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출근길은 행복한가요? - 놀이하듯 일하는 여성 멘토 13인의 드림 시크릿
김희정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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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출근길은 안녕하지 못해서, 이 책 <당신의 출근길은 행복한가요?>를 읽었다. 애석하게도, 나의 출근길은 행복을 찾을 것도 없이 안녕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그래서, 출근길이 행복한 사람들의 출근길은 어떠하기에 행복한가하고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책에 나오는 여성들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작가 김희정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 김희정은 왕가위 감독의 영화처럼 발랄하고 유쾌하면서도 폼 나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영화 연출을 전공했고 영화 기획자와 자유 기고가로 활동했으나 현재는 동숭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동화와 그림책 만들기라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삶을 살고 있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내 일’에 대해 고민하고 방황하는 이삼십 대 여성들이 하루하루 참고 견디며 일하는 삶이 아닌 춤추듯 즐기며 일하는 삶을 찾기를 바란다는 마음에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하루하루의 일상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천직을 찾아 살아가는 사람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들려주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기에는 이만큼 확실한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작가 본인의 이야기도 좋지만, 세상엔 사람도 많고 직업도 많으니까.

그렇게 담긴 놀이하듯 일하는 여성 멘토 13인의 이야기는 책을 읽는 나의 흥미를 더 북돋았다. 이탈리안 식당 오너, 일러스트레이터, 소설가, 여행 작가, 공예 작가 등 괜히 ‘여성 멘토’라는 수식어를 달고 나온게 아니구나 싶었다. 내 직업으로 삼진 못해도, 여자라면 충분히 상상했을법한 직업이거나 누군가에겐 여전히 ‘로망’인 직업들이 아니던가. 그 중, 내가 가장 흥미 읽게 읽은 여성 멘토의 이야기는 소설가 정수현의 이야기였다. 그건 아마도 그녀처럼 글을 전공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처럼 소설가를 천직으로 삼고 살아가고 싶어서 유독 그녀의 이야기에 끌렸던 것이 아닐까 싶다. 소설가로 살고 있어서 행복하다는 이야기는 부러웠지만, 살이 되는 이야기는 ‘소설 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꼭지에서 언급된 말이었다.

 

“소설 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찌 됐든 책상 앞에 앉아 일정한 시간은 글쓰기에 몰입하는 태도인 것 같아요. 어떤 장르의 글을 쓰든 글 쓰는 직업을 갖고 싶다면 몰입하는 연습이 필요하죠. 컨디션에 상관없이 매일같이 자신의 이야기에 살을 보태야 해요. 그렇게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하는 경험이 늘다 보면 그다음부터는 작업이 한결 수월해져요. 그러다 보면 자신의 스타일도 찾게 되고, 이야기에 살을 보태는 방법도 스스로 터득하게 돼요. 작가적 상상력과 필력도 중요하지만 글쓰기는 우선 노동인 것 같아요. 끈기를 갖고 작업하지 않으면 완성 자체가 불가능하니까요.”

 

또 그녀는, 작가라면 피해갈 수 없는 창작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고 한국에서 전업 작가로 산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모든 여성 멘토의 이야기를 세세히 읽었지만, 책을 덮고 난후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역시 정수현 작가의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여성 멘토의 이야기가 내게 살이 되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좋아라하는 삼청동에 자리한 카페 오시정의 오너 오시정과 떡 카페 희동아 엄마다의 우리 떡 연구가 김희동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반가웠고, 일러스트로만 접했던 일러스트레이터 권신아의 이야기를 읽은 뒤 그녀의 일러스트에 대한 느낌이 새로워졌다. 또, ‘자기 손에 쥔 것들은 하나도 포기하지 않고 그 밖에 있는 것들을 부러워만 한다면 늘 제자리걸음일 수밖에 없다. 부러움과 질투를 넘어서려면 시도해봐야 한다. 다른 비용을 아끼고 아껴 여행 경비를 만들고, 시간을 쪼개고 쪼개 여행 스케줄을 짜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라며 부럽다면 실천하라는 여행 작가 조은정의 말은 정말이지 인상 깊었다. 뒤늦게 발견한 재능이 천직이 되고, 삶의 태도가 직업을 만들며 성격에 꼭 맞는 직업을 만난 여성 멘토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어딘지 모르게 힘이 났다.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하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알고 그것을 위해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갈 나의 미래를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행복하진 못해도 어제보다 더 안녕할 수 있는 내일을 위해. 결국엔 행복하다 말할 수 있는 나날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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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해피엔딩 - 황경신 연애소설
황경신 지음, 허정은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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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남자는 자기가 더 사랑하는 여자를, 여자는 자기를 더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나야 행복하다’고. 이렇게 살고 있진 않지만, 결국 이렇게 살고 싶은 나는 이 말을 믿는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와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나를 더 좋아해주는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을지라도.

 

그런데, 여기 그런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여자가 있다. 황경신의 연애소설 『모두에게 해피엔딩』의 ‘나’가 바로 그런 여자다. 여자를 사랑해주는, 여자보다 10살 어린 남자 에이. 에이는 여자보다 자신이 여자를 더 사랑하고, 여자는 자기를 더 사랑해주는 에이를 만나고 있으니 앞서 말한 말대로라면, 둘은 행복해야 맞다. 하지만 둘은 행복하지 않았다. 여자에겐 여자가 더 사랑하는 비가 있었으니까.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도 여자는 비를 생각했고, 여자는 비를 위해 살아 있었다. 인터뷰차 만났던 남자를 통해 듣게 된 비의 마음도 여자의 마음과 다르지 않았다. 남자의 말에 따르면 비는 ‘세상에 태어나 단 한 사람을 사랑했다고’ 말했다 했고, 비가 세상에 태어나 사랑한 단 한 사람은 여자였다. 하지만 우리네 뜻대로 되는 게 사랑이라면, 그건 사랑이 아닐 것이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고, 그 인생 속에서 우리는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으니까.

 

내 인생은 너무 많이 읽어서 그 내용을 다 외워버린 한 권의 책과 같다. 한 발은 에이, 다른 한 발은 비에 담근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지지부진하게 세월을 낭비하고 있는, 죽어가는 나무와 같다. 수 년 동안 그 모든 것들이 되풀이되어 왔다. 나는 비를 사랑하지만 비로부터 벗어나야 하고, 에이는 나를 사랑하지만 나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두 사람을 끊어내는 일이 가능하지 않다면 내가 사라져야 한다는 것도 수 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망설였고, 몇 번이나 같은 자리로 돌아왔으며, 무엇하나 달라지지 않았다. (p.183-4)

 

둘에 대한 마음을 수 년 전부터 알고 있었으나 망설였고, 몇 번이나 같은 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건, 더와 덜의 차이가 있었을지라도 여자는 둘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잊어야하는 에이와, 자신이 잊어야하는 비를 말이다. 비의 진심을 전해준 새로운 인물 ‘남자’를 만나면서 여자는 비로소 둘을 놓는다. 에이와 비와 그 둘을 사랑한 자신 모두에게 해피엔딩을 위해. 어쩌면, 모두에게 해피엔딩의 해피엔딩은 ‘행복한 결말’이 아니라 ‘최선’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진다는 하림의 노래처럼, 여자는 남자를 만나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고 비는 결혼을 하고 에이는 여자를 잊고 새로운 여자와 사랑하는, 그렇게 그들의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진다는 최선. 책장을 덮고 모두의 해피엔딩을 떠올리는데, 나는 조금 먹먹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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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건너는 아이들
코번 애디슨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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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인 소설보다 더 허구 같은 현실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인도 뭄바이 매음굴을 잠입 취재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소설, 『태양을 건너는 아이들』보다 더 허구 같은 현실. 전 세계적으로 뻗어있는 인신매매조직은 한 해 320억 달러의 수익을 내고 있으며, 2,700만 명의 사람들이 강제 매춘과 노예 생활에 사로잡혀 있고 그 중에서도 성노예로 착취당하는 아동의 숫자만 2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인신매매를 통해 수익을 얻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모순인데, 아동 성노예라니. 이 얼마나 모순의 끝인지.

 

국제인신매매의 희생자가 된 자매이자 두 소녀, 아할리아와 시타의 생지옥 같은 현실의 시작은 쓰나미였다. 인간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저항해 볼 수도 없는, 불가항력 그 자체. 가족 중에서 자매 둘만 불가항력을 피할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을까, 불운이었을까? 책의 전반부를 읽을 당시에는 절대적으로 불운이라 생각했고, 아이들에게는 평생 불운이었다고 기억될지 모르겠지만 완독하고 난 후의 나의 생각은 이러했다. 행운으로 살아남았지만 행운은 불운이 되어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삶이 되었고, 결국 자매의 삶은 운으로 좌지우지될 삶이 아니라 자매의 강인한 정신력으로 살아낸 삶이었다고 말이다.

 

“나도 예전엔 너 같았지. 난 집에 있다가 모르는 남자들한테 여기로 잡혀 왔어. 이런 소굴에서 사는 건 힘들지만,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어. 자기 업보랑 싸워 봐야 무슨 소용이야. 신의 뜻을 받아들이면 더 좋은 곳에서 환생할 수 있을 거야.”

꽃 장식을 물그릇 가장자리에 걸쳐 놓고 그녀는 느릿느릿 몸을 일으켜 계단을 내려갔다.

다시 단둘이 있게 되자, 시타는 헝겊을 물에 적셔 아할리아에게 건네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

“그 여자 말이 맞아? 이게 우리 업보야?”

아할리아는 헝겊을 쥐고 눈물 고인 눈으로 바닥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나도 모르겠어.”

정말 그랬다. (p.68-69)

 

신의 뜻을 받아들이면 더 좋은 곳에서 환생할 수 있을 거라는 수미라의 말을 아할리아와 시타는 이해할 수 없었고, 책을 읽는 나 역시도 이해할 수 없긴 마찬가지였다. 신의 뜻을 받아들이라니? 신은 이미 아할리아와 시타 자매와 신의 뜻을 받아들이라는 수미라 역시 예전에 저버리지 않았던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자기 업보와 싸워 봐야 무슨 소용이며, 신의 뜻을 받아들이면 더 좋은 곳에서 환생할 수 있을 거라는 수미라의 말은 어쩌면 수미라가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어찌 됐건 그 믿음이 매음굴의 빅마마인 수미라를 살게 했을 것이므로.

 

매음굴로 팔려온 지 일주일 정도가 지난 후, 언니인 아할리아는 중년의 남자와 초야를 치르고 동생 시타는 다시 마약상 조직에게 넘겨져 헤로인을 넣은 콘돔 서른 알을 삼킨 채 파리로 가게 된다. 참담한 현실 속에서도 꼭 살아남아 서로를 찾고 말겠다는 의지로 꿋꿋이 견뎌내는 두 자매를 보면서 나는 안쓰러워 혼났다. 말로는 설명 할 수 없을 정도로 끝없는 안쓰러움이 계속해서 밀려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둘의 삶을 읽어갈 수 있었던 건 둘의 재회를 위해 애쓰는 변호사 토머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그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시작한 일이었을지라도 그는 끝내 포기하지 않았고, 해냈으니까.

이 책을 읽은 독자 중 ‘젠 밀러’라는 독자가 한 말처럼, 아동 성매매라는 사안을 희생자인 아할리아와 시타 두 자매의 시선으로도 담아내고, 이 끔찍한 범죄를 막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중 한명인 토머스의 시선으로도 담아내서 더 집중해서 읽게 됐던 것 같다. 또, 이 두 가지 시선은 내게 있어서 도무지 믿고 싶지 않은 이 말도 안 되는 끔찍한 일들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에 씁쓸하다가도, 어디선가 아이들을 돕기 위해 애쓰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인신매매는 개발도상국에서나 일어나는 이야기인 줄 알았으나, 공원에서 유아가 납치되는 광경을 목격한 후 이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고백한 작가 코번 애디슨. 그의 착실한 취재를 바탕으로 그려진 덕분에 나는 뭄바이의 매음굴에, 파리 뒷골목에, 뉴저지의 휴게소 사창가에 가있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소설을 읽었다. 생생한 묘사로 인해 소설을 읽어내는데 더 힘겨웠지만 책을 위해 인신매매에 관한 자료를 닥치는 대로 찾아 읽고 관련 전문가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강제 성매매를 막기 위해 싸우는 인도 인권 단체 조사관들과 동고동락하며 인신매매조직과 희생자들의 공판도 참관하며 직접 뭄바이의 매음굴에 찾아가고 희생자들과 가해자들을 만나면서 고생했을 작가만큼 힘겨웠을까 생각하니 내 감정은 아주 사소해졌다. 그의 노력이 있었고, 그 노력을 바탕으로 소설이 쓰인 덕분에 나는 이 책을 읽을 수 있지 않았던가. 그리고 누구보다 힘겨운 사람은, 지금 이 순간에도 소설 속 아할리아와 시타의 삶을 실제로 살아내고 있을 아이들(피해자)임을 안다. 내가 어떻게 하면 그런 아이들에게 힘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아이들의 이야기가 그려진 이 책을 읽고 아이들의 삶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는 최선이라는 것 또한 안다.

 

하지만 제가 개인적인 경험으로 한 가지 장담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불가능해 보이겠지만, 내일은 꼭 올 겁니다. 이 어둠의 반대편에서 새로운 날이 천천히 시작될 겁니다. 저도 얼마 전에 딸을 잃었기 때문에 알아요. 오늘 저는 딸의 묘지를 찾아갔습니다. 묘석에 새겨진 딸의 이름을 볼 때마다 가슴이 무너져 내려요. 부인이 애비를 지키지 못했던 것처럼 저도 제 딸을 지키지 못했죠. 하지만 모히니와 애비는 우리가 가지지 못한 걸 가졌어요. 이제 죽음은 그 아이들에게 아무런 힘도 쓸 수 없습니다. 어디에 있든 아이들은 평화를 찾았을 겁니다. (p.457)

 

지금 당장은 불가능했지만, 서로를 만날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살아남았을 아할리아와 시타. 둘의 내일을 위해 끝까지 노력한 토머스. 암울한 현실 속에서 그들이 보여준 벅찬 희망. 이들의 엔딩은 소설 속 이야기였지만, 나는 이 이야기가 소설 밖의 이야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허구인 소설보다 더 허구같은 현실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야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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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한 쓸 만한 이론
스콧 허친스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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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조금은 특별한 상대와 매일 대화하는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닐 바셋 주니어, 삼십 대의 이혼남이다. 그가 매일 대화하는, 조금은 특별한 상대는 ‘닥터바셋’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공지능 컴퓨터다. 단순한 인공지능 컴퓨터였다면, 특별하다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닥터바셋이’ 조금은 특별한 이유는 돌아가신 닐의 아버지의 일기를 토대로 한 인공지능 컴퓨터이기 때문이다.

 

각국의 이미 발간된 책과, 곧 출간될 책들의 소식이 한데 모이는 세계 최대 도서전 ‘프랑크푸르트 북 페어’에서 단연 최고의 화제작 중 하나로 꼽혔다는 이 책. 납득이 갔다. 책의 작품성은 둘째치더라도, 설정만큼은 정말이지 인상 깊었으니까. 스스로 권총을 쏘아 자살한 ‘아버지’가 생전에 기록했던 모든 사소한 생활, 감정, 대화가 담긴 일기는 인공지능 컴퓨터의 지능을 결정하고 발전시키는 데이터가 되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닥터바셋’과 닐의 대화는 상상이상으로 재밌었다. 처음엔 일로 시작했던 컴퓨터 속 아버지와의 대화는, 작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프로그램이 점점 실제 아버지에 가까워지면서 더욱 깊어진다. 닐의 아버지가 살아있었다 하더라도 부자간에 이렇게 깊은 대화를 할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자, 이 소설의 설정이 더욱 흥미로워졌다. 실존하는 아버지였다면, 대답하지 않고 침묵했을법한 말들도 ‘닥터바셋’은 빼는 법 없이 대답한다. (닥터바셋이 실제 아버지에 가까워지면서 오류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그도 그럴게, ‘닥터바셋’은 인공지능 컴퓨터가 아닌가. 아무리 아버지의 사소한 생활, 감정, 대화가 담긴 일기로 만들어졌다 할지라도, 그냥 컴퓨터가 아니라 인공지능 컴퓨터라 할지라도 ‘닥터바셋’은 엄연한 컴퓨터다. 질문을 입력하면 답을 출력해야하는 컴퓨터 말이다. 대하기 가장 어려웠던 아버지와 대하기 가장 쉽다고 말할 수 있는 컴퓨터, 상상하지 못했던 이 기막힌 조합. 목소리가 오가는 대화 대신 모니터에 기록되는 대화가 오고가며, 자살로 세상을 떠난 후의 아버지의 생각이 담겨있지는 않지만 이 세상 그 어떤 대화가 부럽지 않은 대화임은 틀림없다. ‘닥터바셋’을 통해 아버지 생전에 듣지 못했던 아버지의 생각과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닐은 숱한 세월 동안 가슴 속에 응어리진 오해와 이면의 진실을 깨닫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닐은 ‘사랑에 관한 쓸 만한 이론’에 대해 이렇게 언급한다.

 

하지만 쓸 만한 사랑 이론은, 결국에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적자생존의 세상에 갇혀 있거나 아니면 위대한 신이 강림할 그릇일 뿐이다. 아니면 시장에 조종당하고 있는 수벌들일 뿐이거나, 사랑은 자기실현이다. 사랑은 자력이다(석면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이 도움은 되지만 불완전한 설명이고(각각이 약간은 냉정한 면을 갖고 있다), 서로 상충되고 결국에 어떤 결론도 내놓지 못한다. (p.493)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여전히 사랑에 빠진다며, 자신을 예로 드는 닐. 또, 자신이 갖고 있는 사랑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이미 알고 있음을 안다. 닐이 이럴 수 있었던 건, 차갑고 완고해서 살아있을 때도 이해할 수 없었던 그 아버지의 일기를 토대로 만들어진 인공지능 컴퓨터 ‘닥터바셋’과의 대화가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가 배운 건 사랑에 관한 쓸 만한 이론이 아니라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에 관한 쓸 만한 이론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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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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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에 읽은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이 『하느님의 보트』였던 탓일까? 나는 이번 책 『잡동사니』를 읽으면서 『하느님의 보트』를 자주 떠올렸다. 그건 아마도, 『하느님의 보트』를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시점’에 대해 계속 생각하며 읽었기 때문인 듯 싶다. 엄마이자 어른인 요코의 시점과 아이이자 딸인 소우코의 시점이 번갈아가며 진행되던 『하느님의 보트』는 때론 연애소설로, 때론 성장소설로 읽을 수 있었다. 이 점이 내게 있어서 소설의 매력을 극대화했던 부분이었다.

 

이번 작품 『잡동사니』역시 마흔다섯 살 슈코와 열다섯 살 미우미의 시점이 번갈아가며 전개되는 점이 흥미로웠다. 10대 소녀와 40대 여성의 상반된 감성. 이 부분은 『하느님의 보트』와는 다르게 흥미로운 점이었다. 나는 슈코의 사랑도, 미우미의 사랑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들의 시점으로 읽고 있노라면 슈코는 이래서 이런 사랑을 하고, 미우미는 이래서 이런 사랑을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읽었다.

 

이 책의 흥미로웠던 점 중 또 하나는 소설에 쓰인 시점과 비중 때문인지는 몰라도 하라 슈코-하라 다케오-네기시 미우미, 세 명의 삼각관계에 초점이 맞춰있는게 아니라 슈코와 슈코만의 하라 다케오, 미우미와 미우미만의 하라 다케오로 초점이 맞춰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슈코와 미우미의 만남이 이들의 첫 만남이기도 하고, 이야기의 중심은 이 둘이 이야기하는 하라 다케오가 아니라 이야기를 하는 슈코와 미우미에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이 에쿠니 가오리, 그녀의 소설을 찾아 읽게 만드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마냥 위험하고 비도덕적이며 비정상적인 관계를 이야기하는 소설이었다면, 나는 분명히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남편을 독차지하기 위해 남편의 여자친구까지 인정하는 슈코의 이야기, 아버지뻘의 남자인 슈코의 남편 하라 다케오와 첫 경험을 하는 미우미의 이야기가 소설의 전부였다면 말이다.

 

세 살 때 미국으로 떠나 갓 일본에 돌아온, 사랑에 저돌적인 맹랑한 소녀 미우미. 결혼따위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의 남편을 만나 그의 사랑만을 간절히 원하는 슈코. 이 두 여자가 몇 번의 만남을 반복하고 서로를 관찰하는 과정에서 흐르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 서로를 향한 질투, 그리고 동경마저 솔직하게 고백하는 부분들이 재밌었다. 예를 들면 이런 부분이다.

 

  “질투잖아, 그거.”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질투? 하지만 아직 어린애인걸, 말도 안 돼.”

  “바로 그거야. 아이와 어른의 중간, 네가 잃은 것과 얻은 것을 둘 다 가지고 있으니까. 지금밖에 가질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생명력이 저 아이에게는 있으니까.” (p.37)

 

소설의 제목인 ‘잡동사니’에 담긴 의미는 슈코의 사랑이나 미우미의 사랑을 뜻하는게 아니었다.

 

  여기저기 사진이 장식되어 있다. 창가에는 관엽식물을 심은 화분이 세 개 놓여 있다. 남편이 손수 만들었다는 가구는 하나같이 낡고 퇴색되었다. 둥그렇고 큼지막한 털실 뭉치가 들어 있는 바구니, 의자에 앉은 앤티크 인형.

  내 시선을 알아차렸는지 사야카 씨가 말했다.

  “너무 어질러져 있지? 당최 뭘 버리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고 말았다. 딱히 어질러져 있다는 생각으로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이 방은 전혀 어질러져 있지 않다. 오히려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추억의 물건들이네요.”

  엄마가 한마디 거들자 사아캬 씨는 손에 든 잔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잔을 천천히 흔들어 백포도주를 회전시킨다. 그리고 말했다.

  “잡동사니들뿐이에요.” 쓸쓸하게 미소 지으며, 하지만 어쩐지 자랑스러운 듯이. (p.293-294)

 

바로, 죽은 남편을 잊지 못해 그의 물건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고이 모셔두는 사야카 씨의 사랑이었다. 그런 그녀의 행동을 광기라 부를 수도 있겠지만, 그녀가 말하는 ‘잡동사니들뿐’이라는 말이, 내겐 어쩐지 ‘사랑뿐’이라고 들렸다. 어질러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깔끔하게 정돈되어 집안 곳곳에 놓여있는 잡동사니에, 죽은 남편에 대한 사야카씨의 사랑이 담긴 것이라고. 그에 대한 사랑을 표현할 길이 그를 추억할 수 있는 잡동사니들이 전부라는 것이 쓸쓸하지만, 모든 잡동사니가 그에 대한 그녀의 사랑, 전부이기에 그녀는 어쩐지 자랑스럽게 미소 지었을 것이다.

 

  “분명 좋은 어머니이실 것 같아.”

  머릿속에 떠오르는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말을 했다 싶었는데 미미는 나를 똑바로 응시하며 그건, 하고 무표정하게 말했다.

  “그건, 슈코 씨가 생각하는 ‘좋은 어머니’가 어떤 것이냐에 달려 있죠.” (p.192)

 

슈코와 미우미의 사랑을 이해할 순 없었지만, 이 구절을 읽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우리의 사랑이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고.

 

 

* 그 외 인상깊었던 구절들 *

 

아주 짧은 순간이긴 하지만 강하게, 내 자신이 미미를 눈부시다고 여겼던 것을 깨닫는다. 미미가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갖고 있지 않은 것이 주는, 그건 눈부심이다.

(p.231)

 

내 생각이긴 하지만 그 집 사람들은 모두 눈앞에 있는 인간을 그저 눈앞에 있는 인간으로밖에 보지 않는다. 어린아이가 아닌, 그렇다고 슈코 씨 같은 성인 여자도 아닌, 네기시 미우미로만 나를 본다. 따라서 나는 존재할 수 있다. 분명하고 확실하게. 그 증거(아마도)로 하라 씨는 종종 내게 소홀히 대하진 않을 테니까, 하고 말한다. 그건 하라 씨의 의도적인 말실수랄까, 일부러 그런 말을 골라 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일가족 모두가 솔직한 것이다. (p.269)

 

핸들을 잡고 전방의 차량 흐름을 주시한 채 어이없는 내 자신을 속으로 비웃었다. 나는 남편에게 지배당하고 싶어 못 견디면서 동시에 그 이전의 나를 고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남편이 그토록 사랑했던 여자는 바로 그때의 나이기 때문이다.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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