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를 따라간 스페인 - 윤준식.권은희 교수의 여행 에세이
권은희.윤준식 지음 / 꿈의날개(성하)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개미와 베짱이의 도시화


돈키호테를 따라간 스페인, 윤준식, 권은희 지음, 꿈의날개(성하출판), 2001.2010


  확실히 돈키호테를 따라다니는 스페인 여행은 다이나믹하고 흥미로울 것 같다. 얼만큼 그를 감당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되겠지만 소설속 돈키호테 옆에 있는 산초만큼이나 하면 되지 않으려나. 돈키호테가 흔적을 남긴 곳을 따라가는 것도 나름 재밌긴 할 거다. 맞닥뜨리는 것은 풍차와 여인숙이고 마냥 길이라도 말이다. 하지만 돈키호테를 따라간 스페인 여행은 수사적 표현이고 이 책은 스페인에서 생활한 저자들이 살면서 보고 들은 것을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스페인의 유명한 관광자원뿐만 아니라 자연문화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스페인의, 스페인 사람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스페인에 관해 알면 알수록 새롭고 재미있지만 계속 알고 싶어지기도 한다. 아랍, 유대, 기독교 문화가 공존했던 나라, 그로 인해 더욱 많은 이야기가 펼쳐져 있고 각각의 특색있는 문화유적이 남아 있는 곳. 자끄 아탈리의 소설 『깨어있는 자들의 나라』처럼 비밀스런 책을 찾는 이야기가 생겨날 수 있던 것도 이 세 종교가 어울러져 있었기에 그와 같은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었다.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는 아랍어 ’마헬리트‘에서 유래된 ‘물이 곳이는 곳’이라는 뜻이다. 또한 ‘산복숭아와 곰의 마을’이라고도 불린다는데 그것은 마을의 산등성이에서 나무를 잡고 열심히 열매를 따먹는 곰을 보고 지은 것이라고 한다. 이렇듯 이 책은 스페인의 각 도시들의 역사와 유래를 잘 설명해주고 현재의 공간이 가지는 의미들을 설명해 주고 있다. 또한 스페인에서 유명한 하몽, 빠에야 등의 음식과 투우와 플라멩고, 스페인에서 예술혼을 불태운 예술가들에 대한 생애와 작품 설명 등 문화, 스페인에서 독립을 외치며 반목을 지속하고 있는 까탈루냐, 바르셀로나에 대해서 비교설명하고 있다. 비록 까먹기야 했지만 이 책은 출판일을 감안하고도 스페인 여행시에는 유용했다.

     

한편, 보수와 진보의 양대 거대 세력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면서도 바르셀로나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큰 목소리를 낸다. 공업과 상업, 그리고 금융업이 오래 전부터 발전되어 경제기반이 집중되어 있으므로 세금의 액수도 다른 지역에 비해 많다. 그래서 생긴 말이 세비야 사람들은 춤추고 노래하면서 인생을 즐기지만,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일하면서 이들을 먹여 살린다는 것이다.


  스페인의 까딸루냐 독립에 관한 투표와 관련 이야기가 뉴스를 장식할 때 난 이 책의 위의 글을 생각하며 씁쓸한 기분에 잠기곤 했다. 구걸도 직업이라 생각하는 스페인식 철학의 관점에서 보면 까딸루냐는 스페인의 정체성에서 너무 멀리 가 있다. 하지만 이 끝없는 경쟁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살아가기 위한 까딸루냐의 신철학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의 삶이란 세비야와 바르셀로나의 삶 두 가지가 모두 조화롭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니까. 개미와 베짱이의 도시화가 바르셀로나와 세비야라니.


독일의 우중충한 날씨가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내면의 세계에 대해 골똘하게 생각하는 시간적 여유를 제공하고 철학을 낳게 하였다면, 스페인의 강렬한 태양은 그 푹푹찌는 광야를 무방비로 걷고 있는 사람의 머리를 정면으로 강타하여 미쳐버리게 하였으니, 내면의 생각이고 뭐고 걷다가 포기하고 풀썩 주저앉거나 살기 위해 쉽게 흥분하는 가슴으로 돌진하는 것밖에는 다른 선택이 없을 것 같다. 


  스페인에 대해 반복적으로 갖는 이미지는 정열과 정념과 같은 강하고 화려한 단어다. 스페인을 얘기할 때면 붙는 수식어를 반복적으로 들어왔으니 그럴 수밖에 없을 지도. 그렇지만 그 모습을 찾으려 하기에 그 모습만 보이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돈키호테의 후손이자 수많은 광기와 정념의 예술가들을 생각하면 영락없이 그렇소, 할 수밖에는 없기도 하다. 그렇기에 스페인에설 살고 스페인에서 공부한 두 저자의 스페인에 대한 또다른 견해 또는 평판에 시선이 간다. 어느 나라든 세월은 흐르고 인간도 교류를 통해 다양한 시각을 가지기 마련인데 고착화된 이미지 하나만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문화공존의 문화가 나타날 수 있었던 것에는 개인주의라 불리는 특성이 함께 했다는 것은 정열의 색과는 달라서, 또 생각하게 된다. 왜인이 정열은 개인주의보다는 함께, 다같이라는 단어와 어울리니까 말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고슴도치와 같아서 사회란 공간에서 살아가지만 자신을 그 사회에 끌어들이려는 순간에는 가시를 곤두세우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내가 만들어서 내가 먹으면 된다는 식의 생각이 이들의 지배적인 가치관이다.


스페인인들의 개인주의는 개인이 자신이 편한 대로 행동하도록 내버려 뒀으며,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하고 원주민들과 자연스럽게 합해질 수 있었던 이유도 피부색과 문화의 차이를 두면서 정복해나갔던 영국인들과는 달리 스스로의 기분과 판단에 따라 이뤄진 개인주의의 결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여기에도 그렇소, 외에 달리 뭘 말해야 할까 싶다. 그런가?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그렇‘소’하니 스페인의 검은 황‘소’가 생각난다. 스페인의 고속도로에는 아무 커다란 검은 황소 간판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스페인의 특성을 나타내는 상징물이겠거니 여겼건만 단지 개인회사 ‘오스보르네’의 셰리주에 대한 광고물이란다. 더구나 법적으로 철거처분을 받았음에도 회사 로고만 지운 채 그냥 서 있게 되었는데 그렇게 되면서 자연적으로 스페인의 상징물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투우 때문에 황소 간판이 스페인과의 연결고리가 되었으리라 생각하긴 하지만 11월 11일이 빼빼로 데이라는 기념일이 당연시되는 것처럼 상업적인 이유에 의한 억지스럽고 조작된 기념일, 상징은 달갑지 않다.

  검은 황소 간판이 스페인 사람들 스스로가 상징으로 내세웠다기보다 타국의 관광객들이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그렇게 인식하고 확산된 게 아닌가 싶다. 스페인 고속도로에 가면 온통 검은 황소 간판이 있으니 찰칵 인증샷을 남기라고. 상상이긴 하지만 인간세상은 참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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