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은 언제나 덩그라니, 40년 된 아파트에 매일 매일 갇혀 있다. 벌써 1년이 넘었다. 그 집에 사는, 그 집의 주인, 아니 세입자를 제외한, 유일하게 움직이는 존재. (바퀴벌레가 없는 게 확실하다면 - 아 진드기가 있댔지) 로봇 청소기 - 룸바, 아니 멍청이다.  

녀석은 나름 로봇이라고 최첨단이다. 낭떠러지 같은 곳에는 가상벽을 두어 그 곳으로 가지 않게도 할 수 있고, 청소가 다 끝난 뒤에는 알아서 충전기로 찾아갈 수 있도록 모든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게으른 주인은, 가상벽을 꺼낸 적이 없다. 자동 충전 홈도 설치해주지 않았다. 녀석은 주인이 없는 동안 그 집의 청소를 제대로 무사히 마친 적이 거의 없다. 신발장 낭떠러지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에러가 나기 일쑤다. 청소하려고 보니 충전하는 것을 깜빡 잊어 작동이 안되는 경우도 있다. 다 제 팔자다. 로봇이라고 왜 팔자가 없겠는가. 인간도 부모 잘못 만나서, 배우자 잘못 만나서, 자식 잘못 키워서, 상사 잘못 만나서 고생하는 것처럼, 로봇도 주인 잘못 만나면 고생길이 훤한 거다. 녀석은 많은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으나 한번도 발휘하지 못한 불운한 아이들의 운명을 닮았다. 자신에게 가상벽이 있는 것도 모르고 그 낭떠러지 앞에서 녀석이 느꼈을 공포를 생각하면 좀 미안하긴 하지만, 한 번도 툭 떨어져주지 않고, 거기서 멈춰준 녀석의 소심함에 경의를 표한다. 자신에게 자동 충전 기능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빨간불 켜대며 굶주리던 녀석에게 좀 미안하긴 하지만, 한번도 반항하지 않고 충전기를 꽂아주면 꿀꺽 꿀꺽 맛있게 먹고 다시 쌩쌩 일한다.

그래도 녀석의 팔자가 그렇게 사납지만은 않은 것 역시 주인의 게으름에서 기인한다. 하루가 멀다하고 청소기를 돌려대기엔 녀석의 주인은 너무 게으르다. 일단 녀석이 종횡무진하기 위해서는 바닥이 깨끗해야 하는데, 바닥엔 늘 책이 늘어져있고, 가끔은 옷가지도 늘어져있고, 커피마신 컵도 늘어져있다. 마트에서 사온 비닐봉지가 그대로 있기도 하다. 주중에는 그것들을 치우는 게 귀찮아 녀석도 함께 방치해둔다. 주말엔 모처럼 쉬는데 녀석의 윙윙거리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며 또 방치한다.그러니 녀석은 또래 다른 녀석들과 같은 급여를 일시불로 받았음에도 훨씬 일을 덜하고 있는 셈이다. 사악한 자본가라면 못견딜 일이겠지만 녀석의 주인은 다행히 사악하지는 않다. 게으르고, 게다가 가난하기까지 해 대저택에 취직한 녀석들에 비하면 1회 업무량도 매우 적은 편이다. 알고 보면 신의 직장에 취업한 것이지.  

가끔 주인이 있는 날 일을 할 때는 죽을 맛이다. 놔두면 알아서 할텐데 성격 급한 주인은 녀석이 다른 방향으로 갈 때마다 발로 툭툭 치면서 "멍청아, 거기 말고, 멍청아, 거기 말고'를 외쳐댄다. 가끔은 축구를 하자는 건가, 싶기도 하다. 좁은 방에 가둬 놓고 자기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면서 모른 척 하기도 한다. 휴. 이제 여긴 깨끗한데 문을 열어줄 생각을 안한다. 이놈의 주인은 빨래도 몰아서 하는 인간이라, 부엌으로 진입하기 위해 종종 빨래 건조대를 통과해야되는데 여긴 난코스다. 가끔은 건조대의 다리하나를 붙잡고 빙빙 돌다가 어지럼증을 느끼기도 한다.  

주인은 활용 숙련도 100점 만점에 30점 수준으로 녀석을 활용하면서도 그 만족도가 높단다. 그 역시 주인이 게으르기 때문이다. 이 주인은 대부분의 시간은 쓸데없이 보내기 일쑤이면서도 시간에 대한 강박관념이 심해 시간을 절약하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데 이를테면 설거지를 하면서 청소기를 돌린다던가, 외출하는 길에 버튼만 눌러놓고 나갈 때 묘한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아. 뭔가 첨단 돋는 상황이야. 문명의 이기가 나의 시간을 절약해 주고 있어... 하는...! 기계 문명의 맛을 본 주인은 로봇 청소기에 이어 식기세척기까지 사고 싶다며 가사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꾸지만 가난이 그녀의 발목을 잡는다. 녀석을 구입한 것은 집을 나오면 이렇게 가난해질 줄은 미처 몰랐던 주인의 마지막 사치였다. 식기세척기가 들어오면 녀석에게도 나름 주인 뒷담화를 할 수 있는 친구가 생기는 건데, 안타까울 뿐이다.

듣자하니 주인은 전세값이 많이 올랐다던데, 식기세척기가 들어오기는 커녕 자신도 어디로 팔아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디 넓은 집 가서 부지런한 주인을 만나 죽어라 고생하며 사는 건 아닌지, 이미 이 게으른 주인과의 삶에 너무 익숙해졌는데,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고보니 저 주인도 녀석과의 삶이 익숙해져 쉬이 팔아버릴 수 있는 인간으로는 안보이는데, 그럼 이렇게 된 거 더 좁은 집으로 이사가서 편안 삶을 살 수 있길 기도해봐? 흠, 그러기엔 또 주인이 나쁜 사람 같지는 않은데, 좀 미안해진다. 그냥 게으른 주인이랑 이 40년 된 아파트에서 오래 오래 함께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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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1-05-20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가.... 사물과 대화를 하는 것보다 상태가 더 심각해보임...

Mephistopheles 2011-05-20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전 순간 이거 이러다가 웬디양님 방에서 룸바와 대화하는 지경까지 가는 건 아닌가.......싶었더랬는데..

'어이 룸바..어떡해 하면 전세값 걱정 없이 살 수 있을까?'

'주인님..절 들고 한국을 뜨셔...그게 최선일지도...'

요런 대화요.

웽스북스 2011-05-20 01:26   좋아요 0 | URL
대화는 이미 하고있어요. 저희집의 유일한 물격체라 ㅋㅋㅋㅋ
청소해주는 애완동물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

굿바이 2011-05-20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집 세탁기와 청소기가 입만 뻥긋해도, 나는 사회에서 매장당할거야 ㅋㅋㅋㅋ
그런데 나는 왜 한 번도 룸바를 보면서 로봇이라는 생각을 안했을까?
그나저나 이 글 읽으며 너무 웃었다. 눈치보인다 :)

웽스북스 2011-05-21 14:04   좋아요 0 | URL
언니. 제가 이 글을 써야지 생각한게 지난번 언니네 집에서
룸바를쓴지 1년이 넘도록 가상벽과 충전홈베이스를 한번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나서에요. ㅎㅎㅎㅎ

그나저나 입을 열 게 더 두려운 건 언니집말고, 목포의 세탁기(드럼X)인 것 같은데.... 얼른 입을 열어줬으면 좋겠네요. ㅋㅋㅋ

무스탕 2011-05-20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집 세탁기는 시집 잘못와서 17년째 혹사당하고 고령의 노구를 이끌고 일하기 힘들다고 골골대니까 부속 후딱 갈아주고 더 일하라고 채찍질하고.. ㅋㅋ
다음엔 동거물(物)중 누구를 소개해 주실거에요? +_+

웽스북스 2011-05-21 14:04   좋아요 0 | URL
우리집 세탁기도 노동량이 적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빨래를 워낙 몰아서 해서 .... ;;;;

또치 2011-05-20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거 연재해요. 내가 출판사 알아봐줄게 ^^

웽스북스 2011-05-21 14:05   좋아요 0 | URL
또치님. 제겐 별로 레파토리가 없어요. 정작 낸다고 해도 음, 아마도, 10년후쯤 되어야 그만큼의 분량이 모이지 않을까 싶어요 ㅋㅋㅋㅋㅋㅋ 그래도 말씀만은 감사!!!!! ㅋㅋㅋ

2011-05-20 1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21 14: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1-05-20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한 글이다. 멋져요! 흑흑. 또치님 말씀대로 연재해요, 연재! 아 멋져 ㅠㅠ
역시 웬디양님은 멋진 아가씨였어.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있다니까.
책이나 영화속의 주인공에 감정이입하는 걸 넘어섰네요. 웬디양님은 사물, 바로 그 자체가 되었어요. 존경합니다. 진심이에요.

웽스북스 2011-05-21 14:06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마지막 두줄, 위대한 탄생 심사평 같아요 ㅋㅋㅋㅋㅋㅋ

제가 로봇 청소기와 너무 교감을 심하게 해서 그래요 ㅋㅋㅋㅋ

pjy 2011-05-20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의 직장에 취직한 룸바~ 너를 부러워하면 지는거냐! ㅋㅋㅋ

웽스북스 2011-05-21 14:09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미 당신은 패자가 되셨습니다......

근데 pjy님.... 아.... 저 브론테님 서재에서 발광머리앤 보고 기절 ㅋㅋ

차좋아 2011-05-20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려로봇 룸바...... ㅋㅋㅋ
똥싸고 털날리는 고양이와 비교되네요 음.... (고양이 이눔 자식)

웽스북스 2011-05-21 14:09   좋아요 0 | URL
반려로봇 ㅋㅋㅋㅋ 빙고.
멍청이의 정체를 한마디로 압축요약해주시는 차좋아님의 능력

개인주의 2011-05-20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편 언제 나오나요 +_+

웽스북스 2011-05-21 14:09   좋아요 0 | URL
1년 안에는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마노아 2011-05-20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의 직장에 취업한 멍청이군의 친구가 꼭꼭 생겨서 오래오래 그 집에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다음 편 기다릴게요. 이 시리즈 많이 만들어줘요!!

웽스북스 2011-05-21 14:10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 요리시리즈 2시즌 나오면 ㅋㅋㅋ

네꼬 2011-05-20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고야 진짜!

웽스북스 2011-05-21 14:10   좋아요 0 | URL
네꼬님만 하겠습니까~ 우힝~ 자주 나타나줘요!!

... 2011-05-20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셋집 사물들에 대한 연작 소설집. 제목은 "주인님, 나를 잊지 말아요" 신인작가 웬디양!!

웽스북스 2011-05-21 14:10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잊혀진 존재들이 너무 많아요 우리집엔...
best of best는 오븐........ 한번 고구마 굽고는 다시 안쓰고 있음 ㅋㅋ

따라쟁이 2011-05-31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룸바가 웬디양님 발밑을 졸졸졸 쫓아오는 장면이 연상되는데요.
최고라고 말씀하시는 윗분들에게 동의합니다. 멋진글이에요 멋져요.

웽스북스 2011-06-01 00:25   좋아요 0 | URL
아이고, 고맙습니다.

발밑을 졸졸졸 좇아오면 툭 발로 차버려요. 아. 잔혹주인.
 
써니 - Sunny
영화
평점 :
현재상영


친구까지 로또가 되어주길 원하는 세상이로구나.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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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11-05-18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님의 촌철(까지만 쓸래) 여전하군여!

웽스북스 2011-05-20 00:37   좋아요 0 | URL
그 촌철 어디 갑니까? ㅋㅋㅋㅋㅋㅋ

2011-05-20 0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20 0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iRobot 로봇청소기 룸바 539
아이로봇
평점 :
절판


헉. 우리 멍청이가 하루특가에... 애는 성실해요. 1년이상 썼는데 꾀도안부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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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치 2011-05-12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거 꽤 비싼 거구나...! 많이많이 부려먹어요!!

웽스북스 2011-05-12 12:43   좋아요 0 | URL
하루특가가 되면 가격 좀더 다운되지 않을까요? ㅋㅋ
주인이 게을러서 많이 못부려먹고있어요.
얘를 부려먹으려면 일단 주변의 잡동사니들을 치워야되서 ㅋㅋ

다락방 2011-05-12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또치님 댓글읽고 상품 클릭해봤는데, 와, 진짜 비싼거군요!!

웽스북스 2011-05-12 12:43   좋아요 0 | URL
우헹, 저, 저도 큰맘먹고 샀던 거라...ㅋㅋ
그냥 가정부 월급이라고 생각하고.... (응?) ㅋㅋ

다락방 2011-05-12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에 밥통이 다 고장났어요. 밥통을 새로 사야 하는데..하루특가로 밥통이 나오길 기다려봐야 할까요? 먼지따로 청소기도 나왔으니까 밥통도 나오지 않을까요?

웽스북스 2011-05-12 12:44   좋아요 0 | URL
밥은 매일매일 먹어야 되는 건데.....
밥통 없이 살 수 있겠어요?

pjy 2011-05-12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꾀도 안부리고 성실한 아이 참, 탐나는데.....이런, 겁나 비싸군요-_-;

웽스북스 2011-05-12 12:44   좋아요 0 | URL
으흐, 비싸다...가 대세로군요 ;;;;

치니 2011-05-12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하하, 내가 젤 통이 큰가봐요(통만 큰가봐요 -_-;) 난 적어도 그 가격은 할 거라고 생각해서 하나도 비싸단 생각이 안 드는뎅. ㅋ

웽스북스 2011-05-12 12:45   좋아요 0 | URL
오오오 대세를 거스르는 치니님!!! ㅋㅋㅋ
그래도, 애가 로보트는 로보트니까...
역시 대인배 치니님~

무스탕 2011-05-12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꽥-! 위에서 비싸다 비싸다 그래서 큰 맘먹고 높은 가격을 생각하면서 검색했더니 제가 생각한 가격보다 5만원이나 더 비싼 할인가라니요! (제 통이 이렇게 좁았군요 -_-;)
근데 웬디양님은 저런 고가의 아이보고 멍청이라 부르시다니..
럭셔리한 멍청이군요ㅋㅋ

웽스북스 2011-05-12 21:51   좋아요 0 | URL
귀엽잖아요 멍청이 ㅋㅋㅋ
사실 전 청소기값에 대한 감이 없어서 별 생각없이 확 질렀 ;;;

그래도 완전 편하고 좋아요 ㅎㅎ

당고 2011-05-12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로봇 청소기를 쓰면 청소를 안 해도 되나요?

웽스북스 2011-05-12 21:52   좋아요 0 | URL
그렇다기보단 좀 덜하게 되죠

단 바닥을 싹 치워놔야되는데,
바닥청소하고 청소기 돌려놓고 나갈 땐 기분 좋아요. 혹은 청소기 돌려놓고 설거지할 때... 시간 번 느낌..
그래봐야 1주일에 한번 돌리면 많이 돌리는 거에요. ㅎㅎ
청소가 귀찮....;;;

갑자기 진드기생각이 나네요 저도 ㅎㅎㅎ

마그 2011-05-17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흠 좀전에 온 메일을 보니... 249000원. 이거 질러야하나..말아야하나.
아놔!
 
자본 Ⅰ-1 코기토 총서 : 세계 사상의 고전 11
칼 마르크스 지음, 강신준 옮김 / 길(도서출판) / 2008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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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것. 그 뜨거움을 촉발해낸 것은 냉철함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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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위대한 탄생 재밌다고 한 건 취소다, 취소, 다 취소다. 요즘에 위대한 탄생만 보고 나면 입이 거칠어져서 아주 죽을 지경이다. 도대체 저 실력 있는 친구들이 왜 저 못난 친구 하나 때문에 떨어져야 하는가. 혼자 보면서 얼마나 열을 내는지, 주로 새벽시간에 봐서 어디 화낼 데도 없고, 성질만 점점 나빠지고 있다.

김태원, 말이다. 정말 보기 싫어서 기절하기 일보 직전. 김태원 멘토링이 하도 소문이 나서 보기 시작한 건데, 김태원 때문에 보기 싫어졌으니, 우스운 노릇이다. 지난 번 위탄 때도, 희망드립 그만 좀 해줬으면 한다, 고 썼는데, 도대체, 우리 팀장님 사모님 말마따나, 도사님도 아니고!! '그대'라는 말도 듣기 싫을 지경이다.  

그게, 희망입니까? 기적입니까?

라고 묻고 싶다. 물론 한 개인의 삶에 있어서는 기적의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우리가 그걸 지켜보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못생긴 게 문제가 아니라, 실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게 문제인 그 친구가 계속해서 살아남는 것이, 당신에게 희망이 됩니까? 그렇게 당신이 그 기적에 동참하는 것이, 아름다운 일입니까? 그래서 그 친구가 가수가 되면, 그 때도 당신은 그를 열렬히 지지하겠습니까? 다시 소녀시대에게로 돌아갈 것 아닙니까? 라고 정말 묻고 싶다. 그런데 주변에 없어서 물어볼 수가 없네... 슈퍼스타 K에서 허각이 기적을 만들어냈다, 고 모두들 열광했지만, 사회가 들썩였지만, 누구도 그의 음반을 구매했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래도 허각은 노래라도 괜찮게 불렀지 -_-

슈퍼스타 K에서 강승윤의 별명은 곱등이였다. 끈덕지게 안떨어진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었다. 여중딩들에게 투표좀 잘하라고 전해달라는 이승철의 뼈 있는 우스개도 나돌았었다. 위탄에서의 손진영은 곱등이보다 더하다. -_- 그래도 강승윤은 잠재된 가능성과 스타성이 엿보였는데, 손진영은 정말 못난 것 하나로 여기까지 올라오고 있다. 대부분의 지지층은 남성일텐데, 이 얼마나 건강하지 못한 자아인가. 자신의 못남을 타인에게 투영해 거기에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그 감성을 보며, 차라리 '잘생긴 오빠', '귀여운 꽃돌이'를 뽑는 여성들이 훨씬 건강하다고 생각했다. 남성들이 못난 자신을 지키는 새 우리 예쁜 여자아이들은 다 떨어져버렸어요. ㅜㅜ  못난 자신을 투영하는 게 아니라, 정말 잘한다고 생각해서 뽑는 것이라면? 그 막귀도 문제다 -_-

오디션 프로그램이 미스/미스터 코리아처럼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을 뽑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개인의 힘들었던 과거, 어려운 환경 등이 오히려 실력을 뛰어넘어 선발의 결정적 요인이 되는, 이 한국인들의 서사적 작태가 너무나 촌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다. 슈퍼스타K를 보면서도 애들 불쌍배틀 시키면서 눈물 콧물 찍찍 짜게 만들고, 그러면서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 없이 자란 친구들이 오히려 그로 인해 결핍을 느끼는, 그러니까 결핍의 결핍이 되려 컴플렉스가 되는 상황이 참 아이러니하다 생각했는데, 위대한 탄생에서도 그 현상이 엄청나다. 적극적으로 그것을 부각하는 멘토(김태원)의 제자들은 끝까지 살아남고, 오히려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실력만 보여주려는 멘토의 제자들은 떨어진다. 인생을 가르치려는 멘토의 제자들은 살아남고, 음악을 가르치려는 멘토의 제자들은 떨어지다. 인생오디션이 아니라, 음악 오디션인데 말이다. 정말 인생역전 엄청 좋아하고, 스토리에 집착하는 국민들이로세. 오죽하면 이은미가 이건 드라마가 아니다, 라고 말했겠습니까. 노지훈이 떨어지면서, 본인도 환경이 좋지 않다, 라는 말을 잠깐 했는데, 나는 그게 참 의미심장하게 들리더라. 생방송부터 봐서 앞에서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노지훈은 한 순간도 불쌍한 캐릭터로 나온 적이 없었다. 물론 해당 방송에서 노지훈이 실수를 하긴 했으나, 손진영은 그 전 방송에서 더한 실수도 했었다 -_-

암튼, 난, 손진영이 계속해서 떨어지지 않고 승승장구하는 것을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손진영에게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손진영을 뽑는 사람들에게 화가 난다. 김태원이 '그대는 아름답습니다' '그대는 할 수 있습니다' '그대는 이미 기적입니다' 라고 하는 것도 도무지 견딜 수가 없다. 김태원을 견딜 수 없는 게 아니라, 김태원에게 열광하는 사람들을 견딜 수가 없다. 인간들아, 책 좀 읽어라. 차라리 긍정의 힘을 읽어라. 아니, 이제 긍정의 힘 류의 책도 시장에서 힘을 잃어가고, 긍정의 배신이라는 책이 화제가 되고 있는 판에, 이 무슨 때 아닌 긍정 드립이요!!!!! 당신의 인생의 아름다운 부분은 스스로 찾으세요. 누군가가 도사같은 얼굴로 아름답다고 해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그는 당신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습니다.  

이제 위대한 탄생 무대에는 아무런 기대도 생기지 않는다. 김태원을 영입한 것이 위대한 탄생에는 약이었겠으나, 이젠 독이 되어 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생방 첫방송과 두번째 방송을 제외하고는 나를 흥미롭게 하는 무대를 만나지 못했다. 그래도 슈퍼스타K를 보며, 허각은 싫지만 하늘을 달리다,를 들으며 어쩔 수 없이 인정할 수 밖에 없었는데, 존박은 싫지만 Man in the mirror는 나름 멋졌는데, 지수와 재인이의 '신데렐라'를 들으면서 진짜 감탄, 감탄을 거듭하며 여러 번 들었는데, 재인이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과 '님과 함께'를 들으며 정말, 정말, 좋았었는데, 그 순간이 없다. 위대한 탄생, 에는....... 그러니 나는.....



<신입사원>이나 열심히 봐야지. 우유빛깔 김대호, 재치만점 장성규, 볼매돋네 정유진. 처음엔 김대호 때문에 봤는데, 볼수록 장성규, 정유진 너무 괜찮고, 실력파 정다희도 마음에 들고... 짜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스토리가 나오고, 참가자들의 숨겨진 매력이 계속 발산되는 프로그램이다. 나가수에 밀려 시청률은 낮지만... 여기 나오는 친구들은 다들 너무 괜찮아 가서 친하게 지내자고 말하고 싶다. 내가 먼저 다가가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라고 묻고 싶다.

다락방님이 <반짝반짝 빛나는>의 김석훈이 단순한 순대국집 아들이 아니라고 실망했는데, 김대호는 무려 해장국집 아들이다. 완벽하다!!!!! :)

위탄 때문에 열내면서 썼는데, 신입사원으로 마무리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윗부분은 다시 읽지 말아야겠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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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 2011-05-03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하도 위탄위탄 그래서 생방 때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슈스케 막판에 볼 때 같은 느낌이 안 나더라구요.
단순히 편집의 문제는 아닌 것 같고, 슈스케보다 일단 위탄이 전체적으로 실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잘 하는 축에 끼는 애들도 개인적 사정은 둘째치고(저는 슈스케도 생방 때부터 봐서 불쌍배틀은 거의 못 봤거든요) 장재인이나 허각을 볼 때처럼 뭔가 울림이 없는 듯한 느낌이예요.

웽스북스 2011-05-03 23:47   좋아요 0 | URL
그죠. 확실히 그래요. 뭔가 계속 하향평준화 되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에효. 슈퍼스타K 3나 기다려야지. ㅋㅋ

다락방 2011-05-03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뭔가 위탄에 대해 쓰려다가 웬디양님이 다 썼으니 패스할래요. 쓰다가 신경질 날듯.

아니,근데 해장국집 아들이라니! 아..분하다. 저도 반드시 찾아낼거에요. 재벌 아니면서 순대국집 아들로다가. 게다가 잘생기며 예의바르고 모든여자들에게 잘해주지 않는 남자로다가. 그런 초절정 완벽남을 찾겠어요. 제가 순대국집 아들 찾으면, 그게 더 완벽해요. 전 해장국보다 순대국이 더 좋으니깐요. 흣

아,중요한건, 본인이 순대국집을 해서는 안돼요. 반드시 순대국집 아들이어야만 해요. 불끈!!

웽스북스 2011-05-03 23:48   좋아요 0 | URL
일단, 찾고 말하세요. 네?
우/유/빛/깔/김/대/호

찾으면 뭐하나...쿨럭...!

무스탕 2011-05-04 09:04   좋아요 0 | URL
찾아보시다 콩나물국밥집 아들 하나 보이시걸랑 알려주세요 :)

웽스북스 2011-05-03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스북에 남긴 링크에 지인의 덧글 한마디
'불쌍한 탄생이 될 것 같죠?' ㅋㅋㅋ

치니 2011-05-04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 위탄 열폭하다가 마지막엔 우유빛깔 김대호, 순대국집 아들 예찬으로.
모로 가면 어떻습니까, 기분 좋아지셨으니 됐죵.

전 어제 케이블에서 돌리다가 신입사원 좀 봤는데 장성규 씨가 음악 맞춰 하는 조별 미션에서 대박 망했는데도 살아남는 걸 보고 저게 예능은 예능이구나 생각했어요. 실제 면접이었다면 그런 식의 재도전도 서바이벌도 거의 불가능했겠으니.

위탄은 아무래도 편집과 연출의 문제가 가장 크다고 생각해요. 나오는 사람들이야 솔직히, 아무래도 대세에 쏠리는 현상을 어쩔 수 없고, 이런 프로그램 특징상 인기에 따라 희비가 갈릴 수 밖에 없는데, 그걸 시청자에게 설득하는 과정이 완전 생략되었달까, 암튼 슈스케에 비해 긴장감 떨어지는 것 인정. 하지만 저에겐 셰인이 있어 긴장감 여전. ㅋㅋ 근데 댓글들 보니 셰인도 손진영 씨 다음으로 왜 안 떨어지는지 이해할 수 없는 참가자로 부상 중. ㅠㅠ

굿바이 2011-05-04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 글에서 웬디가 막 튀어나오는 것 같소!!!!!!

두 프로그램 모두 본 적이 없어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 잘 모르겠지만, 대충 감은 옵니다요.
그나저나 해장국집 아들이 완벽하다,라는 의미를 잘 몰라서 나름 고민하고 있어요. 내가 아는 해장국집 아들은 완벽과는 거리가 먼~~~~아주 먼~~~~~사람이었는데...ㅋㅋㅋ

개인주의 2011-05-04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진영이 아직 목이 붙어있나봐요.
ㅋㅋㅋ
어떤 남자애 기가막히게 노래 못 부르던데..노래방서 부르는 거 같은.-_-ㅋ
걘 어찌됬나 궁금하네요..ㅋㅋㅋ
웬디님..요즘 독립일기가 뜸해서 궁금해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