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머즈 하이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박정임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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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퇴근하기 위해 출근한다.”

 

직장에서 출퇴근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중 나왔던 말이다. 우스갯소리였기에 대화를 하던 그 순간에는 다 같이 웃고 넘어갔지만,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씁쓸해지는 말이었다. ‘퇴근’이라는 단어 속에 담긴 삶의 무게 때문이었을까. 이를테면 피로, 책임감, 월급 같은 단어들. 우스갯소리로 그치지 않고 내게 남은 이 말은 의외로 자극이 되고 힘이 되었다. 나 또한 퇴근하기 위해 출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자문(自問)하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인정하게 될 때면 ‘오늘은 인정하되 내일은 인정하지 않는 하루를 보내자’하고 다짐하게 하는 말이 되었다.

 

위 이야기는『그늘의 계절』과『64』의 거장, 요코야마 히데오 최고의 출세작이며 문예춘추 걸작 미스터리 1위, 일본 서점대상 2위 수상작인 이 책, 『클라이머즈 하이』를 읽고 가장 먼저 떠올렸던 말이다.

 

과거 후배 기자의 사고사로 죄책감에 시달리며 데스크 승진을 거부하던 지방신문 기자 유키 가즈마사는 어느 날, 산악회 동료와 함께 악마의 산이라 불리는 쓰이타테이와에 오르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출발하려는 날 밤, 지역에 있는 산인 오스타카에 524명의 사상자를 낳은 최악의 여객기 추락 사고가 발생한다. 이 사건 보도의 총괄 데스크로 지명된 이는 다름 아닌 유키. 그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회사로 소환되어 일분일초 피를 말리는 보도 전쟁에 뛰어든다. 한편, 함께 산을 오르기로 약속했던 동료는 의문의 사고로 식물인간으로 발견되고 유키는 “내려가기 위해 오르는 거지”라는 그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에 계속 맴돈다. 특종에 대한 통제할 수 없는 욕망과 저널리스트로서의 치열한 고뇌, 신문사라는 조직 내에서 벌어지는 비열한 암투, 유키는 두 개의 거대한 ‘악마의 산’ 사이에서 점점 궁지로 내몰린다.

 

식물인간이 되어 끝내 그의 입으로 듣지 못했던, “내려가기 위해 오르는 거지.”라는 안자이의 말은, 유키를 움직이는 동력이었다. 그렇게 느꼈던 것은, 안자이의 아들 린타로의 말마따나 눈을 뜬 채 침대에서 자고 있는 안자이의 상황과, 저널리스트로서의 유키가 직면한 신문사 내에서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취재경쟁과 권력다툼으로 인한 마찰로 인해 진정 실으려고 했던 기사를 싣지 못하는, 신문이 아니라 신문지를 만드는 신문사의 상황과 미스터리에 싸인 사건으로 인해 눈을 뜬 채 자고 있는 안자이의 상황이 다를 게 뭐란 말인가.

 

안자이의 말을 동력삼아 살아가던 유키는 과거 사고사로 세상을 떠난 후배 기자의 사촌 여동생 아야코를 만나면서 ‘생명’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

 

“이건 제 나름대로 생각한 작은 생명에 관한 것입니다. ‘마음’에 실어 주셨으면 합니다. 전에도 한 번 투고한 적이 있었지만 버려진 듯합니다.”

(중략)

스무 살. 유키의 절반 밖에 살지 않은 여자아이가 미디어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

생명의 무게.

어떤 생명도 모두 소중하다고 입으로는 말하면서도 미디어는 인간을 선별하고 차별하고 생명의 경중을 판단해서 그 가치관을 세상 속에 밀어붙인다.

위대한 사람의 죽음. 그렇지 않은 사람의 죽음.

불쌍한 죽음. 그렇지 않은 죽음. (p.381-382)

 

아야코가 투고한 글의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서 유키는 생각했을 것이다.

 

“난 신문을 만들고 싶다. 신문지를 만드는 것은 이제 참을 수가 없어. 바빠서 보이지 않을 뿐이야. 긴타칸토는 죽어가고 있어. 위에 있는 인간들의 장난감이 되어 썩어가고 있어. 이 투고를 구겨버린다면 너희들은 평생 신문지를 만들게 될 거야.”

 

생명의 무게와 그에 관한 미디어의 본질이자 역할, 그리고 자신이 다 할 수 있는 최선에 대해.

 

생명의 무게. 크기. 아야코의 투고를 실은 것은 긴타칸토에게, 신문이라는 미디어에게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것이었을까. (p.416)

 

편집국은 어제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모두가 아무 일 없는 척 하고 있었다. 때로는 차갑다고 느끼기도 했고 또 따뜻하다고도 생각했다. 행복한 시간. 그랬는지도 모른다.

마음은 잠잠했다.

역시 그만두고 싶었던가. 그 기회를 얻어 조직의 속박에서 해방되는 것인가.

가슴에 안자이의 말이 떠올랐다.

내려가기 위해 오르는 거지-.

안자이도 같은 기분이었을까. 스스로를 얽매고 있는 곳에서 내려오기 위한 의식. 쓰이타테이와의 등반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클라이머즈 하이…….

안자이의 예견이 맞는지도 모른다. 입사 17년, 사람들의 혼잡함 속을 헤치고 나가듯 기자의 길을 돌진해 왔다. ‘내려간다’는 것 따위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안자이는 꿰뚫어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려가고 싶어 하는 유키의 내면을. 아니 내려가지도 머물러 있지도 못하고 어중간한 삶을 살아가는 것에 화를 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려갈 것을 결심한 안자이는 유키에게 쓰이타테이와를 권했다. 선택을 강요하고 있었다. ‘도대체 넌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 건가’ 하고. (p.420)

 

신문사를 떠나고 안자이를 다시 찾은 유키는 고백한다. 비웃어 달라고. 자신은 내려가지 못했다고. 앞으로도 꼴불견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내려가기 위해 오르는 거지-.

안자이의 말은 지금도 귓가를 맴돌고 있다. 하지만 내려가지 않고 보내는 인생도 잘못된 인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있는 힘껏 달린다. 넘어져도 상처를 입어도 패배를 맛보더라도 다시 일어서서 계속 달린다.

인간의 행복이라는 것은 의외로 그런 길 위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클라이머즈 하이. 오로지 위를 바라보며 곁눈질 하지 않고 끝없이 계속 오른다. 그런 인생을 보낼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p.429-430)

 

안자이는 내려가고 싶어 하는 유키의 내면을 읽었고, 유키는 그런 안자이의 말에 담긴 뜻을 이해했지만 내려가지 못했다 대답했다. 아니, 내려가지 못한 것이 아니라 내려가지 않는 것이다. 내려가고 싶어 보였다는 말의 다른 말은 위에 머무르고있다는 말이다.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건, 유키는 현재의 삶을 위해 쉼없이 달려왔다. 불우했던 과거와 먼저 떠나보낸 후배 기자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40대 가장의 막중한 책임감을 짊어지고, 저널리스트로서의 소신을 지켜내며 말이다. 안자이의 말을 이해하게 되면서 유키는 뒤늦게 위에서의 행복을 찾은 것 같았다. 유키의 말처럼, 인간의 행복이라는 것은 의외로 그런 길 위에서 만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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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인데 어두운 방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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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말이 없어져요. 한 사람과 오래 대할수록 더 그렇죠. 서로를 다 안다고 생각하니까 굳이 할 말이 없어지는 거예요. 근데 거기서부터 오해가 생겨요. 사람 속은 모르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계속 말을 시키세요. 말하기 힘들 땐 믹서기를 돌리는 거예요. 청소기도 괜찮고, 세탁기도 괜찮아요. 그냥 내 주변 공간을 침묵이 집어먹게 내버려두지 마세요. 살아있는 집에선 어떻게든 소리가 나요. 에너지라고들 하죠. 침묵에 길들여지는 건 정말 무서운 일이에요. 자신의 공간을 침묵이 삼키게 두지 마세요.”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임수정이 연기한 ‘연정인’이라는 캐릭터의 대사 중에, 내게 가장 남았던 대사다. 에쿠니 가오리의 신작 『한낮인데 어두운 방』을 읽고서 가장 먼저 생각났던 대사이기도 하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정인과, 『한낮인데 어두운 방』의 미야코에게는 세 가지의 공통점이 있다. 첫째, 아내 역할에 충실하고 집안일에 착실한 주부라는 것. 둘째, 상황은 달랐지만 남편 아닌 다른 사람에게 사랑에 빠졌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조금 특별하다.

 

『한낮인데 어두운 방』의 미야코의 남편 히로시는, 이해받고 싶어 하는 여자의 마음, 대화를 통해 감정을 나누고 싶어 하는 여자의 심리를 알아채기는커녕, 오로지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듣고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며 아내를 그저 공기와도 같은 존재로만 여기고 어리석게도 늘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정인의 남편, 이두현은 입만 열면 불평과 독설을 쏟아내는 정인으로 인해 결혼생활 하루하루가 죽을 맛이라고 생각하며 매일 수백 번씩 이혼을 결심하지만 아내가 무서워 이혼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던 차에, 어떤 여자든 사랑의 노예로 만들어 버리는 비범한 능력을 지녔다는 전설의 카사노바에게 아내를 유혹해달라고 부탁한다.

 

이런 남편들을 둔 탓이었을까, 미야코가 어느 날 미국인 존스에게 빠지게 되고 정인이 카사노바 성기에게 빠지게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두 여자가 바랐던 것은, 이해받고 싶어 하는 여자의 마음과 대화를 통해 감정을 나누고 싶어 하는 여자의 심리였고 존스와 성기는 그녀들의 바람을 충만하게 충족시켜줬던 남자들이었다. 존스는 미야코와 필드 워크(산책), 대중목욕탕가기, 초밥 먹기, 차 마시기를 하며 끊임없이 대화했고 성기는 정인과 그릇에 대해 이야기하고 놀이공원, 목장 등 여러 곳을 방문하면서 끊임없이 대화했다. 존스와 성기가 그녀들의 남편과 달랐던 점은, 그녀들과 끊임없는 대화를 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그녀들과의 대화에서 그녀가 하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고, 맞장구 쳐 주면서 대화를 통해 감정을 나누었고, 그녀의 말을 이해함으로써 그녀를 이해해주었을 뿐이다. 쉬운 일 같지만, 제일 어려운 일이기도 한 일. 불륜을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녀들의 외도는 납득이 갔다. 내가 미야코였다면, 내가 정인이었다면 내 남편이 그런 남편이었다면 나 역시도 그랬을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공통점은 그녀들의 ‘자아 찾기’라는 공통점으로 귀결된다. 재밌는 건, 미야코와 정인에게 있어서 존스와 성기는 새로운 자아를 찾는데 통로가 되긴 했지만, 함께하진 않는다는 점이다. ‘세상 밖으로 나와버렸다’는 미야코의 말처럼 그녀들에게 있어서 그들과의 불온했던 관계는, ‘한낮인데 어두운 방’에 있는 것 같았던 마음에서 벗어나게 만든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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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 인 Lean In - 200만이 열광한 TED강연! 페이스북 성공 아이콘의 특별한 조언
셰릴 샌드버그 지음, 안기순 옮김 / 와이즈베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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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릴 샌드버그의 『LEAN IN(린인)』을 처음 봤을 때, 단순한 성공학 책일 거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게, 표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었던 건 셰릴 샌드버그라는 이름 옆에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였으니까. 성공학 분야를 그다지 즐겨하지 않는 내가 『LEAN IN(린인)』을 집중해서 완독할 수 있었던 건, 어쩌면 셰릴 샌드버그의 책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그가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여성의 일과 리더십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 사람이기에.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내 자신이 ‘여성의 일, 리더십, 성공’이라는 주제를 진지하게 자문해보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깨달았다는 점이다. 그녀의 2010년 TED 강연의 제목처럼 왜 여성리더는 소수인지, 직장 여성들이 불리한 조건에 놓이기 쉬운 상황, 예컨대 임금 협상, 회의 자리, 멘토링, 이직과 승진 등 그 무엇 하나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물론, 이런 이야기가 모든 여성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뿐더러 당장의 내게 직면하지 않은 문제들인지라 생각해보지 않았던 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헌데, 당연한 일이라 넘어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내겐 깨달음을 넘어 꽤나 충격으로 작용한 모양이다. 여성의 일과 리더십과 성공에 관해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아가는 여성들이 있구나, 그러한 여성들이 직면하는 사회 속 일하는 여성의 입지가 이러하구나, 이런 저런 문제들을 이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해결해나가는구나 등의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또한 이 책의 매력은 구글과 페이스북 매출 신화의 주역이자 현재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 셰릴 샌드버그의 책이어서가 아니다. 자신 역시 여성이기에 여성 직장인이 가지는 한계를 알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격려하고 그러면서도 성 편견이라는 복잡하고 감정적인 문제를 올바르게 다루는 방법을 찾기 위해 지인과 노력한 셰릴 샌드버그. 그 노력 끝에 그녀가 여성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꾸밈없이 진솔하게 써낸 셰릴 샌드버그의 책이기 때문이다.
 
여성은 업무 성과가 좋으면 당연히 보상을 받으리라고 믿으면서도 충분히 자격이 있을 때조차도 승진하겠다고 지원하는 것을 남성보다 꺼리는 경향이 있다. 니고시에이팅 위민 주식회사를 공동 설립한 캐럴 프롤링어와 데버러 콜브는 이러한 현상을 ‘왕관 증후군(Tiara Syndrome)’이라고 불렀다. “여성은 자신이 직무를 충실히, 제대로 수행하고 있으면 누군가가 알아보고 자기 머리에 왕관을 씌워줄 것이라고 기대한다”는 뜻이다. 물론 완벽한 능력 위주의 사회라면 적임자에게 왕관을 씌워주겠지만 그런 사회는 아직까지 실현되지 않고 있다. 자신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과 결과를 다른 사람이 인정해주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자신을 위해 스스로 발 벗고 뛰어야 한다. (p.102)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위 구절처럼 셰릴 샌드버그의 말에 따라 바꿔보자면 이렇다.
‘왕관을 쓰려는 여자, 자신이 쓸 왕관을 발 벗고 뛰어 스스로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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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변호사
오야마 준코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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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야마 준코의 『고양이 변호사』에 대한 첫 인상은 꽤나 수수했다. 고양이에 둘러싸인 한 남자. 차림새를 보니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제목을 보니 변호사란다. ‘고양이 변호사’. 고양이를 변호해서 붙여진 별명이라는 건 알겠는데, 대체 고양이를 어떻게 변호했기에 고양이 변호사가 되었을까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고양이 변호사의 이름은 모모세 타로. 도쿄대 법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졸업한 해 사법고시에 합격한 초초엘리트다. 하지만 현재는 가난한 사무소에서, 의뢰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오갈 곳 없어진 열한 마리의 고양이를 모시며 일하는 노총각 변호사다. 초초엘리트답게 무슨 사건이든 명쾌하게, 그리고 인간미 있게 해결하지만 경영 감각은 제로라 적자에 허덕이기 일쑤. 그러던 어느 날 신데렐라 슈즈라는 큰 구두 회사에서 모처럼 착수금 두둑한 사람 사건을 의뢰받게 되는데, 사연인즉슨 회장의 장례 과정에서 시신을 도난당했다는 것. 뭔가 모자라는 시체 납치범과 초유의 협상을 벌이는 모모세. 이 사건의 진상은 무엇이며 그는 이 사건을 어떻게 해결해나갈지가 이 소설의 주된 이야기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이 책에 대한 애정이 솟아났던 건, 사실 소설의 전개나 이야기에 앞서 소설을 관통하고 있는 인물의 성격과 윤리관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아래부터는 스토리에 대한 직접적인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원치 않으시면 피해주시길.]

 

“만사가 잘 안 풀릴 때는 위를 쳐다보렴. 그러면 뇌가 뒤로 기울어 두개골과 전두엽 사이에 틈이 생겨. 그 틈에서 신선한 발상이 생겨날 거야.”라고 가르쳐주던 어머니.

“모모세 씨가 회원증을 반납하고 7번 방을 나갔을 때, 이제 당신을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니 여기, 그래요,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천장을 쳐다보고 있더군요. 눈물을 참으려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그런 자세가 되더라고요. 어머님이 당신한테 가르쳐준 방법이에요. 만사가 잘 안 풀릴 때는 위를 쳐다봐라. 그건 눈물을 참을 수 있는 마법이었던 거예요.”라며 어머니의 가르침을 헤아려 일러주던 아코.

“저 이래 보여도 여기서 일하면서 법률 같은 걸 조금 공부했어요. 도움이 되고 싶어서요. 뭐, 무슨 말인지 거의 못 알아먹었지만, 이해한 것도 있다고요. 변호사 배지의 의미요. 그거 해바라기를 디자인한 거죠? (중략) 태양을 바라보는 정의와 자유의 꽃이죠. 그러니까 이 문에는 꼭 이 색을 칠해야 해요.”라며 변호사 사무소 문을 매번 노랗게 칠하던, 자식을 잃은 경험이 있던 나나에.

그런 사람들을 주위에 두고 묵묵히 제 갈 길을 갔던 주인공, 초초엘리트 변호사보다 사람 냄새 물씬 나는 변호사 모모세 타로. 모모세의 됨됨이, 주변 인물들의 됨됨이가 내게 있어 이 책을 열심히 읽게 만든 힘이 되었다. 그리고 이 힘의 바탕에는 저자 오야마 준코의 인성이 바탕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누가 뭐래도 글에는 그 글을 쓴 사람의 인성이 어떻게든 묻어나는 법이니까.

전업주부 생활 10년 만에 다시 사회로 나왔으나 일할 곳이 없어 고민하던 중, ‘하고 싶은 일을 해보라’는 충고를 받고 작문을 잘하던 초등학교 시절이 떠올라 글쓰기에 도전했다는 작가 오야마 준코. 그런 그녀는 어릴 적부터 영웅을 동경했고 어떤 사람이 진정 멋있는 영웅일까를 고심했다고 한다. 그녀의 고심이 있었기에, 초초엘리트한 실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개인적인 면에 있어 어수룩하기 짝이 없는 대반전의 인물이지만 결코 상처를 피하지 않고 긍적적으로 살아가는 모모세를 통해 ‘열심히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보내는 응원가’라 불리는 소설이 쓰일 수 있었던 것 같다. 비록 영웅에게 구해지는 일반인 같은 비주얼을 가졌을지라도 비주얼만으로는 세상을 구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변호사 모모세 타로의 이야기는 작가 오야마 준코가 바라던 진정 멋있는 영웅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는 이 고양이 변호사의 이야기로 많은 힘이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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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형에 관한 간단한 고찰 3
박동선 글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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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찰(考察)

[명사] 어떤 것을 깊이 생각하고 연구함.

 

책 <혈액형에 관한 간단한 고찰 3>을 읽고 서평을 쓰려는데 문득 ‘고찰’의 사전적인 정의가 궁금해졌다. 그건 아마도, 몇 년 전에 구입해서 책장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책 <혈액형 심리학 ABO>의 부제가 ‘성격과 관계에 관한 고찰’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발견했기 때문인 것 같다. ‘왜 혈액형을 이야기 하는 두 권의 책 제목에 ‘고찰’이 붙는 것일까?’하는 생각 끝에,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책 <혈액형 심리학 ABO>의 부제처럼, <혈액형에 관한 간단한 고찰 3>의 저자 박동선과 <혈액형 심리학 ABO>의 저자 스즈키 요시마사는 ‘혈액형’이라는 큰 틀 안에 담긴 사람의 성격과 관계에 관한 고찰을 이야기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A, B, O, AB라는 4가지 유형에 맞춰 이야기할 뿐, 그들의 고찰은 어디까지나 성격과 관계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이 아닐까 하고 거창하게 생각해봤다.ㅎㅎ

 

이왕 두 책에 대해 이야기 한 김에 계속 이야기 해보자면, ‘고찰’이라는 공통점 말고도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건 바로, 혈액형에 관한 이론을 맹신하지 않는다는 것.먼저 <혈액형에 관한 간단한 고찰 3>에서는 이렇게 나온다. 책 도입부에 나오는 ‘혈액형별 성격론의 허구성’에서 A형인 남자가 오랫동안 사귄 A형 여자 친구가 A형이 아니라 B형이었다는 사실의 이야기를 통해 혈액형 이론은 피그말리온 효과, 낙인 효과, 바넘 효과에 바탕을 둔 심리적 현상이라는 것을 밝힌다. 특히, AB형의 말이 흥미롭다. ‘21세기에 혈액형이라니, 에효-’ <혈액형 심리학 ABO>에서는 서문에서 보다 직접적으로 밝힌다. ‘물론 인간의 마음의 문제를 혈액형이라는 단 하나의 잣대로 기술할 수는 없다. 인간의 뇌와 영혼은 단순히 어느 한 요소로 좌우되거나 결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말이다.

 

454페이지에 달하는 혈액형 이론에 관한 서적을 소장하고 있을 정도로 혈액형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혈액형에 관한 간단한 고찰 3>에 나온 것처럼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격이나 심리적 특징을 자신만의 특성으로 여기는 심리적 경향’이라는 바넘 효과의 영향을 크게 받았던 것 같다. 다른 혈액형보다는 내 혈액형의 성격에 있어서 공감 하는 게 재밌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성격은 몰라도 내 성격만큼은 잘 알았으니까. 한 가지 더 잘 아는 것이 있다면 이거다. 두 저자처럼 나 역시 혈액형 이론을 나를 비롯한 사람의 성격과 관계를 이해하는데 참고할 뿐, 맹신하지 않는다는 것.

 

<혈액형 심리학 ABO>의 저자 스즈키 요시마사는 ‘아무쪼록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인간관계의 심리를 이해하는 한 단초를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이다.’라는 문장으로 서문을 마친다. 맞다. 혈액형에 관한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서로 다른 성격의 사람들이 모인 관계 속에서 나를 비롯한 사람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뿐, 결코 전부는 아니다. 전부가 아니어서 재밌다.

 

*함께 읽으면 좋을 책 <혈액형 심리학 ABO : 성격과 관계에 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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