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화차>를 보고 집에 와 바로 책을 찾았다. 그런데, 아뿔싸! 분명히 중고로 산 것 같았는데, 내게는 책이 없었다. 나는 표지도 기억하고, 내 책장에 꽂혀 있던 모습도 기억하는데, 이상한 일이다. 찾다 결국 포기하고 새 책을 구매했다. 꼭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니었으나, 때마침 알사탕 500개 이벤트에 바로 넘어가버린 것이다. ^-^v 딱 하루! 라고 얘기만 안했어도. ㅠ_ㅠ
책은 영화보다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경선(김민희 역)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영화에 비해 책은 교코(영화 속 김민희, 경선)와 쇼코(김민희에게 신분을 빼앗긴 여자, 선영)에게 시선을 고루 안배하고 있었다. 교코가 부모 세대의 내집 마련의 과열된 욕망에 의한 결과를 담아낸 인물이라면, 쇼코는 신용카드 발급이 자유로워져서, 미래를 저당잡히고 현재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었던 그 다음 세대의 모습을 담아낸 인물이다. 영화가 선이 굵은 스토리를 취하며 성큼성큼 앞으로 가고, 원작에는 없는 뚜렷한 결말로 대중성까지 잡아냈다면, 책은, 좀 더 어둠속을 헤매며 한발한발 조심스레 내딛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 과정에서 좀 더 살피고, 좀 더 보듬는다. 그들을 둘러싼 사회 구조에 좀 더 집중하고, 결국 피해자와 가해자였던 그들이 사실은 서로 닮아 있었음을, 같은 고통을 짊어진 이들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다시 그 구조 속에서의 그녀들을 통해 스스로를 보게 하고, 내가 속한 사회를 보게 한다. 누군가는 그들을 타자화하는 서늘한 시선들 속에 자신이 있음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텍스트'라는 도구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둘은 존재의 이유와 그 화법이 엄연히 다르구나, 라고, 적어도, '화차'라는 작품을 가지고 만든 영화와 그의 원작인 책을 시간차를 거의 두지 않고 보는 동안,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옛날에는 자기 착각대로 살아볼 만한 군자금이 아무한테나 없었잖아요? (중략) 그렇지만 지금은 별 것 아니에요. 꿈을 꾸기로 마음먹으면 간단하죠. 하지만 그러려면 군자금이 필요하고, 돈이 있는 사람이야 자기 돈을 쓸테죠. 그러니까 자기 돈 없이 '빚'이라는 형태로 군자금을 만드는 사람은 쇼코처럼 되는 거에요.
이 책을 읽으며, '쇼코'에게 더욱 마음이 갔다. 피해자여서, 안쓰러워서가 아니라, 그녀의 삶의 양태가 나와 어느 정도는 닮아 있어서이다. 어쩌면, 나도 쇼코처럼 착각 속에 살고 있는 지 모른다. 현재의 나, 와 내가 생각하는 나 사이의 간극을 빚으로 메워 가면서. 안락한 듯 보이는 현재는 무언가를 저당잡았기에 가능한 모습은 아닌가. '빚'이라는 형태로 군자금을 만들고, 힘겹게 대출 이자를 갚아 나가며 살면서도, 물욕을 버리지 못하고, 쉽게 취하고, 쉽게 버리며, 자아 아닌 것에 자아를 투영하고 있지는 않은가. 계속 좀 더 나은 삶을, 좀 더 누리는 삶을 꿈꾸고 있지는 않은가. 좀 더 나은 내가 되는 길이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가끔은 그 길이 지름길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뱀은 허물을 벗잖아요? 그거 실은 목숨 걸고 하는 거래요. 그러니 에너지가 엄청나게 필요하겠죠. 그런데도 허물을 벗어요. 왜 그런지 아세요? (중략) 죽어라 허물을 벗다 보면 언젠가 다리가 나올 거라 믿기 때문이래요. 이번에는 꼭 나오겠지, 이번에는, 하면서."
다리 따위 없어도 상관없잖아요. 뱀은 뱀이니까. 그냥 뱀이니까. 후마에가 중얼거렸다.
"그런데도 뱀은 생각해요. 다리가 있는 게 좋다, 다리가 있는 게 행복하다고. (중략) 이 세상에는 다리를 원하지만 허물벗기에 지쳐버렸거나 게으름뱅이거나 벗는 방법을 모르는 뱀이 수없이 많다는 거죠. 그래서 그런 뱀들에게 다리가 있는 것처럼 비춰주는 거울을 파는 뱀도 있다는 말씀. 그리고 뱀들은 빚을 내서라도 그 거울을 사고 싶어하는 거에요."
결국 이 책은 영화보다 긴 여운으로 마음에 남는다. 누군가는 영화를 보고 신용카드를 잘랐다는데, 나는 오히려 그럼에도 신용카드를 자르지 못한 채 현재의 삶을 유지하고 있는 나를 본다. 삶의 방식이라는 것은 신용카드보다 질긴 놈이라 가위로 쉽게 잘라지지는 않는다. 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언젠가는 다리가 나올 지도 모른다는 허황된 기대감으로, 나는 여전히 다리를 비춰주는 거울을 찾아다니며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꼭 나만의 이야기인가.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 원작의 배경은 90년대이지만,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 20년간 그 화차는 끊임없이 앞으로 질주해 왔겠지. 끝이 훤히 보이는 길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참 아슬아슬하고, 그럼에도 신발끈을 고쳐매지 못하는 스스로가 참으로 안쓰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