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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여행 리포트
아리카와 히로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북폴리오 리뷰블로거를 2년간 해오면서, 가장 큰 수확이 있다면 고양이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초(정솔)의 『내 어린 고양이와 늙은 개』시리즈와 오야마 준코의 『고양이 변호사』, 종이우산의 『보드랍고 따뜻하고 나른한』, 이용한의 『흐리고 가끔 고양이』, 그리고 이 소설 아리카와 히로의 『고양이 여행 리포트』까지 고양이에 관한 책을 올해만큼 읽은 해가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 고양이가 귀여워서 미칠 것 같았고, 고양이를 생각하면 먹먹했고, 귀여운 고양이 사진들을 잔뜩 봤고, 우리나라에 있어 고양이라는 동물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마도 올해 마지막으로 읽은 고양이 책이 될 『고양이 여행 리포트』는 올해 고양이 책을 읽으며 느낀 감정들이 뒤섞여서 읽는 내내 싱숭생숭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 사토루와 단지 그의 은색 왜건이 주차된 자리를 좋아했던 길냥이. 사토루가 챙겨주는 1일 1식을 챙겨 받으며 생활해 온 길냥이 ‘나’가 어느 날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그 때 ‘나’가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사토루였다.
상처가 나을 때까지 사토루의 방에서 지내게 된 ‘나’와 그런 길냥이에 대한 사토루의 마음이 그려진 구절이 인상 깊었다.
“내 고양이가 되어주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런 선택은 솔직히 생각한 적 없었다. 태생이 길고양이여서 집고양이가 된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상처가 다 나을 때까지는 신세를 지지만, 상처가 다 나으면 나갈 생각이었다. ……아니, 나가야겠지, 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나갈 거라면, 이제 슬슬 나가주시지, 하고 쫓겨나는 것보다 내가 먼저 나가는 편이 쿨하지 않나. 고양이는 스마트한 생물이니까.
이 집 고양이로 살아주길 바라다니……. 그런 말은 빨리빨리 좀 하라고.
(중략)사토루와 함께 근처를 한 바퀴 돌고, 나는 다시 맨션으로 돌아왔다. 2층 제일 앞에 있는 문 앞에서 야옹 울었다. 얼른 열어.
올려다 본 사토루는 마치 우는 것 같은 얼굴로 웃고 있었다.
“여기로 돌아오는 거다, 너?”응. 그러니까 빨리 열라고.
“너, 내 고양이가 될 거야?”그래. 그렇지만 가끔 산책 정도는 같이 가자.
이렇게 나는 사토루의 고양이가 되었다.
(p.15-17)
고양이 ‘나’가 사토루의 은색 왜건을 좋아했던 건 둘의 인연 덕분이었을까. 길냥이 ‘나’를 원했던 고양이 바보 사토루와 그런 사토루의 고양이가 되어 ‘나나’라는 이름을 얻게 된 ‘나’의 잊지 못할 로드 무비가 담긴 이 책은, 사토루가 나나의 룸메이트로서 더할 나위 없는 인간이었고, 나나 역시 사토루의 룸메이트로서 더할 나위 없는 고양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룸메이트로서 더할 나위 없는 존재라면, 여행 동반자로도 더할 나위 없는 존재이기도 하니까.
라고 쓰는데, 책을 읽을 때 겨우 참았던 눈물이 쏟아진다. 나나의 묘생이 끝날 뻔 했던 그 순간엔 사토루가 있었고, 사토루의 인생이 끝나는 그 순간엔 나나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나서 Pre-Report, 프롤로그를 다시 읽으니 둘은 그런 연(緣)이었구나 싶어서. 그리고, 그 연(緣)은 서로가 만든 연(緣)이라서 더 애달팠다.
피할 수 없는 ‘어떤’ 사정으로, 현재이자 과거의 시간을 함께 여행한 사토루와 나나. 사토루는 나나가 있어 행복했을 것이고, 나나는 사토루가 있어 그 여행의 모든 순간 순간이 행복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둘의 여행을 읽을 수 있었던 내가 제일 행복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