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기행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14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송병선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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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연금술


스페인 기행, 니코스 카잔차키스, 송병선 옮김, 열린책들, 2012.


  스페인에 관한 책들을 들여다보기 전까지 스페인은 돈끼호테, 산티아고, 그리고 카탈로니아 찬가 스페인 내전으로 기억되는 나라였다. 하고 많은 스페인에 관한 이미지 중에 하필  스페인 내전이 혁명이 각인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세가지 이미지가 너무 부조화스럽다가 또 한없이 어울리는 조합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나만큼 스페인 내전이 각인된 사람들은 많은 것 같고 니코스 카잔차키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인지 1930년대의 스페인은 수많은 예술 작품에서 단연코 단골이다.

  스페인 여행의 기록을 쓴 이 책에서도 스페인 내전에 관하여 담고 있다. 스페인을 내전으로만 기억하기에는 스페인이라는 도시 곳곳에 스민 자체의 매력과 수많은 예술가들이 남긴 예술품과 그들의 자취가 억울하다고 할 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토록 많은 예술가들의 창작혼 또한 스페인의 역사와 이 내전에서 발현되기도 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당대의 예술품에도 그들의 생애에서도 스페인 내전을 쉽게 지우지는 못할 것이다.

  아랍 문화와 유대 문화 기독교 문화가 공존하는 곳, 스페인. 이 세 문화가 어울려지고 또한 각각의 특징을 내세우며 스페인이 흘러왔듯이 스페인 내전에도 수많은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뛰어들었다. 어떤 전쟁에서도 명백한 선악이란 구분되지 않듯이 스페인 내전에도 수많은 명분과 이유와 소망들이 혼재되어 있다. 스페인 내전에 관해서는 역사책에나 ‘권위있는’ 이의 입을 통해서 정의되는 형태로 기억하고 생각할지 모른다. 모든 전쟁의 속살은 들여다보면 비참하고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어쨌든 무엇이, 누가 더 선이고 악인지를 구분하면서 전쟁은 반복되어 왔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스페인 내전에서 독재라 칭해지는 프랑코의 편에 있었다. 이것으로서 니코스 카잔차키스에게 ‘호감있는 자’,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권위있는 자’로 보는 이들에게는 한두번쯤은 스페인 내전에 대해 다시 자료를 찾아보고 생각해 볼 수 있는 동기를 주지 않았나 싶다. 적어도 일방적인 구분이 아니라 조금 더 나쁜 자라거나 복잡하고 얽힌 상황에 대해, 그가 그렇게 한 이유에 대해 말이다.


이런 모든 것들이 나를 절망으로 몰고 가오. 이 모든 것이 스페인 사람들이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생긴다고 생각하시오? 절반은 기독교를 믿고 나머지 절반은 레닌을 믿는 것이란 말이오? 아니요! 절대 그런 것이 아니오! 들어 보시오. 내가 말하려는 것을 주의 깊게 들어 보시오. 이 모든 것은 바로 스페인 사람들이 아무것도 믿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오. 아무것도……, 아무것도 믿지 않소! 그들은 <데스페라도>요. 이 세상의 다른 어떤 언어도 이것에 해당하는 단어를 갖고 있지 않소. 왜냐하면 스페인을 제외한 그 어떤 나라도 그 단어가 의미하는 바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오. <데스페라도>는 계속해서 붙잡고 있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을 뜻하오. 그들은 아무것도 안 믿는 사람들이오. 그리고 믿지 않기 때문에 거친 분노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오.


  이 문단들을 보며 드는 생각은 스페인에서 다양한 문화가 공존했던 것이나 전쟁을 겪은 것이나 절대적 신념이나 이유 때문이 아니라 아무것도 믿지 않기에 가능했던 것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배려와 존중이 남달랐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 모든 것에 개의치 않았기에 가능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해도 거친 분노가 어떤 상황에서 일괄적으로 움직여지느냐는 또한 신념의 문제가 될 수도 있고 무언가가 발생하는 이유가 되지는 않을까.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스페인 여행은 스페인 내전이 발생하기 전에 이루어졌다. 시간이 흘러 스페인 내전이 뚫고간 이곳을 다시 방문했고 전쟁을 겪은 스페인의 모습을 덧붙였다. 스페인에 관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시선은 수없이 회자되고 인용되었고 그가 묘사한 스페인의 모습을 보면 달리 더 표현할 말이 떠오르진 않는다. 스페인 곳곳을 둘러보지만 일반적인 여행의 기록이라기엔 도시의 랜드마크에 대한 소소한 감상은 물러둔 채 사색적이면서 재미있는 시각을 덧붙인다. 그러니 좋다. 관광책자엔 반딱반딱한 스페인의 랜드마크들이 나열되고 있으니 경험해보지 못한 1930년대 스페인의 분위기를 그때 그곳에서 느낀 누군가의 감성을 읽는 것은 실망할 생각을 주지 않는다. 실망이란 말이 딱 맞는 것은 관광 책자에서 온갖 미사여구로 동원된 글과 사진발을 보고 난 뒤에야 오는 것이니까.

 

여행을 기록한다는 것은 오만한 자아를 인간이라는 고통 받는 편력 군대 속으로 던져 담금질하여 부드럽게 만드는 것이다.


  오만한 자아를 유지하기 위해서 여행 후 기록을 남긴 적은 없지만 심지어 찰칵 사진 하나도 제대로 찍지 않았기에 내 영혼이 부드러워질 기회를 놓친 지난날들이 문득 아쉬워졌다. 하긴 좋다, 나쁘다, 맛있다, 맛없다, 별로다 이런 글을 쓸 거라면 굳이 기록할 필요가. 감흥은 가득찬데 밖으로 터져 나오지 못한 말들을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글로 달랜다. 스페인 내전 전후의 그의 글의 느낌처럼 그의 글을 보고 또 보고 스페인을 생각하는 것은 느낌이 다르다. 그럴 때면 이것은 내 느낌인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느낌인가 구분하려 애를 쓰게 된다. 우습게도.


툴레도는 엘 그레코의 정신과 똑같은 모습으로 내 마음속에 나타났다. 한쪽은 빛이 관통하고 있고 다른 쪽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어느 비잔티움의 신비주의자가 말했듯이, 냉담이 아닌 하느님의 광기의 출발점이며, 도저히 가까이 할 수 없는 인간적인 노력의 절정을 보여 주고 있었다.


  툴레도는 엘 그레코가 유명하고 중세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저자 역시도 이런 툴레도의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스페인 전쟁 전후에 툴레도에 대해 쓴 글은 차이가 있다.


툴레도는 격렬하고 고동치는 모습들로 가득하고, 모든 희망을 잃은 높고 거대한 벽으로 가득한 엘 그레코의 캔버스가 되어 있었다. 그것은 논리적으로 터무니없는 것이 되어 있었다. 이제는 덧없이 사라지는 그림자들이 서로 속이듯이 움직이면서 이 도시의 건축물들을 배치하고 있었다. 너무나 마술적인 장면이어서 그곳을 떠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에는 재앙을 향한 충동이 숨어 있음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약탈된 도시의 광경을 야만적인 기쁨으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툴레도는 자신에게 맞게 사납고 모질어졌다. 그래서 마침내 호전적이고 용맹한 정신에 걸맞은 육체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세상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것들을 바라보며 음미하고 또 음미하며 모든 기쁨과 슬픔의 정수로 정제시키려는 마음의 연금술이 이 책에 담겼다. 읽을수록 저자가 스페인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 너머 인간 영혼의 정화를 찾고자 한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더구나 스페인 전쟁을 겪은 후라면 더욱 그렇지 않을까. 달리 『영혼의 자서전』을 쓴 작가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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