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의 물레 - 에콜로지와 문화에 관한 에세이
김종철 지음 / 녹색평론사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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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마음이 뜨겁게 묻어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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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의 물레 - 에콜로지와 문화에 관한 에세이
김종철 지음 / 녹색평론사 / 1999년 7월
구판절판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전대미문의 이 생태학적 재난은 결국 인간이 진보와 발전의 이름 밑에서 이룩해온 이른바 문명, 그 중에서도 특히 서구적 산업문명에 내재한 논리의 필연적인 결과로서의 사회적, 인간적, 자연적 위기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사람이 이 세상에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지구상에서 사람이 삶을 영위하는 올바른 방식은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근본적으로 성찰할 것을 요구하는 진실로 심오한 철학적 종교적 문제에 직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15쪽

그러한 예언은 무엇보다 종교적 열정에 근거를 둔 것임에 반해서 오늘의 묵시록적 전망은 다분히 과학적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는 것이다.-15쪽

과학사의 관점에서 볼 때 과학의 진리에 대한 관계는 언제나 잠정적이고 모색적인 것이었지 결코 항구적인 절대성을 갖는 것은 아니었다. 진정하게 과학적인 태도는 그러니까 늘 열려 있는 겸손한 태도일 수 밖에 없으며 자신의 현재 능력이나 인식방법으로써 포착할 수 없는 경험이라 하여 그것을 무시하거나 비과학적이라고 매도하거나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은 참다운 과학정신과 인연이 먼 태도라 해야 옳다. -16쪽

사람이 부도덕하고 무책임하게 되는 것은 그 자신이 행복하지도 자유롭지도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유로운 인간만이 남의 자유에 관심을 갖고 남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느낄 수 있는 법이 아닌가. 이치를 따져 생각해보면 세상만물이 자기자신과 근원적으로 한 몸뚱이로 연결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명공동체에 폭력을 가하고 상처를 입히면서도 스스로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은 인간이 내면적인 자유와 성숙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31쪽

위대한 영화예술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그의 책 <봉인된 시간>에서 시종일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자기 희생의 가치에 관해서이다. 그는 바로 이 희생의 가치가 망각된 것이 현대사회의 가장 큰 비극인 정신적 불모성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33쪽

일찌기 해월 선생은 천지만물이 한울님을 모시고 있지 않은 것이 없고 따라서 생물이 살기 위해 다른 생물을 먹는 행위는 한울이 한울을 가지고 자기를 먹여 살리는 일이라고 말하였다. 이 말에 담겨있는 것은 약육강식의 잔인한 폭력성에 관한 언급이 아니라, 겉으로는 그렇게 보일지 모르지만, 실은 모든 생명이 다른 생명에 대하여 공양의 관계, 즉 희생과 헌신, 사랑의 관계로 맺어져 있는 것이 이 우주의 근본 짜임새라는 생각인 것이다. -37쪽

저 산을 밀어올리고 있는 힘, 그것이 나를 살아있게 하는 것이다,라는 직관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바로 생태학적 감수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감수성의 교육에 새로운 생존전략의 기초를 두지 않으면 안된다. 문제는 그런 감수성의 교육에 적합한 생활방식을 어떻게 강구하느냐이다. -38쪽

의사들이란 자기가 갖고 있는 의료적인 지식을 가지고 환자를 개별적으로 상대하면서 본질적으로 환경적 요인, 산업체제의 반생명성에 기인하는 질병을 개인의 책임을 돌린다는 것이죠.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구조란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비인간적인 체제를 환자에 재적응시키는 사회적 역할을 받아들이는 한 의사는 체제를 수호하는 '사제'라는 얘기지요. -53쪽

개발과 환경의 조화라는 얼핏 듣기에 나무랄 데 없는 이러한 전략에는 날로 급박해지고 있는 생태계 보전의 필요성에 대한 광범위한 인식이 담겨있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이른바 산업적 생활방식에 어떤 본질적인 변경을 가할 의도는 없다는 생각이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58쪽

돌이켜 보면 개발 이데올로기가 부추기는 생산과 소비의 확대라는 것은 토지와 자원에 대한 착취를 무한히 계속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고, 그런 점에서 이것은 물질적 생활수준의 무한한 향상에 대한 어리석은 믿음에 기초하여왔던 19세기적 세계관의 교만성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도대체 개발-저개발이라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공식에 의거하여왔던 토착 전통사회들의 상호비교가 불가능한 독자성과 다양성을 처음부터 무시하고 단 한가지 형태의 '진보적' 모델을 추구해야 한다고 하는 태도가 결과적으로 엄청난 폭력을 수반한다는 것은 극히 당연한 일이다. (중략)
빈곤으로부터 대중을 해방한다는 최대의 명분마저 실제로 역사적 경과속에서 허구적인 것으로 판명되는 날이 오고야 만다. 국민총소득이라는 극히 기만적인 통계가 상당기간동안 사람들을 세뇌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그러나 부의 총량이 엄청나게 증대되면 될수록 대중이 느끼는 박탈감이 깊어지는 사태가 심화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도대체 전 세계적으로 개발에 의하여 민중의 운명이 실질적으로 개선된 사례는 어디에도 없다. -73쪽

산업주의 문명은 간단히 말하여 천지만물에 대한 인간의 배타적인 자기주장을 기초로 하는 매우 교만한 정신적 태도의 소산이다. 산업문명속에서 자연이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재화를 만들어내고, 편의와 안락을 제공하는 자원으로서만 의미가 있을 뿐이다. 자연이 그 풍요로운 다양성 속에서 균형과 조화를 유지하면서 그 자체로 생명을 구가해야 할 내재적인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공리주의적, 인간중심적 시각으로만 사물을 보는 태도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자신의 이웃으로부터,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필연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다. -81쪽

어디서나 사람들은 자기의 생태적 조건과 체질에 적합한 문화를 발전시켜왔어요. 고원지대에 사는 농민들은 그 나름으로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켜왔고, 열대지방은 열대지방대로, 자기들 나름의 자기들에게 맞는 노동의 양식과 축제의식을 발전시켜왔을 거란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오늘날 한국사람들이 대부분 이런 불합리한 사고, 덮어놓고 자기가 최고이며, 최고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푹 빠져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순진한 꼬마들로부터 정치한다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쇼비니즘에 크게 오염되어 있어요. -118쪽

지금 죽으러 가는 길을 가면서 자꾸 이걸 살 길이라고 말하고 있잖아요. 그걸 따라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당장에 현실적으로 패할 수밖에 없더라도 저항을 하지 않을 도리가 없죠. 적어도 불복종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복종의 핵심은 결국 아까도 말했듯이 생명의 해방구를 늘려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26쪽

늘 하는 얘깁니다만, 한국의 언론은 너무나 국제적인 감각이 없습니다. 맨날 한국과 미국과의 단순비교에 열심이지, 우리를 상대화시킬 줄 모릅니다. 그러다보니까 맨날 힘을 길러야 한다거나 쇼비니즘적인 열정만 자극하면서 강자의 논리로만 치닫는 거에요. 우리가 일본사람으로부터, 또 서양사람으로부터 힘의 지배를 받아왔으니까, 우리도 꼭같은 방식으로 강자의 반열에 서야겠다는 생각은 정말 늘푼수없는 생각이에요. 존경받을 수 없는 생각이에요. 개인적으로 누구하고 싸울 때도 마찬가지죠. 이번엔 내가 졌으니까 절치부심 근육을 길러서 상대를 꼭 꺾어버리겠다는 식으로 가본들 귀결이 뭐가 되겠습니까. 문제는 인격적으로 감화를 시키는 겁니다. -150쪽

가장 귀담아들을 만한 것은 가령 이것을 통해서 그들이 사람 누구에게나 어떤 잠재된 기술과 솜씨와 지혜가 있다는 것을 빈번히 발견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현금경제 밑에서 늘 소외되어 온 가난한 사람들이나 실업자들이 레츠를 통하여 스스로 쓸모있는 공동체의 구성원이 됨으로써 인간다운 위엄을 회복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공동체의 상호의존적 사회관계가 강화되고 지금까지 산업경제의 지배밑에서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부터 오는 힘에 속절없이 굴복하여 붕괴일로에 있던 풀뿌리 공동체가 활기 있게 되살아난다는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168쪽

산업화의 진척은 자동차관련 산업이 확대되는 것을 의미해왔고 그렇기 때문에 자동차에 관련된 일자이와 경제인구가 크게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자동차관련 산업이라고 하면, 제철, 석유, 유리를 포함하여 자동차의 생산과 판매에 직접 연관된 업종뿐만 아니라 주유소, 경찰, 병원, 보험회사, 은행, 법원을 비롯하여 실제로 방대한 영역을 포괄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고용과 돈이 걸려 있는 문제에서 객관적인 시각을 갖기 어렵다. 그렇기는 커녕 자신의 일거리와 생계에 어쩌면 보람있는 삶이 걸려있다고 생각하는 문제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묻는 행위에 적개심을 느끼기 쉬운 것이다. 오늘날 환경파괴에 대한 대처방식은 기껏 환경투자나 기술개발과 같은 순전히 기술주의적 논의로만 집중될 뿐 근본적으로 자꾸만 겉돌고 있다. 그렇게 되는 핵심적인 이유의 하나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자기자신의 문제, 즉 자기자신의 생활방식과 가치에 있어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문제로서 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192쪽

텔레비전과 컴퓨터 앞에 매달려 아동기의 대부분을 '가상현실'의 체험으로 보낸 아이들이 과연 다른 사람, 다른 생명의 슬픔과 기쁨을 이해하고, 보살피고, 돌보는 능력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가상현실'의 경험은 거기서 사람이 싫증나거나 고통을 느낄 때는 언제라도 플러그를 뽑아버리면 순식간에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뿌리없는' 경험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시련이나 고통이나 기다림을 통한 도덕적 연마와 정신적 성숙을 기대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오늘날 많은 부모들과 교사들이 일상적으로 증언할 수 있는 현상 - 무책임하고, 참을성없고, 너무나 쉽게 지루함을 느끼는 아이들이 늘어나는 현상은 우리가 실제로 가장 두려워해야 할 문제인지 모른다. -199쪽

권력욕망과 경쟁의 논리에 뿌리를 두고 속도와 힘을 끊임없이 과시하는 그러한 '현대적' 교통수단에 언제까지나 몸을 맡긴 채 우리가 진정한 평화를 희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말의 참다운 의미에서 평화와 사회정의와 생태적 건강이란 우리의 진심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생명에 대한 존경심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명에 대한 이러한 존경심은 구체적으로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을 극히 검소하게, 가난하게 꾸려가려는 자발적인 선택을 통해서만 표현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가 걸어다니기를 선택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을 우리 자신보다 더 큰 생명의 공동체에 종속시킴으로써 진정한 내면의 행복과 자유에 근접하고자 하는 시도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24쪽

마음만으로 되겠느냐고 하겠지만 마음없이 시작될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246쪽

문명생활의 향유가 설령 그 자체로 좋은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인간생존의 근본토대, 즉 자연적 기초를 망가뜨림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도대체 그러한 문명이란 무엇인가-하고 그는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반문에는 흔히 서구적 진보사관에 길들여진 지식인들이 일반적으로 드러내는 시각이 얼마나 피상적이고 자기기만적인 것인가에 대한 예리한 비판도 들어있음이 틀림없다. -248쪽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핵심적인 과제는 부분적인 성과나 후퇴에 대한 대차대조표를 작성하는 일이 아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진실로 다급한 문제는 인간이 이 세계에 존재하는 방식이 어떠해야 마땅한가를 깊이 성찰하는 일인 것이다. -2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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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침이고인다
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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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팍하게도 나는,

몇 살이세요? 라는 질문에 매우 자주 '80년생이요'라고 답한다. 스물 여덟,이라고 답하는 일보다 더 잦은 일이다. 이유는 이 리뷰를 읽는 분이 80이라는 숫자와 스물 여덟 이라는 두 단어를 보며 느꼈을 차이 그대로다. 물론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에게는 잘 통하지 않는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일 수록, 고맙게도 80년대 생을 하나로 묶어 생각해 주시는 경향이 짙다.

김애란의 새 책을 접한 문단의 반응은 극찬에 가까웠다. 어떻게 김애란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입을 모은 듯한 찬사,는 사실 조금 당황스러웠다. 나도 김애란을 좋아한다. 하지만 어떻게 김애란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나는 그저 나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작가의 글에 공감하며, 기대하고 있었을 뿐이다. 모두가 이렇게 다함께 입을 모아 김애란을 사랑하고 있는 줄은 결단코 몰랐다.

한 모임에서 누군가가, 김애란이 79년생만 됐었어도 또 문단에서 갖는 의미는 달랐을 것이라는 얘기를 했다. 80이라는 숫자가 주는 메리트의 수혜자인 나는 심히 공감했다. 김애란이 문단에서 이런 메리트를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김애란에 대한 이런 찬사 속에는 80년생, 어린 그녀가 소설을 참 잘쓰네, 하는 '대견함'이 덧입혀진 것 같다는 우려를 감출 수가 없다. 아마 내가 2000년생의 소설을 보게 되는 날, 나도 그런 대견한 시선으로 작가를 바라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여, 나는 그녀가 대견함 속에 머물지 않기를 바란다. 스물 여덟은 결코 어리지 않은 나이이다. 다행인 건 그녀도 자신을 바라보는, 대견하게 여기는 눈으로 발랄해 주기 바라는 시선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뉘앙스의 글을 최근 한 잡지를 통해 읽은 것이다. 나 역시 그녀가 우리 세대의 '발랄함'이 아닌, 우리 세대의 '깊이'를 보여주는 작가였으면 좋겠다.

침이 고인다,는 그런 점에서 의미 있는 변환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달려라 아비에서의 통통 튀던 문체에서 한발짝 나와, 조금 숨을 고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인물들에 대한 이해는 한층 더 깊어졌다. 장난처럼 '얘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라고 하고 싶을 만큼. 단편 단편의 인물들은 서로 닮아 있고, 또 나조차 가끔 잊는 나와도 닮아 있다.

침이 고인다 속 단편들은 '공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상에 있는 자그마한 나의 공간, 혹은 누군가의 공간에 대한 이야기들에 대해, 작품마다 의미를 다르게 하여 참 잘 썼다. (참 잘 썼다,라는 표현이 좀 평범하고 무책임해 보일런지는 모르겠으나, 김애란의 소설을 읽으며 참 잘쓰네,라는 생각을 계속 했기에 이렇게 표현해 본다) 누추하나마 내게는 지상에 나의 공간이 허락돼 있기에 방한칸이 절절했던 기억은 없지만, 여러모로 공간이 주는 아련함을 나 역시 가지고 있고 많은 부분 공감하며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쉽게 쓰여진 글이라 생각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쉽고 편하게 읽힌다는 건 김애란 소설의 또 하나의 특징이다. 

문단에서 그녀에게 주는 지금만큼의 찬사가 조금은 과하지 않나, 하는 느낌은 여전히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김애란이 80년생 소설가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는 게 퍽 고맙다. 적어도 그 작가를 내가 좋아할 수 있고, 앞으로 함께 살아가면서 계속해서 내놓을 이야기를 기대하며 기다릴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래서 김애란이 고맙고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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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7-10-07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솔직한 느낌에 충실한 글이네요~~ 강산이 두번 더 빠뀐 세대라서 느끼는 대견함으로 추천!

웽스북스 2007-10-07 21:04   좋아요 0 | URL
앗, 추천 감사드려요 순오기님, 제가 '대견함'을 받을 줄이야 ^^

ji0158 2007-12-21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님글 자주 읽으면서도 흔적은 처음 남기네요. 저도 80년생이예요. 왠지모를 동지애(?)가 막 솟아납니다. 김애란님 소설 처음에 보구 80년생 작가라는 말을 곱씹었던 기억이...
공감가는 리뷰 추천요~

웽스북스 2007-12-21 22:2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 자주 아는척하며 지내요 ~~ 저도 놀러갈게요
추천 감사드려요, 80년생이라니, 흐흐 더욱 정감이 ^^
 
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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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배움이 짧았고 자신의 교육적 선택에 늘 자신감을 갖지 못했다. 다만 그 때 엄마는 어떤 '보통'의 기준들을 따라가고 있었으리라. 놀이 공원에 가고, 엑스포에 가는 것처럼, 어느 시기에는 어떠어떠한 것을 해야 한다는 풍문들을 말이다. 돌이켜보면 어릴 때 엑스포에 가고 박물관에 간 것이 그렇게 재미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나를 엑스포에 보내 주고 놀이 공원에 함께 가준 엄마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누구나 겪는, 평범한 유년의 프로그램 중 하나였을 뿐이지만 무지한 눈으로 시대의 풍문들에 고개 끄덕였을, 김밥을 싸고 관광버스에 올랐을 엄마의 피로한 얼굴이 떠오르는 까닭이다. (도도한 생활) -13쪽

체르니란 말은 이국에서 불어오는 바람 같아서 돼지비계나 단무지란 말과는 다른 울림을 주었다. 나는 체르니를 배우고 싶기보단 체르니란 말이 갖고 싶었다. (도도한 생활) -15쪽

내가 집을 떠나던 날 아빠는 오토바이 '쇼바'를 잔뜩 올린 채 도로 위를 달리며 울고 있었다. 아빠는 오토바이 속도가 최절정에 다다랐을 때 앞바퀴를 들며 "얘들아 너흰 절대 보증 서지 마!"라고 오열했고, 비닐하우스 옆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속도 위반 딱지를 뗐다고 했다. (도도한 생활)-22쪽

언니는 그 중 하나를 수줍게 가리켰다. 전투 로봇의 갑옷처럼 번쩍하니 투박하게 생긴 거였다. 친구가 놀란 표정으로 "여자 애가 왜 그런 걸 고르냐?"고 묻자 언니는 얼굴을 붉히며 "저게 가장 21세기적인 느낌 가아서...."라고 답했다. 언니는 가장 21세기적인 컴퓨터와 함께 반지하방에서 살게 되었다. 21세기가 얼마나 '슬림'한 것인지를 알게 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겠지만. (도도한 생활)-29쪽

어느 날 언니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볼펜을 집어던지며 소리쳤다.
"야, 미래가 어떻게 '완료'되냐?" (도도한 생활)-31쪽

패션은 관습적인 인사가 아니라 일상적이고 중요한 화제였다. 그녀는 점점 궁색한 자신의 옷장과 여선생들의 관심에 부담을 느꼈다. 칭찬을 들은 후엔 이상한 부채감도 생겼다. 어느 때는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모두가 재빨리 자신을 훑어보며 점수를 매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불안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한 근심이 보잘것없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들이 누군가의 변화에 환호하는 건 우리에게 어떤 '화제'가 생겼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침이 고인다)-52쪽

어쩌면 유통기한이 정해진 안전한 우정이 그녀를 여유롭게 만들어주었는지도 몰랐다. 하루란 누구라도 누구를 좋아할 수 있는, 얼마든지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근사해질 수도 친절해질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침이 고인다)-57쪽

그녀는 후배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자신이 집주인이라고 유세를 떠는 것 같고, 그런 검열과 의식적인 배려를 해야 하는 자신이 지겨워진다. 그녀는 지각한 탓에 하나밖에 남지 않은 나쁜 배역을 억지로 맡아버린 학생처럼 연극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다. (침이 고인다)-76쪽

월세 부담이 컸지만 한번 쯤 무리라는 걸 모른 척하며 살아보고 싶었다. 그것이 영화관이나 놀이공원에서 잠깐 동안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환상이라 하더라도 이제 분수껏 사는 일은 지겨워져버렸다고 떼를 쓰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성탄 특선)-103쪽

의정부 북부행이라는 말 때문인지는 몰라도 - 어쩐지 나는 우리 모두가 아주 멀고 추운 나라로 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자오선을 지나갈 때)-119쪽

어느 날 나는 내가 진정으로 배곯아본 경험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리둥절해진 적이 있다. 궁핍 혹은 넉넉함을 떠나, 말 그대로 누군가의 순수한 허기, 순수한 식욕을 다른 누군가가 수십 년간 감당해왔다는 사실이 이상하고 놀라웠던 까닭이다. (칼자국)-169쪽

어머니의 몸뚱이에선 계절의 끝자락, 가판에서 조용히 썩어가는 과일의 달콤하고 졸린 냄새가 났다. (칼자국)-178쪽

나는 엉거주춤 언니에게 5만원을 찔러준다. 언니는 기겁하며 손사래를 치고, 나는 받으라고 우기며 우스갯소리를 한다.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 늘 같은 식이다. 그것은 서로 덜 면구스러워질 수 있는 최소한의 연기, 온전히 속아주기만을 위해 고안된 격식과 같다. (기도)-204쪽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는 "기다려봐" 하고 말한 뒤 뜸을 들였다. 그러고는 이제 막 하늘에서 도착한 메시지를 전하듯 선하게 중얼거렸다.
"마음만큼 형편없는 게 또 있을까"-2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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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층 숨을 고르는 듯한 느낌
    from 지극히 개인적인 2007-10-07 20:52 
    얄팍하게도 나는, 몇 살이세요? 라는 질문에 매우 자주 '80년생이요'라고 답한다. 스물 여덟,이라고 답하는 일보다 더 잦은 일이다. 이유는 이 리뷰를 읽는 분이 80이라는 숫자와 스물 여덟 이라는 두 단어를 보며 느꼈을 차이 그대로다. 물론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에게는 잘 통하지 않는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일 수록, 고맙게도 80년대 생을 하나로 묶어 생각해 주시는 경향이 짙다. 김애란의 새 책을 접한 문단의 반응은 극찬에
 
 
 
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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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의 감수성, 참 잘 잡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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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돌이 2007-10-07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3자 밖에 안되는데요. 40자평은 40자가 되야 하는거 아닌가욤? ^^

웽스북스 2007-10-07 14:57   좋아요 0 | URL
까칠하십니다 ㅋ
저 아래 보면 7자도 있습니다~
제가 원래 좀 셈에 흐려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