또다른 키워드를 제시하면서 책의 내용을 풀어나간다. 제1부 ’무엇을 욕망할 것인가’에는 젊음, 배움, 도전, 고뇌, 성장, 자유, 정의, 성, 사랑이라는 9개의 키워드를 제2부 ‘모험을 선동하라’는 인생, 지혜, 사랑, 전통, 선택, 여행, 운명, 화해와 공존이라는 8개의 키워드를 핵심으로 선정하고 있다.
고전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되새김하며 풀어나가는 책으로 고전을 소개하는 내용으로도 무방하다. 따라서 순서대로 읽어나간다거나 할 필요없이 목차를 보고 ‘필’이 오는 제목을, 책을 선택하여 각 장을 독립적으로 읽어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고전에서 발췌한 부분, 그에 따른 사유의 연결이 이어지며 특히 어느 부분만이 감동적이다라고 하기 어렵게 전반적으로 마음에 와 닿았다. 좋아하던 책은 좋아하였기에, 읽어보지 못한 책을 그렇기에 감동적이다. 그간 저자의 책에서 많이 다루어 익숙한 신화를 제외하고 동양의 고전과 접목한 화두는 또 다르게 다가왔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릴케의 편지도 좋았고, 자유를 외치는 그리스인 조르바도, 고뇌에 가득찬 베르테르와 라스콜리니코프도, 안티고네 이야기도 좋다. 그들의 이야기가 좋고 거기에 따른 생각 또한 좋다. 오디세우스와 오이디푸스는 익숙함인지 그들의 운명과 인생에 대한 애잔함 때문인지 자꾸 들여다보게 되기도 한다.
그런데, 프롤로그에서 석가가 아난에게 최후의 순간까지 법을 설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난아, 울지 마라. 이별이란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내가 이미 말하지 않았느냐. 태어나고 생겨나고, 조건 지어진 것은 모두 그 자체 안에 사멸할 성질을 품고 있다. 그렇지 않을 수 없다.”
태어나고 생겨나고, 조건 지어진 것은 모두 그 자체 안에 사멸할 성질을 품고 있다....이 문구로 저자가 떠올려지며 마음이 아릿해지지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제일 먼저 나온 책이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구본형의 마지막 편지>가 떠오르며 마음이 먹먹해지며 첫 장을 들어가는데 미적거리게 만들어서인지 또한 글쓰기에 대한 글들이 이어져서인지 기억에 남는 장이 되었다. 그 중 한 부분이다.
자기 안으로 침잠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에게 글을 쓰게 하는 그 근거를 캐보십시오. 그 근거가 당신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살펴보시고 글쓰기가 좌절되었을 때 죽을 수밖에 없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깊고 조용한 밤에 스스로 자문해보십시오. 나는 글을 써야 하는가? 답을 찾아 내면으로 깊이 파고드십시오. 그리고 그 답이 긍정적이라면, 당신이 그 진지한 의문에 대해 강력하고 확고하게 ‘써야만 한다’고 대답할 수 있다면 당신의 생애를 그 필연성에 따라 세우십시오. 당신의 삶은 아주 하찮고 무심한 순간이라도 이 충동에 대한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자연에 다가가 보고, 체험하고, 사랑하고, 잃어버린 것들을 말로 표현해보십시오. 제가 당신에게 해줄 충고는 이것밖에 없습니다.
왜 하필 이 책인가?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고전의 선정 기준이었다. 왜 하필 이러한 책들일까? 책으로부터 저자가 강조하는 변화경영의 화두를 이끌어 내는 방식은 익숙하다. 그러므로 인간의 성장과정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고민과 가치들을 어떤 책에서 이끌어 내느냐는 이 책의 핵심이기도 하다. 책의 선정 기준을 보니 저자가 마지막까지 방송했던 EBS FM 라디오 「고전읽기」에서 방송한 내용을 책으로 엮으며 저자가 남긴 칼럼과 편지들에서 내용들을 취합했다.
라디오 「고전읽기」에서 소개한 책은 거의가 책에 실려 있다. 빠진 부분은 <박문수전>, <주생전>, <박씨부인전>, <할아버지의 기도>이다. <할아버지의 기도>는 2000년대에 출간되어 고전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근간이므로 제외되었다 하더라도 우리나라 고전만 빠진 것 같아 아쉽다. 특히나 주로 신화속에서 변화경영을 이끌어 내는 저자였던 만큼 저자가 늘 이야기하던 책에서는 안정감과 익숙함으로 편안하게 내용을 이해하게 되고, 우리나라 고전이야기에서 다루는 화두는 어떨까라는 호기심과 낯섬에서 설레임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이 책들이 제외된 것이 조금 아쉽다. 그러므로 익숙하지 않은 책들에서 익숙하지 않은 화두를 읽어내는 혜안들로서 저자가 읽은 다른 책들, 그의 제자들과 함께 호흡하며 읽어 내려간 다른 더 많은 책들에서 이야기를 이끌어낼 2탄을 기대한다.
왜 이 키워드인가?
책을 읽기 전 목차를 통해서 먼저 본 것은 어떤 책이 있는가였고 두 번째는 왜 이렇게 나누었을까, 그 다음으로는 키워드였다. 크게 욕망과 도전으로 분류하였고 내면의 가치들에 따른 키워드를 제시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분류하고 정리하였을까라는 생각을 거듭 했다. 어떻게 보면 어느 책에서든 저자가 제시한 다른 키워드, 내면적 가치들을 대입해도 별 무리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사랑’을 한번 보자. 저자는 저자는 도전에서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랑은 베르테르의 사랑에서도 데카메론, 향연에서도 와 닿는다.
- 고뇌에 찬 사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에로틱한 사랑, <데카메론>
- 관념론적 사랑, <향연>
- 방법적 사랑, <사랑의 기술>
그러므로 큰 주제를 두고서 그 주제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형태로 얘기하는 책들을 배치하여 또다시 다양한 시각으로 그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보는 방법 또한 흥미로울 듯하다. 인간의 삶에서 요구되는 가치는 다양하고 그 가치에 대한 관념과 사유는 다르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들을 어떻게 이끌어 내서 내게로 적용해야 할 지 모르는 많은 이들을 위해서 말이다.
고전읽기 선동가의 말을 끝으로.....
우리는 오래도록 고전읽기를 강요받고 있다. ‘고전이 그래서 고전이다’는 말을 만들어낼 정도로. 하지만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도 고전을 읽기를 바라는 수많은 마음들이 왜 그런지 생각해 볼 일이다. 내가 당한 것을 너도 당해봐, 하는 심정도 있으려나....아무튼 오래도록 사람들에게서 추천받고 있다면 그 나름의 이유를 맛보는 것이 마냥 나쁘다거나 귀찮은 일은 아니겠지. 그리고 나만의 끌림을 찾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는 거고. 매력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어쩔 수 없는 거고.
여기, 이 책은 고전에 대한 끌림을 이렇게 말해주고 있다.
고전은 바로 불완전한 인간에게 작가가 진실한 언어의 창을 던지는 것이다. 깊은 상처를 입힌다. 그것은 다시 태어나게 하는 사랑의 창이다. 불완전한 인간을 찔러 그 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토마스 만은 이것을 ‘에로틱 아이러니’라고 불렀다. 고전은 나를 바꾸는 지독한 유혹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삶에 기쁨을 쏟아주는 위대한 이야기다. 내면의 가치를 잃었다고 느낀다면 바로 고전을 읽을 시간이다. 삶의 지표를 잃었다고 생각한다면 지금이 바로 고전을 읽을 시간이다. 삶의 황홀을 맛본 지 오래되었다면 내 영혼을 위해 바로 지금이 고전을 읽을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