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옮긴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요 회사는 가끔씩 깜찍한 면모를 보이곤 하는데, 지난 번엔 팀장님들끼리 다녀온 지리산 쪽에서 팔던 곶감이 맛있다고 계절 선물로 곶감을 집으로 보내더니, 이번엔 여름 계절 선물로 옥수수를 보냈다. 푹푹 찌는 더위를 헤치고 집으로 무사히 배송된 옥수수 박스는 열자마자 열기의 포스가 보통이 아니다. 나같은 생활의 바보를 위한 옥수수 찌기 안내문도 함께. 신세계를 만난 듯, 안내문을 보며 옥수수는 이렇게 삶는구나, 헤벌쭉 웃다가 마지막 문장. 그냥 두면 썩을 수도 있습니다. 를 보고 나의 긴장은 극에 달한다. 아니, 자취생 주제에, 이 옥수수를 썩힐 수는 없지, 음!!! 다시 박스를 쳐다보니, 옥수수가 푹푹, 어찌나 더워보이던지. 나는 용기를 내어 결심한다. 옥수수, 한 번도 까본 적이 없는데, 한 번 까볼까나. 옥수수 하나를 집고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 생각보다 재밌는 거다.
그러니까, 어제는, 내가 10시도 넘어서 퇴근했는데, 알라딘에서 시킨 책도 한 무더기가 도착했는데, 풀어보지도 않고, 피곤한 줄도 모르고, 나는 옥수수 껍질 벗기기에 몰두한 것이다. 샤샤샥 이파리를 벗겨내고, 숑숑 털을 뽑아내고, 부끄러운 맨몸이 드러나지 않도록 마지막 한겹만 남겨주기. 그렇게 한 박스에 들어 있던 옥수수를 다 깠다. 헉. 그런데, 어머니, 저는 한 박스의 옥수수를 깠는데, 왜 옥수수 껍질이 한박스가 넘는 건가요 ㅜㅜ 엄청난 양의 껍질과, 그 안에 들어있던 알토란 같은 옥수수 30개. 다 까고 나니, 어쩐지 아쉬워져 이 엄청난 양의 껍질 안에 알맹이 있는 옥수수가 더 있지 않을까 찾았는데 (순전히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까고 싶어서 -_-) 어찌나 알뜰하게 다 깠는지. ㅎㅎ
일단, 밖에서 고생한 옥수수를 마루에 펼쳐놓고 에어컨 바람을 쐬어줬다. 더운날 붙어다니느라 고생했다, 훠이훠이 멀찌감치 넓게 펴서 말려줬다. 갑자기 옥수수가 많아지니 치약 앞의 미자씨가 된 기분이다. 이걸 어떻게 하면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고민고민하다가 10개는 먹고 20개는 그냥 안양 집에 들고 가기로 했다. 맨날 집에서 쌀도 퍼오고, 반찬도 퍼오는데, 처음으로 집에 뭔가를 들고 간다고 생각하니 좀 신난다. 내일은 좀 삶아서 경비아저씨도 드릴까 생각중이다. 안오지랖 아저씨가 있는 날이니까. 오늘은 퇴근하는 길에 뉴슈가도 사왔다. 이게 옥수수 삶을 때 넣는 거 맞지요? 라고 확인도 하고. 그런데, 옥수수는 몇 분을 삶아야 맛있으려나...:)
ps. 제목에 두근두근은 왜들어갔나요?
답) 인디시트콤에 대한 오마쥬입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