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천 현대 미술관을 좋아하지만, 가까이에 살면서도 자주 들르지는 못했었다. 놀이 공원과 함께 있는 미술관인지라 주말에는 엄두가 안나고 왠지 평일에 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늘 마음은 원이로되 실제로 다녀온 건 손에 꼽는다. 휴가를 내고 한가로이 뒹굴뒹굴하고 있는데 팀장님께 문자가 왔다. 토요일에 약속 없으면 인도현대미술전에 가자고. '이벤트에 당첨' 되었다고. 악. 좋아요- 안그래도 지하철에서 포스터를 보고 가고 싶었는데. 후훗. 이 봄날 동물원 옆 미술관이라니. 주말에 날씨만 좋으면 딱이겠다. (사실 요즘은 평일보다 주말이 나을지도 모른다. 애들 소풍을 생각하면 ㄷㄷ)

인도 현대미술전은 일본 모리미술관에서 기획되었던 전시를 살짝 재구성하여 가져왔다고 한다. 지난 겨울에 모리미술관에 다녀온 N모양과, 네이버 이웃인 D모님께서 사진을 찍어놓은 걸 보고 살짜기 부러웠더랬는데, 오홋. 나는 지하철을 타고 다녀왔단 말이지. 한국어로 말해주는 친절한 도슨트 아저씨와 함께.
이번 전시회는 그림 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법의 조형물 및 영상 작품들이 많아 더욱 신기하고 색다른 경험이었던 것 같다. 기발하고 똑똑한 작품들이 많았달까. 게다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들의 작품이라, 더욱 공감의 여지가 넓었던 것 같기도 하다.

전시장 입구에는 거대한 코끼리가 있다.
인도의 상징이기도 한 이 녀석은 이번 전시에도 굉장히 중요한 작품이었기에,
전시장 안으로 꼭 넣어야 하는지라 '문을 부수었다고' 한다.
자세히 보면 코끼리의 몸체는 수억마리의 정자로 구성돼 있는데
크고 무기력해 보이는 것 안에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은,
오늘날의 인도의 모습이기도 하다.

본격 전시가 시작되기 전에는 이 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입체적으로 구성된 이 문 안에는 여러 종교를 상징하는 인물들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저어기, 예수님이 보이는가. ㅎㅎ
사실, 이 작품은 인도 작품들의 색감에 반하게 만든 작품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의 특징 중 하나는
미술관 안의 관리 요원(?)들이 앉는 의자도 다 예술로 만들어버렸다는 건데
전시장 안에 있는 각 10개의 의자는 각기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여러 예술 작품들이 함께 배치되어 있다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에도 나왔던 인도의 빈민가 뭄베이의 모습
이건 매우 큰 규모의 작품 일부를 측면에서 찍은 것이다

전체 작품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다본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정말,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인도 화폐 단위인 1루피, 정확히 얼마라고 했었는지는 기억이 안나는데,
뭐 암튼 환산하면 굉장히 작은 돈
통신의 발달로 이 돈이면 굉장히 먼 거리가 연결되기도 하지만,
또 누구는 이 돈이 없어 자살하기도 했다, 는 등의 내용들이
뒤쪽 액자에 쓰여져 있는데 (아, 물론 영어로 - 하여, 나도 다 읽지 못하고)
홀로그램으로 돼 있어서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마치 한쪽 면과 이면을 보여주듯

이 작품은 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껍데기만 남아 버린 사람의 모습. <br />

나를 굉장히 즐겁게 해 주었던 유니셀이라는 단체명으로 나온 작품들
유니셀 프로젝트는 도시화되고 있는 인도의 이면들을 비추며
그에 대한 해법을 해학적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재체가 어찌나 넘쳐나던지 작품들 앞에서 또 얼마나 웃었는지 모르겠다.
바닥에는 만원 통근열차에서 효율적으로 빠져나가기 위한 스텝을
발바닥 스티커로 오른발 왼발 순서대로 친절하게 붙여놨는데
나 또 그 스텝 차근차근 밟아주고 오셨다. 하하.
(좀 찾아봤는데 사진이 없다 ㄷㄷ)

이건 거리 상인 보호 프로젝트의 일환이라는데, ㅎㅎ
인도에 있는 수십만의 불법 거리 상인들을 단속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기 위해 고안된 것.
겉에서 보기엔 우편함인데 안에는 선글라스가 들어있다.
펼쳐놓고 팔다가, 단속반이 뜨면 슬쩍 덮고 우체통인 척 시치미 ('' ) ( '')

근처에 있던 샤방샤방한 방
인도 젊은이들의 로망인 세속적 성공에 대한 상징들로 가득한 이 방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희망적으로 그린 작품이라는데,
그러한 청년들이 눈을 가리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은지
(학교 신문사에 있을 때, 우리 학교 학생들이 사회 문제로부터 눈을 가리고 있다는 점에 대한 안타까움을 기획 광고로 싣느라, 내방 곰인형에 눈가리개와 귀마개를 씌우고 사진을 찍어 '눈가리고 4년, 귀막고 4년' 이라는 카피와 함께 내보낸 적이 있었는데, 그 때의 생각이 새록새록 났다)

이 작품도 독특했다
한쪽 면에는 면도칼날들이 돌아가고 있고,
뒤편에는 사람과 동물 인형들이 마치 장작구이 닭처럼 돌아가고 있으며
중앙에는 각종 위험에 대한 사진들이 돌아가고 있다
뒷편에 비쳐진 그림자에는 관람자의 형상도 더해져 있어,
마치 당신도 이런 것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이야기하는 듯.

하지만, 그림자의 압권은 이 작품이다
관람자의 그림자가 곧 작품이 되는
정말 신기하게도, 관람자가 서 있는 곳 위로 각종 짐들이 내려오고,
그 짐이 관람자가 움직이는 곳마다 따라다니는데,
함께 보는 사람과 교차할 때 그 짐이 옮겨가기도 한다
나에게는 애기 동자 같은 애가 하나 붙어서 죽어도 안떨어지더라 ㄷㄷ

이번 전시의 특징 중 하나는 영상이 굉장히 많았다는 것이었다
작가들이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비롯해,
작가 인터뷰, 작품 세계, 인도에 대한 다큐멘터리 등이 꽤 긴 영상으로 제공되는데
이거 다 제대로 보려면 굉장한 여유를 갖고 가는 편이 좋을 것이다
사진의 작품은 자살노트라는 작품인데, 꽤 긴 시간을 꾹 앉아서
마치 단편영화 하나 보는 기분으로 봤다

이 작품은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것 중 하나
이것 외에도 여러 사람들의 모습으로 형상화돼 있는데
이들은 다양한 사건으로 인해 실종된 인도 사람들의 모습이라 한다
그리고 작품을 이루고 있는 조각들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스탬프인데
인도와 파키스탄의 전쟁의 희생자의 이름이 하나 하나 새겨져 있다
이 작품들은 인도 지도 형상을 이루는 이름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것은, 더 이상 이러한 아픔이 없길 바란다며 함께 서명한 이들의 이름이라 한다
세밀한 마음들이 느껴져 참 좋았던 작품
그 외에도 마음에 들었던 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사진들이 거의 없어, 소개가 어렵다
역시 가장 좋은 건 직접 가서 눈으로 보고 자신의 마음에 드는 작품들을
다시 자신의 마음으로 담아오는 일이 아닐까 한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컬처플러그 / <a href="http://blog.ohmynews.com/seulsong/274521">http://blog.ohmynews.com/seulsong/274521</a>)
과천 현대 미술관 밖에서는 인도 음식을 파는 행사도 진행하고 있는데

6,000원이나 주고 사먹었건만 맛이 없다 -_-
한국에 체인이 있는 곳인 것 같은데, 흠, 심히 걱정이다
한쪽에서는 인도여인들이 미간에 붙이는 빈디 스티커를 나눠주고 있었는데
하나 붙여서는 하루종일 그러고 다녔다. 하하.
날이 좋아서 과천 현대미술관은 산책 코스로도 그만이었다,
갈 때는 코끼리 열차 (아, 추억의...!) 를 타고 갔지만 올 때는 기분 좋게 걸어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찍은 사진,
유난히도 젊어보이게 나와 요즘 밀고 있다 ㅋㅋㅋㅋ

내려오는 길에, 창경원 동물원에서부터 서울 대공원까지
올해가 한국 동물원 백주년이라며 기념 사진들을 붙여놨는데,
나는 이 사진이 너무 재밌었다
오랑우탄의 입주 앞에 엄숙하게 앉아 있는 어르신들이라니 하하
참, 전시는 6월 7일까지이고,
이번 전시를 마치면 호주에서 전시된다고 합니다.
한달도 남지 않았으니, 마음이 가는 분들은 얼른 다녀오세요. ^-^