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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 어느 책방에 머물러 있던 청춘의 글씨들
윤성근 엮음 / 큐리어스(Qrious)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저마다 독서 방법이 다양하듯, 책을 다루는 법 역시 다양하다. 나로 예를 들자면, 새책은 정말이지 새책처럼 읽는다. 책 표지가 때 타지 않게 책 포장지로 싸고, 책장을 접지 않고 책갈피를 이용하며, 메모는 포스트잇을 이용해서 메모해 붙여둔다. 물론 책 앞장에 책에 대해 기록할 때도 있고, 특히 선물을 하거나 받은 책에는 글을 남기는 편이지만 대부분의 책은 이렇게 다뤄서 읽고, 보관한다. 헌책도 일단 내 손에 들어오면 새책에 가깝게 손질해서 새책처럼 읽고 보관한다. 책에 밑줄 쳐가며, 접어가며, 메모해가며 읽어야만 진정한 책 읽기가 아니며, 책을 깨끗이 본다고 해서 진정한 책 읽기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건 어디까지나 책을 대하는 개인의 성향 차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를 읽고 있노라면, 내 책 보관 방법이 어떠하건 간에 당장이라도 읽고 있는 책의 앞장을 펼쳐서 글을 쓰고 싶어진다.

 

 

때로는 “왜 당신은 나를 사랑하나요?”란 말에 대답하는 대신 ‘왜 당신은 나를 사랑하나요?’에 대답할 수 없어서, 라고 책장 앞에 글을 씀으로써 대답을 대신하고, 때로는 나를 공정하게 인도해달라고 진리에게 소원하고, 때로는 밥값으로 책을 샀다, 이틀간 밥 안 먹기, 책 읽기 두렵지만 그래도 읽고 싶다 쓰고, 때로는 많이 공부하고 바르게 생각하고 용기있게 뜻을 펴는 사람이 선비라고, 선비에 대해 쓰는 그런 글 말이다.

 

이름을 다 알 수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래전 책 속에 남긴 진실한 고백의 글씨들이 없었다면 이 책 역시 단 한 쪽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엄밀히 말해 내 책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손으로 꾹꾹 눌러 쓴 책이다. (p.23)

 

저자의 말이 맞다. 이 책이 있기 까지는 한 사람 한 사람이 한 권 한 권에 손으로 꾹꾹 눌러 쓴 진실한 고백이 담긴 헌책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책방에 머물러 있던 청춘의 글씨들을 이렇게 오롯이, 한 권의 책으로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온전히 저자의 노력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헌책들을 지나치지 않고 모으고, 생각하고, 남긴 저자의 헌책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인터넷으로 가격을 비교하며 책을 산다. 그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반드시 서점에 가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느껴본 다음 산다. 그보다 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책과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헌책방에 모인다. 헌책방은 오래된 책을 사는 곳 이상으로 큰 의미가 있다. 그곳은 책과 사람이 만나 사랑을 나누는 장소다. (p.14)

 

인터넷으로 가격을 비교해가며 책을 살지라도 한 권의 책을 더 사고 싶은 나로서는 조금 억울해했던 구절이었지만, 이 책을 읽고나서는 저자의 말에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아, 나는 책 읽기를 좋아했던 거구나. 책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사랑하는 사람들은, 헌책방에 모여 책만 보는게 아니었다. 헌책이 새책이던 시절, 이름 모를 누군가에 의해 읽히고, 청춘과 열정과 진심이 손글씨로 쓰였다가 시간이 흘러 헌책방에서 마주하게 된 헌책을 본다. 그 헌책 속에서, 책의 본래 주인이 책에 글을 남기던 그 찰나의 청춘을, 열정을, 진심을 읽는 것이 아닐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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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혜영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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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고백>, <속죄>, <N을 위해서>, <야행관람차> 등의 작품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불편한 진실을 집요하게 파헤치는 작가, 미나토 가나에. 이번엔 ‘엄마와 딸’이다. 작가는 과연, 엄마와 딸에 대해 어떻게 썼기에 “이 작품 이후 작가를 그만 두어도 좋다고 생각하고 쓴 소설이다”라고 말한 걸까 궁금해 하며 이 작품을 읽었다. 읽고 나서는, 읽는 것도 불편했던 이 소설을 작가는 어떻게 썼을지 궁금해졌다.

 

한 여고생이 다세대 주택 정원에 쓰려져 있는 것을 어머니가 발견해서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사고와 자살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고 조사에 착수했다는 신문 기사로 소설은 시작된다. 신문 기사의 마지막 문장은 ‘어머니는 “금지옥엽으로 소중하게 기른 딸이 이렇게 되다니 믿을 수 없다”는 말을 끝으로 입을 닫았다.’는 문장인데, 이어지는 ‘엄마의 고백’에서 엄마가 앞서 기사의 마지막 문장을 되풀이한다. ‘저는 딸아이를 금지옥엽으로 소중하게 키웠습니다.’라고. 흔히들 강한 부정의 표현을 강한 긍정의 표현이라며 받아들이곤 하는데, 강한 부정의 표현이 강한 긍정의 표현이 된다는 사실은 반대로 강한 긍정 또한 강한 부정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그런 뜻에서 신문 기사 속 엄마의 말과 ‘엄마의 고백’ 속 엄마의 말은 내게 강한 부정으로 들렸다. 그렇게 ‘강한 부정’이라 생각하며 ‘엄마의 고백’을 읽어나가는데, 이어서 ‘딸의 회상’이 이어진다. 엄마는 ‘고백’을 하고, 딸은 ‘회상’을 하는 두 사람의 시점이 교차되며 전개되는 것이 흥미로웠다. 엄마가 생각하는 자신의 모성과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에게 보여주었던 모성, 그리고 딸이 생각하는 모성이 전부 그려진 덕분에 모성에 관해 넓게 생각할 수 있었다.

읽는 내내 엄마의 고백에 드러난 모성이 불편했지만, 엄마가 된 딸이 ‘나와 이 아이가 같은 입장이 되지 않으리란 법이 있을까…….’하고 생각하는 문장에서, 나 역시 내가 가진 모성이 무조건적인 모성일 것이라 확신할 수 없었다.

 

“그렇게 거창한 얘기는 못하고요. 그저 여자에게는 두 종류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오호라, 두 종류라니, 천사와 악마?”“그런 눈에 보이지 않는 건 믿지 않는다고요. 더 간단한 존재, 엄마와 딸이에요.”“누구나 아는 사실이잖아.”아니다. 누구나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p.228-229)

 

맞다. 우리는 ‘모성’에 관해서 누구나 아는 사실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니다. 누구나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을 뿐.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모성에 관해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뉴스에서 접하는 부도덕한 모성에 관한 사건을 접하면서, 모성이 다 같은 모성이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내가 소설 속 엄마였다면, 나는 소설 속 엄마와는 다른 엄마였을까. 나의 엄마와 나의 딸 중 한 명을 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닥치면, 나는 주저 않고 딸을 구할까. 이 소설이 불편했던 이유는 바로 이거다. 모성에 대한 엄마의 고백과 딸의 회상 속에서 작가가 던지는 질문을 계속해서 곱씹게 된다는 것.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모성에 대해 이렇게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을까.

 

“아이를 낳은 여자가 전부 어머니가 되는 건 아니에요. 모성이란 게, 여자라면 누구나 갖고 태어나는 성질도 아니고, 모성이 없어도 아이는 낳을 수 있으니까요. 아이가 태어나고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 모성애가 싹트는 사람도 있을 게 분명하고요. 거꾸로 모성이 있으면서도 누군가의 딸이고 싶고, 보호를 받는 입장이고 싶은 마음이 강하면 무의식중에 자기 안의 모성을 배제하는 여성도 있어요.”“아하, 네가 말하는 엄마와 딸이란, 모성을 지닌 여자와 그렇지 않은 여자란 말이네. 그래서 미묘한 코멘트를 남긴 어머니 밑에서 자살을 시도한 딸에게 <만에 하나 운 나쁘게 모성이 없는 여자의 딸로 태어났어도 비관하지 말고 힘내라>, 뭐 그런 말이라도 해주려는 거야?”

“……그렇게 간단한 해답이 있었네요.” (p.229)

 

시간은 흐른다. 흐르기 때문에 엄마를 향한 마음도 변한다. 그럼에도 사랑을 애타게 원하는 존재가 딸이고, 자기가 애타게 원하던 사랑을 자기 자식에게 주려는 마음이 모성이란 것 아닐까. (p.282)

 

이렇게 모성에 대한 작가만의 정의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은, 모성에 관한 치열한 생각과 고민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녀의 모성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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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배진수 글.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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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이전에 웹툰으로 금요일을 처음 접했을 때, 떠오른 영화 대사가 있다.

 

“니, 감당이나 할 수 있겠나?”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이끼> 속 이장 천용덕의 대사다. ‘감당이나’라는 말에서부터 감춰진 진실의 어마어마한 무게가 느껴지지만, 왠지 그 진실, 파헤치고 싶어진다. <禁曜日>을 처음 접했을 때, 내 느낌이 딱 이랬다. 감춰졌던 진실이 주는 그 불편함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진실을 알고 싶은 마음.

 

꽤나 그로테스크한 그림체에 담긴 불편한 공포. 스토리는 궁금한데, 그림체 때문에 선뜻 손이 가질 않았던 작품이었는데 그림체 때문에 스토리를 포기할 순 없다고 판단하고는 1회 ‘원룸’을 감상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그림체는 더욱 그로테스크했고, 스토리 역시 기대 이상으로 탄탄했다.

 

감히, 누군가의 정서나 철학에 작디작은 파문이라도 일으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강했습니다.

 

- 배진수 『禁曜日』작가의 말 中

 

작가의 말에 드러난 작가의 바람처럼, <禁曜日>은 불편한 공포와 기괴한 그림체로 다가와서 내 정서를 마구 헤집었다.

 

“꼭 나가야 하나? (중략) 어쩌면 난 동물이었을지도…….” (원룸 中)

“잘 선택해봐. 선택은 사소할지 몰라도 결과는 사소하지 않으니까.” (역행 中)

“그러다 문득, 문득 깨달았다. 내 삶에 몇 번의 기회가 주어지든, 나라는 놈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과거로 돌아왔다고 해서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다고 해서 나라는 인간 자체가 변할 리는 없다는 너무나 슬프고 또 무서운 사실을.” (역행 中)

“불현듯 내가 빠져 있는 딜레마의 정체를 깨달았다. ‘행복’이나 ‘만족’은 독립적인 존재가 아닌 ‘불행’과 ‘불만’이 해소될 때 주어지는 반대급부일 뿐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말이다. 즉, 모든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은 결국엔 모든 소원이 사라진다는 말과 같은 의미인 것.” (퍼펙트 월드 中)

“학생은, 언제나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네요.” (카르마 中)

 

지극히 극단적이고,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불편함. 바로 이 불편함이 ‘진실’이 아닐까. 마주하기 두려워서, 혹은 영원히 외면하고 싶은 진실.

 

무엇보다 이 만화가 무서운 이유는 이거다. 만화가 진실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이 만화를 읽음으로써 우리 속에 숨겨진 진실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 나라고, 『禁曜日』 속 캐릭터들과 다른 생각을 하고, 선택을 했을까. 이 책의 홍보 문구처럼, 생의 이면을 들출 용기가 없다면 이 책을 금(禁)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정말이지, 니, 감당이나 할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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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리고 가끔 고양이 - 이용한 시인의 센티멘털 고양이 여행
이용한 지음 / 북폴리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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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제목만큼이나 보드랍고 따뜻하고 나른했던 종이우산님의 『보드랍고 따뜻하고 나른한』에 이어 이용한님의 『흐리고 가끔 고양이』를 읽으면서 나는 내 여행의 기억 속에 남은 고양이들을 떠올렸다.

 

도시락을 싸들고 친구와 함께 올랐던 남산에서 만난 고양이와 맛집을 찾아 헤매다 들어가게 된 골목에서 만난 고양이까지. 여러 고양이들을 만났지만, 역시 남산에서 만난 고양이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정상 조금 못 올라서 벤치에 앉아 도시락을 까먹고 있던 친구와 내 곁으로 고양이 한 마리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곁에 온전히 다가올 정도로 경계심을 풀고 다가온 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가오려는 모습을 보니 배가 고픈가보다 싶어서 함께 챙겨간 과자를 던져 주었다. (꽤 오래전의 기억인데도 그 때 던져줬던 과자가 튀기지 않고 구웠다는 그 과자 ‘예감’이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는 걸 보니 그 고양이와의 만남이 정말 인상 깊긴 했나보다. 어떤 과자였는지 기억난 김에 고양이의 이름을 뒤늦게 지어본다. 예감하신대로, ‘예감이’다.) 예감이는 던져진 과자를 입에 물고 우리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돌아갔다. 친구와 나는 우리의 눈앞에서 먹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아쉬워했지만, 저렇게 먹어야 마음이 편하다면 저렇게 먹어야지 하며 멈췄던 수다를 이어나갔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예감이는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먹긴 먹었는데, 입맛만 다신 표정이었다. 부족했구나! 하며, 이번엔 더 많은 양을 던져주었다. (과자가 칩 형태이다 보니 던져주면 과자가 부서질 확률이 높았지만, 던져주지 않으면 예감이가 도망가 버릴 것 같았으므로, 어쩔 수 없이 던져주었다.) 이번에도 과자를 제 입에 물고 자리를 뜨려 했지만, 전보다 양이 많았던 걸 알았는지 그 자리에서 조금 먹고 남은 양을 가져갔다. 그렇게 두어 번, 예감이는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고 우리는 예감이를 위해 먹지 않고 남겨 둔 과자를 내주었다. 예감이가 차마 가져가지 못한 과자 부스러기를 먹기 위해 달려드는 비둘기를 쫓아내면서, 내준 과자를 다 먹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친구와 나는 자리를 떴다. 과자를 내어 주면서, 이 과자를 먹고 배가 부를까? 과자만 먹으면 목이 마를 텐데, 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아쉽네, 하면서 챙겨줬던 예감이에 대한 추억 덕분에 친구와의 남산 여행은 잊지 못할 여행으로 남았다. 조금의 과자를 내어 주었을 뿐인데, 예감이 덕에 잊지 못할 추억을 얻은 나로서는 책 속 곳곳에서 묻어나는 저자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번 맺은 고양이와의 인연은 쉽게 떨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했다. 이왕이면 고양이 여행을 하기로. (p.301)

 

‘이용한 시인의 센티멘털 고양이 여행’이라는 부제를 단 책이지만, 책 소개에 소개된 구절처럼 ‘전국 각지에서 만난 그들의 생태를 놀랍도록 생생하게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라는 설명이 더 들어맞는 책이었다. 전국 60여 곳을 2년 반 동안 발품을 판 저자의 고생이 없었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책이다. 그래서 더 소중한 책.

 

지구상에서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는 동물이 있다면, 아마도 고양이일 것이다. 그리고 이 비난의 목소리가 가장 높은 곳이 바로 한국이다. 한국의 고양이만 유별난 것도 아닌데, 거참 이상하다. (p.344)

 

그런 한국이어서, 이 책이 더 애틋하다. 그런 한국에 살아가는 고양이들이 짠함을 넘어 너무도 먹먹해서. 그런 고양이들을 사랑하는 캣맘-캣대디들의 속상한 마음에 충분히 공감이 가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소 지을 수 있는 건 다음 구절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열렬한 사랑의 대상이 되는 동물이 있다면, 그것도 고양이일 것이다. (p.344)

 

어떤 묘연이 작가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르고, 나에게도 어떤 묘연이 이렇게 고양이 책을 찾아 읽게 만들고 가방에 고양이 간식을 챙겨 넣어 다니게 된 캣맘이 되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작가의 말마따나 그저 저 길과 바람과 묘연에 나를 맡기기로 한다. 지구상에서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열렬한 사랑의 대상이 되는 동물이 있다면, 그건 분명 고양이일 테니까.

 

 

* 인상 깊었던 구절

 

고양이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나는 좀 더 오래 이 여행을 즐기고 싶다. 설령 그 길에서 아프고 슬픈 고양이를 만날지라도 그 낱낱의 사연과 희로애락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이 세상에 이런 고양이가 살다 갔다고. 그것은 때로 눈물겹지만 아름다웠다고. (p.5)

고양이 여행을 하다보면 고양이에 대한 그 동네 인심과 분위기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고양이의 경계심이 심할수록 고양이에 대한 인심이 사납다고 보면 틀림없다. (p.307)

 

고양이에게 야박한 집은 팔아주지 말아야지. 아마도 고양이를 좋아하는 애묘인이라면 대부분 같은 심정일 것이다. (p.314)

 

나도 모르게 울분이 솟구쳤다. 막상 그렇게 말하고 나니, 걱정이 되었다. 혹시라도 내가 한 말에 기분이 상해 고양이에게 해코지를 하지는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아, 속상해도 그냥 참을걸.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고양이를 위해서. 이래저래 용궁사를 떠나는 마음이 착잡했다. (p.341)

 

잠자코 고양이를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그 슬픔이라는 미래.

연민이 나를 등 떠밀었다. 사실 고양이와 아무 상관없던 내가 고양이와 함께 여기까지 오게 된 건 어떤 연민 때문이었다. 저 불쌍한 것들이 길 위에 던져졌다는 사실, 추위와 배고픔과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사실이 안락한 마음을 자꾸 건드렸다. 결국 나는 고양이 발자국을 따라 나섰고, 사료 배달을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고양이 책 세 권을 냈고, <고양이 춤>이라는 독립영화 제작에 참여했으며, 여전히 그 길에서 고양이 여행을 떠나고 있다. (p.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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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못된 놀이 - 따돌림 저학년 어린이를 위한 인성동화 27
김경옥 지음, 문채영 그림 / 소담주니어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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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는 그 순간부터, 책을 덮고 표지를 다시 본 그 순간까지 씁쓸했던 책 『마녀의 못된 놀이』. 그 이유는 이 책이 저학년 어린이를 위한 인성동화 시리즈 중 ‘따돌림’편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이들에게 있어 따돌림이란 어쩌면, 이 책의 제목처럼 ‘못된 놀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따돌릴 땐 영원히 모르지만, 자신이 따돌림을 당하고 나서야 ‘놀이’가 아니었음을 사무치게 깨닫게 되는 못된 놀이.

 

따돌림에 관해 이야기 한 많은 책이 있겠지만, 이 책이 재미있었던 건 화자인 ‘나리’의 입장에 있었다. 따돌림 당할 것을 두려워하고, 용기가 없어서 따돌림 하는 것을 지켜보고, 여차저차해서 따돌림 당하고, 따돌림으로 슬퍼하고, 따돌림에서 벗어나 진정한 우정을 찾는 나리.

따돌림 당할 것이 두려워서 따돌림 당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잘못이라는 걸 알지만 차마 잘못이라 하지 못한 채 지켜보고, 따돌림 받는 여느 아이가 그러하듯 사소한 이유로 따돌림 받고, 따돌림을 받고 우울해하고, 그 과정에서 느낀 경험을 바탕으로 따돌림 당해서 외로웠을 아이를 이해하고, 겉모습보다는 친구의 감춰진 면을 발견함으로써 진정한 우정을 찾게 되는 나리를 통해 나 역시 그러했고 요즘의 아이들 역시 그러할 따돌림에 관한 심리를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내가 나리만 했을 시절에도 따돌림은 분명히 존재했지만, 요즘의 아이들에게 있어 따돌림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따돌림에 단순한 문제는 없겠지만, 그 어린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할 정도의 폭력이 되어버린 문제가 아닌가. 따돌림이 그 어떤 폭력보다 무서운 건, 육체적인 폭력은 없다하더라도 정신적으로 회복할 수 없을 지경까지 이르게 하는 상처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따돌림의 시작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주 사소한 것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이 책에서 나오는 것처럼 새 스마트폰을 자랑하기에 잠깐 만졌는데 확 빼앗아가서 정말 기분이 나빴기 때문에, 완전 미친 공붓벌레처럼 학원밖에 몰라서, 학습 능력이 모자르고 늘 학교에 와서 큰 볼일을 본다는 이유로, 뒷담화가 와전되어서 등등. 나는 사소하다고 생각했으나 가해자 아이들에겐 위와 같은 이유들이 전부였을지도 모르겠다. 그 전부가 전부가 아님을 모르기 때문에 그러했겠지만 말이다.

 

“처음엔 다섯 마리였는데 요 파란색 열대어가 두 마리나 죽여 버렸어.”

“왜?”

“이놈은 성질이 사나워서 그런지 순한 애들을 계속 괴롭히더라고. 괴롭힘에 시달린 애들은 시름시름 앓더니 죽어 버렸어. 아마 어항이 작아서 영역 싸움 하느라 그런 것 같아.”

그러자 효정이가 어항을 콩콩 치며 말했어요.

“에이, 나쁜 놈!” (p.45)

 

다른 열대어들을 괴롭히는 파란색 열대어를 보면서 효정이는 “에이, 나쁜 놈!”이라는 말과 함께 어항을 콩콩 쳐가며 파란색 열대어를 혼낸다. 자신 역시 학교라는 어항 속 파란색 열대어임을 모른 채. 결국, 효정이는 어항이 깨짐으로써 나리네 집의 푸른 열대어처럼 밉상이 되었지만 효정이의 심리는 언급되지 않는다. 대신, 어항에 홀로 남아 외톨이가 된 푸른 열대어를 불쌍히 여기는 나리의 심리로 드러난다. “외로워 봤으니 친구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겠지?” 효정이 자신이 친구들을 따돌려서 괴롭힌 것처럼, 효정이 역시 따돌림으로 외로움을 겪게 되는 건 아니지만, 따돌림 끝에 혼자 남아 처절히 외로움을 느낌과 동시에 반성해야 하는 게 못된 놀이 끝에 돌아온 효정이의 몫일 것이다.

 

이런 책이 저학년 어린이들에게 너나 할 것 없이 널리 읽혀서, 학교라는 어항 속에서 언젠가 마주하게 될지도 모를 ‘따돌림’으로 고민할 아이들에게 때로는 힘이 되고 때로는 따끔한 교훈을 주는 책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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