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다
나는 숫자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라 3월이 되면 일단 무조건 봄같다. 그래도, 코트를 벗을 용기는 나지 않지만, 그래도 더이상 패딩은 안입으니까 :) ㅎㅎ
봄이고, 날이 따뜻하다고 해 기모스타킹을 벗어던지고,
오랜만에 맨발에 레깅스, 단화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낮엔 전혀 춥지 않았으나, 돌아오는 길에는 조금 추웠다. 하지만 겨울의 바람과는 확실히 다른 바람.
봄, 봄이다. 봄이 왔다!
잘 살고 있는 걸까
봄이 왔고, 나는 여전한 것들, 그리고 변하는 것들 사이에서 살고 있다.
집은 다시 2년 재계약을 했으나, 전세에서 월세 인생으로 하락했고
(전세가 올라 오른 만큼 월세로 드리기로 했다.)
휴대폰은 그동안 멸시천대하던 아이폰으로 바꿨으며,
(많은 안드로이드 유저들이 나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3월을 맞이해, 가계부 앱과 다이어트 앱을 다운로드 받아 열심히 기록하고 있다.
(그래봐야 아직 하루지만)
다시 도시락을 포기했지만
(집안일의 노예로 살지 않기 위해 발악 중이다)
여전히 고기는 먹지 않고 있고
(이건 인생에 큰 지장이 없으니)
몸무게는 좀처럼 줄지 않고, 요가 실력은 좀처럼 늘지 않는다.
(바뀌면 얼마나 좋을까)
- 하긴 바꿔 말하면 몸무게도 늘지 않고, 요가 실력이 줄지 않는다, 는 명제도 참이긴 참이다
잘 살고 있는 걸까?
라는 의문을 하루에도 열두번씩 던지고 있는데, 답은 잘 모르겠다. 아니, 아닌 것 같다.
잘 산다는 일은, 여전히 내게는 멀고도 아득한 일.
평생에 걸쳐, 그 일에 이를 수 있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우주의 비밀.
오늘 볕맞이 외출을 하며 들고 나갔던 김연수의 <원더보이>에 이런 글이 나왔다.
"산은 더욱 산이 되어야만 하고, 물은 더욱 물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지. 그게 우주의 비밀이야"
훗, 나는 우주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몇년째 쓰고 있는 내 서재의 이름을 보시라.
나는 나이므로, 더욱 열심히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 그것이 우주의 비밀.
그런데, 그렇게 살다 보면 삶의 마지막에서 '잘 살았다'고 내게 말해줄 수 있게 되려나.
소설의 주인공인 정훈은 사고로 인해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후, 타인의 생각을 읽는 능력이 생긴다. 그리고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고, 그 슬픔을 고스란히 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정부 기관에 있는 사람들은 이 능력을 고문당하는 사람들이 말하지 않는 것들을 읽어내게 하는 데 이용하려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타인의 고통을 고스란히 전할 수 있는 그 능력을 통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의 아픔을 전할 수 있는데 쓰이게 되길 바란다.
이 부분을 읽으며, 좀 엉뚱하지만 얼마 전 집 계약 연장을 위해 만난 집주인 할머니가 생각났다. 2년만의 만남이었다. 그간 내 삶에는 크게 드라마틱한 변화가 없었던 데 반해, 집주인 할머니에게는 지금까지 굳건히 믿고 있던 세계가 뒤집힐만한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 내가 딸 좀 살려보겠다고 거기에 돈을 너무 많이 쏟아 부어서, 그렇지만 않았으면 나도 이렇게 달라고 안했을텐데. 코묻은 돈까지 달라고 하네. 미안허게.
- 아, 아니에요. 전세가 올랐는데, 드려야죠. (그, 그런데, 할머니, 저, 저도 나름 열심히 일해서 돈 벌고 있어요. 비염이 좀 있긴 하지만 돈에 막 코 묻히고 그러진 않아요.) 그런데, 따님이 아프셨던 거에요? 지금은 괜찮으시고요?
- 얼마 전에 하늘 나라로 갔잖여.
라고 말하며, 할머니는 결국 눈물을 흘리신다. 2년 전만 해도, 고생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던, 곱게 늙은 할머니였는데, 그 새 맘고생을 많이 하셨나보다. 딸을 보낸 아파트에서 살 수가 없어 나와 다른 아파트에 월세로 살고 계신다고 한다. (우리집에 들어오신다고 하면 어쩌나 떨었으나 역시 기우였다. 40평대 아파트에 월세로 ;;; ㅎ) 남편은 동아일보 기자로 있었고, 본인도 돈을 벌어서 평생 돈 걱정 한 번 해본 적이 없었고, 자식 넷을 모두 예체능을 가르칠 정도로 유복했고, 인생에 큰 풍파가 없이 그저 편안하게만 살아왔다고 했다. 집이 네 채가 있는데, 자식이 넷이니까 집도 네개는 돼야지...... 라는 말을 너무 당연한 듯 하셔서, 뭐라 대꾸할 수도 없이 그저 그게 당연하다는 듯 나도 아....네.......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던 게 벌써 2년 전. 할머니는 부동산에 앉아 부동산 아줌마와 나에게 계속 이야기를 하신다.
- 나는 그 동안 누가 이런 일 겪었다고 말하면 고개는 끄덕이면서도, 그냥 '아, 저 사람이 죄를 많이 지었나보다' 이렇게 생각했지. 나한테 이런 일이 닥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 나는 살면서 아무 죄를 지은 게 없는데, 이런 일이 나한테도 오더라고. 그것도 가장 착한 딸을 그렇게 데려가시더라고.
40년간 절에 다닌 할머니는 딸을 살려보겠다고 기독교로 개종도 하셨다는데, 나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쿵. 어쩌면 저게 가장 일반적인 방식의 사고일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아무튼, 평생 다른 사람의 고통에 무감하게, 그저 자신과 자식의 무탈함을 복으로 알고 생각했던 할머니는 이렇게 느즈막히, 타인의 고통이 그들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너무 큰 일을 치르고 나서야 깨닫는다. 자신이 그간 잘못 생각해왔음을 너무 뼈저리게 느끼고야 만다.
나는 어떤가. 또 나는 어떨까. 미처 겪어보지 못한 일에 이러저러한 말을 더하는 일은 조심스럽지만, 너무 늦게, 뼈아프게 경험하고 나서야 깨닫는 것만은 막아보자고 다짐한다. 산은 더욱 산이 되고, 물은 더욱 물이 되고, 나는 더욱 내가 되는 일에 정진하는 것 못지 않게, 내가 아닌, 네가 되는 일 역시 중요하다고, 그러니 더욱 열심히 누군가와 함께 울고 웃고 공감하며 살아가자고, 결국은 그것이 '잘 산다는 것'인 것 같다는 결론을 조심스럽게 내리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너무나 단순하고 단순한 우주의 비밀이라고. 물론 나는 우주의 비밀을 알고 있었지만, 안다고 살아지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스스로를 다그치기도 하고, 그러니 잘 살아보자며 다독여 보기도 한다. (병주고 약주고....인가...)
다시 3월
암튼, 이렇게 3월을 시작한다.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며, 그것도 계절의 시작인 '봄'을 맞이하며 하루의 쉼을 선물 받고, 책을 보며, 자신을 다잡을 수 있다는 건 매우 기쁘고 의미 있는 일이다. 잠깐의 외출 후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무려 100년전 '독립만세'를 하필 3월 1일에 외쳐주신 선조님들께 감사하기까지 했다. 물론 그런 의도는 전혀 없을 절박함이었겠지만, 어쨌든 100년 후 후손들은 이렇게 은덕을 입고 있습니다.
아마 올 봄도 지난 봄과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만, 좀 더 많이 웃고, 좀 더 많이 울고, 좀 더 많이 이야기하는 계절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그 시작을 이 책과 함께한 건 매우 고마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