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랑드르 화가들 - 네덜란드.벨기에 미술기행
금경숙 지음 / 뮤진트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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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차와 튤립은 보이지 않는 그림

플랑드르 화가들 - 네덜란드·벨기에 미술기행, 금경숙 저, 뮤진트리, 2017.


  네덜란드에서 돌아가는 풍차라거나 피어 있는 튤립을 본 적 없다. 그럼에도 네덜란드 하면 풍차와 튤립을 떠올리는 이 자동적인 반응은 네덜란드에 대해서 최초로 ‘배운’ 것이 그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였는지는 모르지만 암기처럼 배운 네덜란드의 이미지는 이 책을 읽고서 조금은 바뀌게 되려나. 미술책에서 본 많은 화가들의 고향이 네덜란드라는 사실을 새롭게 각인하게 된다.

  네덜란드에서 살고 있는 저자가 직접 네덜란드와 벨기에 화가들의 자취를 쫓으며 들려주는 그들의 인생과 그림 이야기에는 풍차와 튤립은 전혀 들어 있지 않다. 네덜란드와 벨기에의 역사가 있고 드문드문 들었던 이야기의 장소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반 고흐와 렘브란트의 고향과 『플란다스의 개』에서 네로가 그토록 보고 싶어하던 성당 속 그림이 있는 장소를 되짚는 기회가 된다.

  플랑드르는 현재의 프랑스 노르 주, 벨기에의 동플랑드르·서플랑드르 주, 네덜란드의 젤란트 주를 이른다. 현재는 세 나라가 어우러진 곳이고 미술의 역사에서 ‘플랑드르 화가들’이란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 활동한 화가들을 가리킨다. 이 책에서는 얀 판 에이크, 히에로니무스 보스, 피터르 브뤼헐, 루벤스, 프란스 할스, 렘브란트, 페르메이르, 반 고흐, 페르낭 크노프, 제임스 엔소르, 몬드리안, 르네 마그리트 12명의 화가들의 작품과 생애와 흔적을 보여준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영감을 찾아 방랑하기도 하고 더 배우기 위해 고향을 떠난다. 그렇다면 ‘플랑드르 학파’라 불릴 정도로 이 지역에서 화가들이 활동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그곳에서 태어났다는 아주 당연한 이유 이외에 그들이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그림을 그렸는지 그들 그림에 나타난 특유의 분위기는 무엇인지가 플랑드르 역사와 함께 펼쳐진다.


예술가들이 대체로 환경을 거스르는 사람들이긴 해도, 고흐 이전의 플란데런 거장들은 그 시대의 중심지이자 그림으로 생존할 수 있는 사회 환경과 예술가들의 풍성한 움직임이 있던 곳에서 태어나거나 자랐음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예술가를 알아보고 후원을 아끼지 않던 시대의 남다른 예술가들을 끌어들여 붙박이형으로 만들었으나, 이제 세상은 달라졌다.


  우리나라 통영에 수많은 예술가들이 머물고 활동했던 것처럼 플랑드르 역시 해안가로 많은 물류들이 드나들 수 있었고 여러 국가들이 인접해 있는 지역적 특성이었다. 또한 사람의 삶이란 주어진 환경에 영향받을 수밖에 없기에 네덜란드와 벨기에의 정치, 경제, 문화는 화가들에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소재와 의지를 주기도 한다.


네덜란드 역사에서 1672년은 ‘재앙의 해’로 불린다. ‘민중은 이성을 잃었고(redeloos), 정부는 가망이 없고(radeloos), 나라는 구할 길이 없다(reddeloos)'는 말이 공공연히 떠돌았다. 영국과 프랑스가 네덜란드를 침입해왔고, 예상치 못한 전쟁에 민중이 분노하여 권력자들은 하야했다. 총독 부재기간 동안 의회의 공화주의자들은 전쟁보다는 조약으로 대립을 완화하려 했으나, 평화는 이들의 의지대로 찾아와주지 않았고 영국과 해전을 치러야 했다. 네덜란드가 이겼다고는 하나 피해는 만만찮았다.


  언제나 세계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플랑드르 지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더구나 계급사회였으니 그림을 향유하는 계층은 언제나 귀족들이나 종교인들이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늘 권력에 억압받는 민중의 현실을 폭로하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이 종교권력의 위선을 폭로하는 화가들이 있었다. 그리고, 민중들의 일상의 모습을 담담히 그려내는 화가들이 있었다. 사진이 발명되지 않았던 시기에 그림은, 화가는 암울한 현실을 기록하는 역할을, 위선자들을 폭로하는 역할을, 억압당하고 피폐한 삶에도 부패한 권력에 강력히 저항하는 민중의 모습을 기록했다.


예술가들의 삶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보면 세기말 벨기에는 신비롭고 근대화된 사회였지만, 노동자들에게는 생존권과 참정권을 쟁취하려는 투쟁의 시대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엔소르가 이 그림을 그릴 때에는 기득권이라 할 가톨릭 정치세력에 맞서 사회민주주의 정치세력이 부상하던 참이었다.


  화가가 그림을 그린 곳이 어디인지를 궁금해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는 모양이다. 네덜란드 일상 풍경을 잘 담아낸 페이메이르가 그린 두 개의 아치가 나란히 있는 문이 그려진 그림의 장소는 진짜 있는 것이지, 화가가 상상한 장소인지 많은 이들이 궁금해한다. 결국 운하세 대장까지 찾아서 그림속 장소를 찾아낸다. 저자가 찾아가는 그림속 장소는 그림에서 보던 것과는 달라졌지만 그냥 그림속 장소라는 이유로 정감어리게 여겨진다. 과거의 플랑드르와 현재의 플랑드르의 간격이 그 시대를 살며 활동한 화가들의 생애와 그림들로 인해 연결된다. 플랑드르의 역사와 함께 화가들이 자취가 가득한 플랑드르 지방으로의 여행은 렘브란트, 마그리트, 루벤스 등 널리 알려진 화가의 명성에 의해서도 보고프지만 점차 플랑드르 지방이 지니는 매력을 느끼고 싶은 기운까지 더하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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