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사랑한다는 것, 어떤 일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


『바가바드기타』. 마하트마 간디. 

 

 『바가바드기타』에서 두 가지에 끌림을 가졌다면 인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알 수 없는 매혹과 이끌림이 첫 번째요, 바가바드기타라는 낯선 용어와 내용을 그나마 익숙하게 들어 온 간디가 해설하였다는 점이다.

  어느 종교인들 그 심오한 진리와 믿음에 대하여 자랑치 않겠냐만 바가바드기타는 종교적이자 철학적인 느낌이 강조되는 듯했다. 물론, 한두 번 읽고서 이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웠다. 특히 무교인 사람의 특징으로서 신에 대한 맹목적인 존경을 보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특정 종교가 없기에 그 포괄적인 의미에 대해 이해하는데 쉬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자신의 종교와의 괴리를 경험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 신을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일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했다. 물론 난 이 말에 대해 공감하지 못한다. 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일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특정일 혹은 그 이상의 일에 집착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 아닐까. 그것이 물론 베풂으로써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신을 사랑하여 집착하지 않는 경우가 집착하기 때문에 신을 섬기는 경우를 능가하진 못할 것이다. 물론 그러한 집착들, 탐욕과 이기심을 비우기 위해 신에 대한 사랑을 갈구하고 신에게 의지하는 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바가바드기타는 ‘지존의 노래’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크리슈나 신의 가르침을 담은 시가이다. 이는 결국 인도 힌두교의 정신이라 할 수 있는데 비교적 간디의 해설로서 내용의 이해를 겨우 한다고 해도 깊이 깨닫지 못하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아마도 이렇게 어렵게, 이해하기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이 경전의 내용이, 크리슈나의 가르침이 표현하고 있는 이중적인 언어 표현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순적인 표현은 항상 그러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내 안에 있으면서도 있지 않은 것, 선하면서 동시에 악한 것, 가짜인 것이 진짜인 것 등의 말들은 항상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든다. 이를 통해 나 역시 나라는 존재가 무엇인가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익숙하게 여기고 있는 진리라는 개념에 대해, 또한 경건한 마음과 진실한 마음으로 무언가에 대해 누군가에 대해 가질 수 있는 믿음의 정도는 어느 정도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바가바드기타에서 11장은 전체 중에서도 가장 시적인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 때문에 특히 다른 장에 비해 이들 장에 집중해서 읽게 되었다. ‘비판하지 않는 그대에게’라는 소제목이 달린 9장도 어떻게 내용을 전개시킬지 호기심이 당긴 부분이다.


내 이제, 비판하지 않는 그대에게, 이 신비스런 지식과 아울러 특별한 지식을 일러주리니. 이를 앎으로써 그대는 악에서 풀려날 것이다.

이는 학문의 왕이요, 신비스러움의 왕이요, 순수요, 다스림이요, 곧장 알 수 있는 것이요, 다르마의 본질이요, 실천하기 쉬운 것이요, 변하지 않는 것이로다.


  물론 종교적인 부분, 믿음이라는 것은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고 했으나 그러나 믿음에 대한 스스로의 무지에 대해 비판해 보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 나아가 나의 믿음이라는 것 또한 어느 정도 종교적인 신념에 공감할 때 비로소 나의 마음 속에 진실한 믿음이 생겨나리라 본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비판이라는 것은 맹목적인, 헌신적인 믿음과 같은 의미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이를 통해 지속적으로 나를 비판할 수 있는 힘이 주어지기를 바란다.

  우선적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욕망으로 인해 생겨난 고통에서 해탈할 수 있는가. 물론 이에 대한 것은 집착을 버리라는 것으로 일관된다. 그러면 집착을 버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느 종교에서나 집착에 대한 경계와 집착을 버리는 것이 곧 새로운 믿음에의 길임을 강조한다.

  바가바드기타 역시 이에 충실하다. 그러나 바가바드기타도 단순한 진리에 대한 경전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진실한 실천이 매우 중요한 것임을 강조한다. 특정한 문구에 대한 경배나 감탄을 넘어서 그것이 행위로서 이루어질 때 비로소 신에 이르는 길이 보여 지고 신 안에 있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진리란,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지식이란 실천과, 행위와 함께 하게 될 때 진실한 빛을 발휘하는 것이며 그것이 결국 신에 이르는 길이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논리가 아니라 그 길이 내면적인 변화로써 신적인 삶의 환희와 자유, 즉 해탈로 인도하는 길인가의 여부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으로서 겪게 되는 무수한 이율배반적인 사건들, 그 속에서 겪게 되는 딜레마는 개인의 이익과 진리, 보편적인 타당성과의 갈등이라는 점에서 결국 이를 벗어나는 것은 그 모든 집착을 버리는 것이 된다. 다시 집착을 버리는 것은 신의 뜻에 따르는 것, 신의 말씀을 깊게 이해하며 그를 실천하는 방법이다. 신은, 인간의 삶에서 신에게 이르는 길은 결국 ‘신’을 알고 그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방법은 오로지 ‘바크티(헌신)이다.

  바크티를 얻을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지식을 아는 것도 아니요, 지식을 알고자 하며 이를 실천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바가바드기타에서 이야기하듯 지식은 경전 이전에 마음을 여는 것에서 출발한다. 나의 해탈은, 비판 이전에 열린 자세를 견지하는 것에서 시작하여야 한다. 바가바드기타는, 나에게 이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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